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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9일 월요일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 한성봉 가톨릭일꾼 편집장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뒤 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장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들었다. 한참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기형도의 ‘우리 동네 목사님’이라는 시를 산문처럼 다시 엮어 보았다. 1989년 3월 스물아홉에 죽은 기형도 시인은 경기도 안성 천주교 묘지에 묻혀있다. 묘비에 ‘그레고리’라 적혀 있는 걸 보면 가톨릭 신자였던 모양이다.
후배였던 김응교는 <문학과 숨은 신-그늘>이란 책에서 죽기 얼마 전에 시인이 “성경을 밑줄 치면서 읽었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결국 성경에 밑줄 치는 사람은 생활에 밑줄을 치기 마련이라는 뜻으로 들린다.
허튼 기도를 버리고 
참된 언어로 말하기 위해
말끝마다 성경을 인용하고, 매사를 기도에서 기도로 마감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의 믿음이 생활에 젖어들지 않으면 속빈 강정, 바리사이와 다름없다. 하느님은 사랑이라는데, 그래서 하느님은 사랑하지만 다른 인간에게는 손톱만한 틈도 곁도 주지 않는 사람은 허당이다. 믿음이 깊다는 사람치고 믿을만한 사람이 별로 없는 게 우리 믿음살이의 형편이다. 공공연히 하느님과 흥정하려 들고, 은밀히 남의 불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참 저렴한 신앙이다. 
마태오 복음 5장 3절부터 12절을 읽고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여덟 번 외치고 ‘팔복’(八福)이라 부른 시인 윤동주처럼 ‘영원한 슬픔’을 감당하는 영혼이 아니라면, 아직 생활에 밑줄을 그은 신앙이라 할 수 없다. 세상에 여전히 고여 있는 고통, 어쩌지 못하는 슬픔, 외롭고 추운 영혼이 남아 있는 까닭이다.

남의 나라 식민지 백성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억울한 죽음이 있고, 비루한 ‘을’들의 신음소리가 낭자하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비를 호소하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밑줄을 그을지언정 소리 내어 발음하기 민망하다. 하느님은 자비하시지만 내게 자비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권력이 안겨준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지만 나는 아직 십자가를 감당할 뜻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저 슬퍼할 수밖에 없다, 미숙한 나를 위해, 아픈 너를 위해.
윤동주가 남긴 100여 편의 시 가운데 ‘십자가’라는 낱말은 꼭 한 번 나온다. 순정한 영혼이지만 평생 고단하게, 마침내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 시인이지만, 쉽게 ‘십자가’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 언어의 진정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거운 신앙을 생활에서 감당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허튼 기도를 버리고 참된 언어로 말하기 위해, 우리도 윤동주처럼 참회록을 써야 할까. 윤동주가 쉽게 쓰여진 시를 부끄러워한 것처럼 말이다. 시인은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라고 했다.

이승에서 식민지 백성처럼
얼마 전에 한 계절을 준비해 ‘사회교리 경시대회’라는 걸 본당에서 진행하였다. 어떤 분은 사회교리 경시대회에 앞서 교리경시대회부터 해야 할 텐데, 하였으나, 내 생각에 사회교리와 교리의 경계는 없다. 사회적 복음 아닌 복음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때마침 오는 10월 14일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마무리하고, 해방신학에 영감을 준 교황회칙 <민족들의 발전>을 발표했던 겸손한 교종 바오로 6세와 군사정권을 향해 학살을 멈추라고 외쳤던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시성식이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정치적 사랑을 ‘순교’로 보고, 신앙 안에서 가엾은 이들에게 축복하고 계신다.
굳이 로메로 대주교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이렇게 쉽게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사실 이승에서 식민지 백성처럼 ‘해방독립’을 위해 분투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세속주의와 소비주의에 침식된 세상에서 이들이 모인 교회는 불순단체일 수밖에 없다. 신자들은 하나같이 불령선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
지금 호의호식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게 교황이든 주교든 사제든 누구든 식민정권에 투항한 변절자겠지, 생각한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가 되기로 작심한 사람이다. 
가톨릭 교리는 사실상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의 변주곡이다. 사랑이 없으면 예수님도 성령도 없다. 이걸 깨닫기 위해 미사도 하고 영성체도 하는 것이다. 교회도 짓고 기도하는 것이다. 성사와 전례와 신앙생활이 그런 것이라면, 내 사랑의 확장이 나를 포함해 세상을 구원하자는 것이라면, 당연히 이 사랑은 정치적 사랑으로, 사회적 사랑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그런 세상을 우리는 ‘하느님 나라’라고 부른다.
결국 신앙생활이란 하느님 나라의 시민으로 미리 살아보자는 것이다. 그러니,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앞질러 간 것처럼, 성경에 밑줄 긋고 성경대로 생활할 방도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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