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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2일 월요일

“문학이 전쟁을 멈추게 한 일은 없지만…평화만을 말할 수밖에 없다” / 국제인문포럼 '분쟁 혹은 분단' / 유정인 경향신문 기자

국제인문포럼…‘분쟁 혹은 분단’ 섹션 지상중계
“오늘 여러분이 겪고 있는 분단의 아픔은 어제 베트남이 겪었던 아픔입니다…분단, 베트남 민족이 겪었고 한민족이 겪고 있는 이 고통은 오늘날 세계가 겪고 있는 비극의 축소된 버전인 것 같습니다.”
베트남의 젊은 작가 후인 쫑 캉은 20세기 남베트남과 북베트남, ‘우리’와 ‘그들’로 나뉜 시절을 담담히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문학, 언어의 무한성”으로 어둠에 굴복하지 않는 의지, 인류의 투쟁을 이야기했다. 
기억은 서로 만났다. 잠시 뒤 마이크를 잡은 심아정 수유너머104 연구원은 베트남 이야기를 하려다 “잠시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달라”고 몇 번 멈춰 섰다. 그러고는 1968년 2월 베트남전 용병으로 민간인 학살에 참여한 한국인 병사들의 증언을 불러왔다. 김동식 문학평론가는 부산에서 보낸 유년 시절 ‘보트피플(베트남 난민)’ 수용소의 철조망 사이로 마주쳤던 또래 소년의 눈빛을 떠올렸다.
지난 20일 서울대 두산인문관에서 국내외 작가들이 ‘분쟁 혹은 분단’이라는 주제로 모였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을 계기로 열린 국제인문포럼의 한 섹션이다. 18개국 60여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서로가 통과해 온 전쟁과 폭력의 구체적 형태가 다를지라도, ‘이야기’ 속에서 고통의 기억과 해답이 중첩된 선을 만들어갔다. 문학이 어둠에 균열을 내고 틈새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작가들 저마다가 품고 온 질문 역시 마땅히 서로에게 닿아 있었다. ‘이런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이며, 글로써 무엇을 해야 하는가.’ 
팔레스타인 출신 시인이자 학자인 칼레드 흐룹은 “팔레스타인의 대서사시를 대표”하는 이브라힘 아부 투라야의 짧은 생애를 통해 답을 구했다. 이브라힘은 2008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피란민 캠프 폭격으로 두 다리를 잃었다. 절망과 빈곤, 이스라엘의 ‘울타리’가 그를 가뒀지만 “이브라힘의 영혼은 꿋꿋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스라엘군과의 충돌에서 선봉에 서곤 했던 그는 지난해 저격수의 총탄에 머리를 맞아 숨을 거뒀다. ‘이브라힘들’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그는 물었다.
저녁 시낭송회에 참석한 진은영 시인은 “가자지구의 사람들이 어떻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가를 소개한 글을 만나고 느낀 것만으로도 제게는 굉장히 큰 행운이고 기쁨”이라고 했다. 
러시아와 이란의 전쟁에서 분단국이 된 아제르바이잔의 작가 바기프 술탄르는 “문학이 전쟁을 멈추게 한 일은 없다. 힘이 없기 때문에 펜 끝에선 분노가 솟아난다. 그러나 충분치 않다. 우리는 그저 정의의 편에 설 수 있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19일 포럼 기조발제에 나선 김연수 소설가의 말과 연결된다. “펜은 칼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펜은 약합니다. 문학은 약한 것이며, 권력의 정반대 편에 있으며, 따라서 힘에 쉽게 굴복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문학은 마치 백치와도 같이 오직 평화만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화’를 부르는 세계 작가들의 목소리는 이날 저녁 낭송회로 이어졌다. 서울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이 자리한 광장에 한국어와 영어, 터키어, 베트남어로 시와 소설을 읽는 작가들의 목소리가 퍼졌다.
“아닙니다! 나는 나의 친구의 상처에 소금을 문지를 손을 가질 것입니다. 나는 활기차게 바다에 흐르는 목소리를 가질 것입니다. 나는 이런 식으로 평화의 시를 쓰지 않을 것입니다.”(‘나는 평화의 시를 쓰지 않을 것입니다’의 마지막 부분) 
터키 시인 메탄 투란은 처절하게 평화를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담은 시를 낭송하고는 “앞으로도 계속 평화에 대한 시를 쓰겠다”고 했다. 
키르기스스탄의 시인 겸 영화제작자인 달미라 틸레프베르겐은 “당신이 지금 총을 쏘고 있다면/아니면 탱크를 몰고 있다면/그냥 멈추세요/그리고 제발/돌아와 댄서가 되어주세요”(‘오늘의 군인을 생각하며’ 중)라고 노래했다. 
국제인문포럼에 참여한 작가들은 21일 임진각과 평창 동계올림픽 현장을 찾은 뒤 22일 이효석 문학관에 평화선언문을 전달하고 흩어진다. 포럼 중인 20일(현지시간) 터키군은 시리아 북서부 아프린 공습을 개시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가자지구 국경을 따라 65㎞ 길이의 지하장벽을 세우는 중이다. 고은 시인의 개막식 건배사처럼 “여기 모인 국내외 작가들이 며칠 동안 아주 위대한 대답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의 연결점을 확인하는 찰나의 순간들 사이로 ‘칼보다 강할’ 수 있는 무언가, “현실이면서 현실에 대해 늘 꿈꾸는 행위(고은 시인)”인 문학은 이미 발견된 것이 아닐까.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212132005&code=960100#csidx8ea11cd1f1efa60b0e0e8be920c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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