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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8일 수요일

블랙리스트는 내전이었다/조태성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기 전까지는 그렇게 화가 나진 않았다.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국정원이 작성한 저에 관한 굉장히 많은 서류를 보면서 국가가 거대한 권력을 위해 개인을 사찰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매우 불쾌하고 화가 났다. 서류들을 보고 나서는 정말 기가 막히고 과연 이것이 내가 사랑했던 대한민국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블랙리스트에 얽혀 든, 방송인 김미화의 발언이다. 피해 당사자의 감정적 부분을 조금 덜어내고 다시 읽어보면, 블랙리스트라 해서 막연하게 그냥 이래저래 뒤 좀 캐고 여기저기 저 사람 빼라 힘 좀 쓴 거 아니겠냐 라고 생각했던 게 완전한 착각임을 깨달았다는 얘기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블랙리스트는 ‘심리전’의 일환으로 작성, 실행된 것이다. 심리전은 게임 하듯 뭔가를 주고받으며 토닥토닥 밀당 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건 사랑 놀음 때나 하던 것이고, 심리전은 총과 대포 같은 무기를 쓰지 않을 뿐 상대를 섬멸, 타도해야 할 적으로 간주했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참여정부가 2004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 건 종북 행위요, 박근혜 정부가 2015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건 엄청나게 단호한 대북제재 행위라고 그 얼마나 떠들었던가 말이다.
고로 심리전의 일환으로 블랙리스트를 기획, 집행했다는 건 사실상 내전을 벌였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나온 걸로 보면 이명박 정부 때는 그래도 영향력이 큰 인물을 하나씩 찍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했다면, 박근혜 정부 때는 촘촘한 그물망을 펼쳐 들고 일반 국민들은 누군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사람과 조직들에게까지 손대는 전면전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들은 그 심리전 기법이라는 게 고작 나체사진 합성, ‘프로포폴 주사 맞았다’는 소문 퍼트리기 같은 것이냐 한탄하지만, 사실 심리전의 참 맛은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서서히 젖어 들게 만드는 데 있을 지도 모른다.
블랙리스트를 두고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별 달리 할 말이 없다. ‘경제적 박정희’에 이어 ‘정치적ㆍ혈연적 박정희’의 등장 의미가 뭔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고음이 숱하게 울렸다. 그런데도 정말 몰랐다면 그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모를 가능성이 높다. 누구 말마따나 서해 바닷물 짠 거야 한 컵만 마셔봐도 아는데 굳이 다 마셔봐야만 하겠다면 꾸준히 마셔보는 수 밖에 없다. 비아냥대는 게 아니다. 우직한 만큼이나 제일 정확한 방법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또 다른 한 켠에서는 블랙 리스트가 ‘안보 리스트’라는 주장이 나온다. 기다려왔던 주장이다 보니 안 나왔으면 섭섭할 뻔했다. ‘대한민국’ ‘어버이’ 붙은 각종 단체들을 홍위병으로 부리면서 일종의 문화대혁명을 기획했는데 이게 무슨 죄냐는 얘기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창의력 빵점’짜리 답변이라 어찌 대꾸할 말이 없다. 지금 뿐 아니라 앞으로도 대꾸할 말은 없을 것 같다.
다만 언제는 안 그랬냐,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러냐는 주장에 대해서는 좀 분명히 말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맞다. 문화 예술 분야 지원 사업은 늘 뒷말이 많다. 정치적 문제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내 이런저런 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를 피하려다 보니 모든 지원 사업은 쿼터제가 존재라도 하듯, 골고루 나눠 갖기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블랙리스트 때문에 줄어든 문화예술 지원 사업을 원상 복구하는 것을 넘어서, 이번 기회에 개별 작가, 단체, 작품에 대한 직접적 지원에 집중된 사업 방향을 재검토하는 방안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이런 문제가 있다 해서 블랙리스트, 그것도 상대를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심리전으로서의 블랙리스트가 정당화되진 않는다. 최소한 ‘자유민주’니, ‘시장경제’니, ‘보수’니 이런 단어를 입에 올리려 한다면 말이다. 괜한 물타기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조태성 문화부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출처 http://www.hankookilbo.com/v/2cb0fb8a456a4575b4feb7652f8cd5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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