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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4일 월요일

"세월호 싸움, 져도 지는 게 아니다"ㅡ 김익한 명지대학교 교수 인터뷰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6121

그때김익한 명지대학교 교수는 운전 중이었다보수 성향 원로 한분과 함께 차를 탔다다들 그랬던 것처럼사고 소식을 접하고 얼마 뒤 '전원 구조뉴스를 들었다잠시 마음을 놓았는데그게 아니었다. '엄청나게 죽었겠구나.'

"박근혜한테 전화해서 진도에 내려가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동승한 원로에게 말했다"에이박근혜가 내 말을 들어야 말이지."

2014년 4월 16차 안에서 나눈 이 대화를 기억하는 게그는 괴롭다중앙권력만 바라보는 습관엘리트주의그가 평소 비판하던 것들이 이 대화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깊이 반성했다생각하면 지금도 낯이 뜨겁다그날 이후그의 행보는 알려진 대로다기록학 전문가인 그는 동료들을 모아 진도로 내려갔다. '세월호 시민아카이브 네트워크'를 꾸리고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모든 기록을 정리했다이는 '416기억저장소개소로 이어졌다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이 주로 살았던경기도 안산시 고잔동에 있다그는 매주 화요일마다 이곳으로 출근한다 

"아이들이 정말 꿈꿨던 게 뭔지 몰랐으면서, 그저 '학원 가라'고만"
   
지난 화요일(4월 28일)기자는 고잔동을 찾았다그는 <프레시안>이 최근 진행한 '고잔동에서 온 편지기획에 대한 이야기로말문을 열었다 
   
"엄마아빠가 기억하는 아이들 이야기가 주로 기사에 담겼다이걸 보고, '아이들의 삶이 참으로 아름다웠는데,우리가 잘못해서 아이들이 수장됐다'라고 생각하는데 그친다면 잘못이다기사를 쓴 취지와도 다르리라고 본다아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잘 곱씹어보면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고어떻게 살고자 했는지가 드러난다그리고 어른들은 그걸 몰랐다안다고 믿었다하지만 아니었다아이들이 정말 꿈꾸는 게 무엇인지 모르면서, '학원 시간 늦지 않았니'라고 할 뿐이었다." 
   
이어 그는 "희생된 아이들이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이날 나눈 대화의 요점이다지식인엘리트의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방식은 안 된다아이들과 유가족의 자리에 서야 한다.
   
아이들의 가르침을 가장 깊이 받아들인 이들은당연히 유가족들이다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엄마아빠들 이야기 들어보면완벽하게 일치한다다들 '돈이 별 것 아니다'라고 한다먹고살 만큼 돈 있으니까돈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한다짐승 같은 자들이 유가족들에게 보상금 8억 원을 준다는 둥 떠들어도꿋꿋한 이유는 돈 욕심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공통점은 또 있다 

"'경쟁사회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남은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는 유가족을 본 적이 없다이건 회한 때문이다떠난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한 채공부하라고 등 떠밀기만 했다는 회한이다."  
   
유가족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그는 기억의 힘을 곱씹게 된다아이들의 기억이 유가족들을 바꿨다이른바 진보 진영조차 자유롭지 않은공부와 성공의 권위그걸 깼다하지만 기억의 힘은 한계가 있다그 힘으로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기억은 결국 지워진다잊지 않기 위한 싸움에서 밀리는 순간세상은 변하지 않는다참사 이전과 다를 게 없어진다 

"'기억 투쟁'작고 긴 이야기가 진실로 남는다" 
   
그가 '기억 투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다그의 전공이기도 하다기억과 기록 사이를 오가는 게 그가 하는 일이다기록에 기억을 담고기록으로 기억을 불러낸다 
   
