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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일 화요일

촛불의 제도화를 위한 제언③] 헌법은 바뀌어야 한다/ 소준섭

참으로 기나긴 고통의 세월이었다. 역사가 과거 유신시절로 돌아간 듯한 어둠의 시대였다. 우리가 이미 획득했다고 믿었던 그 민주주의의 원칙과 틀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그러나 마침내 시민들은 이 어둠을 촛불로 몰아냈다. 독재자는 자기의 성에 유폐됐고, 우리는 광장에 섰다. 

이제 우리의 임무는 무엇인가? 그것은 광장을 불살랐던 촛불의 열기를, 그리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그 뜨거운 외침을 진정한 민주주의의 제도화로 승화시키는 것이라 믿는다. 광장의 열기가 그저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차원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하여 구체적인 법률과 제도로써 정립되고 실행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오마이뉴스>에 연속 기고한다. - 기자 말 

'헌법은 바뀌어야 한다.'

여기에서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은 이번 기회에 나라 같지도 않은 이 나라를 바꿔내야 하고, 그 구체제를 떠받쳐왔던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일각에서 운위하는 내각제니 이원집정부제 등의 권력구조만의 '왜곡된 형태의' 개헌을 뜻하지 않는다. 

유신헌법,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케 하다


헌법 제104조 제1항은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어 제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조항이 본래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유신헌법에 의해 기존에 존재하던 법관추천위원회가 폐지되면서 대통령이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임명하도록 바뀌었고, 현재의 헌법에 이르기까지 계속해 명문화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 어느 나라도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나라는 없고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나라도 거의 없다. 유신 잔재이다.  

현행 헌법의 이 조항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임명을 대통령이 장악하게 만든 독소조항이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이 규정은 삼권분립에 위배되며, 이 조항 하나만으로도 지금 당장 헌법을 바꿔야만 할 이유가 존재한다. 이러한 제도를 그대로 두고서 정상적 민주주의라 자부할 수는 없다. 

미국도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한다는 이유를 들어 문제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에는 여러 측면에서 우리와 상이하다. 미국 대법원은 사실상 우리의 헌법재판소와 같다. 더구나 미국의 대법관은 종신제로서 여야 양당의 정권 교대가 정례화된 미국에서 대법관 구성은 진보와 보수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게 된다.

제왕적 대통령제, 헌재 소장과 감사원장 모두 대통령이 임명


헌법 제111조는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해 사실상 절대 다수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9명의 재판관 중 7~8명까지 대통령 의중대로 채우는 것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보수 일색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그 자체로 비정상 국가의 표본이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적나라한 표현이다. 독일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경우, 보수와 진보 성향이 언제나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처럼 감사원이 대통령 직속으로 돼 '대통령 감사'로 전락한 나라는 지구상에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에는 1962년 헌법에 감사원을 헌법기관으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대통령 직속의 '명목상의' 헌법기관일 뿐이었다. 

감사원이 진정한 감사원으로서의 헌법기관 위상을 지니려면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독립적인 기관으로 되거나 혹은 미국의 경우와 같이 의회 소속이어야 한다. '감찰'의 기능은 행정부에 그대로 남겨두면 된다. 참고로 미국은 행정부에 감찰국과 공직자윤리국을 설치하고 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그리고 감사원장에 대한 대통령 절대 권한 부여를 개선하지 않고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할 수 없다. 

독일 기본법 제97조 제2항은 "(법관은) 법률의 판결이나 법률이 정하는 형식 및 이유에 의해서만 법관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전보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법관의 전보 인사를 완전하고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법관의 독립을 위하여 우리 헌법도 법관 전보를 금지 규정을 두어야 한다. 

국회의 조약 비준 동의권 약화... 국보위 헌법 규정 이어받아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1980년 설치) 때 개정한 헌법은 국회의 조약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 규정 중 기존의 "외국군대의 지위에 대한 조약" 규정은 삭제했다. 그리고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규정을 "'중요한' 국제조직에 대한 조약"으로, 또한 "국가와 국민에게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을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규정으로 바꿨다. 

그러나 '중요한'이라든가 '중대한'이라는 수식어는 얼마든지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결국 조약 비준에 대한 국회의 동의권을 결정적으로 약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국보위 헌법 규정을 현 헌법은 그대로 이어받았다. 게다가 동 조항 중 유신헌법에서조차 규정하고 있었던 "외국군대의 지위에 관한 조약"라는 내용이 국보위 헌법에서 삭제됐는데, 현 헌법에서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삭제했다.

또한 프랑스 헌법 제1조 제1항 "프랑스는 지방분권으로 이루어진다"는 규정처럼 공화국의 지방적 성격을 분명히 제시할 필요도 있다. 미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기실 지역 민주주의의 연방으로의 확대 과정이었다. 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으로의 지향은 바야흐로 세계적인 추세이다. '무늬만 자치'인 지방자치제는 재정 범주의 자립을 헌법상으로 명문화돼 진정한 지방분권과 자치가 실현돼야 한다. 

아울러 심각해지는 지역주의 해소를 위하여 "연방의 최고정부기관은 각 주 출신의 공무원이 적절한 비율로 채용해야 한다(독일기본법 제36조)"처럼, 지역 차별 금지 및 지역균형 원칙이 기본권의 차원에서 존중되고 헌법에도 명문화될 필요성이 있다.

프랑스 24차례나 헌법 개정... 헌법, 신성불가침은 아니다

흔히 헌법이라고 하면 '금과옥조'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예를 들어, 프랑스는 2008년 현재까지 무려 24차례나 헌법 개정이 이뤄졌다.

이번 대통령 탄핵에 애를 타게 만들었던 재적의원 2/3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헌법 규정도 본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통령 탄핵에도 재적의원 과반수만의 의결로 가능했던 헌법 규정이 이었다. 그런데 유신 직전인 1969년 개정한 헌법에서 대통령 탄핵을 어렵게 하기 위해 현재와 같이 재적의원 2/3의 찬성으로 수정하였다. 

대통령의 궐위 혹은 판결로 자격 상실 때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는 헌법 규정도 이전 헌법에는 즉시 후임자를 선거하도록 규정했거나 혹은 3개월 이내에 선거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심지어 맞춤법이 잘못된 '부끄러운' 헌법 규정도 있다. 즉 헌법 제72조 규정 중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로 규정하고 있는데, 당연히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수정해야 한다. 이러한 착오는 헌법 제130조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헌법 제53조 4항의 "국회는 재의에 붙이고"도 "재의에 부치고"로 바로잡아야 한다. 

또한 헌법 제76조 제5항 "대통령은 제3항과 제4항의 사유를 지체 없이 공포하여야 한다"에서 사용된 '공포'라는 용어는 "법률 제정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린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공포'와 달리 '단순한' '발표' 혹은 '공표(公表)'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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