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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30일 월요일

민음사, 박맹호 이야기/ 김동훈

민음사


브랜드는 백성의 소리(Vox Populi)다. 백성의 소리를 듣되 설움을 삭이고 시와 같이 우아하고 품위 있는 ‘민음(民音)’을 표현하는 것. 민음사는 한국에 단행본 출판문화를 선도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 권력에 의해 묻혀 버릴 많은 문인들을 발굴해 냈다. 브랜드는 시민의 또 다른 항거, 개혁을 꿈꾼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가즈오 이시구로, 일본계 영국 소설가로 국내에서 유명한 작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민음사는 <남아 있는 나날>(2009), <나를 보내지 마>(2009), <녹턴>(2010),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2011) 등 이시구로의 전체 여덟 작품 중 일곱 권을 국내에 소개해 왔다. 이번 노벨 문학상 선정으로 민음사는 ‘이시구로 특수’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그동안 민음사가 꿋꿋하게 지켜온 출판 철학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 권력은 누가 만드는가 
민음사를 창립한 고 박맹호 회장은 원래 문학청년이었다. 1955년 서울대 불문학과 재학 시절인 스물두 살에 1회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자유 풍속’을 응모했다. 이 단편으로 등단이 확실시됐지만 당시 정권을 잡았던 자유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심사위원들은 그의 당선을 취소한다. 풍자로 이루어진 그의 소설 일부를 보자. 
그럼으로써 경애하는 수상의 민주적 권력은 시민들의 자유를 보다 더 신속히 보장하기 위하여 철저히 강화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자유’를 불필요하게 구속하는 법률을 완전하고도 철저하게 폐지하여 버리고 영특하신 수상의 자유재량에 우리의 조국을 마음 든든히 맡기고자 했습니다.(박맹호, ‘자유 풍속’에서) 
이 대목은 정부의 선전 연설 중 한 부분이다. 여기서 ‘수상’은 자유당 정권 시절 최고 권력에 대한 풍자다. 또한 이 소설의 주인공 ‘맥파로’는 자유(당)를 지키기 위해 투쟁을 불사하는 시민으로 풍자된다. 맥파로(麥波路)는 한자의 의미대로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 물결의 길’인데, 바람 따라가는 떠돌이라고 할까, 돈 한 푼 없는 백수 처지에 길을 걷다 우연히 선전을 듣게 된다. 왠지 모를 뜨거움을 느끼며 주인공은 ‘관제 데모’에 휩쓸려 갔다 결국 죽고 자유(당)는 수호되었다. 그렇다면 이 풍자소설은 어떤 문제의식을 갖는가? 
우선 이상한 어구들이 등장한다. 수상이 권력을 갖되 그냥 권력이 아니라 ‘민주적 권력’이라든지, “자유를 보다 더 신속히 보장하기 위하여” 수상의 권력을 강화하고 “수상의 자유재량”에 “조국을 마음 든든히 맡긴다”와 같은 표현. 이쯤에서 그의 풍자는 기막힌 역설로 우리의 머리를 때린다. 독재 권력을 양산하는 것은 다른 아닌 시민이라는 점, “수상의 자유재량”은 주인공 맥파로로 대표되는 시민이 위임한 것. 혹자는 주장할 것이다. 국가적 위기의 순간에 절대권력은 단기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 예외상태를 창출하는 절대권력 
그 당시 ‘관제 데모’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시민 집회는 예외상태를 야기했다. 그 내면에는 자유당 정권의 교묘한 술책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 이후 국내에서 간혹 있었던 비상사태는 카를 슈미트의 ‘예외상태론’으로 분석할 때 한 가지 확실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정상이 아닌 비정상의 예외상태로 누군가 한 사람이 절대권력을 획득한다는 것. 카를 슈미트의 저 유명한 테제, “예외상태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자를 주권자로 일컫는다”가 유독 한국에서 여러 차례 목도되었다.
슈미트의 주권론에 의하면, 국가가 비상사태에 직면했을 때 기존 법의 틀 바깥에서 신속하게 결정하는 주권이 필요하다. 그때 결정을 내리는 자가 바로 주권자다. 평상시에는 모든 결정이 절차를 따라 대화와 타협으로 순조롭게 진행되다가도 예외상태가 될 때 결정권이 소수에게 부여된다면 주권은 국민이 아닌 최고 권력에 있는 것이다. <호모 사케르>의 저자 조르조 아감벤도 주권의 근본 구조가 예외상태임을 밝히고 있다. 
절대권력을 꿈꾸는 사특한 자들은 자신이 ‘지존’으로 등극하기 위해 비상사태를 만들거나 방조할 것이고, 그런 전형적인 예가 자유당 시절의 ‘관제 데모’였다(최근 2016년에 있었던 터키 정부의 비상계엄령도 일부러 그런 사태를 방조하거나 조장한 것이 아닌지 의심받기도 한다).
