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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5일 월요일

폐교로드

 지방 소멸의 쓰나미가 학교를 덮쳤다. 다닐 학생이 없어 폐교되고, 학교가 문을 닫자 부모들은 남은 아이의 손을 잡고 마을을 떠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폐교는 지방 소멸의 결과이자 원인이고 상징이다. 중앙일보는 약 두 달간 4500km에 이르는 폐교 로드(Road)’를 통해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처한 전국 24개 지역의 폐교 실태를 직접 보고 들었다. 현장의 이야기를 10회에 걸쳐 전한다. 

폐교 로드: 강원 홍천영월삼척경북 봉화영덕의성군위경남 합천산청고성남해전남 여수고흥신안함평전북 고창정읍임실진안충남 논산부여청양충북 보은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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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간 태어난 아이 없다"봉화 '시한부 학교' 교장의 한숨 [4500km 폐교로드]

중앙일보 입력 2023.01.20 05:00 업데이트 2023.01.21 15:57 김태윤 기자 

앞으로 3~4년은 더 버틸 수 있겠지만, 그 후엔 어찌할지. 그저 하늘만 바라볼 뿐입니다.” 

지난해 11월 중순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현동리 소천초등학교에서 만난 김성욱 교장의 한숨은 깊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이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가 한 명도 없다지방 소멸과 함께 학교도 소멸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천초 교장실에 붙은 아이들의 밝은 표정과 달리 학교의 앞날은 어둡다. 지난해 말 기준 소천초 전교생은 10. 4학년 3, 5학년 4, 6학년 3명이다. 지난 3년간 입학생은 없었다. 다행히 올해는 1학년 신입생 한 명이 들어오지만, 졸업생 세 명이 떠나고 여덟 명만 남는다. 경상북도교육청의 학교 통폐합 기준(10)에 못 미친다. 

이미 많은 학교가 폐교의 임계치 넘어

이 학교에 속한 세 곳의 분교 사정도 다를 게 없다. 소천초 임기분교 재학생은 3, 두음분교는 4명이다. 올해 입학생은 임기분교 0, 두음분교 2명이다. 백두대간 협곡열차(V-트레인) 분천역 인근에 있는 분천분교는 2021년 폐교됐다. 찾아가 보니 숙박시설로 바꾸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김 교장은 농사 외엔 변변한 일자리가 없는데 누가 아이들을 데리고 이 마을로 오겠느냐봉화의 많은 학교가 이미 폐교의 임계치를 넘었다고 말했다. 

봉화군에서만 47개 학교 문 닫아

소천초가 속한 봉화군은 폐교가 왜 지방 소멸의 결과이자 원인인지를 잘 보여준다. 1960년대 말 봉화 인구는 12만 명을 넘으며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1970~80년대 산업화도시화에 따른 이촌향도(移村向都)’와 저출산 현상에 따라 198010만 명이 붕괴했고, 1990년대 중반에 5만 명 선이 무너졌다. 현재 봉화 인구는 3만 명을 갓 넘는다. 

봉화에 폐교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인구 감소가 본격화한 1990년대 초반이다. 석포면 작은 분교(1991년 석포초 광평분교)에서 시작된 폐교 도미노는 10개 읍면으로 퍼져나갔다. 90년대에만 봉화에서 20개 학교가 사라졌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는 21개 초등학교가 문을 닫았다. 고등학교 2, 중학교 4곳도 사라졌다. 봉화에서 만난 50대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가 하나둘씩 문을 닫으면 부모들은 자녀 교육과 일자리를 위해 산골에서 면 소재지로, 면에서 읍으로, 읍에서 인근 영주안동시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현재 봉화엔 분교를 포함해 초등학교 16, 중학교 7, 고등학교 3곳이 있다. 이중 교육부가 정한 학교 통폐합 권고 기준(전교생 60명 이하)에 미치지 못하는 학교는 17곳이다. 특히 9곳은 전교생이 20명 이하다. 이들 학교는 수년 내에 학생 수가 10명 이하인 시한부 학교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 지방에선 전교생이 10명 이하고 학부모 50~60% 이상이 동의하면 폐교 또는 통폐합을 추진한다. 더욱이 예비 초등학생이 다니는 봉화 내 유치원 16곳 중 13곳은 원아가 10명 이하다. 6곳은 원아가 5명도 채 되지 않는다. 

리에서 면으로, 분교에서 본교로폐교의 공식

도미노 폐교시한부 학교는 봉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봉화를 비롯해 인구 감소로 소멸 위험에 처한 지역 대부분이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지방엔 이른바 폐교의 공식이 있다. 학생이 모자라 복식학급(두 학년 이상을 한 교실에서 운용하는 학급)이 생기면 이미 폐교의 전조다. 이후 수년간 폐교냐, 통폐합이냐를 놓고 지방 교육청과 학교학부모가 갈등하다 결국 문을 닫는다. 일부 학교는 인근 학교의 분교장으로 편입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한다. 분교가 문을 닫으면 시차를 두고 본교 역시 폐교의 압박을 받는다. 리에서 면으로, 면에서 읍으로, 분교에서 본교로, 초교에서 중고등학교로 폐교 도미노가 이어진다. 

전교생 60명 이하 초··, 전체 학교의 18.4%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폐교 학교는 3896곳이다. 전남이 839(21.5%)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경북(73518.9%), 경남(58214.9%), 강원(46912%), 전북(3268.4%), 충남(2686.9%), 충북(2586.6%) 순이다. 이 중 193곳은 최근 5년 새 사라졌는데, 88.6%(171)가 비수도권이었다. 반면, 서울에서 폐교됐거나 폐교 예정(2024, 도봉고)인 학교는 단 4곳이다. 

