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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2일 화요일

저패니피케이션, Japanification, 일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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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무역도시 리버풀, 빈집도시로
특별취재팀입력 2019-11-12 03:00수정 2019-11-12 09:39
 
[제로 이코노미 시대 변해야 살아남는다]

주력산업 쇠퇴속 구조개혁 실패일본식 불황-지방소멸 공포 번져
주변에 병원이나 쇼핑센터를 보셨나요. 아무것도 없어요. 경기침체가 덮친 뒤 헤어날 수가 없어요. 정부도 10년 넘게 대안을 못 내놓고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영국 리버풀의 도심에서 만난 회계사 케네스 베이컨 씨는 경제 상황을 묻는 기자에게 답답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한때 대표적 무역도시였던 리버풀은 지금은 영국 ‘5대 빈집 도시로 전락했다. 경기 침체에 일자리마저 줄자, 젊은이들이 도시를 떠나며 빈집이 늘어난 것이다. 인구 감소를 보다 못한 리버풀시는 단돈 1파운드(1490)에 빈집을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고육책도 내놓았다. 이날 드물게 문 연 식당에선 런던에서 12파운드(17900)짜리 조식 메뉴가 반값도 안 되는 5.6파운드(8300)에 팔리고 있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성장률, 물가, 금리가 제로(0)에 수렴하는 제로이코노미 시대가 도래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저패니피케이션(일본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초반 거품경제가 붕괴된 뒤 과감한 구조 개혁 없이 돈 풀기식 경기부양에만 매달리다 장기 침체를 자초했다. 그 전철을 다른 나라들도 밟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저성장, 고령화에 취약한 지방 도시들이 무너지는 지방 소멸조짐이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1960년대 굴뚝 1000개의 도시로 불리던 프랑스의 산업도시 루베시는 대체 산업을 찾지 못해 쇠퇴하다 2014년 대표적 빈곤 도시(빈곤율 43%)가 됐다. 고성장권인 중국에서조차 지방 도시의 인구 유출로 몸살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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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1유로에 드립니다유럽 지방도시들 생존 안간힘
특별취재팀입력 2019-11-12 03:00수정 2019-11-12 03:00
 
[제로 이코노미 시대 변해야 살아남는다]
<2> 세계로 번지는 저패니피케이션
인구유출 막기 위한 정책 쏟아내
 
 
인생 최대의 꿈이 내 집 마련이었는데 리모델링 비용 55000파운드(8200만 원)로 그 목표를 이뤄서 너무 만족하죠.”
 
1031일 영국 리버풀에서 만난 식당 웨이트리스 레이철 씨가 집을 장만할 수 있었던 것은 리버풀시의 ‘1파운드 주택 정책덕분이었다. 상권도 죽고 유동인구도 사라져 버린 도시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리버풀시는 2013년부터 시 소유의 빈집을 단돈 1파운드(1490)에 넘겨주는 파격적인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더 이상 돈이 돌지 않는 쇠퇴한 산업도시인 리버풀은 떠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수천 채가 빈집으로 남아있다. 주택을 철거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 고육지책으로 시작한 제도다. 그럼에도 진도는 더디다.
 
리버풀시의 주택정책담당 직원 토니 무스데일 씨는 현재까지 67채가 리모델링됐으며 29채가 수리 중이고, 7채가 소유권 이전을 위한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제로 이코노미의 파도가 경제 여건이 취약한 지방도시를 덮침에 따라 각국 지방자치단체는 인구 감소라는 난제(難題)에 맞서 싸우고 있다. 인구 감소는 지자체 세수 감소와 재정 파탄에 이어 도시 소멸로까지 이어진다. 각국 도시들은 주민들에게 주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취업 알선, 육아 지원 등 다양한 실험에 나서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무료로 빈집 제공” “노인용 자율주행 버스
 
유럽에서는 리버풀을 벤치마크해 ‘1유로(1260) 주택이 곳곳에서 도입되고 있다. 프랑스 북부 도시 릴 인근 루베시도 그중 한 곳이다. 빈집 5000여 채로 몸살을 앓던 루베시는 2018년부터 ‘1유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탈리아 사르데냐섬에 위치한 소도시 올로라이 역시 2250명이던 인구가 1300여 명으로 줄어들자 지난해부터 석조 주택 200여 채를 채당 1유로에 제공하고 있다.
 