그 시대를 몸소 겪었던 감수성 강한 문학청년의 눈에 떠오른 대안은 무엇이었을까. 백성이 진정한 소리를 듣는다면, ‘관제 데모’와 같은 불행은 막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백성이 깨어 있으면 지식을 독점하여 온갖 선전문구로 ‘예외상태’를 만들어 내는 권력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권력자를 만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외상태를 만들도록 현혹되지 않을 가능성은 오로지 깨어 있는 시민에게 있다. 갓 스물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등단의 기회를 놓친 박맹호는 이후 뭇 백성에게 참된 소리를 펼치기로 결심한 채 문학청년에서 출판청년으로 거듭난다.
■ 승화된 ‘백성의 소리(Vox Populi)’를 위해 
박맹호는 소수 권력자를 비판하기보다는 오히려 ‘백성의 소리’가 울려 퍼져 모든 권력에 항거하기를 원했다. 1966년 박맹호는 서른세 살이 되자, ‘백성의 소리’라는 뜻의 ‘민음사’란 이름으로 출판사를 창립한다. 회사명은 탐독했던 <수호지>의 영향을 받은 것. 그는 “<수호지>가 세상에 대해 항거하는 내용이 재미있어서 몰입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문 문법에 맞춘다면 ‘민성사’이겠지만 ‘민음사’로 한 이유가 있었다. 음(音)은 “동양에서 악부(樂府)가 백성들의 다양한 노래를 채록하면서 그대로 하지 않고 고급한 시의 양식으로 승화했다는 것”. 백성의 소리를 듣되 시와 같이 “우아하고 품위 있게 해보자”는 뜻이었다. 초창기 찍었던 건강 관련 도서나 전집이 비록 매출에 큰 도움이 됐을지는 모르지만 아무 ‘소리’나 출판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그 이면에는 ‘민음, 그러니까 승화된 백성의 소리’를 찾고자 하는 결단이 있었다. 
‘세계시인선’ ‘오늘의시인총서’ ‘이데아총서’ ‘대우학술총서’ ‘오늘의작가총서’ ‘김수영문학상’ ‘오늘의작가상’에는 묻혀 있는 ‘민음’에 대한 박맹호의 철학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박맹호 회장이 발굴해 낸 시인으로는 김수영, 김춘수, 김종삼, 최승호, 장정일 등과, 작가로는 이제하, 이문열, 한수산, 박영한, 전상국, 강석경, 조성기, 하일지 등. 심지어 학자로는 최창조, 김용옥 등이 있다. 박맹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실 내가 출판에 관심을 품은 건 대학 시절부터였다. 소설에 인생의 무게중심이 쏠리기는 했지만, 출판은 은밀하면서도 확연하게 내 안에 자리 잡은 또 다른 꿈이었다. 비록 내가 직접 쓴 작품은 아니더라도 남들보다 먼저 훌륭한 작품을 만나고 나면 그 쾌감이 강렬했다.(박맹호, <책>에서)
소설로 밤을 지새웠던 문학청년의 감수성이 각 시대의 ‘민음’을 찾았던 이유는 거기에 어떤 ‘쾌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민음사는 본격적으로 단행본 시대의 서막을 열게 된다. 당시는 출판사들이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같은 전문 도서는 거의 만들지 않았고 교과서나 전집류를 펴내는 시대였다. 하지만 박맹호는 “나는 민음사를 종합대학 하나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아카데미즘의 센터로 만들고 싶다”는 일념으로 단행본 출판을 고집해 나간다. 드디어 민음사는 한국 단행본의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자 출판문화의 전차가 정상 궤도에 진입하게 된다. 아울러 한국에 명실상부하게 ‘교양’이 가능하게 되었다. 
■ ‘황금가지’와 권력의 목 베기 
‘우물 안의 개구리’는 무식할 뿐만 아니라 용감하다. 하지만 우물 밖의 세상을 알 수만 있다면 그 개구리는 우물 안의 권력에 대항하고 그 권력은 곧 무너진다. 분명 권력에 대한 항거는 ‘앎’으로부터 시작된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프로테스탄트, 즉 ‘항거자’란 이름을 가진 이유는 밖의 앎을 가능케 한 출판 덕분이다. 만약 인쇄술이라는 매스미디어가 없었다면 프로테스탄트, 그러니까 종교와 정치 권력에 대한 ‘항거’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 종교개혁의 도화선이었던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1517년 10월31일 비텐베르크대학교 교회 정문에 게시된 지 일주일 만에 독일 전역으로, 그리고 한 달 만에는 유럽 전역으로 급속하게 퍼졌다. 
출판을 통해 확산된 다량의 새로운 지식은 이전 시대의 지식 독점을 불가능하게 했다. 중세의 교회와 대학을 중심으로 버티고 있었던 지식 권력과는 전혀 다른 ‘민음’이 전파됐고, 새로운 지식들이 모이고 대치되면서 창의적인 지적 활동이 장려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출판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출판이라는 기술 혁명은 손으로 일일이 베끼던 필사본에서 인쇄본으로 바뀜으로 각종 사상의 네트워킹을 가능하게 했고, 보다 폭넓은 지식이 유통될 수 있었다. 출판업의 발달은 이후에 나타나는 종교개혁과 과학혁명, 그리고 계몽주의의 탄생을 위한 인큐베이터였던 셈이다. 이 인큐베이터 속에서 온갖 지식 권력에 대한 ‘항거’가 움튼다. 이것이 바로 출판의 힘이다.
