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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한국에서 대안미래 논의가 부진한 3가지 이유/ 손현주 하와이대 정치학 박사(미래학)

20년 전 외환위기가 촉발한 미래 담론

한국에서 대안미래에 대한 담론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인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이다. ‘단군 이래 최대 환란’이었던 1997년 외환위기로 한국은 경제에서 가장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 금융시장 혼란, 대량실업 발생, 자살률 급증, 가족 붕괴와 이혼 증가, 양극화 심화 등의 암울한 그림자를 남겼다. 이에 미래 위기를 대비하고 기존 발전모델을 넘어서는 대안사회가 필요했다. 연대와 협동에 근거한 ‘자율공동체’, 사회보장제도를 적극 실시하는 ‘복지 자본주의’, 사회적 가치와 사람 중심의 ‘사회적경제’ 등이 대안으로 등장했다.

당시 외환위기를 관리했던 김대중 정부는 『미래충격』과 『제3의 물결』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에게 한국의 미래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토플러 보고서’는 위기 극복을 위해 ‘지식기반경제’로 빠르게 이행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했다. 또 재벌과 수출 위주 경제정책을 탈피하고, 위계적이고 남성 중심의 단일민족국가에서 벗어나 여성들이 사회의 주체세력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대안미래 접근을 촉발시킨 결정적인 순간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1960~80년대에 한국의 가장 중요한 미래비전은 경제적 산업화, 정치적 민주화를 통해 선진국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발전된 서구 국가들을 한국 미래의 이상화된 사회로 관념화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는 서구식 근대화를 통한 고도성장을 당연시하는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선진국 ‘따라잡기’식의 모방과 수용이 경제성장을 보장하고 행복하고 안전할 것이라는 전제가 실패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정보통신 기술체계의 급속한 발전은 한국사회를 근대 산업사회에서 탈근대 지식정보사회로 전환시키고 있었다. 산업 구조뿐만 아니라 삶의 양식, 인간관계, 시공간에 대한 개념까지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정보화는 부(富)를 만드는 원천을 노동·자연자원·화폐자본에서 정보·지식·문화 등으로 바꾸었다. 국가의 비전이 선진산업국가에서 선진정보국가로 변화하면서 경제활동과 개인의 경험을 새롭게 의미화하는 방식과 세계관이 요구되었다.

1990년대말 한국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면서 민주주의 이후의 한국의 미래모습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범지구적 차원에서 경쟁이 가속화되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미래 한국의 좌표는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더불어 1990년대 중반에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의 도입은 경제·사회·환경의 균형발전뿐만 아니라,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세대 간 형평성 확보가 중요시됐다. 그루초 마르크스(Groucho Marx)가 던진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내가 왜 미래 세대를 걱정해야 하지? 그들이 나한테 해준 게 뭔데?”라는 질문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근대화론·분단논리·회피문화가 족쇄로

대안미래 개념이 널리 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부족했다. 한국의 특수 상황을 반영할 수 있는, 그리고 한국 민족이 필요로 하는 대안미래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렇게 대안미래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근대화 이론이 발전 방향과 논리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미래 발전은 서구 선진국을 모방하는 ‘따라잡기’ 전략이었다. 근대화가 자동적으로 한국의 미래를 이끈다고 믿었다. 후진국에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선진국이라는 단선적 발전사관이 가장 바람직한 미래였기 때문에 선진국의 발전 경로 외에 굳이 다른 대안을 추구할 필요가 없었다.

남·북한이 대치하는 냉전적 분단논리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본주의는 선(善), 공산주의는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기반한 반공주의는 다른 제3의 길에 대한 모색을 방해했다. 남한의 길만 최선이고 북한은 타파해야 할 적이라는 흑백논리 때문에 자본주의의 문제를 극복하고 바람직한 사회를 지향할 수 있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기’(thinking the unthinkable)가 부족했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상황이 어떠한지와 상관없이 가능한 모든 미래를 열린 마음으로 탐색하는 것이다.