이탈리아 남부 아브루초주는 기업들에 취업 보너스를 내걸었다. 1624세 청년들을 새로 고용하는 업주에게 최대 8060유로(1036만 원)의 지원금을 준다. 2016년 한 해 동안 850명의 고용주가 이 보너스를 받았다. 이탈리아 국가 차원에서도 전문지식이나 기술 보유자, 해외 대학 학위자 등 고숙련 근로자를 유치하기 위해 세금 감면 정책을 쓰고 있다.
 
떠나는 인구를 잡기 위해 독자적인 콘텐츠를 키우는 곳도 있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시는 1990년대엔 유령도시에 가까웠다.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의 본사와 공장이 있지만 근로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썰물처럼 타지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동차 테마파크 아우토슈타트가 생기고 지자체와 기업의 일자리 지원 노력 덕분에 관광객이 다시 증가하는 등 상황이 다소 나아졌다.
 
 
지방 쇠퇴-인구 감소의 대세는 막기 어려워
 
저패니피케이션(일본화)의 발원지 일본에서는 이미 다양한 지방 살리기 정책 아이디어가 나온 상황이다. 2014년 정책제언기관 일본창성회의는 2040년까지 기초단체 1799곳 가운데 절반인 896곳이 인구 감소로 소멸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 이른바 마스다 리포트를 내놨다.
 
오쿠타마에서는 2015년부터 빈 주택을 무료로 제공하고 리모델링 사업비까지 지원한다. 집을 고치는 데 들어간 사업비가 10만 엔 이상일 경우 그중 반액을 최대 200만 엔(2140만 원)까지 지원하는 것. 최근엔 아예 새집을 지어 공짜로 주는 방안도 동원했다. 정원과 주차장이 딸린 2층 신축주택을 매달 5만 엔의 사용료를 받고 빌려주되 22년이 지나면 아예 무료로 양도하기로 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춘 신기술로 활로를 찾기도 한다. 도쿄도 다마시와 효고현 미키시 등 뉴타운에서는 자율주행버스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노인 거주자라도 붙잡기 위해서다. 다마뉴타운에 사는 직장인 스즈키 씨(34)고령자들이 개인 차량을 이용하지 않아도 병원이나 상업시설에 방문할 수 있게 된다면 인구 유출을 조금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지방 인구 감소의 고리를 끊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실제로 일본 오쿠타마 인구는 여전히 내리막이다. 2012226, 2013165명 인구가 줄었던 것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요즘도 한 해 수십 명씩 떠나가고 있다. 젊은층의 이탈과 고령화에 시달리는 리버풀도 마찬가지다. 이 도시 토박이 하워드 씨(41)시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많은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리버풀이 영국에서 가장 못사는 지역이 된 건 변함없다고 했다.
 
 
한국 소멸위험 시군구 7589, 거점지역까지 확산
 
공기업 직원들 거주비율 떨어져 본사 이전효과 나타나지 않아
 
제조업 벨트가 쇠퇴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지방 소멸위험이 커지고 있다. 저성장, 고령화에 유독 취약한 지방 도시들이 몰락하면 빈곤층이 급격히 늘면서 사회 문제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한국고용정보원의 한국 지방 소멸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시군구 228곳 중 소멸 위험 지역은 201375(32.9%)이었지만 201889(39%)으로 늘었다.
 