폐교의 문턱에 선 학교도 적지 않다. 중앙일보가 학교 알리미와 지방교육재정 알리미 등을 통해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전교생이 60명 이하인 초고는 전국에 2173곳이다. 전체(11794) 학교의 18.4%에 해당한다. 전남이 369곳으로 가장 많고 경북이 351곳으로 뒤를 이었다. 다음은 전북(308), 강원(274), 경남(239), 충남(225), 충북(146) 순이다. 서울은 1곳에 불과했다. 

구별로 보면, 전북 김제시와 익산시가 각각 34곳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경북 상주시(33), 전북 정읍시(34), 강원 홍천군(31), 전남 신안군(31), 전남 여수시(31), 전남 고흥군(28), 전북 고창군(28), 충남 보령시(28) 순이다. 

전교생 10명 이하 학교 188곳 달해5명 이하 87

당장 폐교되거나 통폐합을 해도 이상할 게 없는 학생 수 5명 이하 학교는 87, 10명 이하 학교는 188곳에 달했다. 또한 전교생이 수도권의 과밀학급 기준(28)에도 미치지 못하는 학교는 885곳이다. 학생 수가 10명 이하인 학교는 경북(42)과 전남(34), 강원(32), 전북(31)에 몰려 있었다. 기초단체 중에선 전북 군산시와 전남 여수시가 각각 7곳으로 가장 많았다. 

김성욱 소천초 교장은 소규모 학교의 개별 노력으론 폐교를 막을 길이 없다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움직여 지방과 작은 학교를 살릴 수 있는 정책과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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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덩이 태어났다" 마을 전체 기뻐할때, 엄마는 못 웃은 사연 [4500km 폐교로드]

중앙일보 입력 2023.01.20 15:00 업데이트 2023.01.20 16:08 김태윤 기자 

지난해 9월 경상남도 고성군 영현면사무소에 출생 신고가 접수됐다. 경기도에서 귀촌한 부부가 낳은 셋째 아이 나윤이였다. 860여 명이 사는 영현면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 것은 4년 만이다. 마을 사람들은 복덩이가 태어났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나윤이 엄마의 마음은 편치 않다. 면에서 유일한 초등학교가 사라질 처지여서다. 

전교생 5명인 시골 학교올해 분교장으로 격하

지난해 11월 초 찾은 영현초 운동장에선 아이들 두 명이 트램펄린 위에서 놀고 있었다. 고즈넉한 마을에 있는 작고 예쁜 학교였다. 이 학교엔 나윤이의 첫째 오빠를 포함해 다섯 명이 다닌다. 지난해 기준으로 1학년 1, 3학년 3, 5학년 1명이다. 올해는 신입생 한 명이 들어온다. 

영현초는 수년 동안 폐교의 문턱에 서 있었다. 그나마 경상북도의 ‘1() 1() 원칙은 폐교를 막아준 담장이었다. 하지만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1928년 개교한 영현초는 올해 교명이 바뀐다. 인근 영오면에 있는 영오초 분교장으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고영정 영현초 교장은 모두가 간절히 존속을 원했지만 더는 학생이 유입될 가능성이 작다는 교육지원청의 판단에 따라 결국 분교장으로 개편됐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주민과 학부모, 동문회가 학교를 살리기 위해 장학회를 만드는 등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영현초 앞에서 만난 한 주민 역시 영현중학교(당시 영천중 영현분교)를 보면서 초등학교라도 유지해야 한다고 마을 사람들이 뜻을 모았는데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단 한 명이라도 다닌다면 학교 존속해야

영현초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영현중은 2008년 폐교했다. 한때 곤충 체험장으로 운영됐지만, 지금은 폐가((廢家)나 다름없다. 운동장은 잡풀로 무성하고, 유리창은 깨어져 있고, 교실 안에는 버려진 집기가 가득했다. 대낮인데도 혼자 들어가기 꺼려질 정도였다. 고 교장은 마을 주민들은 수년 내에 우리 학교도 영현중처럼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지역 특성상 젊은 층 유입이 어렵지만,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있다며 학교는 존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폐교는 지역 일자리와도 연관이 있다. 현재 영현초의 교직원은 17명이다. 교장을 포함한 교사 7, 행정실 직원 5, 그리고 통학버스 기사와 보호 탑승자, 조리사, 환경미화원, 배움터 지킴이 등이다. 한 주민은 다행히 폐교는 막았지만, 나중에라도 문을 닫으면 전출 갈 수 있는 선생님들 외엔 모두 직업을 잃을 것이라고 했다.

"학교 살리기도 중요하지만, 또래 친구 한 명 없어

반면, 폐교를 원하는 주민도 만날 수 있었다. 영현면에서 만난 한 주민은 학교가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교를 보내도 또래 친구 한 명이 없다위장 전입 없이는 인근 학교에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중요한 교육인데 비슷한 처지에 있는 소규모 학교를 통합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토로했다. 학교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과 더 좋은 교육 환경을 바라는 바람은 그렇게 작은 마을에서 위태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한편, 고성교육지원청에 따르면 지금까지 고성군에서만 초35곳이 폐교됐다. 현재 있는 학교 32(19, 8, 5)보다 많다. 또한 32곳 중 학생 수가 60명 이하인 곳은 14, 이 중 20명 이하는 4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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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없어지면 마을은 끝장" 노인회가 무덤처럼 지키는 폐교 [4500km 폐교로드]

중앙일보 입력 2023.01.21 05:00 업데이트 2023.01.21 15:56 김태윤 기자 

우리 마을에서 아기가 태어난 게 5년도 더 됐어요. 이러니 학교가 없어질 수밖에.” 

