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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25일 토요일

꽃밭에 물을 주는 마음을…

<모래시계 古今- 5.28> 1989년 5월 28일 오후 1시 30분 경, 장소는 연세대 도서관 앞. 건너편의 학생회관 안쪽에 있던 사람들이 플래카드를 펼치면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바로 그 때 핸드마이크를 든 한 사람이 선언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겨레의 교육성업을 수임 받은 우리 전국의 40만 교직원은 오늘 역사적인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의 결성을 선포한다. 오늘의 이 쾌거는 학생, 학부모와 함께 우리 교직원이 교육의 주체로 우뚝 서겠다는 엄숙한 선언이며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 실천을 위한 참교육 운동을 더욱 뜨겁게 전개해 나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민족과 역사 앞에 밝히는 것이다."

핸드 마이크를 든 채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던 이는 윤영규 당시 전교조 위원장.
서울의 주요 대학이 전경들에 의해 이미 봉쇄된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거행할 수밖에 없었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결성식 장면이다.

  
 ▲ 지난 89년 전교조 강원지부 속초지회 개소식 장면.
사진 출처: 전교조 속초.고성.양양지회 홈페이지.
www.ktu-sokcho.or.kr ⓒ
 
 
한국의 교육노동운동은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본격화되었다. 숱한 해고와 투옥의 탄압이 있었지만 이것을 이겨내고 마침내 노조를 결성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노태우 정권은 전교조를 불법으로 규정하였고, 노조에 가입한 교사들에게 탈퇴를 요구했다. 그리하여 1500여 명의 '선생님'들이 해직의 길을 택했다.

이후 김영삼 정권 때인 1994년 1491명의 선생님들이 복직했고, 1999년 7월 합법화되었다.

그리고 2002년 4월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는 전교조 해직교사들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함으로써 전교조 해직교사에 대한 역사적인 명예회복도 이루어졌다.

전교조의 역사를 이렇게 몇 줄로 줄일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몇 줄로 줄여 쓰게 된 기록이지만, 이 기록 속에는 선생님들과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결성된 지 오늘로써 13돌.

십여 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전교조가 교육 개혁과 사회 개혁을 위해 이루어낸 것도 적지 않다. 그러나, 오늘 전교조 앞에 놓인 과제도 결코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교육 현장에도 불어닥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선생님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교육 현장은 교육의 민주화를 이룸으로써 공교육을 지켜내고자 하는 선생님들과 이런 선생님들의 열망과는 상관없이 교육 시장화의 정책을 추진하려고 하는 이들 간의 치열한 대결장인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도 계속해서 '선생님'의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투쟁의 행진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묻는다. 아, 언제 우리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나 하고. 언제 조기 유학, 교육 이민이라는 광풍(狂風)이 잠잠해질 수 있겠는가 하고. 언제 교육재정이 충분하게 마련되고, 언제 사학비리를 근절시킬 수 있는 사립학교법이 만들어지려나 하고. 언제 자라나는 아이들이 입시 경쟁에서 벗어나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를 맘껏 배울 수 있게 되느냐고.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시집 한 권을 다시 꺼내어 읽는다. 1989년 12월 당시 전교조 광주시지부 편집실의 손동연, 최승권 두 분이 펴낸 <교과서와 휴전선>이라는 시집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 가운데 김시천 선생님의 '아이들을 위한 기도'를 읽어본다.



당신이 이 세상을 있게 한 것처럼
아이들이 나를 그처럼 있게 해주소서
불러 있게 하지 마시고
내가 먼저 찾아가 아이들 앞에
겸허히 서게 해주소서
열을 가르치려는 욕심보다
하나를 바르게 가르치는 소박함을
알게 하소서
위선으로 아름답기보다는
진실로써 추하기를 차라리 바라오며
아이들의 앞에 서는 자 되기보다
아이들의 뒤에 서는 자 되기를
바라나이다
당신에게 바치는 기도보다도
아이들에게 바치는 사랑이 더 크게 해주시고
소리로 요란하지 않고
마음으로 말하는 법을 깨우쳐 주소서
당신이 비를 내리는 일처럼
꽃밭에 물을 주는 마음을 일러주시고
아이들의 이름을 꽃처럼 가꾸는 기쁨을
남 몰래 키워 가는 비밀 하나를
끝내 지키도록 해주소서
흙먼지로 돌아가는 날까지
그들을 결코 배반하지 않게 해주시고
그리고 마침내 다시 돌아와
그들 곁에 순한 마음으로
머물게 하소서
저 들판에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우리 또한 착하고 바르게 살고자 할 뿐입니다
저 들판에 바람이 그치지 않는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들의 믿음을 지키고자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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