"'기억 투쟁'이라는 말을 쓴다는 건반대 측이 있다는 이야기다투쟁이란 상대방이 있기 마련이니까기억을 왜곡시키거나 지워버리려는 힘이 있다지배 권력만 그러려고 하는 게 아니다사회 시스템 전체를 통해 이런 힘이 작동한다여기에 맞서 싸우는 게 '기억 투쟁'이다그 핵심에는 기록을 통해 기억을 불러내는 행위가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벌써 잊었다지난 4월 29일 재보선이 여당의 압승으로 끝나자정부는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는다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이 차관회의를 통과했다세월호 참사 진상 조사를 위한 필수 요건들이 빠진 시행령이다시행령 철회를 위한 싸움이 진행 중이지만대다수 언론의 관심은 이미 식었다이렇게 잊히는 걸까 
   
"언론을 통해 많이 소개된 사실이 꼭 기억을 지배하는 건 아니다작고 긴 이야기가 진실로 남는다그게 씨앗이 돼 기억을 장악한다. 얼마 전에 416기억저장소 2호관이 문을 열었다아이들의 사진과 기록이 담겼다대단한 홍보를 한 것도 아닌데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다이들이 긴 싸움을 이끌어가는 주역이다기억 투쟁은 긴 싸움이다." 

'기억을 지배하는 작고 긴 이야기'. 그가 예로 든 건 '밥상 이야기'였다언론에 많이 소개된 건 아니지만사람들의 기억을 지배한다기자도 고잔동 취재를 하며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대략 이런 내용이다.
   
"아이가 나이키 신발 사달라고 밥상에서 투정을 부렸다결국 '돈 이야기'라고 생각한부모는 밥상에서 다투기 시작했다돈 이야기가 꼬리를 물면서다툼도 커졌다아이가 짜증내며 일어섰다아빠는 아이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돈 벌러 나갔다나이키 신발 살 돈을 벌려고."
   
이와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는 유가족이 많다이런 기억은 거대한 후회와 반성으로 돌아온다돈과 공부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에 대한 깨달음이다이런 유가족들에게 정부는 돈 이야기를 한다어찌나 한심한 짓인지 

"세월호 참사의 기억, '사회적 삶'으로 이어져야" 
   
김 교수는 이어 '자기화'라는 말을 꺼냈다 
   
"기억하는 게 끝이 아니다핵심은 '자기화'자기 문제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4월 16아이들이 바다에 잠기고 있었다그걸 텔레비전으로 뻔히 보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없다손 놓고 있던 나 역시 아이들을 수장시킨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이런 식으로 '자기화'하는 게 일반적인 경우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서자기를 매개로 세상을 받아들인다소설가 황석영이 그랬다. '길 가던 걸인의 죽음에도 죄의식을 느낀다'라고. '나도 가해자'라는 식의 '자기화'가 자기 부정으로까지 가지는 않을 게다사회적 삶을 살지 않았던 데 대한 회한이 든다그래서 사회적 삶에 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세월호 참사를 자기화 하는 일반적인 방식일 게다기억이란 결국 실천과 짝을 이루는 것이다실천할 것이므로 기억한다세월호 참사를 자기화하면사회적 삶에 대한 실천으로 이어진다." 

김 교수는 역사를 공부했다역사학계에서 주목받는 논문도 여러 편 썼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기존 역사학의 관성에 불만이 많다진보적 관점에서 역사 서술을 해서 주류 역사학에 맞선다이런 식의 담론 투쟁이 역사학계의 큰 흐름이었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계몽과 훈육이라는 틀에선 진보와 보수가 마찬가지라는 게다지식인이 자기 문제의식으로 기록을 정리해서 가르치는 방식은 여전하다는 것그는 프랑스 역사가 피에르 노라의 '기억의 장프로젝트를 자주 이야기했다과학적인 실증을 무기로 삼는 역사가가 보기에주관적인 기억이란 그저 의심스러운 존재일 뿐이다결국 역사가의 작업이 쌓이는 데 비례해서 자생적인 기억은 파괴당한다그런데 역사가의 이런 태도가 과연 옳은가이게 피에르 노라의 문제의식이다.