지난해 10월 말 강원도 홍천군 영귀미면 좌운리에서 만난 김성기 노인회장은 모교인 속초초등학교 좌운분교(옛 좌운초) 운동장에 세워진 폐교 안내판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내판에 적힌 폐교 사유는 학생 수 감소였다. 

이 학교는 개교 87년 만이 20213월 문을 닫았다. 6학년 두 명이 졸업하고 홀로 남겨진 5학년 여학생은 속초초 본교로 전학했다. 폐교 건물과 운동장은 마을 노인회가 관리한다. 여름엔 운동장 뒤편에 콩을 심었다고 했다. 이날 3시간여 동안 좌운12리에 머물렀지만,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학교가 없어지면 마을은 끝장

학교가 없어질 수 있다는 소문은 10여 년 전부터 돌았다. 좌운초 22회 졸업생인 김 회장은 “2008년에 분교가 될 때부터 폐교 얘기가 나왔다당시 다니던 애들이 20명 남짓이었고, 폐교 직전엔 3명이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다닐 때만 해도 전교생이 550명 가까이 됐는데, 지금은 마을 전체에 어린아이가 세 명뿐이라며 지난 30년간 말릴 새도 없이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났고 결국 학교도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김 회장 옆에 있던 노인은 지방 소멸이라면서 산부인과가 없다느니, 소아과가 없다느니 떠드는데, 지방에서 정말로 심각한 것은 폐교라며 산부인과가 없으면 도시에 가서 낳고 돌아오면 되지만, 학교가 없어지면 마을은 끝장이라고 말했다. 

40년 새 홍천군에서 56개 학교 문 닫아

지난 40년 새 홍천에선 56개 학교가 문을 닫았다. 현재 홍천군 관내에 있는 초(46)보다 많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한 폐교 도미노는 현재 진행형이다. 2021년엔 내촌초 동창분교가, 지난해에 속초초 월운분교가 폐교됐다. 같은 날 찾은 두 폐교 인근은 한적했다. 운동장은 수풀만 무성한 채 스산했다. 인적 없던 동창분교 앞 논길에서 만난 한 노인은 산지 개발을 하든, 농토 개발을 하든 젊은이들이 올 수 있게 뭐라도 해야 했는데 손 놓고 있다가 이 꼴이 됐다고 말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는 시골 노인의 말이 깊고 무겁게 다가왔다. 

홍천 소재 초교 15, 올해 신입생 5명 이하

홍천엔 교문이 절반쯤 닫힌 학교도 적지 않다. 영귀미면에서 20km 떨어진 서면에 있는 모곡초. 이 학교는 지난해 입학식과 졸업식이 없었다. 1학년과 6학년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올해는 신입생 두 명이 입학 예정이지만 전교생은 10명에 불과하다. 모곡초 앞에서 만난 한 60대 여성은 누군가 귀농귀촌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폐교될 것이란 얘기가 많다고 말했다. 같은 서면에 있는 한서초 역시 지난해 입학생이 없었다가, 올해 병설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 4명이 입학한다. 올해 기준 전교생은 17명이다. 

홍천교육지원청에 따르면, 홍천에 있는 초등학교 27곳 중 전교생이 30명 이하인 학교는 12곳이다. 이중 강원도교육청이 정한 통폐합 기준(본교 10, 분교 5명 이하)에 해당하는 학교는 4곳이다. 중앙일보가 도 교육청에서 받은 ‘2023년 초등학교 신입생 예비소집 점검자료에 따르면, 올해 홍천 소재 초등학교 중 절반이 넘는 15곳은 신입생이 5명 이하다. 삼생초(서석면)와 반곡초(서면)는 입학생이 한 명뿐이다. 이를 포함해 홍천군 전체의 올해 초등학교 진학 예정자는 375. 서울 소재 초등학교 평균 학생 수(658, 2021년 기준)의 절반을 조금 웃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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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향에서 마을의 흉물로...“머지않아 마을 전체가 사라지겠지” [4500km 폐교로드]

중앙일보 입력 2023.01.21 15:00 업데이트 2023.01.21 16:23 김태윤 기자 

나를 포함해 우리 6남매가 모두 이 학교를 나왔는데, 지금은 흉물도 이런 흉물이 없어. 어린 시절 뛰놀던 마음의 고향인데.” 

지난해 10월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작금마을(금성리)에서 만난 72세 노인은 밭일을 멈추고 기자를 자신의 모교로 안내했다. 1999년 폐교한 금성초등학교. 노인은 이 학교 9회 졸업생이다. 

학교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울 만큼 황폐했다. 잡목과 수풀로 뒤덮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7300(2200) 부지와 건물은 23년간 방치됐다. 그 사이 마을도 쇠락했다. 노인은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학생만 180~200명이었는데 지금은 마을 전체가 200가구가 안 되고, 그나마 60대도 얼마 없다고 했다. 그는 여기가 돌산에서 두 번째로 큰 부락이었는데 젊은이들은 모두 객지로 나가고, 아이들은 조손 가정이 아니면 구경도 못 한다우리 세대가 죽으면 마을도 이 학교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돌산에서만 9곳 폐교10년 새 여수 학생 7만 명 줄어

1990년 이후 여수 돌산읍에서만 9개 학교(분교 포함)가 폐교했다. 여수 전체로 따지면 64곳이 문을 닫았고, 지난해에만 4개 학교가 사라졌다. 여수는 순천에 이어 전남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지역이지만 학령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었다. 최근 10년 새 유치원생을 포함한 여수의 학생 수는 68400여 명 줄었다. 지난해 말 기준 전남 해남군 인구 전체가 사라진 셈이다.

