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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5일 화요일

새로 바뀔 헌법, 술술 읽고 싶다 / 김영환 | 한글철학연구소장·부경대 교수

헌법을 고치자는 움직임이 나올 때마다 헌법을 쉽게 풀어써야 한다는 주장이 빠짐없이 나왔다. 지난 1980년 봄에도 그런 주장이 있었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도 그런 주장이 고개를 들었으나 뜨거운 쟁점이 너무 많고 이런 주장에 귀 기울이는 사람마저 적어서 그냥 스쳐 가는 주장에 지나지 않았다. 
30년도 더 지난 이제 이런 여론이 한글문화 단체를 중심으로 다시 일어나고 있다. 얼핏 보기에 별 것 아닌 이 문제는 오랜 우리 역사의 병폐와 맞물려 있는 해묵은 과제라고 하겠다.
우리 헌법은 1940년대 문체로 돼 있다. 그때만 해도 한글로만 쓰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중국 글자를 섞어 썼고 어려운 한문 투 일본어 번역 투 표현도 많다. 헌법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우리말다워야 한다. 우리말글의 헌법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헌법을 고칠 때 쉽게 풀어써야 할 가장 큰 까닭이다. 
우리가 헌법을 쉽게 풀어쓴다면 ‘전문’(前文)을 ‘앞글’로 바꾸고, “1948년 7월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를 “1948년 7월12일에 제정하고 여덟 번 고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따라서 고친다”로 바꿀 수 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3조)를 “한반도와 그에 딸린 섬으로 한다”로, “사회적 특수 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11조2항)는 “사회적 특수 계급 제도를 인정하지 않으며 어떤 형태로도 이를 새로 만들 수 없다”로 바꿀 수 있다.
“개정하다”를 “고치다”로 바꾸고 “도서”를 “섬”으로 바꾸는 데 머뭇거리는 한 요인은 두 낱말의 뜻이 서로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뜻에서 미묘한 차이가 이런 식으로 바꿀 수 없는 까닭은 될 수 없다. 오늘날 의미론에서 낱말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그 가변성의 폭이 무척 크다는 데 거의 모두가 동의한다. 뜻같음의 기준을 엄격하게 요구하면 언어 사이의 번역이나 뜻같음이란 개념 그 자체를 부정하게 만든다. 우리말 어휘는 나날삶의 어휘와 전문 용어의 거리가 멀기로 유명하다. 이렇게 전문 용어가 어려워진 이유는 지나치게 많은, 주로 중국이나 일본식 한자어에 특권을 주기 때문이다. “겨울 올림픽”하면 될 것을 “동계 올림픽”으로 바꾸어 부르고 “싼 값”하면 될 것을 “저렴한 가격”으로 바꾸어 말한다. 
법제처에서 2006년부터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예산도 줄어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개헌을 앞두고 술술 읽히는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을 하찮은 일로 여기는 생각이 문제다. 우리에겐 고유어로 새말을 만드는 전통이 매우 약해 낯선 어휘를 한자로 조립하는 버릇이 자꾸 이어지고 있다. 
나날삶의 어휘와 전문 용어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은 변함이 없다. 한글로만 쓰기를 하는 요즈음에도 우리 현실을 보는 어휘마저 중국인의 작품인 경우가 많다. “한류, 한한령, 쌍중단, 삼불일한” 같은 식의 새말이 자꾸 생기고 있다. 이러니 한글 전용에 대한 시비도 가라앉지 않고 한자를 알고 한글 전용을 해야 한다는 언론도 나온다. 우리식 어휘를 만들지 못하는 건 애짖는 힘이 우리에게 모자란다는 뜻이다. 우리 눈으로 현실을 보는 눈을 아직도 갖지 못했다는 뜻이다.
법률을 쉬운 글자로 쓰는 문제는 법치주의의 탄생과 함께 늘 문제가 되었다. 전제군주정에서도 알지도 못하는 법을 지키라고 인민에게 요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최만리의 상소문이나 정인지의 <훈민정음> ‘서’에서 진술서나 판결문에 새로 지은 쉬운 문자를 쓰자는 진지한 논의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독립신문 창간호 논설에서는 국가에서 내는 법령을 죄다 한문으로 써 한문 모르는 인민을 바보로 만든다고 비판하였다. 쉬운 글자 쉬운 말은 민주주의의 필수 조건이다. 
헌법은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하는 글이다. 내년 6월에 새로 바뀔 헌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철저히 보장하면서 아울러 우리말답게 쉽게 쓴 헌법으로 다시 나기를 바란다. 시민 단체, 학술 단체, 법제처가 서로 힘을 합쳐야 할 때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2042112005&code=990304#csidx0f5882fb509c8579d454386f60365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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