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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5일 목요일

김누리 교수 칼럼에 부쳐: 독일 교육에 대한 오해 / 최성수

김누리 교수의 교육에 대한 강연이 방송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많이 회자되고 있다. 최근 <한겨레>에도 대한민국 새 100, 새로운 교육으로라는 제목의 칼럼(68일치 27)이 실렸다. 김누리 교수의 주장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극심한 경쟁이 본질인 한국 교육은 반교육적이다. 비판교육을 특징으로 하고 경쟁적 입시가 없어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독일 교육이 반교육 극복을 위한 모델이며, 한국 대학교육을 서열 없는 국공립대학 네트워크로 재편하는 것이 대안이다. 이 글은 김누리 교수의 이런 주장이 가진 문제점 중 몇가지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먼저 독일에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누구나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독일은 직업교육 전통이 매우 강한 나라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기에 이미 학업계열과 직업계열로 분화가 이루어진다. 계열 결정 이후 변경은 극히 어려우며 직업계열로 진학할 경우 전일제 학업은 중학교에서 사실상 끝나고 이후 과정은 직장에서 실습교육 중심으로 이뤄진다. 대학 진학도 전문·기술대학만 가능하며 일반 대학교는 지원 자체가 제한된다. 고교 졸업만 하면 원하는 대학에 간다는 것은 어릴 때 학업계열로 진입한 3분의 1 정도의 소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문제는 일찌감치 이뤄지는 계열 결정이 가족 배경에 따라 경쟁과 배제가 이루어지는 장이란 점이다. 강고한 계열화 교육 때문에 독일에서 세대 간 계급 지위 재생산 정도가 심하다는 점은 학계에서 단골로 다뤄지는 주제다. 무경쟁 교육과 입시는 다수의 학생을 대학 입시에서 배제하면서 귀결되는 독일 시스템의 특징일 뿐이다.

한국 교육이 근본적으로 극복되어야 할 반교육이라는 진단 역시 문제다. 교육의 역할은 다면적이며 평가 역시 다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학습을 통해 인지적 성장을 견인하며, 진로 준비와 사회적 소양 함양을 통해 어엿한 직업인 및 민주적 시민을 키워내야 한다. 이는 모두 중요한 가치들이지만 종종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독일보다 기회 공정성과 학업 발달에서 앞서 있다. 진로 준비성에서는 취약하다. 시민성 측면에서는 독일의 비판교육에 비해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 한국은 지난 수십년간 역동적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혁신을 균형 있게 달성하면서 선진국으로 안착한 거의 유일한 국가다. 이것은 반교육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것이라기보다 한국 교육이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나름 역할을 효과적으로 해오며 이뤄낸 성과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끝으로 국공립대학 네트워크 구축은 대학교육의 근본적 재편이 아니라 국공립대학들의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한국의 국공립대학 비율은 20% 정도에 불과해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해도 대다수 대학은 포함되지 않는다. 사립대들을 포괄하고자 할 때 소요될 입법적, 사회적, 경제적 비용은 가늠하기 어렵다. 이를 감당하려면 그만큼 강력한 사회적 합의의 동력이 필요한데 현재 한국 사회에 그런 합의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런 네트워크를 구축해냈다 해도 불평등이 타파된다는 보장은 없다. 가족·노동시장에서 불평등 완화 없이 교육 평준화만을 통해 이룰 수 있는 변화의 한계는 명확하다. 국공립대학 네트워크를 의미 있게 논의해볼 만한 이유는 따로 있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사회 이동에 가장 높게 기여하는 것이 국공립대들이다. 저소득층이 많이 입학하면서도 졸업 뒤 고소득 진입률이 낮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국공립대학의 경쟁력을 높일 때 세대 간 이동성이 활성화될 수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저렴하고 지방에 거점을 두면서도 이른바 명문대학들에 버금가는 경쟁력 있는 기관을 국공립대학 네트워크를 통해 실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공립대학 네트워크는 가능성과 효과가 불확실한 급진적 비전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유의미하게 향상시킬 실질적 방안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독일 및 다른 나라 교육에 대한 높은 관심은 바람직하다. 다만 현실과 조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다면 생산적 논의를 오히려 저해할 수 있음 또한 명심해야 한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504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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