소멸 위험 지역은 해당 지역의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고령 인구로 나눈 값이 0.5 미만인 곳이다. 가임 여성 인구가 고령자의 절반도 안 되는 지역은 인구 감소로 공동체가 붕괴돼 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고용정보원은 일본의 총무성(한국의 행정안전부에 해당) 장관을 지낸 마스다 히로야 씨가 쓴 지방 소멸 보고서를 바탕으로 이러한 분석 틀을 만들었다.
 
지방 소멸 현상은 농어촌 낙후 지역뿐만 아니라 지방의 대도시는 물론이고 수도권에서 공공기관 본사들이 이전해 오는 거점 지역까지 확산되고 있다. 공기업 직원들이 해당 도시에 거주하는 비율이 떨어져 본사 이전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연구에 참여한 이상호 고용정보원 지역일자리지원팀장은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은퇴자들이 급격히 늘고 있어 소멸 위험 지역이 늘어나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별 경제지표에서도 지방 제조업 도시들의 부진이 나타난다. 9월 발표된 통계청의 지역소득통계에 따르면 명실상부한 전국 개인소득 1위였던 울산은 2017년 기준으로 서울에 밀려 2(21956000)로 내려왔다. 글로벌 조선·해운업 부진과 자동차 산업 불황으로 지역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해 경북(1.2%), 경남(0.7%), 울산(0.7%)의 역내 성장률도 마이너스를 면치 못했다.
 
개인 연체자도 지방 경기가 안 좋은 지역들에서 다량 발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금융권에서 신용불량자(금융채무 불이행자)는 경남(13.1%), 경북(12.2%), 울산(12.0%) 등 제조업 침체 지역에서 많이 증가했다. 연체자 증가는 지방은행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의 지방 소멸 위험은 급속하게 진행되는 저출산·고령화와 주력 산업 붕괴가 겹친 탓이란 분석이 많다. 안 그래도 인구가 줄고 있는 지역에 일자리가 없으니 젊은이들이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김형기 경북대 명예교수는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주도권을 쥐고 일자리와 지역사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지방 소멸 현상이 너무 심각해 지금은 정책의 대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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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외곽 오쿠타마, 인구절반 65세이상고교 한곳도 없어
특별취재팀입력 2019-11-12 03:00수정 2019-11-12 03:00
 
[제로 이코노미 시대 변해야 살아남는다]
<2> 세계로 번지는 저패니피케이션
침체의 늪에 빠진 지방 도시들
 
길거리에서 아이들을 만난 지 오래다. 학교들이 합쳐지고 사라지는 우울한 소식만 들려온다.”
 
지난달 30일 도쿄 신주쿠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가량 걸려 도착한 도쿄도 외곽 오쿠타마. 지역 토박이 쓰기야마 이치로 씨(75)는 고향에 대해 푸념하며 이같이 말했다. 탄광업과 벌목업으로 먹고살던 오쿠타마에 활력이 줄기 시작한 것은 경제버블이 꺼지고 난 1990년대 이후부터다. 목재 수요가 줄어들어 지역 경제가 쇠퇴하고 일자리도 줄어들자 젊은층은 도쿄로 떠났다. 19908750명이던 오쿠타마 인구는 지금 5000명 정도로 쪼그라든 상태다.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그중 2500여 명으로 절반에 달한다. 반대로 아이들은 줄어 이곳 중학교 2곳 중 1곳이 문을 닫았고 고등학교는 아예 없다. 오쿠타마 청년정착추진과 직원 쓰루마키 씨는 오쿠타마 전체 주택 2500여 채 중 488채가 빈집이라고 말했다. 오쿠타마를 포함해 일본 전체의 빈집 수는 2003659만 채에서 지난해 1078만 채로 불어났다.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금리가 0(제로)에 수렴하는 제로 이코노미가 지구촌을 휩쓸면서 일본식 장기 저성장 구조인 저패니피케이션(Japanification·일본화)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미국 등 많은 선진국들에선 제2, 3의 오쿠타마가 생겨나는 중이다.
 
