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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화천군과 인기작가 이외수 점입가경 싸움 진짜 이유/ 박혁진 시사저널 기자

강원도 화천의 온도가 영하 15도 밑으로 떨어졌던 12월12일. 화천군으로 진입하는 도로 곳곳에 인기작가 이외수씨를 비난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군내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이날, 빨간색 현수막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감성마을 이외수는 군민에게 폭언 협박 즉각 사과하라’.
화천군청 1층 로비 한쪽에는 시민들을 위한 휴게실이 마련돼 있다. 이 공간에 관광책자 및 소설, 월간지 등이 수십 권 비치돼 있는데 작가 이외수씨의 책은 보이지 않았다. 화천 하면 떠오르는 작가를 꼽는다면 단연 이 작가일 텐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의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폭언 있은 지 3개월 만에 군의원이 폭로

화천군 읍내에서 차로 40분 정도 더 들어가면 이 작가가 살고 있는 상서면 다목리가 나온다. 이 작가는 2004년 강원도 춘천에서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로 거주지를 옮겨 현재까지 살고 있다. 화천군은 다목리 한쪽 산비탈을 깎아 이 작가의 집을 지었다. 이후 국고 지원을 받아 문학관을 비롯한 각종 부대시설도 건축했다. 이 작가가 거주하는 집과 문학관 등 시설의 정식명칭은 ‘감성마을테마문학공원’, 사람들은 이를 줄여 ‘감성마을’로 부른다. 감성마을은 현재는 연 2만 명이 찾는 화천군 대표적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군사도시로만 사람들에게 알려졌던 화천이 ‘이외수’란 이름 석 자로 인해 이미지 변신을 한 것은 군민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런 그가 왜 화천군 의회와 시민단체들의 집중포화를 맞게 됐을까.

발단이 된 사건은 지난 8월초에 일어났다. 이 작가는 8월6일 감성마을테마문학공원에서 열린 세계평화안보문학축전 시상식에서 술을 마시고 최문순 화천군수에게 ‘문화예술인들을 이렇게 대접해도 되나?’ ‘박근혜나 이명박이나 최문순, 니들 다 똑같은 놈들 아냐’ ‘감성마을을 폭파하고 떠나겠다’는 등의 말과 함께 10여 분간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후 이 작가는 최 군수에게 사과했고,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서도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이 작가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일단락된 줄 알았던 사건이 약 3개월 만인 10월27일 한 화천군의원에 의해 외부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 소속 이흥일 화천군의원은 10월27일 화천군의회 본회의 발언에서 이날 소동을 언급했다. 이 의원은 “이 작가가 주요 기관장, 내·외빈들이 있는 가운데 군수에게 육두문자를 써가면서 욕설을 한 것은 화천군민 모두를 모독한 것”이라며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이 의원은 “감성마을은 매년 1억원의 인건비와 운영비 5000만원 등 2억원의 혈세가 지원되지만 경제활성화는 기대에 못 미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의 발언은 지역언론을 통해 보도됐고, 포털사이트를 통해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이 의원의 발언이 있은 지 정확히 이틀 뒤 화천군 20개 시민단체에서는 이 작가를 비난하는 현수막 80여 장을 군내 곳곳에 내걸었다.

‘군민에게 폭언·협박 130억원에 대한 보답인가?’
‘국민혈세 받쳤더니(‘바쳤더니’를 오기함) 돌아온 건 육두문자’.
이후 군수와 군의회 입장이 주로 지역언론을 통해 중계됐고, 이 작가는 SNS를 통해 이를 반박하는 식으로 확전됐다. 결국 화천군의회는 사실상 이 작가를 표적으로 한 특별위원회 행정사무조사를 12월8일부터 진행했다.

그런데 양측 갈등의 원인이 된 8월6일 폭행 논란과 관련해 언론보도나 이 작가의 SNS,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은 내용이 있다. 과연 그날 소란이 우발적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두 사람 간 구원(舊怨)이 이날 불거져 나온 것인지 여부다. 전자였다면 사과로 끝날 수도 있는 문제로 볼 수 있지만, 후자라면 단순 사과로 마무리될 문제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

화천군수 바뀌면서 갈등 폭발

이날 기자는 논란의 중심에 있는 화천군수와 이 작가를 직접 만났다. 두 당사자의 말을 종합해 보면 그날 우발적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작가는 “투병기간 3년 동안 술을 입에도 대지 않다가 이날 처음 술을 마셔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욕설을 한 것은 분명 내 잘못이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사과했다”고 말했다.

