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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1일 일요일

최저임금 상승과 인정 투쟁/ 강수돌 교수

“(2015년 독일의 최저임금제 도입은) 지난 수십년간 가장 큰 사회개혁이며, 일부 염려하는 목소리와 다르게 전혀 경제적으로 부정적이지 않고 일자리 손실을 가져오지 않았다.” 독일의 안드레아 날레스 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제 도입 1년을 맞아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물론 고용주들의 시각은 달랐다. 독일 수공업연합 대표 칼-세바스찬 슐터는 “최저임금 인상은 아직 이르다”고 했으며, 친기업적인 뮌헨 경제연구소 또한 “최저임금을 낮추거나 최소한 올리지 않는 것”이 옳다고 했다. 그러나 뒤스부르크-에센 대학 ‘직업숙련 연구소’의 토르스텐 칼리나 박사는 “최저임금제 도입 뒤 소매업·호텔 등에서 임금이 10%가량 늘었지만 일자리는 오히려 늘었다”며 “최저임금 도입으로 인건비 경쟁 대신 품질로 공정 경쟁해야 한다는 여론이 사용자들에게도 퍼지고 있다”고 했다. 결국 독일의 최저임금은 2015년 8.5유로에서 2017년 8.84유로로 올랐다. 그럼에도 경제는 탄탄하다.

한편 영국 옥스퍼드대 등 연구팀의 2016년 논문에 따르면, 1999년 영국에서 처음 최저임금제(시급 3.6파운드)를 도입한 이후 저임 노동자들의 경제적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정신 건강도 개선됐다. 데이비드 스터클러 교수는 “저임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은 우울증 치료제를 먹는 것 이상의 효과를 드러냈다”고 했다. <평등해야 건강하다>라는 책을 쓴 리처드 윌킨슨 교수의 명제와 통한다.

우울증 지수가 높은 한국은 어떤가? 2018년 최저임금 7530원이 적용되자 논란이 뜨겁다. 편의점·식당 등 중소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더 이상 남는 게 없다”며 울상이고, 심지어 서울 등 아파트 단지들에서는 경비원 인건비가 아깝다며 전원 해고하고 용역회사에 하청을 주기도 한다. 

반면 알바연대나 청년유니온, 민주노총 등은 최저임금 1만원이 보장돼야 최소한의 생계가 가능하다며, 임금이 아닌 가맹비나 임대료를 내리라 한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 역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더불어 최저임금 인상을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정책으로 삼는다. 비정규직 양산 및 저임금은 경제 전체적으로 사람들의 구매력을 축소하기에 상품들이 잘 팔리지 않고 불경기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정규직을 늘리고 임금을 높이면, 전반적 소득 상승이 되어 기업들의 돈벌이도 나아지고 국민경제 성장이 지속된다는 계산이다. 기존의 ‘이윤주도 성장’에 비하면 진일보했다. 따지고 보면, 이는 분배 투쟁을 넘는 ‘인정 투쟁’의 성과이기도 하다. 단순한 소득 격차 해소를 넘어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노동자를 ‘사람’으로 존중한다는 뜻에서다. 이런 발상의 전환은 촛불혁명의 작은 성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대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제2차) 촛불혁명은 한참 더 나가야 한다.

첫째, 원래 노동의 정규성은 산업혁명 무렵 자본이 간절히 원하던 바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초창기 노동자들은 수공업 직공 내지 농민 출신들이었는데, 이들은 공장의 기계 노동이나 감독의 권위주의를 몹시 싫어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3~4일 노동도 늘 투덜댔고 걸핏하면 기분 나쁘다며 집으로 가버렸다. 그들에게 자본 종속적 노동은 노예화였다. 그래서 자본은 노동의 정규성 확보를 위해 기계를 도입하고 과학적 관리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정규직 노동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과 경쟁을 가속화한 결과다.

둘째, 최저임금 인상 등 임금 인상으로 구매력(유효수요)이 증대되면 불경기가 호경기로 전환될 것이라는 이론은 이미 1930년대 케인스가 제시했다. 독일 등 유럽 사례처럼 노사 모두 번영할 수 있는 경제의 밑바탕 논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소득주도 성장론’ 역시 촛불혁명이 강조한 ‘사람’ 사는 세상보다 ‘자본주의’ 살리기에 초점이 가 있다. 소비자가 상품을 사줘야 기업이 살고 자본주의가 망하지 않는다는 원리 때문이다.

셋째, 이윤주도 성장이건, 소득주도 성장이건 모두 ‘성장’에 중독됐다. 절대 빈곤이 지배하던 시절엔 성장 논리가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 전반적으로 ‘너무 넘쳐 탈’이다. 진정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격차 축소와 더불어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다. 넘치는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자원을 나누기 시작하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 ‘무엇을 위한 성장’인지 성찰하고 성숙해가는 것이다. 분배 투쟁과 인정 투쟁을 넘어, ‘의미 투쟁’으로 전진할 때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


출처 https://goo.gl/nGnNb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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