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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1일 목요일

영화 '1987' 속 재야의 대부 김정남 인터뷰 / 김승현 중앙일보 기자

76세의 노옹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 벙거지를 푹 눌러 쓴 영화 속 ‘은둔의 사나이’는 온데간데없었다. 

김정남. 영화 ‘1987’에서 배우 설경구가 연기한 ‘민주화운동의 대부’. 30여 년의 세월이 그를 부드럽게 깎았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인상이었는지 온화한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그는 1987년 영등포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이부영(76) 전 의원으로부터 “고(故)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987년 1월 14일)의 진범이 더 있다”는 폭로 서신을 전달받는 인물이다. ‘비둘기’ 역할의 교도관(유해진 분)과의 접선을 차단하기 위해 치안본부장(김윤석 분) 쪽 추격자가 따라붙는다. 영화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장면은 30여 년 전 현대사의 행간에 숨어있던 스토리다. 
  
민주화운동사의 각종 성명서에서 필치를 날렸음에도 이름 석 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를 지난 8일 서울 서초동의 개인사무실에서 만났다. 몸은 느릿해지고 백발은 성성했지만, 눈길 닿지 않는 곳에서 ‘암약’하던 습관은 남아있는 듯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 글을 쓰면서 지냈다. 사무실 유선전화와 팩스, 지인들과의 대포 몇 잔으로 세상과 ‘접선’하고 있었다. 기자와 만나기 직전까지도 “약속을 잡은 나 자신을 꾸짖었다. 미안하지만 다음에 보자”고 인터뷰를 고사했다.

◇“진상이 조작되었다”
그는 지난 5일 영화를 봤다. 시사회에 초대받았지만 “괜히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다”며 불참했다. 그는 일부 사실과 다른 부분은 있다면서도 “영화의 언어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때 함께 했던 분들, 또 영화를 만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고 덧붙였다.
  

질의 :지명수배자 김정남의 신념은 뭐였나.
응답 :“정의구현사제단의 고 김승훈 신부(1939~2003)가 87년 5월 18일에 발표한 성명서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고 싶다. 내가 초안을 쓴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성명서다.

‘이 사건의 범인 조작의 진실이 박종철 고문 살인 진상과 함께 명쾌하게 밝혀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과연 우리나라에서 공권력의 도덕성이 회복되느냐 되지 않느냐 하는 결판이 날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가 진실과 양심, 그리고 인간화와 민주화의 길을 걸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중대 관건이 이 사건에 걸려 있다.’”  
  
질의 :절박하고 위태로운 시간이었겠다.
응답 :“이부영의 서신을 87년 3월에 받았고 5월에 성명이 발표됐다. 유일한 희망이 사제단이었다. 내가 쓴 성명서 초안이 3120자였다는 사실을 신부님에게 들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읽고 점검하며 무거운 짐을 질 준비를 한 거다. 신부님은 ‘당신께서 다 아십니다’는 말을 즐겨 썼다. 그 믿음으로 성명서를 읽었을 것이다.”    
질의 :지난 30여 년에 대한 감회가 궁금하다.
응답 :“서신은 ‘우촌(김정남의 아호) 보게’로 시작했다. 이부영이 서울대 정치학과 61학번 친구다. 내가 한 일들을 보면서도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손길’ 같은 게 있는 것 같다고 할까. 그때 내가 잡혔더라면, 이부영이 영등포교도소로 이송되지 않았다면, 그 교도관들이 없었더라면, 김승훈 신부님이 안 계셨더라면 가능했을까. 모든 게 사람의 힘만으로 된 것 같지 않다.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민주화되도록 예정됐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민주교도관, 정의의 신부, 인권 변호사
영화적인 압축 속에 많은 은인이 숨어있다고 했다.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분)은 실제로는 한재동ㆍ전병용 두 교도관의 이름을 합친 것이다. 그는 ‘민주교도관’이라고 표현했다.  
  

