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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3일 수요일

아수라장 된 권리의 공간/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아수라장’은 ‘여러 사람이 무질서하게 마구 떠들어대거나 뒤죽박죽이 된 난장판’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는 고대 인도신화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얼굴이 세 개이고 팔이 여섯이나 되는 흉측한 모습의 ‘아수라’는 싸우기를 좋아하는 악신(惡神)이자 전쟁을 상징하는 전쟁의 신이었다. 인도의 서사시에 피 흘린 아수라들이 등장하면서, 아수라장은 전쟁이나 싸움으로 인해 혼잡하고 어지러운 상태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전쟁터에서나 보게 될 아수라장이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도되고 있다. ‘성평등’ ‘인권’ ‘차별금지’ 등을 주제로 개최되는 공청회나 토론회 장에서다. 가장 평화롭고 공감적으로 소통하고 토론해야 할 주제들이 난장판 속에서 혐오나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참담하다.
지난달 중순 여성가족부 주최로 열린 ‘제2회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공청회는 중단됐다. 토론은커녕 진행 자체가 불가능했다. ‘동성애 반대’를 주장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고, 책상을 치며, 심지어는 발표자들이 있는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토론을 막았다. 상호존중의 분위기 속에 진행되어야 할 공청회에 오물을 뿌려댄 것이다. 
‘양성평등 YES, 성평등 NO’ ‘여가부는 해체하라’는 등의 손팻말을 들고 나타난 일부 참석자들은 장관이 인사말을 시작하자 소리치기 시작했다. 양성평등 기본계획에서 양성평등과 성평등이란 단어가 혼재되어 있는데 ‘성평등’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동성결혼 합법화를 시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고함과 야유는 상대의 목소리를 차단함으로써 경청의 문화를 방해하는 소음이자 일종의 청각적 폭력이다. 그 폭력을 이기지 못해 공청회는 중단됐다가 재개됐지만 항의 시위를 벌인 이들이 10분 이상 구호를 연호하자 결국 맥없이 끝나고 말았다.
문제는 비슷한 상황이 판박이처럼 재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부터 전국 11개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열리고 있는 헌법개정 국민대토론회나 서울시 교육청이 3차례 연속으로 개최한 ‘성평등교육 정책토론회’도 예외가 아니다. 야유가 쏟아지고 고성이 오가며 혐오적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3년 전, 서울시민 인권헌장 공청회에 조직적으로 몰려든 사람들의 폭력성은 도를 넘는 것이었다. 공청회 시작 1~2시간 전부터 회의장을 점거하고 구호를 외치며 사회자의 멱살을 잡고 밀치며 마이크를 빼앗았다. 공청회는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동성애 반대’ ‘동성애 OUT’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발표자들을 비롯해 공청회에 참석했던 성소수자들을 행사장 바깥으로 몰아냈다. 그러고선 책상 위에 올라가 구호를 선창하며 ‘승리’의 환호를 질렀다. 이 현장을 지켜봤던 필자는 성소수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위축되고 공포에 짓눌린 얼굴 표정을 잊기 어렵다. 
표현의 자유나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헌법과 유엔인권조약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누구나 각양각색의 다른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다 함께 모여 의사를 개진할 수 있다. 하지만 공청회나 토론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이 같은 행태는 정작 기본적 자유의 구가라기보다는 행사를 방해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거의 같은 사람들이 몰려다니면서 같은 질문을 해대고, 정작 답변을 듣기보다는 주장이나 항의만 일삼는 것을 보면 그 같은 의심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닐 터이다. 생각이 다르다면 생각이 다른 사람의 행사를 방해할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집회·시위를 신고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면 된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표현의 자유를 구가할 마당은 활짝 열려있다. 다만 혐오와 차별의 언어나 주장은 공론의 장에서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자유주의 사상가인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은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간섭할 수 없다”고 했다. 즉 개인이 갖는 자유는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타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차별이며 폭력이다. 다른 사람들의 집회나 행사장을 전쟁터로 삼아 욕설과 고함 등으로 권력을 과시해 무력화시키는 것은 집회·시위의 자유가 아니며 말 그대로 폭력일 뿐이다.
최근의 사태는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이를 수수방관하는 경찰이나 굴복당하는 공공기관이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행사를 주최했던 기관들은 경찰이 외형적 중립을 내세우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에 분개하고 있다. 타인의 집회 자체를 분쇄하는 행위가 자유의 이름으로 용납될 수는 없다. 타인의 신체의 자유를 직접 침해하거나 집회를 파괴하는 행위에 경찰은 단호하게 개입해야 한다. 자신의 믿음을 위해 타인의 자유를 박탈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2122050025&code=990308#csidx754832f68cba91780987d9f534324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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