전남 신안군 사정도 다르지 않다. 1004개의 섬으로 이뤄진 신안군에서 가장 큰 섬인 압해도 신월항에서 배로 3분 남짓 거리인 고이도. 섬 초입에 있는 압해초등학교 고이분교는 2018년 문을 닫았다. 폐교 당시 학생은 단 한 명이었다. 이후 단층 짜리 학교 건물은 방치됐다. 학교 안 교실엔 책걸상이 모두 치워졌지만, 칠판과 교실 표지판은 그대로였다. 한 교실에는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쓴 글과 그림이 붙어 있었다. 

폐교될 때까지 버틴 것만도 대단한 일

외지에서 살다 몇 년 전 귀향했다는 모성현(50)씨는 “90년대 후반부터 전교생이 2~3명으로 줄었다폐교될 때까지 오래 버틴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모씨는 이 학교 37회 졸업생이다. 그는 “35년 전엔 우리 학교에 200명 가까이 다녔다지금은 섬 전체 인구가 200명을 갓 넘는다고 말했다(실제로 고이도엔 127가구 214명이 거주한다). 그는 신안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들의 생활권은 대부분 목포·무안이라며 떠날 사람들은 다 떠났는데 신안에 더는 폐교될 학교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모씨의 두 살, 세 살배기 자녀들은 매일 배를 타고 무안에 있는 어린이집을 다닌다. 

신안군, 2000년 이후 41개 학교 폐교

지금까지 신안에선 83개 학교가 폐교됐다. 2000년 이후에만 41곳이 사라졌다. ‘줄폐교는 끝난 걸까. 신안 추포도에 있는 암태초 추포분교를 비롯해 6개 학교는 현재 휴교 중이다. 가거도초를 포함한 4곳은 학생 수가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또한 신안에 있는 중학교 13곳 중 6곳은 전교생이 20명 이하다. 익명을 원한 전남교육청 관계자는 휴교는 폐교의 수순이고, 10명 이하 학교도 결국 통폐합될 수밖에 없다지자체 차원에서 폐교를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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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뛰놀던 학교엔 실버주택과 노인대학방치된 폐교도 수두룩 [4500km 폐교로드]

중앙일보 입력 2023.01.22 05:00 업데이트 2023.01.22 08:28 김태윤 기자 

충청남도 보은군 속리산 기슭에 있던 속리중학교. 보은산업단지에서 20km가량 떨어진 이 학교는 2011년 원남중과 속리중내북중 세 학교가 속리산중으로 통폐합되면서 문을 닫았다. 지난 11월 찾아간 속리중은 학교 지주석에 현판은 남아 있었지만 교문과 건물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노인들이라도 편히 살면 좋지 않겠나

대신, 폐교 부지에선 터 닦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공실버주택을 짓기 위해서다. 공공실버주택은 홀몸노인의 주거 안정을 위해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고령자 복지주택 보급 사업 중 하나다. 보은군청 관계자는 170억원을 들여 2024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속리중 인근에서 20여 분만에 처음 만난 한 주민은 원래 학교로 되돌릴 수도 없고 젊은 사람들이 우리 마을로 올 일도 없는데, 노인들이라도 편히 살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부여 인세초, 폐교 후 노인대학으로 활용

초등학교가 노인대학으로 바뀐 곳도 있다. 충남 부여군 세도면 귀덕리에 있는 옛 인세초. 1951년 개교한 이 학교는 약 50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2018년 폐교했다. 폐교 당시 전교생은 21, 그해 졸업생은 6명이었다. 지난해 11월 중순 찾아간 학교 정문엔 세도노인대학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이날은 문을 닫았지만 매주 목요일 부여에 거주하는 노인 백여 명이 찾는다고 한다. 운동장은 농촌 체험 캠핑장으로 활용 중이다. 

학교 인근에서 만난 60대 주민은 학교가 사라지고 노인대학으로 바뀌니 속상하지만 어쩌겠느냐귀덕리엔 초등학생이 한 명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1930년생이라고 밝힌 한 노인 역시 임씨 집장촌인 여기 귀덕리와 옆 마을 청포리, 가회리에 애들이 바글바글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폐교를 놀리고 있으니 돈이 썩어났다고 해

폐교가 노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면 그나마 낫다. 폐교 후 방치된 곳이 적지 않아서다. 전북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 옛 대성고(2004년 폐교) 앞에서 만난 60대 노인은 저 큰 건물과 땅을 십몇 년째 놀리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돈이 썩어났다고 혀를 찬다고 말했다. ‘청소년 단체 놀이 체험장으로 쓰인다는 전남교육청 설명과는 달리 운동장엔 주민들이 말려 놓은 홍고추가 널려 있었고, 운동장은 수풀이 가득했다. 건물 역시 굳게 잠겨 있었다. 마을 주민은 아주 가끔 영화나 드라마 촬영할 때 쓰는 것 빼곤 저렇게 방치돼 있다가뜩이나 썰렁한 마을이 저 학교 때문에 더 을씨년스럽다고 말했다. 