질의 :그들은 왜 위험을 무릅썼나.
응답 :“학생운동으로 수차례 구속되면서 교도소에서 전씨를 알게 됐다. 전씨는 교도관의 열악한 처우와 노동 환경을 개선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민주화운동 양심수들을 지켜보는 교도관 사이에서도 민주화의 움직임이 있었고 큰 역할을 했다. 전씨가 구속되면서 교도소를 떠났고, 이후 한재동 교도관이 전씨를 통해 이부영의 서신을 전해줬다.”    
질의 :그리운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응답 :“고 이돈명 변호사(1922~2011)는 고영구 변호사(81ㆍ민변 초대회장) 등과 함께 수배자들을 지켜냈다. 우리의 도피를 돕는 과정에서의 모든 걸 떠안고 구속됐다. 고영구 변호사의 부인(고 황숙자 여사)과 딸은 신부님들과 우리 사이에서 너무도 많은 도움을 줬다. 영화에서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가상 인물 연희(김태리 분)로 표현된 것 같다. 본인과 가족들까지 나서 도움을 주신 분들이라 지금도 죄송하다. 박종철 사망을 최초 보도한 중앙일보 등 언론의 역할도 컸다.”
  
그는 도피와 항거의 삶을 버텨온 부인(74)과 네 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60년대부터 이어진 통일ㆍ민주 운동으로 변변한 직장이 없었던 아버지에게 어린 초등학생 딸이 “동네 통ㆍ반장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에게 87년은 “험한 수풀을 헤치고 길을 내며 달려온 민주화의 과정”(『진실, 광장에 서다』서문 중에서)의 일부다. 1964년 6ㆍ3 한일회담 반대투쟁의 배후 인물로 구속됐던 그는 “그때 원심력 때문에 우리 민족이 멀어지는 것을 염려했다”고 회고했다. 1974년에는 민주회복국민회의 결성을 주도했다. 성명서 작성과 구속 인사 변론 자료 준비, 구명 운동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수배자들의 은신처 마련과 수발 등으로 민주화 운동을 막후에서 뒷받침했다. ‘민주화운동의 비밀병기’라는 별명도 생겼다.

  
상도동계는 아니었지만 1983년엔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단식투쟁 때 발표한 ‘국민에게 드리는 글’의 초안을 썼고, ‘김대중,김영삼 8·15 공동 성명’도 작성했다. 그는 종교계와 재야 운동권, 정치인의 경제적 도움을 많이 받았다면서 “인생의 8할을 도움과 지원을 받으며 살아왔다. 감사하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1988년엔 창간에 참여한 평화신문의 편집국장을 지냈다. 당시 신영복(1941~2016) 선생이 가족에게 보낸 옥중 서신을 우연히 보고 지면에 싣는 기획을 했다. 후일『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으로 발간됐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에서 그를 다뤘다. “해위 윤보선의 뒤에 있었다. 김영삼의 뒤에도, 이돈명ㆍ홍성우 변호사의 뒤에도, 함세웅 신부의 뒤에도, 창작과비평사에도,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에도 항상 있었다. 찾을 수는 없지만, 그는 있어야 할 때, 있어야 할 곳에 항상 있었다”고 노래했다. 
  
그가 겪은 민주화운동사를 정리한 『진실, 광장에 서다』(2005), 민주화 운동의 주역들을 기록한 『이 사람을 보라 1,2』(2015) 등을 집필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은『진실, 광장에 서다』추천사에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고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민주화운동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적었다. 
  

◇촛불, 그 이후의 대한민국
김영삼 정부에서 약 22개월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비서관으로 유일하게 공직을 맡았던 그는 다시 재야로 돌아왔다. 당시 용공 세력이라는 언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현실 정치보다는 경세가 쪽의 일이 내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87년에서 30년이 지난 뒤 열린 촛불집회에 대해 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봤다”고 말했다. “촛불은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대이자 반작용이었다. 반민주ㆍ반독재를 외쳐야 하는 갈등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미움과 갈등이 아닌 화해와 일치로서 촛불을 켜고 만세를 부르는 정치, 더 높은 차원의 민주사회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초심’을 이야기했다. “혁명은 나부터 새롭게 되는 것이 출발이다. 지금 정부는 스스로 먼저 달라지려는 것보다, 남이 달라지라고만 하는 것 같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1987년의 초심, 맑았던 정의로움으로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국민의 지지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객과 시민들이 그를 어떻게 기억하기 바라는지 궁금했다. “진실은 그 자체의 힘으로 마침내 밝혀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때 내가 해야 할 일에 열정을 다했고, 그걸로 만족하는 보통의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단독]영화 '1987' 재야의 대부, 그가 말하는 박종철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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