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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8일 월요일

1987 그리고 나--“그때 목숨 바쳐 싸웠던 친구들 생각하면 미안하고 또 고맙다”/ 김지혜 선명수 경향신문 기자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영화 <1987> 속 대학생 ‘연희’는 “마음이 너무 아파”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학교 선배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건 30년 전 그때를 보내던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벽 앞에서 수없이 되뇌었을 질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연희도 결국 그해 6월의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전경 버스 위에 오르고, 광장을 가득 메운 자신과 같은 보통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의 ‘연희들’에게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1987>을 보러 영화관을 찾은 그들에게 그날의 기억을 물었다.

■ “87년은 마음의 짐…촛불을 든 이유”

1987년 당시 대학생이던 회사원 석진경씨(53)도 그때는 ‘연희’와 비슷한 마음이었다. 집회는 한두 번 나가 봤을 뿐, 다른 친구들처럼 열성적으로 거리에 나서는 편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게 3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지난 3일 홀로 서울 종로구의 한 영화관을 찾은 석씨는 “당시 친구가 가자고 해서 큰 집회를 몇 번은 따라나섰는데, 친구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서 돌멩이를 집어들었지만 결국 던지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사회적 의식이 투철하지 못하고 내 삶에만 충실한 편이었는데 목숨을 바쳐 싸웠던 친구들 덕분에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그때 나서지 못했던 것에 늘 미안함을 갖고 있다”며 “그때 함께하지 못했던 것을 보상한다는 마음으로 지난해 촛불집회에 빠짐없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당시 갓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던 주부 이혜원씨(54)는 최루탄 연기가 자욱했던 시청 앞 광장, 점심시간마다 그 광장을 빼곡하게 메웠던 시민들의 모습, 시위에 호응하며 일제히 울려대던 택시 경적 소리로 그날들을 기억했다. 이씨는 “회사가 을지로에 있었는데 직장인들도 다들 점심시간에 거리에 나가 데모를 하니 구경 삼아 나갔다가 울컥해서 돌아오기도 했다”며 “영화는 학생 위주로 보여줬지만, 87년 6월이 그 전의 시위와 달랐던 것은 대학생들의 시위에 혀를 찼던 사람들까지도 거리에서 모두가 함께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자랑스러우면서도 쓰라린 기억들

당시 충북대 총학생회장을 지내며 학생시위의 한가운데 있었던 박영호씨(54)에게 87년 6월은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픈 기억이다. 영화관을 두 차례 찾았다는 그는 박종철 열사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가혹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내 도주한 선배의 소재를 말하지 않은 장면에서 울분과 함께 그때의 ‘공포’를 떠올렸다고 했다. 

김씨는 “나도 87년 당시 선배의 도망을 도와주다가 두 차례 구류를 살았는데, 선배의 소재를 불라는 경찰에게 많이 얻어맞아 공포가 컸다”며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그 시절 많은 이들에게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94년에 이적 표현물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에 걸려 일본에서 귀국하던 길에 체포됐다”며 “당시만 해도 간첩 조작 사건이 많아 어디로 끌려가 고문을 당할지에 대한 두려움이 컸는데 체포하러 온 경찰이 (정보기관원이 아닌) 청주경찰서 정보과 형사인 것을 보고 오히려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반갑기까지 했다. 당시 남영동은 그런 곳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영화를 보는 내내 ‘먼저 떠나보낸’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가 그 엄혹했던 시절을 함께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그때 세상을 등진 친구들을 생각하면 그립기도, 미안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 반쪽의 성공…“민주주의 내용 채워야”

“시대의 무게감을 다룬 영화들은 너무 힘들어서 한동안 안 봤어요. 그런데 이제는 왠지 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책 작가 이억배씨(58)는 지난 2일 <1987> 관람을 마치고 이렇게 짧은 감상평을 했다. 당시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안양·군포 일대에서 문화운동을 하고 있던 그는 그때를 “굉장한 열정의 도가니”라고 회상하며 “매일같이 거리를 쏘다니면서 시위를 했는데, 대학생 운동권들이 주축이 됐던 시위에 넥타이 부대, 중년의 시민들이 참여하며 대규모로 커졌을 때는 굉장히 감동적이었고 엄청난 용기를 얻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기억 속 6월은 ‘반쪽의 성공’이었다. 영화 <1987>의 원래 제목이기도 했던 ‘보통 사람들’이 참여한 6월 민주항쟁은 결국 그해 대선에서 ‘위대한 보통 사람의 시대’를 구호로 내세운 노태우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이씨는 “87년에 대통령 직선제 쟁취로 민주주의의 형식은 채웠지만, 그 내용은 채우지 못하고 반동으로 이어졌다. 절반의 성공이 자부심으로 남기도 했지만, 절반의 실패로 인한 패배감이 이후 30년을 지배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래도 시민들이 저항하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87년의 경험을 통해 얻었고, 그 경험이 있어서 2017년 촛불도 켜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사람들이 피 흘려 지킨 민주주의의 내용을 이제 다양한 분야에서 채워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지혜·선명수 기자 kimg@kyunghyang.com>

출처 https://goo.gl/itZD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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