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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7일 화요일

조희연 서울시교육청 교육감과 마이클 애플 교수의 대담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 세계 민주주의의 모델이다

성열관 마이클 애플 교수의 이번 방문은 지난 2015년 이후 2년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때는 국정교과서 이슈가 가장 중요했는데, 지금은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오늘 대담은 평화로운 촛불혁명 이후 갖는 대담이기에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조희연 어제 ‘평화시민 교육’에 관한 컨퍼런스가 있었고 저도 참여했었습니다. 교수님이 강연 중에 하신 “한국은 명사의 나라가 아니라 동사의 나라다”라는 말씀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세계적으로 퇴행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보기 드물게 평화적이면서 혁명적인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교수님께서도 한국이 보여준 역동성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의미 있게 받아들이신 것 같은데 최근 한국의 거대한 변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마이클 애플 1980년대 후반 한국에 처음 왔을 때도 한국은 움직이는 동사의 나라이면서 감정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나라였습니다. 80년대가 군부에 동조하는 시대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개별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국민이 힘을 가진 주체적인 위치로 변화했다는 점이 크게 다릅니다. 한국은 지금도 계속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고 그래서 ‘명사가 아니라 동사의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희연 강연에서 특별히 ‘평화시민 교육’을 강조하셨습니다. 트럼프에 대해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비판적이신데 한국의 진보적 역동성에 비해 미국 사회는 퇴행적 역동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차별적, 인종적, 우익적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또 평화시민적인 참여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마이클 애플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이유 중 하나도 트럼프 대통령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만, 그는 굉장히 전략적이고 대중영합적인 인물입니다. 국민들로 하여금 다른 인종, 이민자에 대한 두려움을 갖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으며, ‘우리’라는 단어를 계속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우리’가 아니라 전혀 다른 의미의 ‘우리’를 사용합니다. 순수 미국인과 순수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을 구별하기 위해서이며 순수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을 아웃사이더로 취급하기 위한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굉장히 영리한 정치가로 사람들이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갖고 있는 두려움을 자극해서 실업에 대해 대기업이나 사회 구조에 책임을 돌리기보다는 다른 인종이나 이민자를 탓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진정한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좋은 역할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사정권과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한국이 보여준 변화의 모습을 통해 한국이 다른 사회에 바람직한 모델로서 큰 가르침을 줄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조희연 지난 9월 20일에 문재인 대통령께서 ‘세계시민상’을 수상하면서 “우리 국민은 촛불혁명으로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희망을 만들었다”고 하셨는데, 교수님께서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에 대해 파악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애플 미국은 그동안 인종, 계급, 성별 등에서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지금은 다시 예전으로 되돌려지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것과 비교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상황은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계속 그렇게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변화 안에는 시민들뿐만 아니라 이민자를 비롯해 아웃사이더로 여겨지는 사람들까지도 포함시켜야 합니다.
조희연 트럼프 대통령이 강도 높은 대북제재 방침을 내놓고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 안보위기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북핵 위기에 대해 오히려 외국에서 더 큰 위기의식을 갖고 바라보는 것 같은데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마이클 애플 이번 한국 방문을 앞두고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김정은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더 걱정되고, 미국 정부가 지금의 갈등과 위기 상황을 즐기고 있다고 봅니다. 트럼프 때문에 야기된 문제가 많고 그의 공격적인 패턴이 문제인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을 무례하게 대하고 있는데, 다른 국가를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국가에게 ‘다 나를 따르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잘못입니다. 존중은 상호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실용적인 시민교육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교육 시스템 안에서 민주시민을 교육하는 데 책임을 다해야 하고, 한국을 보며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교육혁신, 포용력 있는 세계시민교육으로 나아간다

