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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8일 월요일

명백한 실수와 해석의 자유 / 김응교 시인 페이스북에서

명백한 실수와 해석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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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다. 작년 초에 발표한 논문, 독보적인 논문으로 생각하고 발표했다. 나 아니면 이 세상에 아무도 쓸 수 없는 논문으로 생각했는데, 그 논문으로 강의하다가 한 대목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어떡하지. 학생들에게 이 부분은 틀렸다고 그 자리에서 말했다. 빨리 다음 논문에서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 문제는 다른 연구자들이 다음 논문을 읽지 않고 잘못을 반복해서 인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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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런 일을 여러번 보았다. 윤 시인 이야기를 월간 『기독교사상』에 2년간 연재하고, 잡지 연재글과 7편의 논문을 쉬운 입말투로 풀어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을 냈다. 단행본을 낼 때, 연재글의 어디를 고쳤는지 모를 정도로 수정했다. 황당하게도 사람들이 마지막 정본인 단행본을 인용하지 않고, 수없이 수정하여 폐기한 연재글을 인용하는 것이다. 게다가 폐기한 잡지본 글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그런 글을 보면 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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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을 내고 쓰러져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머리 위에 달린 서너 개의 링겔 줄을 보며, 책 한 권 쓰다가 목숨 걸 수도 있다는 엄살을 깨달았다. 바로 이런 지경을 니체가 경험했으니 "나는 피로 쓴 글을 좋아한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고 말했겠구나, 니체가 이해됐다. 그렇게 애써 쓴 책인데, 이번 중국 여행을 하면서 이 책에서 틀린 부분을 두 군데나 찾아냈다. 윤 시인 생가에 있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라는 거대한 돌비석을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판단하도록 건드리는 문장을 넣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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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중국 근경 근처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국가 연구 프로젝트로 내세운 동북공정을 생각하면, 윤동주마저 자신들의 틀 안에 넣으려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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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따렌민족대, 연변대 교수와 조선족 중학교 교사와 대화해보니, 여기서 '애국'이란 중국쪽에서 만든 표현이 아니라, 조선족이 정한 표현이었다. 조선족에게 윤동주는 애국시인이다. 조선족들은 애국에서 국(國)을 네이션(nation)이 아닌 에스닉(ethnic)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글씨도 조선족 최고 명필이 쓴 글씨였다. 주변에 세운 여러 기념석들을 보니 조선에 뿌리를 둔 인물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고 있었다. 다음주 동아일보 연재글에 해명하려 하지만, 내 속에 과도한 애국주의가 만들어낸 오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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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해석은 가끔 과장되고 점점 증폭된다. 윤 시인에 대한 주변 사람의 증언도 점점 크리센도, 증폭된다. 윤 시인의 동생 윤일주 교수의 증언도 첫글과 다음글 그 이후의 증언에 조금씩 크리센도 되는 부분이 있다. 증언자의 말을 다 신뢰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래도 그것은 해석의 자유이며, 2차 증언자로서 위력을 갖는다. 반대로 사실의 왜곡은 명백한 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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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 이름을 검색해보곤 한다. 글이나 책이나 강연에 대한 반응도 알 수 있다.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지만, 소문난 강연으로 알고 어렵게 찾아갔는데 실망이었다는 글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 날은 내 전공이 아닌 내용으로 강연했었다. 전공이 아니거나, 공부가 부족할 때 공적인 자리에서 확증하여 말하면 절대 안 된다. 누구신지 알기에 그 분께 평생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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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과 말은 완벽하지 않다. 늘 흔들리고 미끄러진다. 


어느 교수는 대학원 수업 때 내 논문을 복사해 돌려 읽었다면서, 발로 쓰신 논문이니 믿을 수 있지요, 라고 말했는데 실상은 이리도 처참하다. 며칠 전에는 이런 글을 만나고 멈칫, 굳어 버렸다. 


"대학원에서 윤동주 관련 레포트를 쓸 때 김응교 선생님 논문들을 거의 '경전'처럼 읽었다. 국문학 전공자들은 공감할 것이다."


그냥 농담으로 가볍게 쓰셨겠지. 격려해주시는 과찬이겠지. 처음엔 고마웠으나 이내 너무 죄송했다. 해석의 자유가 있을 수 있으나, 내 글 속에 있는 명백한 실수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상한 생선을 요리하여 내놓는 요리사가 숨을 곳은 어디인가. 저 짧은 표현이 죽비처럼 몇주 간 사정없이 나를 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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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하지 않기에 최선을 다해도 이 깜냥이다. 며칠 전에는 실수한 논문과 책을 껴안고 뒤적이다 잠에 들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다리 하나 짧아 절룩거리며 도망가던 아이 하나가 하냥 울며 밑이 안 보이는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침에 깨어나니 몸에 짓눌린 책과 논문이 휴지처럼 찢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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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지은 죄, 하마르티아(Hamartia)라고 용서할 수 있을까. 내가 잘못하면 그 폐해는 다음 연구자와 독자와 학생들에게 바이러스처럼 번진다. 사기꾼 심정으로 용서를 구한다. 논문과 책을 낼 때마다 내 실수를 표기하며 자백하는 사기꾼으로 살아가려 한다. 윤 시인에 대한 다음 책을 올해 내려 한다. 이 책 서두에 윤 시인에 대해 내가 실수했던 내용을 적어 놓으려 한다. 엉성한 글을 발표해놓고, 무너지고 절망하는 나귀, 한없이 슬퍼 눈물도 매마른 짐승이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eunggyo?fref=nf&pnref=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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