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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7일 월요일

스콧 하틀리, 인문학 이펙트 / 김시균 매일경제 기자

인문학의 위상이 추락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인구론'(인문계 졸업생 90%가 논다) 따위 신조어들이 부유하는 것도 이제는 거의 식상해진 풍경이다. 저 멀리 태평양 건너 미국의 사정도 별반 다를 것 없는데, 이쯤에서 한번 빌 게이츠가 미국 주지사협회에서 한 연설을 살펴보자.

요체는 이렇다. 인문학 교육에 들어가는 주정부 보조금을 줄이고, 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의 '고급교육'에 더 많은 돈을 할애해야 한다는 것. 여기엔 인문학 자체가 쓸모없는, 비실용적인 학문이라는 편견이 내장돼 있다.

이게 어디 빌 게이츠만의 생각이랴.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 설립자이자 억만장자 벤처 캐피털리스트인 비노드 코슬라는 이처럼 일갈했다. "현재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가르치는 내용 중 미래에 쓸모 있을 것은 거의 없다." 검색엔진 넷스케이프 개발자인 마크 앤드리슨의 빈정거림에까지 이르면 혹자는 다소 불쾌해질지 모른다. "기술이라는 '하드 스킬'이 아니라 '인문학이라는 소프트 스킬'을 배운 사람은 앞으로 신발가게에서 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말 그럴까. 인문학은 이들 주장처럼 쓸모없는 구시대적 학문일까. 그럴 리가. 이 책 '인문학 이펙트'는 앞선 비아냥들에 대한 정면 반박서다.

"오늘날에는 전통적 인문학에 정통한 사람이 미래의 기술 주도 경쟁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공학/수학 전공자처럼 직업에 필요한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정반대로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이야말로 빠르게 진화하는 경제 상황에서 성공하는 데 꼭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다고 주장할 생각이다."

이 책을 인문학자가 썼다면 조금은 아쉬웠을 것 같다. 인문학자가 말하는 인문학 옹호서는 이미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 스콧 하틀리가 누구인지 상기해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는 정통 인문학자 출신이 아니다. 그 반대 영역에 서 있다. 기술혁신의 최전방에 있는 세계적 벤처 캐피털리스트. 그간 수천 개의 기술직업을 지켜본 이가 "인문학이 기술혁신을 이끈다"는 주장을 펼치니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세상을 뒤흔든 기술의 기저엔 언제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됐다. 일례로 마크 저커버그는 인문학 전공자로 하버드대에서 라틴어, 그리스어, 예술사, 심리학을 공부했다. 저커버그가 이를 통해 타인과 연결되려는 인간의 본래적 욕망을 꿰뚫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페이스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스티브 잡스가 캘리그래피 수업으로 글씨체의 역사성과 예술성에 반하지 않았더라면 최초의 컴퓨터 매킨토시는 한참 뒤에 탄생했을 것이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기업 창립자들은 십중팔구가 인문학 전공자들이었다.

인문학을 사랑하는 이들로서는 무척이나 반가워질 책이다. 당신이 실용학문 편애자였다면 기존 생각이 조금은 교정되리라 단언한다.

[김시균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7&no=780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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