지방을 먼저 덮친 저패니피케이션
 
프랑스 북서쪽 시골마을 포트 브리예. 경기 둔화로 지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최근 이 마을에 있던 마지막 카페가 문을 닫았다. 이 마을 사람들은 카페가 없어지다 보니 마을이 거의 죽은 것 같다는 말을 한다. 프랑스 정부에 따르면 1970년대 20만 개에 달하던 카페는 4만 개로 급감했다. 지역경제가 붕괴수준에 들어가자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문을 닫거나 경영난에 시달리는 지역 카페들을 살리기 위해 15000만 유로(1940억 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달 10일 프랑스 서부 페이드라루아르 지역에 위치한 도시 라로슈쉬르용에서는 노동자들이 타이어를 태우는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의 국민기업으로 불리며 지역민 2만 명을 고용하고 있던 미쉐린 타이어 공장이 폐쇄 결정을 내린 데 대한 항의였다. 플로랑 메네고 미쉐린 최고경영자(CEO)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역 공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시장 상황이 허용하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한때 호황을 누렸던 유럽 지방의 성장 엔진은 주력산업이 쇠락하고 동네 주민들이 떠나가면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기업들이 싼 인건비를 찾아 터키, 인도, 중국 등으로 공장을 옮기며 일자리가 줄어서 생긴 현상이다. 새로운 기업이 투자를 하고 신산업이 살아나야 하지만 글로벌 경제가 동반 침체에 접어든 지금은 쉽지 않은 일이다.
 
고령화 또한 저패니피케이션의 원인이다. 65세 이상 인구를 014세 인구로 나눈 비율인 노령화지수는 미국과 독일, 영국이 2000년부터 2040년까지 2배 안팎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이된다. 일본은행 부총재를 지낸 바 있는 니시무라 기요히코 도쿄대학원 교수는 일본화는 전 세계적으로 불가피한 현상으로, 인구구조 변화에 기인하고 있어 미국과 유럽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마이너스 금리에 접어든 유럽과 달리 미국은 아직 성장률과 금리가 높은 수준이지만 최근 경기 둔화로 제로금리의 필요성이 거론되는 등 ‘J(저패니피케이션)의 공포가 머지않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탈출구 없는 ‘J의 공포
 
각국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급속한 저패니피케이션을 피할 만한 뚜렷한 대응 수단이 없다는 게 문제다. 금융연구원은 11일 보고서에서 세계 각국 정책입안자들은 한목소리로 일본화에 진입하게 되면 경기부양 수단이 없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도 통화완화 등 거친 부양책으로만 이 문제를 해결하려다 오히려 장기침체가 더 깊숙하게 뿌리내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과감한 구조 개혁이 없이 고령화와 디플레이션을 상대한 게 일본화의 탈출을 어렵게 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본이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오히려 금융회사 수익성만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결과 일본 지방은행은 수년째 계속된 수익 감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속발전 도시들에도마이너스 성장그림자
 
취저우, 올 상반기 성장률 0.37%고령화 탓 유효수요 증가율 하락
사람 살지않는 유령도시도 50여곳
 
세계 경제를 덮치고 있는 저패니피케이션 현상은 높은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보여 온 일부 신흥국에도 전염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불렸던 중국도 지역과 산업별로 그 전조가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지방 소도시 중에는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인구가 유출되는 곳이 적지 않다. 초기 개혁개방의 수혜 지역인 저장(浙江)성의 취저우(衢州)는 올해 상반기 경제성장률이 0.37%였다. 광산 자원이 풍부해 한때 고속 성장을 거듭했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와 자원 고갈 등으로 주요 산업인 화학 원료 및 제품 제조업이 무너졌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전체 인구(2017257만 명)17%45만 명이 올해 취저우를 떠났다.
 