다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쌓인 게 있었음을 암시하는 말은 했다.

“서운한 게 있을 수 있지. 전(前) 군수님과 비교해 나한테 쌓인 게 있었을 수도 있고,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난 몰라. 본인의 생각이니까. 뭔가 그런 게 있으니까 나한테 주정을 했겠지. 그것도 그냥 자리가 아니라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랬을 정도면.”
(최문순 화천군수)
“이 양반은 어쨌든 자기 방침이 복지랑 교육이라 해서 문화예술에 대해선 관심 거의 안 기울였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섭섭한 맘이 나한테 쌓여 있었겠지. 그런데 군수 방침이니 그럴 수 있다 생각했고, 크게 뭐….” (이외수 작가)
두 사람의 말대로라면 2016년 최문순 화천군수가 취임하면서 이전 군수와 비교했을 때 이 작가와 감성마을에 관심을 덜 기울였던 것이 앙금이 쌓인 계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대적으로 문화예술보다는 교육복지에 비중을 뒀던 최 군수 입장에서는 전임 군수의 감성마을 운영이나 지원 방식이 마음에 안 들었을 수 있다. 실제로 춘천에 사는 이 작가를 다른 지자체와 경쟁 끝에 화천군에 정착시킨 것은 전임 정갑철 군수였다. 정 전 군수는 2002년부터 2014년까지 내리 3선 군수를 지냈고, 재임 기간 이 작가를 화천으로 데려왔다. 그는 이 작가를 내세워 국고를 지원받아 지금의 감성마을테마문학공원을 조성했다. 전임 군수 시절에는 이 작가로 인해 지역경제가 활성화됐다는 기사도 간혹 보도됐다. 최문순 현 군수는 2016년 처음 당선됐다. 이 작가는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전임 군수와는 달라진 최 군수의 정책이 서운했을 수도 있다. 이 작가는 시사저널에 “정 전 군수가 문화예술 가치를 굉장히 높게 생각했다”며 “작가한테는 작품 이외에 더 이상 바라면 안 된다고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처럼 양측이 지향하는 바가 달랐으니 갈등은 예고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수면 밑 갈등이 표면화된 것은 8월 폭언 사건이 아닌 2월초다. 최 군수가 아닌 소속 군의회 의원들이 전방에 나섰다. 올 2월 화천군의회록을 보면 이미 이 작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거세게 이뤄지고 있고, 군청 측 담당자가 의원들의 문제의식에 동조하는 답변 내용이 나와 있다.

“저희가 개인적으로도 만나서 그랬습니다. ‘우리가 화천군에서 한 100억이라는 돈을 쓰고 있는데 당신 혼자는 성공했지만 화천군에서 문학하는 사람 뭐야, 소설 쓰는 사람이 하나도 등단된 것이 없다. 그렇다면 여기 와서 한 일이 무엇인가.’ 이렇게 따져본 적도 있어요. 그래서 그 부분을 좀 우리 화천군민들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최남선 화천군의원)

“감성테마파크공원, 문학공원 여기에도 보면 매년 방문자 수가 줄어들고 있고 수익도 줄어들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지금 우리 다른 쪽으로 생각을 해야 되지 않을까. 왜냐하면 이외수 작가님도 이제 나이가 들고 또 활동도 왕성하지 않고 그러다 보니까 거기에 대한 자꾸 잊혀지는 그런 면에서 방문객 수가 자꾸 줄어드는 그런 추세거든요.” (길종수 의원)

“전시실에 있는 물품은 기증을 받진 않았죠? 그거를 기증을 하려고 우리가 요청을 했는데 거기가 안 된다고 합니까? 아니면 우리가 요청을 해 보지 않고 그냥, 그냥 지나간 겁니까?” (이흥일 의원)

군의회 “이외수가 미치는 경제효과 적다”