"괴물은 괴물을 이길 수 없다"

김 교수가 참가한 '416기억저장소'도 이런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역사가혹은 다른 전문가가 '세월호 참사'를 자기 방식으로 기록하게끔 하지 않는다기록이 스스로 말하게끔 한다이곳에서도 많은 글이 생산되지만그건 함께 실천하는 이들의 글이다현장으로부터 떨어진객관적 자리에서 쓴 글이 아니다 

엘리트주의계몽주의에 대한 반대이런 측면에선 피에르 노라의 작업보다 한 발 더 나간다그는 "진보 지식인이 갖고 있는 엘리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주간 프레시안 뷰'에 격주 간으로 글을 쓰는 그는이 지면을 통해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전했었다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다만 그들은 '도우미역할에 충실해야 한다지식인엘리트가 사람들을 이끌려 하는 순간괴물이 된다약자를 짓밟는 나쁜 괴물에 맞서 싸우다어느 새 스스로 괴물이 된 지식인이 많다그런데 괴물은 괴물을 이길 수 없다.괴물을 이기는 건 난장이다. 이게 그의 생각이다 
   
"'역사의 주체는 민중'이라고 했다이 오랜 화두를 이제 알 것 같다지난 역사를 돌아보면우리는 늘 지는 싸움만 했다중앙권력에 맞선 싸움은 모두 패했다내 궁금증은 이 대목이다이렇게 늘 지기만 했는데역사는 왜 큰 틀에서 진보해 왔는가중앙권력을 바라보는 엘리트의 시선으론 답을 찾을 수 없다표면적으론 지는 듯 했다그러나 개인적인 감동과 결실들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이런 게 모여서 변화가 생긴 것이다세월호 참사 이후 벌어진 싸움 역시 우리가 지기만 했다엘리트의 시선으로 보면그렇다하지만 삶의 현장에 뿌리 내린 시각으로 보면 다를 것이다. 
   
416기억저장소에 모인 이들 역시 주말마다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한다하지만 그게 우리 활동의 본질적인 영역은 아니다우리는 박근혜 정부혹은 안산시와 직접 투쟁하지 않는다현장에 뿌리박고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그게 우리의 목적이다."

"유가족을 돕는 게 아니다'스스로 실천하는 장'을 연다" 
   
밥상 공동체교육 공동체. 416기억저장소를 중심으로 싹 트는 모임들이다세월호 유가족들은 떠난 아이들로부터 깊은 가르침을 받았다경쟁에서 이기는 삶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런 가르침을 잊지 않는다면답은 결국 공동체다우리 삶은 서로 연결돼 있다내 삶이 바뀌면다른 이들의 삶도 변한다남은 아이들을 함께 가르치고밥 먹이면서 꾸려진 공동체는 "우리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터전이 될 것이다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이미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김 교수는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싸우는 '밀양 할머니들'을 예로 들었다삶의 터전에서 부딪힌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공동체이들의 싸움은 지역적이면서 동시에 전국적이다우리 사회가 작동하는 근본적인 방식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는 까닭이다.
   
김 교수는 "416기억저장소는 유가족을 돕는 활동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인터뷰에선 유창하게 이야기하는 그가 416기억저장소그리고 이곳에서 싹 트는 공동체 모임에선 발언을 자제한다. "유가족과 시민이 모여 스스로 실천하는 장"이 돼야 하므로그렇다 

"'현장의 울림'에 순종하려 한다" 
   
이렇게 말하는 그 역시 지난해 4월 16일 이후 삶의 방식이 크게 바뀐 이들 가운데 한 명이다힘든 점은 없을까. 
   
"삼십만 건이나 되는 기록을 놓고 현장에 앉아 있다기록 전문가 입장에서 이걸 분류하고 목록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내가 지닌 지식이 별 볼일 없구나 싶을 때도 많다작년에는 작업이 빨리 진행되지 않아서 무척 답답했다그리고 이제 5월이다떠난 아이들 대부분의 기일이 끝난다유가족들은 사회적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기억 투쟁'을 제대로 실천하는 때다우리의 활동 사이클이 자연스럽게 그 시점과 겹치게 됐다.
   
그간 '현장의 울림'이 주는 압박 때문에 힘들 때도 많았다하지만 '현장의 울림'이 여기까지 이끌었다앞으로도 '현장의 울림'에 순종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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