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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6일 화요일

매천 선생 시비 옆에 세워질 ‘공덕비’(한국일보 2019년 8월 6일자)

구례에서 풀뿌리 도서관운동을 벌이고 있는 분들의 목소리를 전하려 글을 한 편 썼습니다. 작은 변화라도 일어나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원고량을 8매로 줄였는데, 15매 정도 되는 원래의 글도 덧붙여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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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 황현(조선 후기 학자ㆍ1855~1910) 선생이 오늘 ‘이 꼴’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한일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2002년 6월 28일, 매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도서관이 전남 구례군에 개관했다. 매천도서관. 이 도서관은 구례에 건립된 첫 번째 군립 도서관이다. 그때까지 구례에는 1973년 개관하여 1993년 신축 이전한, 전남교육청 소속의 ‘구례공공도서관’만 있었을 뿐이었다.
구례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우리 구례에도 좋은 도서관이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어린이가 책과 함께 꿈과 상상을 마음껏 펼치는 도서관, 청소년이 다양한 도전과 실험을 할 수 있는 도서관, 어른이 휴식과 소통의 행복을 누리는 도서관, 누구나 즐겁게 이용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혁신적인 도서관이 있다면, 구례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이런 열망과 간절함이 군수와 교육감에게도 전달되었을 것이다. 군과 교육청은 각각 더 좋은 터에 더 좋은 도서관을 짓기로 했다.
전남교육청은 ‘구례공공도서관’을 초중고 학교 다섯 개가 밀집해 있는 읍내 중심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구례군도 ‘매천도서관’을 이전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부지였다. 두 도서관이 모두 ‘봉남리 99의 4번지’(5,162㎡)에 지어진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좋은도서관모임’을 만들어 문제를 제기했다. 운영 주체가 다른 도서관이 한 부지에 각각 들어선다면, 분리된 공간에서 이용자들은 엇갈릴 것이고, 자료는 중복될 것이고, 운영도 효율적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공청회를 열고, 서명운동을 벌이고, 군수와 교육감과 교육장을 면담하고, 읍내에 통합설계, 통합운영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걸고, 도서관문화제를 열었다. 구례주민의 풀뿌리 도서관 운동은 과연 120여년 전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았던 상황 속에서도 매천 선생과 함께 호양학교를 건립했던 구례주민다운 것이었다. 김순호 구례군수는 장석웅 전남교육감을 만난 뒤(2019년 4월 17일), “구례에 신설하는 도서관의 설계, 시공, 운영 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자랑스러운 도서관을 만들고자 합의”하였다고 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도서관 행정은 지자체와 교육청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이는 오래 묵은 병폐다. 그렇기에 군과 교육청이 합의하여 통합적으로 설계하고 운영하는 도서관을 건립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자랑스러운 도서관’의 첫 번째 사례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지금 구례군은 통합설계, 통합운영은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안타깝고 한심한 일이다. 설계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이라도 아주 늦은 것은 아닐 것이다. 민과 관이 마음을 합치고, 군과 교육청이 지혜를 모은다면, ‘자랑스러운 도서관’을 건립할 방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매천 선생 시비 옆에 이런 ‘공덕비’ 하나 세워질까 두렵다. “여기 불통 행정과 민주적이지 않은 지역정치, 행정 편의주의의 표본이 있다. 주권자 민주주의 시대인 21세기에 전국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사례를 만들어낸 행정 책임자와 담당자의 이름을 이 돌에 새겨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이 비를 세운다.”
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이사
출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8051007360639?NClass=HJ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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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량을 줄이기 전의 원고(15매): 매천 선생 시비 옆에 세워질 ‘공덕비’


매천 황현(1855~1910) 선생이 오늘 이 '꼴'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매천은 조선 후기부터 경술국치를 당할 때까지 구례에 살면서 자신이 심은 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했다. 그것이 「오하기문」이다. 매천은 백성의 삶을 생각하며 위정자의 잘잘못을 매서운 필치로 따져 물었다. 매천은 촌에 은거하고 있었지만, 눈과 귀는 천 리 밖 한양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 나아가 일본을 비롯한 세계를 향해 있었다.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한일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2002년 6월 28일, 매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도서관이 구례에 개관했다. 매천도서관, 이 도서관이 구례에 건립된 첫 번째 군립 도서관이다. 그때까지 구례에는 1973년 개관하여 1993년 신축 이전한, 전남교육청 소속의 구례공공도서관이 있었을 뿐이다. 인구 삼만 명도 되지 않는 군(2017년 말 기준 27,525명)에 공공도서관이 두 개나 있구나 하고 놀라워할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매천도서관과 구례공공도서관을 방문한 이들은 이 도서관들이 얼마나 낙후된 도서관인지 알고 있다.