경남 산청군 차황면 산청초 차황분교 사정도 비슷했다. 이 학교는 산청군 소재 산청중(산청읍), 생초중(생초면), 경호중(금서면)이 통폐합되면서 2018년 문을 닫았다. 본지가 찾은 날 학교 운동장 한쪽에선 노인 4명이 게이트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동장 절반은 어른 키 절반만큼 수풀이 우거졌고, 건물 내부는 깨진 유리창과 부서진 집기가 가득했다. 폐교 후 전혀 관리가 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전북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에 있던 구봉초는 아예 25년 동안 버려진 폐교다. 운동장은 잡풀이 우거져 걷기 힘들 정도였다. 학교 건물은 흉가처럼 보였고, 녹슨 세종대왕상과 이승복상만이 이곳이 학교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구봉초 인근에서 만난 한 70대 노인은 우리 마을 사람들이 어릴 적 다니던 학교였는데, 지금은 쳐다보기도 싫은 곳이 됐다고 말했다. 

전국 곳곳에 폐교 후 방치된 학교 수두룩

폐교 후 방치된 학교는 지방에선 오랜 골칫거리다. 나로우주센터에서 7km 떨어진 전남 고흥군 나로고등학교(2014년 폐교)를 비롯해 전북 임실군 관촌동초(1991), 전북 정읍 고부여중(2007), 전남 함평군 영창초(2009), 경북 의성군 가음중(2017), 충남 청양 장평중(2020) 등 본지가 찾은 폐교 상당수가 방치된 채 남아 있었다. 1992년 폐교된 보성초가 있는 경북 군위군 사리리에서 만난 한 노인은 학교가 망하고 마을도 다 망했다저 학교처럼 우리 마을에도 빈집이 한두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활용 폐교 351, “활용한다는 학교도 사실상 방치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에 미활용 폐교는 351곳이다. 하지만 익명을 원한 한 지방교육청 관계자는 매각 완료됐거나 활용 중이라고 집계된 폐교 중 상당수가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아무도 찾지 않는 지역 폐교를 매각하기도 어렵지만, 매각돼도 제대로 활용되는 곳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폐교 중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도 적지 않다. 충남 청양에 있는 청양여자정보고(2009년 폐교)는 충남 사회적경제 혁신타운 건립을 위해 지난해 건물이 해체됐다. 부지 앞 식당 주인은 이걸 한다, 저걸 한다며 10년 넘게 방치됐었는데 막상 사라지니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충남 부여군에 있던 임주초(1995년 폐교), 경북 영덕군에 있는 창수초 오촌분교 역시 지금은 흔적도 없다. 임주초 앞에서 만난 주민은 폐교 후엔 그나마 공장으로 쓰였는데 공장이 망하면서 건물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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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금 100만원" 기적 불렀는데초등 졸업후 갈 중학교 없다 [ 4500km 폐교로드]

중앙일보 입력 2023.01.22 15:00 업데이트 2023.01.22 18:55 김태윤 기자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광동리에 있는 하장초등학교. 지난해 11월 초 정오에 찾아간 학교 앞은 한산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공사 현장 인부 몇몇과 보행기에 의지해 걷는 노인 서너 명이 한 시간 동안 머물면서 본 전부였다. 이 학교는 지난해 12학년 3명을 복식학급(두 개 이상 학년이 한 교실에서 수업하는 학급)으로 운용했다. 6학년 5명은 12월 말 졸업했고, 올해 신입생 3명이 들어와 전교생은 16명이 된다. 강원도교육청이 정한 학교 통폐합 기준(10)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 

하장초 인근 고교 폐교, 중학교 전교생은 5

문제는 그다음이다. 아이들이 졸업해도 하장면에선 진학할 학교가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장초에서 차로 2분 거리인 하장고등학교는 지난해 폐교했다. 폐교 당시 학생 수는 3명이었다. 하장고와 같은 운동장을 쓰는 하장중 역시 폐교가 임박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교생은 2학년 3, 3학년 2명이다. 4층짜리 고교 건물과 3층짜리 중학교 건물 전체에 학생 5명이 다녔다. 

하장초 앞 슈퍼 주인은 초등학교는 아직 잘 버티고 있지만 중고등학교가 다 없어지면 그나마 남은 애들도 떠나거나 멀리 통학을 해야 한다이러다 마을에 아이들이 다 없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 하장면 인구는 1264. 이 중 19세 이하는 51(4%)에 불과하다. 7세 이하는 14명이다. 

지방에선 상급학교가 폐교해 이사를 고민하거나 통학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삼척시 근덕면 용화리에 있는 장호초도 마찬가지다. 이 학교엔 4학급 13명이 다니지만, 인근에 있는 장호중학교가 지난해 문을 닫았다. 폐교 당시 학생 수는 단 2명이었다. 