민음사는 창업한 지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한번 출판을 통한 ‘항거’의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황금가지는 1996년 무겁고 진지한 민음사의 이미지를 탈피해서 독서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책을 출판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창립했다. ‘황금가지’라는 이름은 조지프 프레이저의 인류학 명저 <황금가지>에서 따온 것으로 ‘권력의 목 베기’라는 내포가 문화적 엄숙주의를 버리고 생동하는 세계의 새로운 감각을 수용하려는 취지에 맞춤했다.(박맹호, <책>에서)
신화학자 조지프 프레이저에 의하면 ‘황금가지’는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의 이름이다. 북이탈리아의 네미 호수 숲에서는 이전의 사제왕(司祭王)을 살해하는 새로운 사제는 먼저 ‘황금가지’를 꺾어야 했단다. 황금가지 꺾기가 준비되어야 ‘권력의 목 베기’가 가능한 것. 종교 권력의 목, 그리고 지식 권력의 목은 출판이라는 황금가지를 지닐 때만 가능하다. 이것이 권력에 대한 박맹호식 항거요, 동시에 출판이 출판다워질 수 있는 기본 자세다. 
■ 진정한 주권과 사명감 
그렇다면 황금가지를 지니면서 잊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일까? 권력이 만드는 예외상태에 맞서야 한다. 앞에서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고 했다. 그런데 일찍이 종교개혁운동을 펼친 장 칼뱅은 그 주권자의 자리에 사람이 아닌 신을 올려놓았다. 칼뱅은 카를 슈미트의 주권론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장 보댕과 동시대 인물이다. 칼뱅의 주권론은 이른바 ‘신의 주권 사상’으로, 예외상태와 관련하여 쉽게 풀자면 이렇다. ‘신만이 예외상태에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신이 아닌 권력자가 조장한 그 어떤 예외상태에도 현혹되지 말라.’ 
그뿐만 아니라 현대에 권력자가 창출하는 예외상태에 맞서는 이론을 제시한 사람도 있다. 발터 벤야민. 그는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8번 테제에서 “진정한 예외상태를 도래시키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선언한다. 이 이론을 발전시킨 아감벤은 ‘진정한 예외상태’를 ‘메시아의 도래’로 국한시켰다. 진정한 예외상태는 권력자가 아닌 메시아와 더불어 온다는 것. 메시아는 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기 때문에, 주권자가 법을 폐지(중지)하는 예외상태는 메시아가 완성하는 법과 충돌된다. 메시아만이 예외상태를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데, 그 예외상태도 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법을 완성하는 길, 즉 모든 법의 완성인 사랑이다. 
어디 한번 보자.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둥 여러분이 주인이라는 둥의 빤한 거짓말은 금방 탄로 난다. 당신이 소속된 조직에서 누가 예외상황을 만들거나 누리고 있는 초법적 존재인지 살펴보면 그렇다. 근무시간이 누군가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다른 구성원이 다 지키고 있는 원칙과 규정이 누군가에겐 저촉되지 않는다면, 그 특정인이 ‘지존’이다. 그런 사람은 더욱 허울 좋은 복지 운운하며 현대의 ‘맥파로’들을 선동하겠지만, 그가 교묘하게 자신의 특혜, 그러니까 예외상태의 권력을 절대 양보하지 않고 누리고 있다면, 본인은 아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절대권력을 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쯤 되면 용기 있는 시민은 그 권력에 눈이 먼 독재자를 증오하고 비난하고 급기야 복수심에 가득한 채 그 조직을 뛰쳐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때 그 조직의 변화는 불가능하다. 개혁은 그 자리를 지킬 때, 함께 있는 구성원들을 사랑할 때 일어난다. 그 자리가 광장이며, 직장이며, 당신의 조국이다. 
자유당 정권을 풍자한 작품을 써 신춘문예 당선이 취소될 정도로 권력에 항거했던 박맹호. 그는 군사정권 시절 ‘수요회’를 결성해 출판문화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외쳤고, 전두환 정권을 향해 출판의 자유를 요구하는 ‘17인 선언’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거기엔 어떤 예외상태도 권력자들이 조장할 수 없도록 시민을 무장시키기 위한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줄기차게 ‘백성의 소리, 민음’을 찾고 새로운 작가와 문인들을 사랑하였다. 직장의 동료와 가족을 끔찍이 사랑했다.
이 광장에서 우리는 우리 삶이 우리 이웃의 이해와 관용, 또 우리 이웃과 우리의 공동 운명, 공동 목표의 확인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배우고 이 의지를 높은 삶의 행복에 연결시켜야 할 것을 깨닫는다.(박맹호, <책>에서) 
다시 그의 사명감은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진다. “나는 민음사를 종합대학 하나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아카데미즘의 센터로 만들고 싶다.” 브랜드는 백성의 소리, 설움을 삭이고 시로 울려 퍼질 때 그 사회는 계속 개혁된다.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0272051005&code=9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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