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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6일 월요일

꽁치구이와 인문학

제목이 우선 눈에 확 들어왔다. 백원담 교수의 글이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참담한 상황에서 사회와 인간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올바른 가치 지향의 제시를 본분으로 하는 인문학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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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151829415&code=990509

 

(경향신문 2009.03.16)[경향포럼]꽁치구이와 인문학

 

우리 동네엔 꽁치구이가 유별난 밥집이 있다. 그 집 꽁치는 파랗고 탱탱한 살집이 일품으로 출출한 발길이 그 구수한 유혹을 떨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런데 열흘 전 일이다. 자르르 맛깔난 꽁치구이 한 점을 막 집어들려는데 좀처럼 술을 입에 대지 않던 아줌마가 반쯤 남은 소주병을 들고 와 잔을 권하며 탄성처럼 말을 토한다. “돈벼락 좀 맞았으면….” 들어서면서부터 건장한 어깨의 아저씨와 대거리하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더니 이어지는 아줌마의 한숨소리. “우리 같은 사람 은행에서 돈 빌려주나. 사채를 썼거든요. 두 몸뚱어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면 되지 싶었는데, 가게를 반으로 줄였지만 턱에도 안 차네요.”

성찰과 참 삶 제시해야할 인문학

며칠 후 걱정스러움에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저씨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 어깨는 아줌마를 찾아내라며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해결해야 한다고 협박이니 차마 앉아있기가 불안한 지경이다. 나보다 대여섯 살 아래쪽인 이들 부부의 삶은 고단하기 짝이 없다. 때로 후줄근하게 들어서면 어김없이 그 멋진 꽁치구이로 오랜 친구보다 가깝게 일상의 무게를 나누어 지던 이들과 어느새 칠년지기가 되었건만 돌아오지 못하는 아줌마는 어디서 이 차가운 봄비를 홀로 맞고 있는지.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해도 가족이 생이별을 하고, 생존조차 어려운 곤경은 비단 이들만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우리 사회의 만연한 병고, 보편적 피해양상이다. 최근 용산의 참사는 그 극명한 표현일 것이다. 노동의 유연화라는 미명으로 불완전고용을 당연시하는 신자유주의의 전횡에 일자리를 잃기 무섭게 개발주의의 광풍에 평생의 업을 강제몰수 당하는 상황에서 결국 가파르게 선 곳이 건물옥상이라는 사실. 거기서 국민의 생존권을 보호해주어야 할 공권력의 탄압으로 죽음을 맞은 사회적 타살의 참상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의 오늘의 처지를 절박하게 타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참담한 상황에서 사회와 인간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올바른 가치 지향의 제시를 본분으로 하는 인문학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오늘의 사회와 대학에서는 고고한 인문학자가 아니라 ‘교양 있고 조리 있는 제너럴리스트’에 대한 수요가 더 크다. 인문 가치, 인문학적 상상력, 이런 것들은 경제의 문화화 과정에서 이윤창출을 높여주는 고감도 광고카피 혹은 문화 콘텐츠산업에서 상품가치로만 효용될 뿐이다. 그야말로 인문학의 존립과 인문학자의 생존 자체도 어려운 실정이다.

참담한 현실서 인문학은 어디에

그러나 TV 드라마조차 사람들에게 꿈을 꾸어라도 보라고 말하지 않는가. 인문학은 사회적 생존의 조타수로서 지배문화의 수동화논리에 끈질기게 대항하는 한편 돈벼락이 아니라 올바른 삶의 방향타를 제시하는 데 부심해야 할 것이다. 지루하게 책임공방을 조장하며 생존전선을 무력화하는 정부의 무도함과 무책임함을 날카롭게 적시해내고 사람들의 생존권과 생활권을 폭력으로 짓밟는 자본의 무한 전횡, 그것을 미화하는 안팎의 지배논리, 그 표상체계와 끈질기게 맞붙으면서 노동의 가치가 올바로 구현되는 희망의 사회상을 삶의 현장에서 찾아나서는 일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성찰과 희망의 인문학이 아니라면 그것이 삼삼히 밥상에 올라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는 꽁치 한 마리의 살점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백원담 | 성공회대·중어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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