힘 합쳐 학생 수 늘렸는데”...상급 학교 줄폐교

학교와 지역민의 노력으로 학생 수가 늘어도 진학할 상급학교가 없어 고민인 지역도 있다. 경남 남해군 고현면에 있는 고현초가 대표적이다. 이 학교는 2020년만 해도 전교생이 24명이었고, 1·2학년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학교와 지역민이 힘을 합쳐 전학 오는 이주 가족에 주택과 농지를 무상으로 제공임대하는 등 파격적인 지원책을 폈다. 신입생과 전입생에겐 50~100만원의 장학금도 지급한다. 이런 노력으로 2021년과 지난해 고현초 학생 수는 각각 44, 49명으로 늘었다. 고현초는 지역 작은 학교 살리기의 대표적인 모범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고현초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은 학교가 잘돼서 너무 좋지만, 졸업하면 갈 중학교가 없으니 문제라며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고현면에 있던 고현중학교는 학생 수 감소로 2019년 폐교됐다. 이 주민은 중학교에 가려면 설천중(설천면)이나 남해중(남해읍)으로 가야 할 텐데, 지원을 받고 귀농귀촌한 학부모들이 언제까지 우리 마을에 살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신천초 역시 특성화 교육을 지원하고, ·입학하는 2인 이상의 세대에 매월 주거비를 제공하는 등 작은 학교 희망 만들기프로젝트를 통해 202023명이던 학생이 지난해 45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인근에 있는 신천중은 학생 수 감소로 지난해 폐교했다. 신천초와 같은 한반도면에 있는 쌍룡중 역시 재학생이 15명뿐이다. 영월교육지원청에 따르면, 영월에 있는 10개 공립중학교 중 5곳은 전교생이 20명 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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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체육대회는 어디서 하나요"주민 추억에 자물쇠 채웠다 [4500폐교로드]

중앙일보 입력 2023.01.23 05:00 업데이트 2023.01.23 08:15 김태윤 기자 

오로지 학교를 지키고 싶어서 동문과 주민들이 발버둥을 쳤는데 결국 폐교되고 말았어요.”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에 있는 목도고등학교. 이 학교는 개교 47년 만이 지난해 3월 학생 수 감소를 이유로 문을 닫았다. 괴산군에 있는 둘뿐인 고등학교였다. 이로써 괴산군 전체에 남은 고교는 괴산고 한 곳뿐이다. 

괴산 전체에 고교 한 곳 남아폐교 막기 위해 수년간 시위

지금은 공장 터로 쓰이는 목도중학교 폐교(2013)를 지켜본 동문과 불정면 주민들은 수년간 목도고 폐교 반대 운동을 벌였다. 목도중고를 나온 장용상 불정농협 조합장은 기수별로 일주일에 서너 번씩 청주에 있는 교육청을 찾아가 피켓 시위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폐교하면 마을도 다 죽는다며 불정면 사람들도 시위에 함께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목도고는 지난해 220명의 졸업생을 끝으로 폐교됐다. 올해부턴 1년제 전환학교(목도나루학교)로 바뀌어 문을 연다. 1 학생들이 1년간 진로 탐구 등 위탁교육을 받은 후 원적 학교로 복귀하는 일종의 대안 학교다. 장 조합장은 매년 가을 총동문 체육대회를 여는데 모교가 폐교되고 자물쇠가 걸려 있으니 운동장을 쓸 수 없었다이번엔 교육청에 사정해 학교에서 행사를 치렀지만, 내년부터는 어찌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제야 학교를 잃은 서글픔이 밀려오더라고 토로했다. 

목도고가 폐교되면서 중학생을 둔 괴산군 학부모들의 속도 타들어 갔다. 군내 유일한 고교인 괴산고 정원이 한정돼 다른 지역으로 전·입학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충북교육청은 지난해 하반기, 괴사고의 입학 정원을 5학급 100명에서 6학급 132명으로 확대했다. 

어차피 학생도 없는데군위군에 인문계고 1개 남아

올해 7월 경북에서 대구시로 편입되는 군위군 중학생들 역시 진학할 수 있는 관내 인문계고가 군위고 한 곳뿐이다. 여러 해 신입생을 받지 못해 폐교 위기에 놓였던 효령고(효령면 중구리)가 항공 특성화고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새 학교 부지는 현재 위치가 아닌 인근 마시리다. 

효령고 인근에서 30분을 서성이다 어렵게 만난 한 주민은 어차피 중구리엔 학생들이 거의 없어서 학교가 사라진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며 체념하듯 말했다. 군위교육지원청에 따라면, 군위에선 지금까지 25개 학교가 사라졌다. 현재는 초등학교 7, 중학교 4, 고교 4곳에 1023명이 다닌다. 서울 강남에 있는 대도초등학교(2025) 한 개 학교의 절반 수준이다. 

금성여상에서 폐교 후 태평여고로 바뀐 사연

폐교 후 가상 학교로 변한 곳도 있다.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있던 금성여자상업고등학교. 11월 초 찾아간 학교 운동장에선 중장년 10여 명이 게이트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적비엔 분명 금성여상으로 돼 있었는데, 학교 건물엔 태평여자고등학교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알고 보니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촬영지로 활용하기 위해 가짜로 붙인 것이었다. 

1976년 개교한 금성여상은 경북 지역에선 취업률 높은 특성화고로 유명했다. 하지만 2019년 졸업생 28명을 끝으로 폐교됐다. 금성면에서 만난 한 70대 주민은 한때는 구미나 안동에서도 찾는 학교였는데 학생들이 점점 줄더니 결국 저렇게 됐다금성면만 아니라 의성 전부가 똑같은 처지라고 말했다. 

전국 기초단체 중 경북 군위군과 함께 인구 소멸 위험 지수가 가장 높은 의성은 1990년 이후 61개 학교가 문을 닫았다. 초등학교 분교에서 시작된 도미노 폐교2010년대 중반 들어 단밀중안평중비안중(2016), 다인정보고가음중(2017), 금성여상 (2019) 등 중고교 폐교로 이어졌다. 학생 수 10명 이하로 통폐합 중점 대상인 학교는 지난해 기준 4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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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끼리 원수 됐다"묻지도 않고 학교 통폐합, 싸움만 키웠다 [4500km 폐교로드]

중앙일보 입력 2023.01.23 15:01 업데이트 2023.01.23 15:02 김태윤 기자 

충청북도 보은군 성주리에 있는 보은정보고등학교. 1979년 문을 연 이 학교는 2025년까지 신입생을 받지 못한다. 2km 떨어진 충북생명산업고와 통폐합(2026)이 지난해 결정됐기 때문이다. 충북에서 고교가 통합되는 첫 사례다. 