물론 베이징, 상하이 등 이른바 ‘1선 도시는 집값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지만 취저우처럼 수요 부족에 시달리는 지방 도시가 한두 곳이 아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중국 전역에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도시50여 곳에 이른다. 아파트를 지어 분양까지 마쳤지만 들어올 사람이 없는 탓이다. 신도시 인프라 건설을 부담한 지방정부의 동반 부실도 예고된 상태다. 지방정부의 부실은 국영은행의 부실로 전이된다.
 
물가 추이도 심상치 않다. 9월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1.2% 하락해 7월부터 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보였다. 생산자물가는 경기 선행지표로 인식되기 때문에 마이너스 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통상 디플레이션의 전조로 해석된다. 중국 역시 구조적 장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져 온 6.0%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올해 3분기(79) 성장률이 27년 만에 가장 낮은 6.0%에 턱걸이했다.
 
중국의 성장 둔화는 경제구조 고도화로 고속성장에서 중속(中速)성장 구간으로 진입 고령화 등으로 중국 내 유효수요 증가율 하락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로 인한 타격 등이 1차적인 원인이다. 여기에 구미 선진국의 경기 침체로 미국을 대신할 수출 지역이 제한돼 있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통화정책을 추가로 동원하는 데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선진국 시장의 부진이 개발도상국으로 전이되는 경로에서 중국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저패니피케이션(Japanification·일본화)
 
경제 구조가 일본처럼 장기 불황형으로 바뀌는 상황을 말한다. 저성장, 고령화, 디플레이션의 결과로 경제 활력 저하, 국가 부채 증가, 지방 도시 공동화, 미약한 내수 등의 모습을 보인다. 
 
특별취재팀
 
팀장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경제부 조은아, 도쿄·사이타마=장윤정 기자, 런던·리버풀=김형민, 프랑크푸르트=남건우, 코펜하겐·스톡홀름=김자현
특파원 뉴욕=박용, 파리=김윤종, 베이징=윤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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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도쿄=차학봉 특파원

입력 2012.04.23 03:01
[특파원 해외경제 현장리포트]
저패니피케이션은 일반적 현상 - "인구구조 변화·버블붕괴 동시에 現 경제위기日 장기 침체와 유사"
인구 고령화 시대 생산연령 인구 점점 줄지만 성장·복지 요구에 정치 불안… 고령화 빠른 도 인구 위기
"日 장기 침체 합리화비판 개발도상국으로 시장 확대 가능… 이민 통해 젊은 인구 늘릴 수도
"미국과 유럽이 일본식 장기 불황으로 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파이낸셜타임스 등 영미계 경제 전문지들은 지난해부터 미국과 유럽이 부채 문제 해결 등 개혁에 소극적이어서 '저패니피케이션(Japanification·일본화)'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기사를 자주 게재하고 있다.

저패니피케이션은 원래 애니메이션 같은 일본 문화가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을 의미했다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경제가 장기 침체 조짐을 보이면서 저패니피케이션은 흔히 '잃어버린 10'이라 불리는 일본식 장기 경기 침체의 동의어로 변했다또 저패니피케이션은 정치 리더십 부재 등 정부의 무능에 따른 구조조정 지연을 의미하는 단어로도 사용된다일본은 거의 1년에 한 번씩 총리가 교체될 정도로 정치가 불안해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2008년 리먼 쇼크가 터졌을 때만 해도 미국과 유럽의 전문가들은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 조기 탈출이 가능하다"고도 했다일본은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정부가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아 장기 침체가 이어진 만큼서구 사회는 강한 정치적 리더쉽을 발휘해 신속한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를 단기에 극복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서구의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일본 전문가들 사이에서 저패니피케이션은 일본에서만 나타난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선진국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일반적 현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미즈호종합연구소 다카다 하지메(高田創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버블 붕괴로 인한 장기 침체는 선진국 중에서 가장 먼저 일본이 경험한 것이지일본 정부가 특별히 무능하거나 정책이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다"면서 "유럽이 리먼 쇼크를 탈출하는 데 10년 이상 걸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또 일부 학자는 현재의 경제 위기가 인구 구조 변화와 버블 붕괴가 동시에 발생했던 일본식 침체와 유사하다며 위기 장기화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장기 불황의 근본 원인은 인구 구조의 변화

