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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1일 화요일

인터뷰_ 신임 박구용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한국연구재단(이사장 조무제) 인문사회연구본부장은 인문사회연구본부의 사업 관리 및 평가에 관한 사항, 사업 기획과 예산배분·집행에 관한 사항, 사업 성과활용 촉진에 관한 사항, 분야별 연구수요, 기술예측, 연구동향 등 조사·분석 등에 대한 사항을 총괄·조정하는 자리다. 임기는 2년이다. 박구용 전남대 교수가 이 자리에 새롭게 투입됐다.

한국연구재단은 그간 인문한국(HK)사업으로 학계로부터 질책을 당해왔다. 박구용 본부장의 투입은 이런 분위기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기대만큼 부담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박 본부장은 전남대를 졸업하고 독일 뷔르츠부르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재)5·18기념재단 기획위원장과 <사회와철학연구회> 편집위원장을 지냈으며, 광주시민자유대학 이사장으로 있다. 지은 책에는 『부정의 역사철학: 역사상실에 맞선 철학적 도전』, 『우리 안의 타자: 인권과 인정의 철학적 담론』 등이 있으며, 논문에는 「예술공간의 미메시스적 재구성」, 「사회비판의 은유적 개념으로서 자연」, 「학문횡단형 문제찾기 교양교육의 이념」 등 다수가 있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 7월에 ‘인문사회연구본부장’ 초빙 공고가 있었다. 연구재단은 학계와 깊은 관계에 있다. 본부장에 응모하게 된 동기는?

“세 가지를 실현하고 싶었다. 나는 무엇보다 한국연구재단이 인문, 사회, 예술 분야의 젊은 학자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공립 대학보다 사립대학이 많은 한국적 상황에서 인문, 사회, 예술 분야의 학자들은 소외를 넘어 억압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적 관점에서 이 분야의 학자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배부른 돼지’가 판치는 세상일 것이다. 그런데 인문, 사회, 예술 분야에 대한 연구재단의 지원 규모가 커질수록 학문적 담론의 중심이어야 할 학회가 외소해지는 경향이 있다. 학자란 모름지기 학문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책무를 다해야 한다. 학자란 무엇보다 학회에 참석해서 적극적으로 담론을 펼치는 과정에서 동료 학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학자들은 연구재단이 요구하는 성과물로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서 학회를 이용할 뿐이다. 한 마디로 인문, 사회, 예술 분야의 학회들이 초토화되고 있다. 나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인문, 사회, 예술 분야의 학문적 담론이 대학의 안팎을 넘나들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나는 대학이 더 이상 인문, 사회, 예술 분야의 새로운 지식을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장소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분권의 시대다. 학문도 예외일 수 없다. 이런 정황 속에서 나는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약칭: 인문학법) 시행에 따른 글로컬 인문학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싶다.”


△ 인문사회연구본부는 산하에 인문학 단장을 비롯해 58명의 부서원이 배치된 거대 조직이다. 한편에선 이들의 노하우를 살려 잘 활용해야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선 ‘노회하게’ 관료화된 학술정책 공무원들의 입김을 조절해야 하는 역할도 있는 것 같다. 본부장으로서 향후 운영에 관한 기본 생각이 궁금하다.

“선도 악도 디테일에 있다.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은 미지 권력과 담론에 섬세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큰 말하기 좋아하는 지휘자는 작은 일에 흥분하기 십상이다. 그만큼 쉽게 휘둘린다. 본부장은 직책일 뿐이다. 그 속에는 어떤 위계적 권위나 인격이 결부돼서는 안 된다. 모든 구성원은 동등한 인격을 가지고 있다. 함께 하는 모든 분들이 나와 함께 자존심, 자신감, 자부심을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우선은 인격적 소통과 합리적 설득과 소통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단호하게 결정하고 무한책임을 져야한다. 그러나 나는 어떤 순간에도 낭만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꺼이 몰락할 각오부터 하고 있다.” 


