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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9일 토요일

강진국(姜辰國), 농촌사업을 부대한 농촌문고 창설의 급무(2), 동아일보 1936년 2월 29일 기사(칼럼/논단)

농촌사업을 부대한 농촌문고 창설의 급무(2) (편집자 주석: 이 글의 제목에서 '설창'과 '창설'이 혼동해서 쓰이고 있다. 동아일보 편집자의 실수일까?)

조선도서관연구회 이사 강진국

 

2. 농촌문고 창설의 급무

이에 농촌중심의 상설적 문화교육기관이오 적극적 문맹퇴치운동기관이 되고 또 가장 간이하고도 효용이 클 농촌문고의 창설이 절실히 필요하고 또 긴급한 것이다. 이 등한시된 급무 중의 최급무가 문화투자를 뜻하는 고결한 자선가에 남긴 유일한 사업이오 또 최대의 공과를 수확할 수 잇는 새로운 방면이라 하겟다. 여기 내게 이런 자본이 잇다고 가정하고 그 구체안을 설명하건대. 

학교가 없는 더욱히 간이학교의 혜택도 입지 못하는 상접(相接)한 이삼(二三) 농촌부락을 1단위로 하야 그 중심지 □□간이한 농촌문고를 시설(施設)할 것이다. 이 문고에는 그 부락 혹은 그 지방에서 우량하고 진지한 청년 1명 내지 2명을 선출하야 문고의 관리와 운용을 일임하는 동시에 그 문고가 배경한 단위 부락의 지도자를 삼아 항구적으로 부락 아동의 교육과 지도에 당케 할 것이다. 그리하야 농촌문고는 부락의 중심목표가 되고 지도청년(指導靑年)은 부락개발의 동력이 되어 조선농촌의 문화개발은 오로지 이 지도자의 정신과 수완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이 중차대한 지도자의 책임과 지도정신에 관한 연구를 별항에 미루고 농촌문고의 수량적 고찰을 하여볼진대 현재 조선의 정동리(町洞理) ()28394(쇼와 1012월 말)이니 그 중에서 농촌 이외의 정동(町洞)을 제한다면 개산(槪算)하야 23,4천 내지 25천의 농촌 리동(里洞)이 될지며 여기 현대교육과 하등의 의의와 관계가 없는 서당(書堂) 7529(쇼와 95월말 현재)가 잇으니 이것만을 환치(換置)한다더라도 농촌간이문고(農村簡易文庫)는 최소한도로 8천 내지 1만은 잇어야 2동 내지 3동에 1개가 될 수 잇다. 그리고 이들의 통제와 관리기관으로써는 중앙에 1, 각 군에 1개씩 즉 280개소의 지부와 1개소의 중앙본부가 잇어 그 운용과 방법에 부단(不斷)의 연락을 취할 것이다. 

지도교육은 국어(國語), 조선어(朝鮮語), 산술이과(算術理科)를 주로 하되 문맹퇴치를 주안(主眼)하여 2,3년 내에 보통학교 졸업 정도의 국어, 조선어의 실력을 양성할 것이다. 이 실력과 독서력을 배양한 연후에는 적극적 문맹퇴치교육에서 실천생활에 즉면한 탐색교육(探索敎育)에 인도하야 각자의 필요에 응하야 문고에서 독서(讀書) 혹은 독습(獨習) □□□이다. 또 이 문고에는 그들 □□□에 가장 적당한 정도의 농촌개량, 부업 지도 등등 농촌개발에 적당한 도서(圖書)는 중앙에서 간이하게 역출(譯出)하고 혹은 평이하게 이식(移植)하야 그들의 정도에 적응하게 출판(出版)할 것이다. 


농촌문고의 의의와 사명 

그러면 농촌문고(農村文庫)란 무엇이냐? 순서는 좀 바뀌엇으나 여기서, 그 본질을 해부할 필요를 느낀다. 

