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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9일 금요일

미네르바와 홍길동

가히 미네르바 사태다. 사태의 원인은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과 경제위기 대응이다. 백성들은 경제위기의 포탄을 온몸으로 맞으며 죽어가고 있는데, 핵폭탄이 터져도 정면으로 맞지만 않는다면 괜찮다고 하는 지하벙커에 상황실이 차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 최근에 정부 여당이 만들어내려고 하는 '사이버모욕죄'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제의 본질은 '표현의 자유'다. 나중에 그릇된 것으로 밝혀질 것이 될지언정, 예측도 못한단 말인가? 김종배 씨는 이 점을 지적한다. (김종배, '미네르바 체포 차라리 잘 된 일이다', 프레시안 기사) 사이버모욕죄가 만들어지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네르바 체포가 잘 된 일일 수 없다. 어찌 잘 된 일일 수 있는가. 그래서 누리꾼들은 심하게 반발하고 있다. 의적 홍길동을 지지하는 백성들의 마음이다. 고뉴스의 백민재 기자의 기사(미네르바 체포, 홍길동전이 현실로)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때, 팔도에서 다 길동을 잡아 올리니, 조정과 서울 사람들이 어찌된 영문인지를 아무도 몰랐다. 임금이 놀라서 온 조정의 신하들을 모으고 몸소 죄인을 다스리는데, 여덟 명의 길동을 잡아 올리니 그들이 서로 다투면서 말하기를, “네가 진짜 길동이지 나는 아니다”하며 서로 싸우니, 어느 것이 진짜 길동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려도, 말이란 물처럼 흐르고 벌레처럼 붕붕 날아다닌다. 유언비어(流言蜚語)는 그런 뜻이다. 위정자들은 옛부터 유언비어를 유포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유언비어는 유포하는 것이 아니라 유포되는 것이다.

 

경제를 비롯해서 우리 현실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판단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고, 그런 판단에 요구되는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 있는 한, 그리고 그런 판단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 한, 미네르바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미네르바는 홍길동과 같다.

 

 *그림은 신동우 화백의 홍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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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백민재 기자의 기사다.

 

 

“…이때, 팔도에서 다 길동을 잡아 올리니, 조정과 서울 사람들이 어찌된 영문인지를 아무도 몰랐다. 임금이 놀라서 온 조정의 신하들을 모으고 몸소 죄인을 다스리는데, 여덟 명의 길동을 잡아 올리니 그들이 서로 다투면서 말하기를, “네가 진짜 길동이지 나는 아니다”하며 서로 싸우니, 어느 것이 진짜 길동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친숙한 소설 <홍길동전>의 한 장면이다. 홍길동은 도술을 부려 허수아비로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홍길동을 만들었다. 결국 팔도에서 잡혀온 홍길동은 여덟 명이었다는 이야기. 그런데 이 <홍길동전>이 2009년 대한민국에서 그대로 재연될 판국이다.

‘인터넷 경제대통령’이라 불리던 논객 미네르바가 잡혔다. 그런데 이 사람이 미네르바인지, 미네르바가 한 사람인지, 여덟 명인지, 도무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조정에서는 혹 미네르바의 허수아비를 잡은 것일까.

8일 검찰이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박모(30)씨를 인터넷에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긴급 체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네르바의 정체를 두고 온 인터넷이 들끓고 있다. 검찰이 밝힌 박씨의 신상정보와 그동안 알려졌던 미네르바의 신상정보가 전혀 다르기 때문.

지금까지 미네르바는 해외 체류 경험이 있는 증권맨 출신의 50대 남성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는 지난해 정보당국 관계자의 입을 통해 알려진 내용이다. 그런데 막상 검찰은 30세의 무직 남자를 잡아들였다.

월간 <신동아>는 지난해 12월호에 미네르바의 기고문을 싣기도 했는데, 그는 “증권사에 근무한 적이 있고 해외체류 경험도 있다. 그러나 나이에 대해서는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체포된 박씨의 출입국 관리 기록을 살펴봤지만 외국에 나간 경험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난해 11월에는 ‘미네르바의 지인’이라고 밝힌 네티즌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경제학 교수라고 밝혔으며, “최근 지인을 통해 K라는 사람이 미네르바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글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그는 이 글에서 “30년도 더 넘은 오래전 추억”이라며 70년대 학창시절과 해외 체류 당시의 ‘미네르바’를 회상했다. 그러나 검찰이 잡아들인 사람은 70년대 학창 시절은커녕 79년에 태어난 사람이다.

미네르바는 현 경제 상황과 외환시장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한 바 있다. 그의 예측은 맞아 떨어졌고, 수많은 경제 전문가들도 미네르바의 글을 보고 현장 경험이 풍부한 경제 전문가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체포된 박씨는 금융기관나 증권사에서 일한 경력이 전혀 없으며, 심지어 전문대 시절에도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저 독학으로 경제를 공부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니 네티즌들의 의혹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미네르바의 정확한 시장분석과 예측이 과연 독학으로 가능하냐는 의문부호가 이어진다. 벌써부터 일부에서는 “그 사람이 미네르바라면 나는 워렌 버핏이다”, “엉뚱한 사람을 잡아들여 미네르바로 몰고가는 것 아니냐”라며 검찰 발표를 믿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박 씨는 검찰 조사에서 “내가 미네르바의 이름으로 올린 글은 모두 썼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믿지 않는 분위기다.

검찰이 진짜 미네르바를 잡아들였다고 해도 논란은 남는다. 결국 30세 무직자의 글에 온 나라의 경제 전문가들과 증권가 애널리스트, 정부 부처 관료들이 한바탕 소동을 벌인 셈이다. 그들 중에는 유명대학의 학위를 딴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굴욕이라는 단어가 이처럼 잘 들어맞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인터넷에 경제 전망과 예측을 한 것이 과연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것. 또 “미네르바 주장이 일부 틀렸다고 하더라도, 소통의 한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 앞으로 사회전반의 모든 예측은 틀리면 다 잡아간다는 뜻이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벌써부터 온라인에서는 ‘미네르바 석방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현재 검찰은 혹시 다른 미네르바가 있는지 여부를 수사하는 한편, 미네르바가 사용한 다른 IP 주소에 대해서도 계속 추적하고 있다. 조정은 무능하고, 백성은 고통 받는데 잡아온 홍길동이 진짜인지도 모르는 기막힌 상황. ‘돌아온 일지매’도 아닌 ‘돌아온 홍길동’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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