군의회가 이때 제기한 문제들은 현재 시민단체들이 이 작가를 공격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시민단체의 의견을 군의회가 대변한 것인지, 군의회의 주장을 시민단체가 그대로 차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양측의 주장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양측이 비판하는 내용의 골자는 이 작가가 군의 전폭적 지원을 받음에도 지역활성화에 미치는 영향과 경제효과가 적다는 것이다. 화천군의회에서 이 작가에게 일종의 방세를 내라는 것도 이런 주장과 같은 맥락에서 언급됐다. 감성마을이 위치한 다목리에서는 이 작가가 문학관 내에 커피자판기를 설치해 관람객들에게 커피를 무료로 나눠주는 것도 문제를 삼고 있다. 심지어 이 작가가 화천이 아닌 춘천에 가서 물건을 샀다는 내용까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작가를 비판하는 군민이나 군청 관계자들은 혈세가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비판은 일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군청 입구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실제 장사가 됐는지 안 됐는지, 감성마을에 선생님 오기 전이랑 후가 얼마나 다른지는 상인들이 제일 잘 안다”며 “그렇게 주민들이 느끼는 것도 일리는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결국 양측 갈등의 쟁점은 과연 이 작가가 화천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것이 주민들이 느낄 만큼 경제적 효과를 가져왔는지 정도로 요약된다. 이 부분에서 양측의 주장이 완전히 엇갈리고 있다.

이흥일 의원은 이와 관련해 10월27일 군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감성마을은 2004년부터 2013년까지 9년 동안에 걸쳐 조성되었고, 사업비는 그동안 133억3300만원이 소요됐으며, 그중에 군비가 67억300만원 투입됐습니다. 이 감성마을을 무슨 근거로 짓게 되었는지 우리 주민들은 아직도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중략) 공증이나 의회 동의 없이 이 한 페이지짜리 협약서에 의해 추진되었고, 이 행정행위는 행정절차상 하자와 법률상 어떠한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 종이에 불과하였습니다. 이 협약 한 장에 의해 133억이라는 돈이 투자됐다는 사실입니다. 현재에도 감성마을 관련 운영비로만 매년 2억 이상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인건비가 5명에 1억 정도가 매년 지출되고 있고, 공공운영비에서는 전기료만 1년에 5000만원 정도 지출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세계문학축전 행사비로 도비 1억, 군비 1억 해서 총사업비 2억이 책정되어 추진하는 가운데 이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의원뿐만 아니라 다른 군의원들이 본회의를 통해 한 발언이나 군청 공무원의 답변을 보면 어떻게 하면 이 작가를 더 잘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다. 군청 관계자는 “군청이나 군의회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 작가를 통해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 방안을 모색한다”며 “이것이 나쁜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와 연관 짓는 시선도

돈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 작가 역시 목소리 높여 반박했다. 

“2004년 여기 왔을 때 사택도 없었다. 군에서 사택은 지어준 거다. 나머지는 거의 다 사실 정부에서 지원받았다. 그리고 내 이름 팔아서 군이 지원받은 거지, 화천군수 이름 보고 줬겠나. 아니면 군의원 얼굴 보고 줬겠는가. 다 내 이름 걸고 온 거 아니겠나. 어쨌든 내 예술적 활동을 빙자해 다 타다가 자기네들이 잘못 쓴 거, 왜 나한테 이제 와서 뒤집어씌우고 그러나. 내가 문학관을 운영하나? 내 이름 걸고 군에서 운영하는 거 아닌가. 그동안 몇 차례 있었던 감사에서 단 한 번도 돈 문제로 지적받은 적도 없다. 오히려 군에서 고용한 여기 직원들 월급이 너무 적어 내 돈 50만원씩을 매달 지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화천에 기여한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나?”
화천군은 2004년부터 무료로 운영돼 온 이외수 문학관을 올해 6월부터 유료로 전환했다. 전환 과정에서 이 작가와의 논의는 없었다고 한다. 현재 이외수 문학관에서 팔고 있는 이 작가의 그림과 머그컵(1만5000원)은 모두 군의 수입으로 잡힌다. 이외수 작가의 폭언과 방세 납부 논란으로 양측의 갈등이 외부에 알려졌지만, 결국 기저에는 문화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오는 갈등이 깔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화천군과 이 작가의 싸움을 내년 지방선거와 연관 짓는 시선도 적지 않다. 화천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한 번 정도로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고, 두세 번은 뽑아줘야 한다는 것이 시골 분위기인데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자유한국당이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다 보니 군수나 군의회 입장에서는 난감한 측면이 있을 것”이라며 “이 작가를 때림으로써 보수 세력이 결집하는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최 군수는 이런 주장에 대해 “내 중심만 잡고 가면 되는 것”이라고만 말했다. 반면 이 작가는 “사실 시골 사람들은 이외수 혼자 어마어마한 나랏돈을 다 쓰고 우리한테 한 푼도 안 줬다 이런 식으로 선동하면 다 믿는다”며 “이는 명백한 정치적 물타기”라고 주장했다.  

출처 http://m.sisapress.com/journal/article/17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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