농촌문고란 농촌문화를 배경한 일종의 간이도서관(簡易圖書館)이다. 도서관(圖書館)이란 도서와 기타 문전(文典)을 저장하야 열람자(閱覽者)의 요구에 응하야 공개하는 소극적 방면으로서 사회문화사업의 일영역을 담당한 사회교육기관(社會敎育機關)이다. 이것이 재래의 도서관에 대한 뿌리깊은 인식이오 또 도서관 자체도 이 영역을 충실히 준수하야 그 전형적 피각(皮殼)을 탈피치 못하엿다. 그러나 도서관은 그 운용 여하에 의하야는 이 침체한 소극적 영역을 벗고 적극적 사회교육의 중요한 영역을 점령할 수 잇으니 이러케 하고야 도서관의 진실한 목적과 사명을 발휘할 수 잇는 것이다. 근일 논의되는 순회문고(巡廻文庫)가 겨우 시험의 초보적 시안(試案)이라고는 할 수 잇으나 이것으로 도서관 사명의 전면적 확장이라고 속단하기에는 아직도 인식부족의 요원함이 잇다. 

현대의 교육과 그 질실한 요구는 독서(讀書)와 실험(實驗)에 잇다.

추상이론적독서가(抽象理論的讀書家), 또는 취미향락적독서가(趣味享樂的讀書家)의 가공하려는 공상에 독서의 진의가 잇는 것이 아니라(이것은 벌서 재고할 필요도 없는 역사사적 과거 사설에 불과하다) 독서가 오인(吾人)의 실생활에 부합하야 오인의 심내에서 배태하고 생장하여서 현실생활에 실즉(實卽)케 할 음미적 실험방법에 그 진가가 잇고 또 필요를 생()하는 것이다. 도서관이 다수한 도서를 사장(死藏)하야 그를 수비(守備)할 것이 아니라 도서를 활약(活躍)시켜 그 도서가 가진 생명과 □□□독자에게 경주(傾注)할 것이며 제자(諸者)가 이것을 받지 못할 때는 도서관의 책임 지도자가 이것을 납득하기까지 지시 혹은 인도하여 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하야 산업가는 그 생산기능에 새로운 참고와 지도를 얻고 교육자는 부단히 새로운 지도방법과 신선한 교재를 얻으며 철학자는 새 사조와 새로운 체계를 얻을 것이다. 실업자(失業者)는 직업을 구하기 위하야 농상공업자는 그들의 부업 혹은 경영기술에 새로운 암시와 지침을 얻기 위하야 지도자 아니 스승을 도서에 구할 것이며 그 선택에는 각종 도서를 음미하는 도서관에서 간접적 지도를 받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시간상 혹은 경제상 모든 방면에 편의한 까닭이다. 

도서관의 사명이 이러한 이상 문맹자의 문맹퇴치도 그의 사명이오 임무이다. 도서를 음미하고 실험하기 위하야 혹은 실생활에 활용하기 위하야 소규모의 공장도, 산업기구도 잇어야겠으며 농촌문고에 잇어 농촌경제이론을 실지 요리(料理)하기 위하야 소비조합, 기타의 부설도 적당한 일이오 또 필요한 일이라 하겟다. 환언하면 문화는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문화라야 가장 정확하고 공고하다 할 것이다 보라! 북미의 이민개척자가 한 손에 책을 들고, 한 손에 '셔벨'(편집자 주석: 삽 shovel을 말하는 것일까?)을 가젓엇다니 금일, 합중국(合衆國)의 문화는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오 현재, 세계 제1위의 도서관 발달국으로 지목을 받는 것은 곧, 이 유래를 가진 까닭이겟다. 또 우리가 비근이 보다싶이 금일의 대공장에 실험실과 도서실을 겸비치 안흠이 잇으며 은행회사에 금고와 같이 도서관을 구존(具存)치 아니함이 잇는가? 도서관을 일흔 학교는 그 심장을 일흔 것이며 도서를 갖지 못한 실험대는 정향(正向) 없는 나침반을 의뢰하는 항해자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결국, 도서관은 그들의 심장이니 이 가분(可分)할 수 잇는 심장(心臟)을 그들의 필요 □□하야 각자의 조직체 내에 분과 □□()을 한 대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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