도쿄대 교수 출신인 니시무라 기요히코(西村淸彦일본은행 부총재 같은 사람은 고령화에 따른 인구 구조 변화가 서구의 금융·재정 위기의 중요한 원인일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니시무라 부총재의 논거는 노인과 어린이 등 비생산연령 인구 1명을 생산연령 인구(15~64몇 명이 부양하는가를 나타내는 '생산·비생산연령 인구 비율'이다일본은 이 비율이 1990년 2.3명을 정점으로 하락세를 그리면서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고 금융 위기에 빠졌다. 1990년엔 젊은이 2.3명이 노인 1명을 부양했지만점점 더 적은 생산연령 인구가 노인과 어린이를 부양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는 의미다이 비율이 하락한다는 것은 인구 중심이 소비가 왕성한 젊은 층에서 고령자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젊은 인구 증가가 경제성장을 추동하던 '인구 보너스(bonus)'시대가 끝나고고령자 인구가 증가해서 소비와 생산이 감소하는 한편 복지비 부담이 급증하면서 성장률이 떨어지는 '인구 오너스(onus)' 시대로 전환했다는 의미이다.

젊은 인구가 늘어날 때는 수요가 증가하고시장 성장에 대한 기대로 낙관론이 팽배해 레버리지 투자(부채를 이용한 투자)가 확대돼 성장률이 높아진다반대로 고령자가 증가하면 부채를 이용한 투자가 줄고 소비 성향도 낮아져 경제가 위축된다미국·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 등도 2005~2010년에 공통적으로 생산·비생산연령 비율이 정점을 찍었다니시무라 부총재는 "인구 구조의 변동 측면에서 볼 때 일본과 서구의 위기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리더십 결핍도 인구 구조의 변화가 원인

미국과 유럽이 뼈를 깎는 구조 개혁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데이 역시 인구 구조 변화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젊은 세대가 중심인 사회에서는 이해관계가 비교적 단일해 정책을 펴기가 비교적 쉽다하지만고령화 사회에선 부유층과 빈곤층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정치적 리더십 발휘가 더욱 어렵다.

또 생산연령 인구가 증가하는 시기에는 재정 수입 증가를 전제로 정책을 펼 수 있지만생산연령 인구가 줄어드는 시기에는 세수 감소와 연금·사회복지비 급증성장률 둔화로 재정이 압박을 받아 위기 극복이 더 어려워진다또 인구 구조가 고령화됨에 따라 기본적으로 고성장이 불가능한 상황이 됐는데도유권자들은 과거의 관성에 의해 고성장과 높은 수준의 복지를 요구해 정권 불안 요인이 된다다카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서구도 국민이 과거 고성장기에 가졌던 복지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낮추지 않으면 정치적 위기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도 인구 위기에 직면

인구 구조 변화론자들은 서구 선진국에 이어 중국·한국도 위기에 봉착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니시무라 부총재는 한국·중국·싱가포르도 2010~2015년 사이에 생산·비생산연령 비율이 정점을 찍고 하락하기 때문에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이런 주장은 최근 일본에서 유행하는 '중국 버블 붕괴론'의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다중국은 한 자녀 의무화 정책으로 고령화 속도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빠르다또 중국도 이미 생산연령 비율의 증가세가 무뎌지면서 노동력 부족과 임금 상승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일본의 장기 침체를 합리화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결국 인류가 붕괴할 것이라는 맬서스의 인구론처럼 종말론·숙명론적 사고라는 비판이다비판론자들은 선진국의 고령화는 인구가 급증하는 아프리카·남미 등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적극적인 수출로 시장을 확대하거나이민을 통해 젊은 인구를 늘리는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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