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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5일 수요일

김동춘 칼럼, 저출산, 총체적 국가실패의 산 교과서, 한겨레 2018.8.4

김동춘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여러 조사에 의하면 유배우 출산율은 그리 낮지 않으며, 미혼·비혼이 저출산의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한다. 소득 분포상 상위 10%의 결혼 비율은 82%지만 하위 10% 청년들 중 7%만 결혼한다고 하니, 빈곤과 경제 불안 때문에 사실 청년들이 가족 질서 밖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05명. 신생아가 35만명대로 내려앉았다. 한국 역대 최저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오이시디(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압도적 꼴찌다. 산부인과, 유치원, 예식장, 학원만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소비가 죽고, 시장이 문을 닫고, 지방도시가 소멸하고, 연금이 빨리 고갈되는 등 국가 대재앙이 다가온다.

한국은 이미 1983년부터 합계출산율이 인구 현상유지를 위해 필요한 2.1명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1995년까지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펴다가 외국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고서야 ‘출산장려’ 정책으로 전환했다. 사실 출산장려 정책은 이미 1980년대 중반에 세웠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 후로도 20년이 더 지난 2005년이 되어서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설치되어 정부 차원에서 대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2006년부터 작년까지 100조원 이상의 예산을 저출산 대책에 쏟았지만 그 돈은 거의 허공으로 날아갔다. 정책 효과로 따지면 노무현 정부 이후 역대 정부의 저출산 정책과 재정지출이야말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책을 능가하는 총체적 실패다. 문재인 대통령도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기존 생각과 정책을 넘어서자”고 촉구했다. 그러나 현 정부가 내놓은 일·생활 균형, 안정되고 평등한 여성 일자리, 고용·주거·교육개혁 등의 정책도 여전히 ‘구두 신고 발바닥 긁는’ 대책 같다.

저출산은 양성평등, 보육과 교육, 고용, 주거 등 거의 모든 사회·문화·경제 문제가 집약된 사회 문제의 종합판이다. 산업화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된 이후 서구의 모든 나라는 이 문제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해법과 성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심각한 직장 성차별, 가족 중심주의와 혼외 출산을 죄악시하는 문화 등 한국의 역사문화적 조건을 제외한다면, 한국의 저출산 원인은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저출산은 결혼 기피와 결혼 후 출산 기피 두 가지 원인이 결합된 것이고,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 청년들이 ‘아이를 기르면서 살아갈’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즉 보육 부담, 일자리 불안, 주거 부담, 사교육 부담이 복합 누적적으로 작동하는 무한경쟁의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이 ‘개인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에 초저출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더 결정적인 이유는 결혼 기피, 결혼 불능이다. 기존의 여러 조사에 의하면 유배우 출산율은 그리 낮지 않으며, 미혼·비혼이 저출산의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소득 분포상 상위 10%의 결혼 비율은 82%지만 하위 10% 청년들 중 7%만 결혼한다고 하니, 빈곤과 경제 불안 때문에 사실 청년들이 가족 질서 밖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결국 고용, 주거, 교육에서의 양극화, 불평등의 심화는 결혼 및 출산에 매우 심대한 영향을 주는 거시 구조적인 조건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은 그 반대로 진행되었다. 특히 부동산 부양, 보육과 교육의 사적 부담 확대는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만든 정책이었다. 그러니 출산 지원, 난임시술 지원, 양육수당 증액 등의 정책 등은 거의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사실 지금까지 정부나 정치권은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을뿐더러, 의도적으로 그것을 보지 않으려 한 인상이 있다. 그래서 좀 더 일찍 제대로 실행했으면 수십조원으로 성과를 볼 수 있었을 일을 이제는 수백조원의 예산을 쏟아도 해결하기 매우 어렵게 되었고, 급기야 경제 붕괴와 국가 붕괴를 걱정할 지경까지 왔다. 이것은 국가의 지속가능성과 미래를 위해 그 아무리 중요한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정치-정부-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참담하게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미 1930년대에 저출산에 직면했던 스웨덴 집권 사민당은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뮈르달 중심으로 당 차원의 대책을 수립했으며, 결국 사회구조 전체의 개선을 위한 ‘예방적 사회정책’의 개념으로 아동수당, 주택보조금, 무상보육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 스웨덴은 출산율 제고만이 아닌 복지국가라는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정책 정당, 책임있는 관료 집단, 그리고 공익 연구생태계 조성만이 문제 해결의 길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57601.html#csidx065e94d46e60d108329f2a072748b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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