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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3일 수요일

강진국(姜辰國), 농촌문고경영론 그 필요와 방법에 대하야(16), 동아일보, 1937년 11월 18일 기사(칼럼/논단)

농촌문고경영론 그 필요와 방법에 대하야(16)

강진국

 

필자가 작춘(昨春)에 논문을 끝마치고 난 뒤에 진지한 농산촌 청년에게서 몇 가지 종류의 서신 받앗을 때을 계획하엿든 공상(空想)은 자못 컷든 것이다. 그것은 다음에 피력하겟지마는 그 중에는 가장 시급한 이 농산어촌의 이상적 지도도서(指導圖書)를 비영리적으로 출판할 수 잇는 봉사적 기관의 조성 내지 출현이엇든 것이다. 

그것이 아마 신의 도우심인지 여기 새로운 서광(曙光)을 가지고 나타나게 되엇다. 그것은 금년 봄부터 혜성적 출현으로 우리 땅을 껀지려는 조선농촌으 자부(慈父) 아니 조선의 은인(恩人)이라 칭송하여서 아까움이 없을 독지적 사업가 남호(南湖) 이종만(李鍾萬) 씨의 주재하는 대 대동사(大同社)에서 그 종합사업의 일반으로 최근에 다시 10만원의 기금으로 대동출판사를 경영하게 되엇다는 희소식이다. 

그래 필자는 이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기 전에도 그의 인역과 정신을 믿기 때문에 작약(雀躍)의 기쁨을 금치 못하는 중에도 더 확신을 얻기 위하야 본란을 집필하는 직전에 동 사장실을 방문하엿드니 

농촌문고(農村文庫)에 비치할 농산어촌 지도도서도 이 출판사에서 비영리적(자선적으로필자 주)으로 출판하겟다라는 언명을 얻엇다. 

일반 독자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여사한 지도서에 기갈되어 잇는 우리 농촌지도자에게 특히 이 사실을 공개하야 다 한 가지로 남호(南湖) 선생의 특지(特志)를 감사하는 동시에 그 사업에 대한 기대와 촉망을 가지고 기뻐하야도 조흘 것을 위무(慰撫)하야 둔다. 

그래서 일전에 서술한 간행물 기증요구서등 인쇄를 요할 것은 주저치 말고 동사(同社)의 혜택을입니다. 

극히 저렴한 실비 제공을 할 것이다.(京城 鐘路 3丁目 47) 대동광업주식사회(大同鑛業株式會社) 기왕 여기 말이 낫으니 비록 본론의 논리적 추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우리 농촌사업에 기여할 바 크고 따라서 우리 농촌문고경영에 직접 혹은 간접으로 조성(助成) 내지 연쇄관계를 가지게 될 이 대동(大同)의 종합사업을 잠감 독자에게 소개하고저 한다. 

대동사(大同社)의 기구 속에는 대동광업조합(大同鑛業組合) 급 주식회사(株式會社)가 잇고 대동농촌사(大同農村社)와 그 출판사(出版社)가 잇는대 이 출판사는 그 출현한 시일이 불과 월여밖에 안되는니만치 아직것 이러타 할 만한 것이 없고 광업기관지(鑛業機關紙)로 광업조선(鑛業朝鮮)을 봉사적으로 출판하고 잇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문화보급운동에 거대적 활약을 할 것이 기대되는 것은 서상한 바와 같거니와 그 성()이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일반 농촌운동 청년이론가에게 조선의 현실을 무시하고 가공(架空)하는 유-트피어의 건설이라고까지 가혹한 비판을 받고 잇는(잡지 비판 9월호, 이승선李昇善 , ‘대동농촌사는 어디로 가나참조) 대동농촌사의 영위하는 집단농업방침(集團農業方針)에 대하야는 필자 자신도 불소한 불만을 포회하고 그 채택한 방법의 너무도 낙관적이오 졸렬한 것임을 당국자에게 직접 비난한 일도 잇다. 그러나 우리가 한번 조선의 기구(機構)와 현상(現象)을 돌아보건대 그 이용될 사회적 협동기관의 근소 내지 태무를 깨달지 안흘 수 없음과 아울러 우리들이 주장하여오든 농촌운동(農村運動)의 보편적 분산 운동, 이 방법에 의한 협동적 조직운동이 지난을 느끼지 안흘 숭 없으며 그 장래의 확실성이 예측 내지 보장되지 안는 한 항상 그 운동이 집중적 편성(偏性)을 가지는 경향에 흐르기 쉽거든 하믈며 자작농창정(自作農創定)을 표방하고 나선 동사(同社)로 하여곰 그 최초적 시험이 자연이 집단식 방법에 의거치 안흘 수 없게 됨이니 이 점을 과히 의아할 필요가 없는 일이오 또 동사(同社)로 하여곰 조선농촌운동의 근본적 해결 초점을 토지문제(土地問題)에 고착케 하지 아니치 못하는 사회적 정세를 전연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집단 단위가 완성되는 날에는 제이, 제삼, 제사의 새 단위가 생성될지오 이러케 하야 그 적당한 수량을 보게 될 때는 이것을 토대로 한 협동조직운동(協同組織運動)이 분산 보급되어서 우리 농촌부락의 방방곡곡이 그의 혜택을 입게 될 것이 예상되고 기대되나 다만 우보둔건(牛步鈍蹇)의 늦어진 한이 잇음을 유감(遺憾)이라 안흘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주재자 남호 선생의 포부와 인위를 아는지라 그가 사리와 탐부를 의욕 안코 그의 경영하는 사업의 소출이 오로지 농촌청년(農村靑年)을 위하야 쓰임이 되리라고 상상됨에 오인의 서상한 금한(今恨)도 우사(愚思) 매려(昧慮)의 불찰한 소이라고 안흘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여하간 그의 건실한 발표은 우리 농촌사회(農村社會)의 전반적 복영(福榮)으로 도리켜질 것이니 오인은 피안관화(彼岸觀火)로 보지 말고 충분한 기대와 촉망을 가지고 그 사업의 조성을 위하야 전폭적 지원을 애끼지 말 것이다. 

이 대동농촌사(大同農村社)에 관한 기여의 문제는 다른 기회에 좀 더 평론하기로 하고 본론에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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