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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필로티를 위한 변명/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

경북 포항 지진으로 국민은 생소한 건축용어 또 하나를 학습하게 되었다. ‘필로티(pilotis)’다. 주차장 등으로 사용되는 1층이 벽 없이 기둥으로만 지어지는 건축 구법(構法)을 일컫는다. 많은 언론이 필로티 건축의 구조적 위험성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이는 범인을 잘못 고른 것이다. ‘필로티 구조’가 아니라 내진 성능이 없는 ‘필로티 기둥’이 문제다. 또한 불행하게도 필로티 여부를 떠나 대부분 국내 소형 건축물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는 것이나 자동차 사고로 머리를 다치는 것은 과학적으로 같은 공식으로 설명된다. 뉴턴의 운동 제2 법칙, 즉 ‘F=m·a’(힘은 질량 곱하기 가속도)다. 지진의 정체는 가속도다. 땅이 좌우·상하로 흔들리면서 만드는 가속도는 건물이라는 질량을 만나 힘이 되어 건물을 파괴한다. 자동차가 충돌해 순간적으로 속도가 변할 때도 마이너스 가속도가 생긴다. 이것이 머리라는 질량을 만나면 힘이 된다. 머리의 입장에서는 차 유리가 이 힘으로 때리는 것이고, 유리의 입장에서는 머리가 날아와 치는 것이다. 그래서 안전벨트를 매는 것이다. 벨트는 머리와 유리가 부딪칠 거리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종종 뇌진탕이 생기는 것은 두개골 안에 떠 있는 뇌가 머리뼈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뇌의 질량이 가속도를 만나서 힘으로 바뀌는 것이다. 
  
필로티는 사람으로 치면 목이 가늘고 머리가 큰 경우다. 이 사람의 목은 자기 머리 무게는 지탱할지라도 펀치에 대해서는 목이 굵은 타이슨보다 약할 것이며, 차 사고에서도 취약할 것이다. 따라서 필로티 건축의 기둥은 건물의 무게를 버티는 동시에 지진 같은 횡력에 저항하는 역할도 겸하도록 튼튼해야 한다. 
  
그런데 2005년 이전에는 거의 모두 3층 이하 건물의 기둥은 수직 하중만 고려해 설계하도록 했다. 이 기준대로 지어진 건축물들이 지진에 목이 부러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다만 필로티가 유독 누명을 쓰는 것은 벽 건축과 달리 여유치(횡강성)가 더 적었기 때문이며, 벽 같은 은폐물이 없어서 바로 균열을 보였기 때문이다. 사고를 통해 목숨과 직결되는 배움을 얻는 현실이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모르는 채 거듭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 우리는 세월호를 통해 ‘평형수’ 학습을 했다. 그러나 세월호 범인이 평형수라 하지는 않는다. 책임은 평형수를 뺀, 그리고 빼도 되게 만든 사람들의 몫이다. 


필로티 건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필로티 문제가 아니라 왜 필로티 건축인가를 물어야 한다. 이는 주차 문제와 관련이 있다. 소형 주택·상가에서 법정 주차대수를 맞추려면 대지 내에 빼곡히 주차면을 만들어야 한다. 반면에 상부 건물은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띄워야 하므로 1층을 필로티로 하여 차가 삐죽 나오도록 하는 것은 논리적 귀결이다. 세월호 평형수가 저렴하도록 반(半)강제된 여객 운임과 관련이 있듯이 필로티에 대한 선호 또한 저렴 주택, 나아가 저렴 도시와 관련이 깊다. 다세대·다가구주택은 단독주택용 필지에 부피 늘림만 허용한 1970, 80년대 주택공급정책의 결과다. 공공에서 책임져야 할 주차·도로·녹지를 모두 개별 대지 안에서 해결하려니 설계는 퍼즐 풀기가 되었고 이때 필로티는 모범답안이었다. 
  
도시 및 생활 인프라 구축을 개별 필지에 전가함으로써 우리 도시는 공공의 입장에서는 매우 저렴한 도시가 되었다. 또한 비교열위의 주거환경으로 저렴해진 다세대·다가구주택은 서민층 주택 문제의 묘책이 되었다. 더욱이 이들 소형 건축물의 생산·유통 주체인 소위 집장사들은 자신의 경험칙으로 기둥에서 철근을 절감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터이었다. 요컨대 세월호에 우리 사회 모두가 빚지고 있듯 목 부러진 필로티 건축 또한 개발연대를 허겁지겁 살아온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라는 말이다. 


뉴턴의 법칙을 알면 벌금이 없어도 벨트를 맨다. 애꿎은 필로티 뒤에 더 큰 메커니즘이 있음을 안다면 처방도 달라진다. ‘국민안전처’ 같은 허망한 조치를 했던 이들이 ‘필로티 금지’ 따위로 슬쩍 넘어가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할 책임은 시민과 언론에 있다. 단지 필로티 건축뿐 아니라 주택가의 소방·교통 안전 문제를 두루 다루려면 ‘필지별 주차 의무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필로티는 단지 건축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도시의 문제이자 서민주택 문제의 한 국면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처방 또한 공학과 규제의 문제를 넘어 주거복지와 도시재생의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이는 지진이 포세이돈의 분노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이 시대가 마땅히 취할 태도다. 
  
함인선 건축가·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론] 필로티를 위한 변명

http://news.joins.com/article/22136910#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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