셋 번째 이유는 한국의 불확실성 회피경향에 있다. 불확실성 회피경향이란 분명하지 않거나 미지의 상황을 위협으로 느끼는 태도나 사고방식을 가리킨다. 한국문화는 불확실성, 변동 등을 기회보다는 위험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예측가능하고 안전한 기술, 법, 종교 등에 의존하곤 한다. 또 현재의 상황이 지속되는 미래나 예측 가능한 미래를 선호하는 반면에 미래가 현재와 단절되고 완전하게 변하는 것을 꺼린다.

상상(想像)을 합리적인 활동이라기보다는 비합리적인 활동으로 간주하는 경향도 대안미래의 결핍과 관련이 있다. 지금이야 창조성, 상상력이 사회발전과 혁신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었지만 1960~90년대에는 그렇지 못했다. 상상은 단순한 가상, 공상 등과 같은 비이성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상상은 유치한 인식이었기에 상상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미래와 관련된 예견 이미지와 대안 미래를 창출하는 원동력인 상상력의 결여를 가져왔다.

엘리트 중심 미래담론서 벗어나
열린 상상력으로 가능한 대안을

대안미래를 가능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다.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개인의 삶과 사회의 관계를 밝히고 바람직한 사회를 전망하며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여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상상력이 다양한 형태의 대안미래로 구체화된다. 이와 관련된 것으로는 폭력과 전쟁의 위험이 없는 ‘비살생(Nonkilling)’ 사회, 기술 혁명을 통해 비용이 ‘0’에 도달하고 협력적 소비가 가능한 ‘한계비용 제로사회’, 첨단 기술이 몸속에 들어와 인간과 사물의 연결이 가능한 ‘의식기술시대’, 생산 지상주의를 비판하고 자연과의 조화 및 단순한 생활을 진보로 간주하는 ‘탈성장’ 사회, 가치·목표·지각 등이 중요해지는 ‘영감의 시대(Spiritual Age)’ 등이 있다.

대안미래는 해방적 상상력을 가능하게 한다. 오늘날 미래담론은 엘리트 중심이다. 엘리트의 지배적인 사고가 미래 비전에 투영되어 대중의 미래는 침묵 속에 묻히기 쉽다. 미래에 대한 구상은 어느 특정 집단에게 한정되어서는 안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미래는 특정 집단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이 된다. 미래는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대안미래는 구성원 모두에게 미래를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게 하고, 미래가 대중과 분리되는 미래소외의 현상을 극복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

개방성을 확대시키고 불확실성 회피경향을 청산하는 계기를 대안미래가 마련해준다. 한국이 열풍사회 사회인 것은 불확실성을 두려워해서 생긴 현상이다. 비트코인 열풍, 롱패딩 열풍, 대박 열풍, 몸짱 열풍, 웰빙 열풍, 맛집 열풍 등과 같은 현상은 정체성 상실과 고립된 사회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 개인들은 열풍과 같은 집단 규범을 동조함으로써 고립과 불확실성의 두려움을 벗어나고자 한다. 남들이 하는 행동과 소비를 통해서 개인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대안미래는 다양한 미래사회를 제시함으로써 다르다는 것을 존중하고 열린 마음을 갖고, 미지의 상태를 기회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신뢰를 높이고 집단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 불확실성을 용인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기여한다.

현존하는 사회의 근본문제에 대한 해답을 대안미래가 제공하지는 않는다. 미래에도 언제나 인간의 근본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형태와 내용, 속도의 완급, 방향이 달라질 뿐이다. 대안미래는 미래에 발생할게 될 사건, 현상, 문화에 대한 정확한 답을 제시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어떻게 지향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와 생각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하는 것이다.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통찰력과 신선한 사유체계를 준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

대안미래는 미래에 대한 사회적, 역사적, 기술적, 문화적 상상력이기에 전략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현실적으로도 미래의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성취 가능한 대안미래가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논의가 필요하다. 대안미래를 통해서 실행 가능한 대안들, 정책으로 채택된다면 지속가능한 대안들, 미래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킬 대안들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대안미래의 실제적 이행전략을 더 쉽게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다.

전산학자인 앨런 케이(Alan Kay)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와 실천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안미래를 통해서 인간 자신, 집단, 사회를 유지하고 기쁨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대안미래는 의지의 영역인 것이다.

손현주/하와이대 정치학박사(미래학)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cience/future/824281.html#csidxda3df0252b2e1b7bbc59920dd6c9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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