충북에서 처음으로 고교 통폐합 결정

보은군은 10여 년 전부터 고교 재배치 문제로 시끄러웠다. 당시 도 교육청은 학생 수 감소를 이유로 보은정보고와 보은여고를 통합하려 했다. 하지만 보은정보고 동문과 학부모들이 거세게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10년 새 상황은 바뀌었다. 당시 6학급이던 보은정보고는 현재 각 학년 당 1개 학급으로 줄었다. 학생 수는 32명에 불과하다. 1학년은 7명이다. 

결국 지난해 5월 통합 설문에서 보은정보고 학부모 대부분은 통합 찬성에 손을 들었다. 더는 학교를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날 보은정보고 앞에서 만난 고3 남학생은 학교가 없어지는 것은 싫지만, 완전 폐교가 아니라 통합이라서 그나마 낫다고 생각한다선생님들과 학생들도 대부분 찬성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세 곳 합친 합천가야초는 활기 돌지만

지방에서 학교 통폐합은 흔한 일이다. 서너 곳이 하나로 합쳐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 11월 중순 찾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합천가야초등학교. 이 학교는 가야면에 있는 가산숭산해인초를 통폐합해 2019년 개교했다. 2350(710) 부지에 지방에서 보기 힘든 최신식 시설을 갖춘 이 학교에는 현재 68명의 학생이 다닌다. 점심시간 찾은 학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활기가 돌았다. 하지만 통합으로 문을 닫은 세 학교와 인근 마을 사정은 달랐다. 

통폐합된 해인초·가산초 역사 속으로

같은 날 찾은 합천 해인사는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하지만 해인사 경내에 있는 해인초 주변은 썰렁했다. 한 관광객은 절 안에 학교가 있는지 몰랐다며 운동장을 둘러봤다. 아이들이 뛰어놀았을 운동장엔 찢어진 낡은 공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합천가야초와의 통폐합으로 문을 닫은 해인초는 현재 해인사 스님들의 방사 등으로 활용한다. 학교 옆 가게에서 김장하던 70대 노인은 옛날에 학생들이 억수로 많았는데, 하나둘 줄더니 결국 문을 닫았다고 했다. 

합천가야초에서 2km 떨어진 가산초는 수풀만 무성한 채 방치됐고, 6km 거리인 숭산초는 독서체험관과 캠핑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가산초 앞에서 만난 한 60대 주민은 아이들만 생각하면 통합된 게 잘된 일이지만, 저렇게 버려진 학교를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지역민 의견 수렴 없이 통폐합 결정"

학교 통합이 지역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강원도교육청은 2021년 영월읍에 있는 영월중과 봉래중을 통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학생 수가 50여 명인 봉래중을 폐교하고 영월중(229)과 통폐합한 뒤 봉래중 자리로 이전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부지와 교명을 놓고 두 학교 동문 간, 지역민과 도 교육청 간 갈등이 2년 넘게 지속하며 현재 유보 상태다. 

영월읍에서 만난 영월중·공고 동문회 관계자는 도 교육청이 지역민 의견 수렴 없이 제멋대로 통합 계획을 발표하면서 두 학교 동문끼리 앙숙이 됐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는 그동안 교육부와 지방 교육청은 학생 수가 줄면 통폐합이라는 칼로 쪼개고 붙여 해결하려 했다많은 지역에서 작은 학교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 만큼 정책의 대전환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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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 0' 초등교 10589곳은 졸업식 못 한다 [4500km 폐교로드]

중앙일보 입력 2023.01.24 05:00 김태윤 기자 

전라북도 임실군 운암면에 있는 운암초등학교는 올해 졸업식을 열지 못했다. 6학년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이 학교 전교생은 9명이다. 

반면, 같은 임실에 있는 신덕초(신덕면)는 올해 신입생이 없다. 2021년 전교생 6명 중 3명이 졸업하고, 나머지 학생들이 인근 초교로 전학하면서 지난해 휴교했다. 올해도 신입생이 없자 임실교육지원청은 지난 13일 신덕초에 대해 내년 2월까지 휴교 연장 결정을 내렸다. 익명을 원한 전라북도교육청 관계자는 혹시나 학생이 유입될 가능성을 열어 두고 휴교 결정을 내리지만, 지방에서 휴교는 곧 폐교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신입생 단절, 그 다음은 휴교 후 폐교"

전북 정읍시 고부면에 있던 관청초가 그런 예다. 1949년 개교한 이 학교는 2010년대 들어 신입생과 졸업생이 아예 없는 해를 거듭하다가 2018년 휴교 처분을 받았고, 이듬해 폐교했다. 고부면에 있던 고부여중 역시 몇 년 동안 신입생이 들어오지 않아 2007년 문을 닫았다. 

임실·정읍을 포함해 지금까지 전북에선 이런 식으로 320개 학교가 폐교했다. 이 중 75곳은 2000년 이후 문을 닫았다. 관청초 앞에서 만난 60대 주민은 학교를 살려보려고 마을에서 장학회도 만들고 했는데, 애들이 들어오지 않으니 살릴 방법이 없더라고 말했다. 