성열관 지금까지 한국의 변화와 한반도 안보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이제부터 교육과 관련해 더 집중적으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희연 저희가 교육혁신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한국의 교육혁신운동은 아래로부터 출발해서 기존의 권위주의적인 학교문화를 극복하고, 학생중심의 교육을 만들어가고, 학교를 민주적 공동체로 재편하려는 거대한 움직임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혁신운동과 비교하면 어떤 점이 같고, 또 다른지 궁금합니다.
마이클 애플 저는 전통적으로 시험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진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혁신교육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감님이 지금까지 진행한 혁신교육이 이룬 성과를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잘 진행하길 바랍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싱가포르나 핀란드 같은 나라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저는 특별히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상황을 언급하며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노르웨이의 경우 국가 주도 교육과정이 있지만 교사가 학생 상황에 맞춰 자율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래에서부터 반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익적인 그룹이 반이민주의 정서를 활용해서 혁신적인 학교를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교의 교육 수준이 떨어진다며 반발하고 있는데, 실제로 교육의 질은 떨어지지 않았고 교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보수적이면서 인종차별적인 정책을 펼치는 정부가 들어서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 시험성적이 떨어졌다거나 학교의 교육 수준이 떨어졌다며 지금까지의 성과를 뒤엎으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도 필리핀이나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잘 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우익정당이 우세한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한국에서는 보수적인 정당이 힘을 잃은 상태지만 그것이 일시적일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면서 다른 나라의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 대처해나가길 바랍니다.
조희연 교수님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혁신교육운동에서 어떤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지 말씀해주셨는데, 이민자를 포용하는 부분은 내재적인 극복과제라고도 생각됩니다. 우리가 ‘민주주의의 역동성’이라고 할 때 그 민주주의는 다분히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민주주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편협한 민족주의는 편협한 인종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단일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에 그것이 타 인종이나 타 민족에 대한 배타성으로 나타날 수 있는 개연성이 크다고 봅니다. 한국 민주주의가 포용력을 가지고 민족적, 인종적 이방인에게까지 개방할 수 있는지 또 우리 혁신교육이 이방인들까지 포용하는 열린 교육으로 갈 수 있는지가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도전과제라고 생각됩니다. ‘세계시민교육’, ‘코스모폴리턴 교육’이 중요하고 또 필요한 시점에서, 앞으로 우리 혁신 교육이 ‘세계주의적인 포용력’을 얼마나 갖는지가 관건이 되리라고 봅니다.
마이클 애플 전적으로 동의하고 그 이유 때문에 한국이 ‘명사의 나라가 아니라 동사의 나라’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한국은 과거 한반도에 여러 다른 나라의 침략이 있었기 때문에 단일 민족과 단일 문화에 대해 특별히 더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문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문화’라는 것은 구성원들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고 정의 내려지는 것입니다. 한국에 다양한 구성원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하는 ‘공통 문화’에 대해서, 또 한국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계속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공통’이라는 개념 자체가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서 하나의 과정이고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무엇을 가르치는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이 때문에 한국은 물론 모든 나라의 교육에 있어 세계시민교육이 가장 기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모든 구성원이 참여해야 하는데 학생, 학부모, 교사는 물론 미디어를 비롯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성원을 대변하는 단체들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교육 불평등을 해소해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조희연 교육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방식, 제도적인 기회균등할당제 등이 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구조 개혁적인 방식을 선호합니다. 저희는 교육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 자율형사립고 같은 소수 엘리트 학교를 폐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개혁을 진행하고 있는데 미국의 경험에 비추어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마이클 애플 소수의 엘리트 학교가 가진 기존의 힘이 무력해지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교육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라는 책에서 저는 교육 불평등이 눈에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기득권층은 대중들이 불평등을 깨닫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교육 불평등은 안개처럼 가려져 있습니다. 교육정책 기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교육 불평등이 눈에 분명히 보이도록 진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항이나 반발에 대해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육당국이 데이터를 가장 많이 갖고 있으니 이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수적인 측에서 잘못된 이야기를 퍼뜨리면서 엘리트 학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데이터를 활용해 교육 불평등을 드러내고, 계층을 없애는 것이 진정으로 모두가 참여하는 민주주의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희연 미국은 기본적으로 교육에서도 시장원리가 작용하는 방식이고 우리나라의 자율형사립고는 미국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돈을 많이 내고 엘리트 교육을 받는 게 용인되고 있고 시장원리로 보면 공정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교육평등주의가 강한 사회라 미국식 엘리트 교육 모델을 국민들이 수용하지 않습니다. 학부모가 더 많은 돈을 내고 특별한 교육을 받겠다는 자율형사립고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교수님은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지 말씀해주세요.
마이클 애플 한국에서 자율형사립고와 같은 학교는 폐지되는 것이 맞습니다. 미국의 경우도 공립학교 유형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사립학교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미국 내 소수의 사립학교의 경우 계속해서 대통령, 대법관을 배출하고 있고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을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학교들은 엘리트를 양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엘리트가 소수의 교육 기관에서 교육받는다면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는 어렵습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 교육주체들이 민주적 방식으로 주도해야 한다

조희연 한국이 제4차 산업혁명의 도전에 너무 민감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인공지능시대,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만큼, 그에 대해 준비하는 것 또한 교육의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대적인 대량생산교육, 지식 위주의 교육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가 우리의 과제라고 여겨지는데 이 도전을 교육적으로 어떻게 응전하는 게 좋은지, 교육혁신에 어떤 내용이 추가되어야 하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마이클 애플 교육을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볼 수는 없습니다. 교육을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관점입니다. 저는 교육이 AI시대에 도움이 될 만한 인재에만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미국에서는 과학, 기술, 수학, 공학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실제로 10가지 직업 중 8가지 직업은 그런 기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민의식, 학습 의지,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치관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교육을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희생시켜서는 안 됩니다.
조희연 제4차 산업혁명 담론, 인공지능 담론에는 친기업적인 성격이 있습니다만 그것이 오히려 혁신교육이 지향하는 혁신의 당위성을 강화해주는 측면도 있습니다. 근대적인 교육, 대량생산 교육, 암기 위주의 교육을 넘어설 것을 요구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혁신교육을 어떻게 혁신미래교육으로 더 확장할 것인가, 진정한 창의교육을 혁신교육이 선도해야 한다는 당위성의 측면에서 생각해봐야 할 게 많다고 봅니다.
마이클 애플 바람직한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삼성이나 대기업이 교육당국에게 국제적 사회에서 경쟁하려면 이런 인재가 필요하다, 이런 인재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할 것인지 아니면 교육당국이나 교사들이 아젠다를 주도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교육에 관여되어 있는 사람들이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고, 민주적 방식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성열관 오늘 두 분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민주시민교육, 다문화, 기술 환경의 변화, 학교가 미래시대에 맞춰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 다양한 주제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http://www.nowseouledu.com/2017/09/31.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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