구례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우리 구례에도 좋은 도서관이 하나쯤 있어야 한다.” “좋은 도서관이 구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어린이가 책과 함께 꿈과 상상을 마음껏 펼치는 도서관, 청소년이 다양한 도전과 실험을 할 수 있는 도서관, 어른이 휴식과 소통의 행복을 누리는 도서관, 누구나 즐겁게 이용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혁신적인 도서관을 꿈꾸었다.

도서관에 대한 이런 열망과 간절함이 군정과 교육행정을 이끄는 군수와 교육감에게도 전달되었을 것이다. 전라남도교육청과 구례군은 각각 더 좋은 터에 더 좋은 도서관을 짓기로 했다.

전라남도구례교육지원청은 2017년 6월 ‘구례공공도서관 신축 이전 계획안’을 만들었다. 구례중앙초, 구례여중, 구례중, 구례고, 전남자연과학고 등 다섯 개의 학교가 모여 있는 읍내 중심에 도서관을 이전하여 접근성을 크게 개선하려 했다. 사업비는 50억 원. 문제는 부지였다. 부지는 구례군의 공유재산인 ‘봉남리 99-4번지’.

구례군은 2018년 5월 18일 “매천도서관 이전 건립을 통해 주민들의 문화·복지·교육 여건을 향상하여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고자” ‘구례 매천도서관 이전 건립공사 건축설계공모 공고’를 냈고, 7월 20일 당선작을 발표했다. 사업비는 60억 원, 부지는 바로 그 ‘봉남리 99-4번지’.

2018년 10월 10일 구례군수(군수 김순호)는 구례군의회(의장 김송식)에 ‘영구시설물 축조 동의안’(구례교육지원청 공공도서관 신축부지 무상사용, 의안번호 251-9)을 제출했다. 2018년 10월 16일 구례군의회 본회의에서 이 안건에 대한 질의가 있었다. 설계를 공모할 때 한 부지 안에 건물 두 채가 아니라 건물 한 채를 짓는 것으로 일등을 선정하지 않았는가, 교육청 도서관이나 지자체 도서관이나 같은 기능을 지닌 것인데 왜 한 부지 안에 도서관 둘을 지으려는 것인가 등등, 의원들의 따가운 질책이 있었다.

주민들도 ‘좋은도서관모임’(회장 박애숙)을 만들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운영 주체가 다른 도서관이 한 부지에 각각 들어선다면 분리된 공간에서 이용자들은 엇갈릴 것이고, 자료는 중복될 것이고, 운영도 효율적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군민이 함께 만드는 행복한 도서관’을 꿈꾸며 주민 공청회를 열기도 하고, 장터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군수와 교육감과 교육장을 면담하기도 하고, 읍내에 통합설계, 참여설계, 통합운영을 요구하는 현수막 걸기도 하고, 동영상을 제작하여 인터넷에 올리기도 하고, 도서관문화제도 열었다.

단지 통합설계와 통합운영만 문제가 아니었다. 주민들이 제안한 도서관은 우리나라 그 어느 곳에 건립되고 있는 도서관보다도 더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구례주민의 풀뿌리 도서관 운동은 과연 120여 년 전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았던 상황 속에서도 매천 선생과 함께 호양학교 건립을 추진했던 구례주민다운 것이었다.

그래서 김순호 구례군수는 장석웅 전남교육감을 만난 뒤(2019년 4월 17일), “구례에 신설하는 도서관의 설계, 시공, 운영 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자랑스러운 도서관을 만들고자 합의”하였다고 하였다. 더 좋은 도서관에 대한, 구례주민의 열망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자랑할 만한 도서관을 건립할 기회가 생기는 듯했다. 도서관 행정이 지자체와 교육청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우리나라 도서관 현실의 뿌리 깊은 병폐를 극복한 사례가 만들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지금 구례군은 통합설계, 통합운영은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예산 집행 과정이나 조직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미 설계안이 다 만들어졌으니 되돌릴 수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과정이 계속되어, 몇 년 뒤 한 부지 안에 운영 주체가 다른 두 도서관이 들어선 ‘꼴’을 보면서 구례에서 성장하는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생각하면,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매천 선생 시비 옆에 이런 ‘공덕비’ 하나 세워질까 두렵다. “여기 불통행정과 민주적이지 않은 지역정치, 행정편의주의의 표본이 있습니다. 주권자 민주주의 시대인 21세기에 전국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사례를 만들어낸 행정 책임자와 담당자의 이름을 이 돌에 새겨 길이길이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구례주민들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안찬수, 201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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