충남 논산에 있던 황화초와 대명초 역시 수년 간 학생이 유입되지 않아 지난해 폐교했다. 논산 육군훈련소(연무대)에서 4km 떨어진 황화초 앞에서 만난 60대 상점 주인은 원래 아이들이 없던 동네라 매출 타격은 없는데, 내 모교가 사라지니 너무 허전하다아이들 놀던 그네와 시소를 떼어 가는 걸 보면서 마을 주민들이 다 같이 한숨을 쉬었다고 말했다. 

올해 졸업생 '0'명 초등학교 89곳 달해

인구 감소로 소멸 위험에 처한 지방에선 이처럼 졸업입학식이 없는 학교가 수두룩하다. 중앙일보가 교육부 산하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운용하는 학교 알리미를 통해 분석한 결과, 이번 졸업 시즌(지난해 12월 말~2)에 졸업생이 ‘0’명인 초등학교는 89곳에 달했다. 경북이 32곳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강원(12), 전남경남(10), 충남(9), 전북(7) 순이었다. 충북은 5곳이었다. 3명 이하는 293곳이었다. 또한 전체 초등학교(6163) 4곳 중 1곳꼴인 1491개 학교는 졸업생이 10명 이하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남 33, 경북 23곳 초교 입학식 못 열어

입학식을 열지 못하는 학교도 적지 않다. 중앙일보가 각 지방교육청에 의뢰해 집계한 결과, 올해 신입생이 ‘0’명인 초등학교는 105곳에 달했다. 다만, 이 이 수치는 올 1월 초에 있었던 예비소집 참석자 기준이어서 실제 입학생 수치는 소폭 달라질 수 있다. 

전남은 올해 신입생이 ‘0인 학교가 33곳에 달했다. 분교(19)뿐 아니라 본교 14곳도 1학년을 받지 못했다. 특히 17개 학교는 두 해 연속 신입생이 없었다. 군 별로 보면, 신안군이 5곳으로 가장 많았고 진도군과 보성군이 각각 4곳이었다. 전남은 지난해에도 40개 초교가 입학식을 열지 못했다. 

경북은 의성북부초상운초 등 23개 초등학교가 신입생을 받지 못했다. 입학생이 1명이어서 나홀로 입학식을 치러야 하는 학교도 23곳이었다. 강원은 17곳이 신입생 ‘0이다. 분교 11곳을 포함한 수치다. 강원 소재 초교 중 19곳은 지난해에도 신입생이 한 명도 없었다. 이밖에 충남과 경남은 각각 11, 충북 6, 전북 4곳이 올해 입학식을 열지 못한다. 이 수치는 향후 지역별 전입전출 여부에 따라 일부 달라질 수 있다. 

신입졸업생 없는 학교, 시차 두고 폐교 수순

학교 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도 신입생이 ‘0인 초등학교는 120곳이었다. 또한 신입생이 한 명이어서 나홀로 입학식를 치른 학교는 135곳이었다. 익명을 원한 지방교육청 관계자는 신입생과 졸업생 수치는 폐교의 바로미터라며 신입졸업생이 없는 학교는 대부분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휴교나, 분교 격하, 통폐합의 수순을 밟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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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멸은 가까이 와 있고, 학교는 힘이 없다"...폐교 패배감 지울 해법은[4500km 폐교로드⑩‧] 중앙일보 입력 2023.01.24 15:00 업데이트 2023.01.24 15:59 김태윤 기자 

서울이나 대도시에선 폐교에 대한 지방의 무력감과 좌절감, 패배감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과밀 학급을 걱정하는 판에 폐교는 딴 세상 얘기겠죠. 현재 각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폐교 관련 대책도 한 마디로 언 발에 오줌 누기입니다. 교육 현장에서 20여년간 지켜본 솔직한 심정은 답이 없다입니다.”(A 지방 교육지원청 교육장) 

교사나 교직원 자녀를 위장 편입시키고, 마을 할머니를 신입생으로 모셔 와서라도 학교를 유지해야 할 만큼 절박한 소규모 학교가 너무 많습니다. 교사들과 지역민의 열정과 헌신으로 버티는 학교도 있지만 한계가 있죠. 취학 구역을 자유롭게 해 큰 학교에서 작은 학교로 다닐 수 있게 하는 정책도 결국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에 불과합니다.” (B 초등학교 교장) 

폐교, 20년 지켜본 솔직한 심정은 답이 없다’”

농어촌에서 학교는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합니다. 지역민들이 장학회를 만들고 교육청에 빌다시피 해 폐교를 막으려는 것도 그 때문이죠. 지난 수십 년 동안 폐교나 통폐합만은 막으려고, 아니 늦춰보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백약이 무효입니다. 지방 소멸은 너무 가까이 와 있고, 학교는 힘이 없기 때문이죠.” (C 초등학교 교장) 

지방 대학에 대한 권한을 중앙에서 지방 정부로 이양한다고 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초고입니다. 지방 대학은 경쟁력이 없어 학생이 없는 것인데, 고는 사람(학령인구) 자체가 없어 문을 닫는 것이잖아요. 정부가 정말로 교육 개혁을 하려면, 중등 폐교 현실을 직시하고 그에 맞는 혁명적인 정책을 내놔야 합니다.” (D 지방 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출처

https://www.joongang.co.kr/search/news?keyword=%ED%8F%90%EA%B5%90%EB%A1%9C%EB%93%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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