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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31일 수요일

일본 예술가 4,317명이 서명했다는 성명서

일본 예술가 4,317명이 서명했다는 성명서
“일본 예술가들도 추도비 철거 반대를 요구하는 4300여명의 서명지를 모아 지난 26일 군마현에 제출했다.”는 문장(한겨레신문 김소연 특파원의 기사, 2024년 1월 30일자, <가림막 치고 ‘강제동원 추도비’ 철거…한마디 못하는 윤 정부>에 나오는 문장)을 단서로 어떤 예술가들이 어떤 서명을 받았는지 찾아보았습니다. 총 4,317명의 예술가들이 서명했다는 그 성명서(일본 표현으로는 要望書)에 나오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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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사를 비롯한 현청·현 의회·현 직원 여러분이 꼭 인식해 주셨으면 하는 것은, 이 비의 사회적, 역사적 중요성입니다.
이 비는 역사·정치·문화·커뮤니티의 연결과 합의 하에 세워졌습니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 중 일본 정부·민간에 의해 당시 '일본인'이었던 조선인을 대상으로 강제적인 노동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은 차별, 살상, 학대, 병사, 사고사 등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희생되었습니다. 그들을 추도하는 비석은 도치기현, 나가노현, 미에현, 나라현 등 다양한 지역에 있습니다.
당시, 군마현 내에는 광산이나 군수 공장이 많이 있었습니다. 징병된 일본인들을 대신하여 노동하고 이 땅에서 몰린 많은 조선인 사람들의 위령과 추도를 위해 기념하는 비석이 ‘군마의 숲’에 있는 필연성이 있는 것입니다.
'협화사업기구조協和事業機構調'(1943년 3월)에 따르면 군마현 19지회의 조선인은 5467명으로 동원 강화로 반년에 약 6000명이 증가하고 1943년 말에는 1만2000명 정도가 되었습니다. 또, 지사사무인계서知事事務引継書(1944년 2월)의 기재에 따르면, 나카지마 비행기 고이즈미 공장에는 1943년 12월에 조선인 20명이 징용徴用된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아래는 비석에 새겨진 문장입니다. 어쨌든, 이 기억과 뜻을 지우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 사실과 함께 살아 미래 세대에 대해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우리는 한때 우리나라가 조선인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의 사실을 깊게 기억에 남기고 진심으로 반성하며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결의를 표명한다.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고 새로운 상호 이해와 우호를 깊게 해 나가고 싶어 여기에 노무동원에 의한 조선인 희생자를 진심으로 추도하기 위해 이 비를 건립한다. 우리의 추억을 차세대로 이어주아 아시아의 평화와 우호의 발전을 바라는 것이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grU6MD8tVcO_zbzP6YRrO_mKzzgcdvaJ9bbhkRTON8Njiow/view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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