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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2일 화요일

예루살렘이 ‘평화의 도시’로 남아야 하는 이유/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중동학

“예루살렘은 완전한 이스라엘의 수도다.” 이스라엘 혼자만의 주장이다. 이스라엘은 1980년 ‘예루살렘법’ 제정을 통해 이 도시가 완전한 이스라엘의 수도임을 천명했다. 그러자 국제사회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478호를 통해 이를 즉각 반박하고 이 법의 무효를 선언했다.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더욱이 자결권의 행사라는 인류의 기본 가치 측면에서도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에 귀속되어야 한다. 물론 종교적 성소로서 예루살렘은 공동 문화유산으로 보호되고 종교행위는 보장되어야 한다. 1300여년간 이 원칙은 지켜져 왔다. 오랫동안 예루살렘은 다른 신앙, 다른 가치가 공존하는 이름 그대로 ‘평화의 도시’였다. 
아랍 세력이 이 도시를 차지한 것은 이슬람 초기인 638년이었다. 이슬람의 전승에 의하면 예언자 마호메트가 신의 계시를 받고 예루살렘의 바위를 닫고 승천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솔로몬의 신전 터에 있는 바위다. 그래서 초기에는 일상의 예배 방향을 예루살렘으로 정하기도 했다. 새롭게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슬람 정권은 곧바로 옛 솔로몬 성전 터에 황금색 돔을 가진 화려한 모스크를 세웠다. 그게 지금 바위의 돔 모스크이다. 그후 1967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강제로 점령하기까지 1300년 이상 이 도시는 이슬람의 통치지역이었다. 
1967년 3차 중동전쟁은 인류사회의 기본 가치를 뒤엎는 불행이었다. 이웃 아랍국가들을 6일 만에 물리친 이스라엘은 유엔에서 승인한 자국 영토를 넘어 이웃 주권국가들의 영토를 차지했다. 이집트 북부의 시나이 반도, 동예루살렘이 있는 요르단 서쪽의 웨스트 뱅크, 지중해 해변의 가자지구, 시리아 접경 쪽의 옥토 베카계곡과 골란 고원 등이었다. 승자의 특권일 수 있다. 그러나 2000년 디아스포라와 600만 홀로코스트 희생을 치른 불운한 민족에게 국제사회는 아랍의 희생과 반발을 딛고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해 주었다. 척박한 땅에서 비옥한 영토를 이스라엘에 내준 아랍국가들에 이제 또 영토를 빼앗긴다는 것은 가혹한 생존의 문제였다. 그들은 저항했고 유엔은 안보리 만장일치 결의안 224조를 통해 이스라엘의 점령지 반환과 군대 철수를 명했다. 지켜지지 않는 약속은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에도 유엔 안보리 결의안 338호로 다시 요청했다. 지금까지 적어도 13차례 이상의 안보리 결의안을 통해 이스라엘의 영토 반환과 원상복구 이행을 촉구했다. 그들은 국제사회의 일관된 원칙과 국제법 준수 요구를 비웃었다. 더 나아가 돌려주어야 할 점령지에 12개 대규모 주택단지를 건설하고 20만명가량의 유대인을 정착시키고 있다. 반환은커녕 실효적 지배를 통해 자국 영토화하겠다는 의지를 전 세계에 선전하고 있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홀로코스트 참사 직후 유대인을 돕기 위한 국제사회 노력의 일환으로 1947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유엔 분할안이 통과되었다. 그러면서 미묘한 성지인 예루살렘에는 별도로 국제관리하에 둔다는 특별지위를 부여했다. 아랍인들은 분할안 자체에 강력 반발했지만 강대국들의 강제를 이겨낼 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하면서 서예루살렘을 자국 영토로 귀속해 버렸다. 동예루살렘은 요르단이 지배하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도 동예루살렘은 국제관리하에 두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관된 정책이고 교황청과 미국도 동의한 글로벌 약속이다. 그래서 모든 외국 대사관들이 예루살렘이 아닌 텔아비브에 있는 것이다.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깨버린 것이다. 왜 그랬는지는 다양한 의견과 분석 기사들이 난무하고 있다. 자신의 사업과 정치적 기반이 되는 유대인 파워 지지를 결속시키고 교착상태에 빠진 중동 평화협상을 자신의 이익구도로 새로 짜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동예루살렘에는 지금도 이스라엘 시민이 되지 못한 42만명의 아랍인들이 무국적자로 살고 있다. 그 땅에서 태어나고 그 땅의 선주민이면서도 요르단 임시여권을 발급받아 불안한 계약직 노동자로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고 있다. 그 땅의 주민들조차 자국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예루살렘을 자국의 수도로 선포하는 이스라엘이나 이에 홀로 동조하는 트럼프를 통해 이 시대 보편가치가 과연 무엇인가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2112047035&code=990304#csidx089bec16f227005ba8768b534b684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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