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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5일 월요일

늙은 386의 노래/ 한대광 경향신문 기자

지난해 말에야 <1980년대, 변혁의 시간 전환의 기록-학출 활동가와 변혁운동>의 맨 뒷장인 720쪽을 덮었다. 두 달을 넘겨가면서 마지막 장까지 읽은 이유는 학생운동, 수배, 구속, 공장취업, 파업, 해고 등으로 점철됐던 ‘나의 20대’를 되돌아보기 위함이었다. 
역시 나는 ‘386세대’로 이름 붙여진 1980년대 운동권의 삶과 한 치도 다르지 않게 살아왔음이 재확인됐다. 너무 많은 내가 있었음을 책 속에서 발견했기에 외롭지 않았다. 87년 민주화 항쟁으로 상징되는 민주화의 초석을 쌓는 데 한 점 기여를 한 것도 뿌듯했다.
그러나 당시 운동권 사이에 흔했던 “새로 세우려는 정부의 방향이 하룻밤 사이에 서너 번이나 바뀐다”는 농담처럼 한국사회에 대한 진단은 너무나 관념적이었다. ‘혁명이 곧 다가올 것처럼’ 오판하는 바람에 행동만 앞섰던 점도 다시 한번 반성했다. 노동운동 과정에 만났던 숱한 ‘전태일’들과의 연락이 끊어진 것은 진짜 아쉽고 아쉬웠다.
책을 읽는 동안 운동판에 헌신했던 선후배들, 동료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공장 취업 며칠 만에 손가락이 모두 잘려 접합수술 이후 평생 장갑을 끼고 다니는 선배, 잇따른 해고 후 생활고 해결을 위해 석재공장에 취업했다가 먼저 세상을 뜬 선배, 직장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수십 차례나 취업·퇴사를 반복한 동료, 수사·수감 과정에서 허리디스크가 생긴 친구, 일자리를 찾지 못해 이제는 아예 일용직 노동자가 된 후배, 도시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시골로 떠난 선후배들….
운동권의 삶을 살았던 386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평생 경제적으로 가난하게 살고 있다. 자신의 전공을 살리지 못했다는 더 큰 정신적 궁핍도 있다. 가장 많이 종사하는 업종이 학원강사·과외일 정도이니 현실의 삶은 항상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386세대는 1980년대에 이미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선 386세대가 현재까지도 역사의 큰 물줄기처럼 부풀려져 왔다. 결정적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386세대를 이용해 흥행을 시도했던 정당들과 정치판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했던 일부 정치인들 때문이다. 
그들은 결코 386세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거리에서, 공장에서, 감옥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청춘을 희생했던 절대 다수의 386세대는 평범하게 흩어져 살고 있는데 누가 무슨 자격으로 대표한다는 것인가. 그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이력과 배경을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한 정치인에 불과하다. 더 이상 386세대의 대표인 듯한 명함을 돌리지 말기 바란다.
386세대 운동권들은 아무리 현실이 고달프더라도 한 가지 ‘자부심’을 간직하고 있다. ‘세상을 바꿨다’는 것이다. 숱한 논쟁 속에 등장했던 세상은 아니더라도, 아직 꿈꿨던 세상은 오지 않았더라도 청춘을 바쳐 불합리한 세상에 대항했고 1987년을 정점으로 세상이 바뀌더라는 ‘달콤한 경험’을 맛본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도 상갓집에서, 송년회에서 마주칠 때마다 당시의 당당함을 잃지 않고 불합리한 현실을 토론하고, 20대 자녀들의 일상을 소재 삼아 이야기도 나눈다. 이제는 흰머리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386세대의 한 사람으로 2016년을 살아가는 청년세대들에게 전하고 싶다.
견고하게 굳어진 현실의 벽과 맞서는 것은 커다란 용기와 행동이 필요하고 결과에 따른 책임도 비례해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당하게 살았다는 자부심만은 평생 간직할 자격을 갖게 된다.
허위와 과장으로 덧씌워진 386세대를 당당히 비판해 달라. 대신 이 한 가지만은 인정하고 계승해 달라. 스스로 떨쳐 일어나 ‘세상을 바꿔보라’고. 
원문보기: 
https://goo.gl/2XTu5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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