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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9일 금요일

[우리 동네 랜드마크 모두의 도서관] 다문화 독일사회 지탱하는 이민자 프로그램 운영, 슈투트가르트 시립도서관(2024.11.27.)

 슈투트가르트 시립도서관

이은영 건축가, 1999년 설계 공모 선정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톱7 꼽혀
4개 층 하나로 연결된 서가 시선 압도
기후변화·민주주의 등 다양한 주제 토론
학교·유치원 찾아가 도서관 이용 교육
시가 구매한 작품 2000여점 시민에 대여

상상했던 것 그 이상.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립도서관을 찾았을 때의 첫 느낌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익숙했던 순백색의 도서관 내부는 훨씬 더 강렬했다. 슈투트가르트를 찾는 방문객들이 벤츠 박물관 등과 함께 꼭 찾는 핫플레이스인 도서관은 2013년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7곳 중 한곳으로도 선정됐다. 도서관 설계자는1999년 설계 공모전에서 23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선된 한국인 건축가 이은영. 도서관은 2011년 개관 이래 세계인의 발길이 이어지며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있다.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을 나와 10분 정도 걸어가면 흰색 정육면체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외관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세계 유명 도서관들과 달리 직선적이고 단순해 보이는 건물 앞에 서면 잠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하지만 텅 비어 있는, 높은 층고의 출입구를 지나 4개층이 하나로 연결된 순백색 갤러리 형식의 서가와 열람실에 들어서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도서관을 찾아간 날은 공간 정비를 위해 수 개월간의 휴관을 끝내고 다시 문을 여는 날이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도서관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도서관의 방문객은 하루 5000여명, 주말에는 7000여명에 달한다.

현재 도서관이 들어선 지역은 공장 지대였다. 시 외곽으로 공장이 옮겨가면서 낙후된 지역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고, 기존 도서관 역시 협소했던 터라 넓은 부지에 대형 도서관을 짓자는 의견이 대두됐다. 죽어가는 지역을 살리는 의미도 있었는데 도서관이 건립된 후 쇼핑센터, 거주공간 등이 들어서면서 목적은 달성됐다.

“도서관은 동기 부여, 문화적 자극을 받는 장소입니다. 기본적으로 교육이나 직업을 위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건 사람들이 도서관을 ‘나라는 인간이 계속 성장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곳’이자, ‘나에게 집중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곳’으로 여겼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도서관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 카틴카 에밍거 관장은 “우리 도서관을 설계해 준 나라에서 오신 분들을 만나 반갑다”며 환대했다.

도서관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다채롭다. 특히 시민들과 학자들이 함께 토론하고 소통하는 프로그램에 관심을 기울이는데, 기후변화와 민주주의, 문학, 음악 등 다양한 주제들을 통해 시민들의 성장을 돕는다.

독일은 난민문제를 포함해 이민자 관련, 다양한 정책을 운영중이다. 슈투트가르트 도서관 역시 다문화 독일 사회를 서포트하기 위해 이민자들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자신의 모국어인 고향의 언어로 뿌리를 알아가고,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도서관을 방문하는 이민자들이 안정감을 느끼며 배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다양한 언어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으며, 독일어 등 현지 적응을 돕는 언어 교육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공부 자동차(Lernmobil)’는 눈길을 끄는 기획이다. 학습 의욕은 높지만 컴퓨터 등 장비가 부족한 난민이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위해 캠핑카에 컴퓨터, 인쇄기 등을 싣고 요일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 찾아가 사서들이 직접 학습을 도와주는 프로젝트다. 또 다양한 악기를 대여해주는 프로그램은 많은 이들에게 인기가 있지만 특히 이민자들의 호응이 높다. 고향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전통 악기를 빌려 연주하거나 지인들과 합주하면서 향수를 달래기도 한다.

노년층을 위한 기획도 많다. 지역 IT 단체와 결합해 2~3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인터넷, e북 사용법 등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을 상시 진행하며 큰글자책도 최대한 소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낭독회’는 도서관의 대표 행사다. 라디오 등에서 활동하는 전문 낭독자가 참여해 노인들이 사랑했던 대표 작품들을 낭독하는데 인기가 많다.

책을 읽는 기쁨을 전달하기 위해 어린이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것도 의무라고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은 다양한 매체에 노출돼 책이나 도서관과 친해질 기회가 적고, 그만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역 유치원, 도서관과 긴밀한 협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도서관은 수동적으로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접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과 대면한다. 최근에는 독일 학교 시스템의 변화로 종일제가 늘어나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적극적으로 학교를 찾아간다. 특히 도서관은 어린이들이 직접 참여해 그림책을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며 아카이빙된 그림책은 다른 어린이들에게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은 회화, 디자인, 사진 작품과 도록, 관련 논문 등의 문화예술 컬렉션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진행하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게 작품 대여다. 시가 구입한 2000여점의 지역 작가 작품을 한달에 2유로의 비용으로 개인, 병원, 기관 등에 대여해주며 큐레이팅도 직접 해준다. 또 1층 갤러리에는 슈투트가르트의 문학적 유산에 경외심을 표현하는 작품을 전시하는데 국내외 작가들 중 ‘언어’를 영상으로 표현한 작품을 주로 선보인다.

3대 관장인 카틴카 에밍거씨의 미션은 팬데믹 시기를 잘 견디는 것, 그리고 위기가 끝난 후 사람들을 다시 도서관으로 연결시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도서관의 역할에 대해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이어간다.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은 19개 지역도서관과 책을 대여해 주는 2대의 도서관 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3개월에 한 차례 전 지역 도서관 관계자들이 모여 전체 시립도서관의 성격에 만든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각 지역 인구 분포 등을 고려해 자체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도서관은 두 가지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여러 사람이 어우러지는 만남의 광장의 역할입니다. 사회 계층, 경제적 여건과 관계 없이 누구나 항상 편안한 마음으로 갈 수 있고, 그곳에 가면 나를 환영한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또 하나는 고요한 공간이라는 개념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가정이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도시 안에서 고요히 공부할 수 있는, 자기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 이게 도서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드웨어(도서관 건물)와 소프트웨어(프로그램)가 어우러질 때 도서관은 더 힘을 발휘한다.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의 경우 현대적인 건축이 젊은 세대를 다시 도서관으로 끌어들이며 젊은이들의 방문이 대폭 늘었고, 치매를 앓고 있는 가정을 위한 교육 등 지역사회 삶에서 필요한 것들을 포착해 프로그램을 진행해 인기가 높다.

카틴카 에밍거 관장은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동료(직원)’를 꼽았다. 결국 모든 프로그램은 직원들에게서 나오기에 빠르게 변화하는 지역사회에 맞춰 그 변화를 빠르고 유연하게 수용하는 능력을 갖춘 직원들이야 말로 최고의 자원이라는 설명이다. 더불어 여러 민족, 언어권의 사람이 더불어 사는 현대 사회에서는 국제적 관점을 놓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도서관이 외부 기관이나 단체, 시민들에게 ‘열린 마인드’를 가져야 도서관의 프로그램이 훨씬 더 풍부해진다고 강조했다.

슈투트도서관에서 인상적인 곳은 출입구다. 높은 천장 아래 백색의 텅빈 공간. 조만간 이곳에 건축가의 의도대로 분수가 들어서면 유리 천정 위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과 여백을 만들어내는 공기와 물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완성될 것이다.

/글·사진=슈트트가르트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http://m.kwangju.co.kr/article.php?aid=173266200077673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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