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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7일 수요일

중앙일보 신년기획 '미래역량 100인보' ③대학총장, 원로교수가 말하는 미래대학, 3A 교육체제

‘대학’을 뜻하는 영단어 ‘유니버시티’(university)의 어원은 라틴어 universitas다. ‘종합’, ‘전체’라는 뜻을 가졌다. 이 단어가 대학을 뜻하는 말이 된 시기는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universitas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길드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최초의 대학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볼로냐대(1088년 설립)가 학자들과 학생들의 공동체라는 의미에서 이 단어를 쓴 것이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 [중앙포토]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 [중앙포토]
이처럼 대학은 인류 역사에서 1000년간 이어져온 학문 공동체다. 그런데 최근 대학이 사라진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2030년에 대학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의 유례없는 급격한 발전으로 인간이 기계에게 직업을 빼앗길 뿐 아니라 대학마저 불필요한 시대가 열린다는 예상이다. 과연 그의 예상처럼 대학이 필요없는 시대가 조만간 열릴까. 그렇다면 미래에는 지금까지 인간이 대학에서 배워온 지식이 아닌 무엇이 필요할까. 
  
중앙일보와 현대차정몽구재단은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 명사 100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에게 미래에 어떤 역량이 중요하냐고 묻자, 5가지 역량에 응답이 집중됐다. 창의력(29명ㆍ중복응답포함)과 인성(28명), 융복합능력(26명), 협업역량(26명), 커뮤니케이션능력(18명)이 그것이다. 
  
대학이 사라진다는 관측은 다시 말하자면 지금까지 대학이 이러한 미래 역량을 기르는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앙일보가 인터뷰한 100명의 리더 중 대학을 실제로 이끌어온 전·현직 총장과 부총장, 원로급 교수들은 ‘기존 대학 체제의 파괴’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100인의 명사들이 꼽은 미래에 필요한 핵심역량
100인의 명사들이 꼽은 미래에 필요한 핵심역량
1000년 전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대에 비해 지금의 대학은 여러모로 발전했지만 근본적으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러 학생들이 교수의 가르침을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서 받고 있다는 점이다. 즉, 공장의 대량생산 시스템처럼 지식의 대량전수 시스템인 셈이다. 하지만 통신기술과 인공지능 등의 발달은 학습자 개개인의 상황에 맞춘 교육을 가능케한다. 이것이 대학이 맞닥뜨리는 첫번째 위기다. 

한 대학의 대형 강의실에 앉은 학생들이 교수의 수업을 지켜보고 있다. 한 명의 교수가 많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형태의 가장 일반적인 대학 수업 모습이다. [중앙포토]
한 대학의 대형 강의실에 앉은 학생들이 교수의 수업을 지켜보고 있다. 한 명의 교수가 많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형태의 가장 일반적인 대학 수업 모습이다. [중앙포토]
조벽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이러한 대량생산 강의 시스템부터 개선하라고 요구한다. 그는 "같은 나이대 학생들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이는 3S(same age, same time, same place) 교육에서 아무나, 아무 시간에, 아무 장소에서 학습하는 3A(anyone, any time, any place)교육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려면 기존 교육 시스템은 완전히 바뀔 수 밖에 없다. '3S 교육' 체제에서 대학은 대학이 정한 시간, 장소에서 일정한 코스를 완주한 학생에게 '학위'를 준다. 그러나 '3A 교육' 체제에서는 대학이 학위를 독점해야 하는 근거가 희박해진다. 조 교수는 ”교과목 중심이 아니라 어떤 경험을 하느냐를 중심에 두고 교육 과정을 디자인해야 한다. 자격증과 학위의 독점 체계를 대폭 완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이 맞닥뜨릴 또 하나의 위기는 바로 '교수 권위'의 하락이다. 교수들만이 가지고 있었던 지식이 이제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되고, 나아가 인공지능이 개별 교수 이상의 지식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김우승 한양대 ERICA캠퍼스 부총장은 교수의 학문적 비교 우위가 사라지는 시대가 오면서 수업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과거에는 지식의 접근에 제약이 있어 교수가 우위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지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선 학생이 주체가 되어야 하고, 한 사람의 지식이 아닌 여러 사람이 협업해야만 한다"고 지적한다. 교수가 지식을 전달하는게 아니라 현실에서 마주치는 문제만 제시하고 학생이 해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교수가 수업을 주도하는 것이 아닌 학생이 스스로 동료들과 문제 해결을 하도록 유도하는 수업 방식이 더욱 요구된다. KAIST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토론하는 모습. [중앙포토]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교수가 수업을 주도하는 것이 아닌 학생이 스스로 동료들과 문제 해결을 하도록 유도하는 수업 방식이 더욱 요구된다. KAIST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토론하는 모습. [중앙포토]
박철 전 한국외대 총장은 “교수가 아닌 로봇이 강의하는 시대, 학교 시설이 불필요한 시대, 대학생의 수도 줄어드는 시대, 대학 간판을 따는 시대의 종식”이라고 대학이 마주할 미래를 정의했다. 이처럼 대학이 독점적 지위를 상실하고 교수 또한 권위를 잃는 시대. 대학은 정말 사라지게 될까. 
  
장호성 단국대 총장은 대학 교육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 예견한다. 그는 "어떤 메가트렌드가 닥치더라도 인재를 기른다는 의미의 교육이 사라질 수는 없다. 다만 교육과정과 여건이라는 하드웨어는 필수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우 인천재능대 총장도 "4차 혁명은 새로운 기회다"고 말한다. 그는 "단순 노동이 감소하고 일자리의 심각한 불균형을 불러오겠지만, 일자리가 사라지고 생겨나는 것이 혁신의 본질"이라며 "생겨날 일자리를 대비한 교육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미 다양한 대학 강의가 온라인에서 무료로 공개되고 있어 이들 강의를 이용하면 굳이 대학 건물에 가지 않아도 대학 수준 지식을 쌓을 수 있다. 사진은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을 이용해 들을 수 있는 온라인 무료 대학 강좌 '케이무크'(K-MOOC)를 칠판과 합성한 것 [중앙포토]
그렇다면 사라지지 않기 위해, 대학은 무엇부터 해야 할까. 많은 총장들과 교수들은 그 첫걸음으로 '교과(전공) 장벽의 철폐'를 꼽았다. 
  

행정학 분야의 권위자인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흐름에 맞게 인간을 무장시키려면 기존 교육으론 어림도 없다"고 일갈한다. 그는 교과목의 칸막이를 무너뜨릴 것을 요구했다. "수학Ⅰ과 수학Ⅱ의 구분같은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법학교육 또한 실정법과 판례에 묶일 게 아니라 스토리 텔링으로 인간과 사회, 과학의 변화를 이해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라며 종합적이고 상상력과 창의력에 중점을 둔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대학은 과목에 집착을 버리고 자유전공을 더 널리 보급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출처: 중앙일보] "2030년 대학 절반이 사라진다"…한국 대학 몰락 피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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