△ 한국 인문학의 현재 모습은 산토끼만 쫓다가 집토끼가 다 도망가는 형국이다. 인문학  고유의 논의보다는 융합 내지 통섭 류의 시장 담론에 의해 인문학이 너무 끌려 다니는 경향이 있다. 물론 권력과 시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 인문학이 본래 기본적으로 충실하게 해야 할 연구와 논의의 장은 갈수록  축소 내지 왜곡되고 있다. 이를 지켜주는 것이 연구재단의 기본 소임이라고 본다. 예컨대 4차 산업혁명과 인문학의 관계 설정의 경우를 들 수 있는데, 전형적인 동원인문학의 한 사례일 수도 있다. 이런 종류의 담론의 장에 가면 인문학은 없고 기술들만 나부낀다. 인문학 고유의 연구 토대의 구축과 보존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나는 양자택일적 이분법에 반대한다. 동원인문학은 반대하지만 동행인문학은 필요하다. 인문학은 융·복합이나 통섭 담론에 포섭돼선 안 되지만 불참해서도 안 된다. 인문, 사회, 예술 분야의 학문이 시장의 교환가치에 휘둘려선 안 된다. 그렇다고 시장의 교환을 폄하해서도 안 된다. 인문, 사회, 예술 분야의 학문은 교환될 수 없는 가치 때문에 교환되는 지식체계다. 따라서 시장과 행정체계에 의해서 인문, 사회, 예술 분야의 학문이 식민화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의 업무를 초과한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정책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 인문 연구 정책의 선진화와 관련해서, 한국은 서구의 선진국과 비교해서 국가와 시장의 간섭이 심하다는 비판이 있다. 단적으로, 국가와 자본이 요구하는 ‘동원’ 인문학을 연구재단이 주도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를 극복하는 정책 내지 원칙이 있다면?
“인문학만이 아니라 대학과 학문이 모두 국가와 시장, 행정과 자본에 의해서 동원되고 있다. 여기에 연구재단은 중대한 책임이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국가와 자본의 요구를 대학과 학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거꾸로 대학과 학자들의 요구를 국가와 시장에 전달하는 역할을 소홀히 했다. 나는 무엇보다 연구재단이 두 방향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매개자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우선은 대학 안팎의 연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방식부터 찾아야 한다. 나는 구체적으로 인문, 사회, 예술 분야를 대표하는 단체들과 모임을 갖고자 한다. 인문, 사회, 예술 대학 학장 협의회와 학술단체 협의회가 한국연구재단의 방향을 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동원하지 않고 동행할 수 있다.”


△ 연구 지원과 관련된 예산의 계획과 배정과 관련해서 현장의 목소리는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기재부나 교육부의 공무원 몇 사람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연구 현장의 목소리를 예산에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이 궁금하다.
“한국연구재단의 정책결정이 대학과 학술단체를 대표하는 분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면 예산배정과 계획에서도 현장을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고 믿는다. 기재부와 교육부의 공무원들은 법률 체계와 제도의 관점에서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반대로 학술단체와 대학을 대표하는 분들은 학문공동체의 관점에서 의견과 의지를 모아야 한다. 연구재단은 교차로에서 체계와 학문공동체가 소통하며 협의하고 합의한 결과를 수행하면 된다.”

△ 연구재단의 과제 선정과 평가가 과거에 비해 매우 투명해진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풀어야할 과제가 많다. 각종 연구 지원 사업들의 응모와 심사 방식에 대한 비판이 있다. 특히 논문 실적 평가와 같은 부분은 ‘형식적 심사’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투명성 제고에 이어, 실질적인 평가 문화의 변화도 필요한 시점이다. 연구 관리의 선진화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결과물 중심의 결과 관리를 특징으로 하는 서구 선진국의 관리 방식을 참조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절차적 민주주의자다. 하지만 나는 연구계획서보다 그전에 축적한 선행연구와 더불어 최종 연구결과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계획서만 잘 쓰는 연구자들에게 연구재단이 휘둘려선 안 된다. 연구 과정에 평가만큼 출발점과 종착점에서의 공정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공정성의 핵심은 공개성에 있다. 나는 가능한 모든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공정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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