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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9일 화요일

‘환경 헌법’ 만들어질까/ 김정수 한겨레 기자

모든 생명체에 대한 국가보호 의무, 생태계와 미래세대에 책임을 지는 환경 보전, 유명무실한 기본권인 환경권 강화, 무분별한 개발의 방어막이 될 자연자원에 대한 공공신탁개념 도입 등이 헌법에 명문화될 수 있을까?

지난해 연말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헌법 개정안이 세계 최초로 자연에 기본권을 인정한 에콰도르의 이른바 ‘자연권 헌법’(관련기사 ‘헌법에 등장한 동식물 생존권’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313254.html)을 연상시킬 정도로 환경에 대해 진보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이후 논의 과정이 주목된다. 

이 개정안은 지난해 2월 시민단체와 학계 등 80개 단체·기관이 개헌특위에 추천한 전문가 53명으로 구성된 자문위가 12월까지 11개월 동안 기본권 및 총강 분과, 정부형태 분과, 정당제도 분과 등 6개 분과별 토론과 전체회의 논의를 통해 작성했다.

헌법 전문가는 물론 환경단체 내부에서도 ‘획기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환경 관련 부분은 개헌특위가 애초 선정한 헌법 개정 주요 의제에 포함되지 않은데다 정치권의 관심이 권력구조 개헌에 집중된 탓에 아직 쟁점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진행될 공론화 과정에서 환경에 대한 강조를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보는 보수층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설 것으로 예상돼 논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달 15일 자문위 전체회의에서 최종 확정된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자문위 헌법 개정안은 전문에 ‘생명 존중’, ‘지구생태계와 자연환경의 보호’, ‘지속가능한 발전 추구’ 등 생태와 환경 지향적 표현을 담고 있다. 국가의 역사적 근원과 지향할 기본 가치를 천명하는 헌법 전문에 생명 존중과 생태계 보호, 지속가능발전이 명시되는 것은 이런 가치들이 민주, 자유, 기회균등과 같이 국가와 헌법이 지향하는 기본 가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문위는 보고서에서 헌법 개정안 전문에 생명 존중을 넣은 취지를 “무분별한 개발, 환경파괴, 극심한 경쟁으로 생명공동체인 인간, 동식물의 관계가 파괴되고, 생명의 가치에 대한 존중이 위협받고 있어, 헌법에 생명 존중 정신을 명기하여 이를 상기하고, 이를 근거로 환경권, 경제조항, 국토개발 조항에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과 지속가능성의 헌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에 담은 ‘생명 존중’이 인간만이 아닌 모든 생명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개정안은 환경 기본권을 규정한 본문 제37조에 “모든 생명체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해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 보호를 국가의 의무로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자문위 기본권 및 총강 분과 위원으로 활동한 헌법학회장 고문현 숭실대 교수는 “너무 이상적이면 현실적이지 않을 우려가 있어 독일 헌법처럼 보호 대상을 ‘동물을 포함한 생명체’로 한정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모든 생명체’가 다수 의견으로 채택됐다”며 “(개정안이) 자연의 권리까지 인정한 에콰도르 헌법과 넓은 의미에서 일맥상통하고, 그에 버금가는 수준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행 헌법 환경 기본권 조항인 제35조에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로 돼 있는 환경권의 정의를 자문위 개헌안 제37조에서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함께 누릴 권리’로 수정한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까지 법원은 사인 간 다툼에는 환경권을 적용하지 않고 재산권과 동일 지평에서 이익형량을 통해 접근했는데, ‘함께’라는 표현은 환경권의 성격을 개별적 권리에서 집단적 권리로 전환시켜 법원에 환경권을 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문위 헌법 개정안이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고 한 현행 헌법의 환경권에 대한 법률유보조항을 삭제한 것도 비슷한 취지에서다. 고 교수는 “법원에서는 헌법의 환경권을 하위 법률에 규정돼야만 다툴 수 있는 추상적 권리로 새겨왔는데, 법률유보조항 삭제는 환경권을 법률 없이도 헌법에 터잡아 구체적 권리로 다툴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자문위 개정안 전문에 표현된 ‘지구생태계와 자연환경 보호’, ‘지속가능한 발전 추구’는 환경권 조항인 제37조 4항 “국가는 지구생태계와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지고, 환경을 지속가능하게 보전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통해 국가 의무로 강조됐다.

개정안의 경제 부문 조항에 반영돼 있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집중·남용의 피해자들에게 징벌적, 집단적 사법구제수단 보장 △자연자원을 ‘모든 국민의 공동 자산’으로 규정한 공공신탁 개념 도입 △농·어업과 농·어촌의 공익적 기능 규정과 지속가능한 발전 강조 등도 환경과 관련해 크게 진전된 내용들이다. 특히 현행 헌법 23조에 규정된 ‘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 적합성 의무’를 구체화시킨 자연자원 공공신탁개념은 환경권 헌법 조항이 없는 미국에서 환경 보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처럼 개발에 맞서는 시민환경단체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자문위 개정안대로 모든 생명체 보호와 미래세대에 책임을 지는 환경 보전이 헌법에 국가 의무로 규정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법률 전문가들은 그 변화는 우선 환경소송에서 시작될 것으로 본다. 모든 생명체와 미래세대의 이름으로 국가나 개발사업자를 상대로 권리침해 해소나 적극적 보호 조처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돼, 현행 헌법에서는 불가능한 가축 살처분방식에 대한 위헌 소송까지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독일도 2002년도에 헌법에 동물보호 조항이 만들어지고 이를 근거로 한 위헌소송이 제기되면서 (가금류) 사육방식이 종전의 좁은 케이지식에서 넓은 평사식, 나아가 자연방사식으로 많이 바뀔 수 있었다”며 “개정안에 담긴 환경조항들을 시민사회단체가 적절하게 활용하면 우리 사회가 좀더 생태적인 사회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지금까지의 많은 환경 관련 소송이 원고 적격 문제로 날아갔는데 개정안대로 되면 원고가 크게 늘어나게 된다. 새만금 소송과 같은 재판에서도 환경권이 훨씬 폭넓게 해석되고 공공신탁이론에 따라 자연을 무참히 짓밟아 미래세대에 넘겨주는 게 바람직하냐는 얘기가 나오면서 다르게 전개되는 등 여러 측면에서 변화를 추동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아직 논의 과정이 남아 있어 흥분할 건 아니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826926.html#csidx1ce2ded811a969892a21d84b87c8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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