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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23일 목요일

`책으로 아이들을 때려서는 안된다`

"책으로 아이들을 때려서는 안된다."

 

오늘 내 눈에 띤 한마디다. 이 말은 2009년 4월 23일자 경남일보에 실린, 경남도교육위원이자 경남일보 객원논설위원인 박종훈 씨의 칼럼 제목이기도 하다.

 

몇 해 전 '독서인증제'와 관련된 논란이 뜨거웠던 적이 있었다. 나도 독서인증제 반대 논의를 펼쳤다.

 

아이들에게 독서를 지도한다는 명목으로 책읽기를 '강제'하고자 하는 어른들의 생각은 무척 단순하다.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게 되면 좋은 거 아니냐"는 것이다. 무척 속편한 입장이다. 그런데 당시 많은 이들이 이런 주장을 펴는 것에 나는 놀랐다. 특히 교육부나 교육청 관계자 분들께서는 '교육'이란 '강제적 측면'이 있는 것이라고 전제하는 데 더욱 놀랐다. 교육철학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독서인증제란 철저하게 기능주의적 관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책을 읽도록 하겠다'는 생각이 너무 앞서서는 안된다. 또한 '어떻게 해서라도'라는 방법이 갖고 있는 무자비함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일선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독서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분들의 이구동성을 요약하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주고, 그런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책읽기의 즐거움에 빠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이상의 독서지도는 없다고 말한다. 계기적으로 적절하게 선생님들이 조금씩 조금씩 정말 '살얼음판 위를 걷듯'  아이들이 책의 세계로 이끌려 들어 오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정말 세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독서인증제는 '책으로 아이들을 때리는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말이 길어졌다. '일제고사'가 여전히 우리 교육현실의 문제일 터인데--일전에 경기도의 한 학교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교장 선생님의 표현을 옮기면, 일제고사는 학교 현장에 터진 핵폭탄이다-- 나는 일제고사(一齊考査)라는 말 자체가 싫다. '일제'란 곡식을 거두고 가지런하게 한다는 말인다. 이런 말을 하면서 21세기에 요구되는 창의력과 표현력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창의력과 표현력은 불쑥불쑥 나오는 것이다. 가지런해지지 않는 것이다. '고사'란 말은 쓸 만한 재목이 될 나무를 고르는 일이다. 그러니까 쓸 데 없는 것은 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제고사는 전혀 이 시대의 정신과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일제고사니 인증이니 하는 따위의 말부터 걷어치워야 한다.

 

 

 

아래는 박종훈 위원의 칼럼이다.

원문출처: http://www.gnnews.co.kr/?section=KNJI&flag=detail&code=21545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사진: 박형숙, 사진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78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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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아이들을 때려서는 안된다

박종훈(객원논설위원, 경남도교육위원)

 

최근 경남도교육청이 학생들의 창의력 및 표현력 교육을 강화하고, 종합적 사고 능력을 함양하기 위하여, 교육감 지시 사항으로 도내 전체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이른바 ‘독서인증제’를 시행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리 경남은 지난해 전국 학교 도서관 평가에서 대통령상을 비롯하여 전체 15개 중 반 이상의 상을 휩쓴 곳이다. 반면 통계 수치를 보면 경남은 전국의 평균을 밑돈다. 이런 여건에서 이렇게 상을 많이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학교와 교사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육청에서 시행하려는 이 사업은 도내 60만 명 학생들의 독서 과정과 그 문화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다. 2003년 이후 학교 도서관관 활성화 사업이 진행되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학생 독서 지도는, 사서 교사를 비롯한 관심 있는 교사들과 함께 전문가 그룹인 지역의 교수들이 마치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조심 진행해 온 사업이다. 누구도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들 전문가 그룹의 사회적 합의였다. 그런데 독서인증제의 일방적 강행으로 해서 지금까지의 전문가들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위기에 봉착했다고 이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독서인증제 시행은 일단 유보되어야
 
독서를 강제로 유도하면 책읽기의 자발성을 없애고, 학생으로 하여금 독서의 즐거움을 빼앗아 간다. 독서 활동을 학교 성적이나 진학 성적에 반영하는 것은 책읽기를 강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장치가 된다. 독서란 감성과 지성의 통합 작용으로서 독자 개개인의 차이와 경험에 따라 다양한 소화 과정을 거치는 자율적 활동이고 그 과정에서 독자는 즐거움을 느낀다.

 
성과를 측정하기 위해 동원되는 독서 기록장, 독후 감상문, 이번에 동원되는 독서 인증제 등은 책읽기의 목적이나 독서 내용의 충실도보다 외형적 결과에 더 집착하는 제도이다. 얼마나 많은 학교가, 얼마나 많은 학생이, 얼마나 많은 독서량과 같은 데이터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결국 외형적 실적위주의 독서 교육의 폐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가된다.

 
학교가 추천 도서를 자체적으로 선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학교는 그 위험을 줄이기 위해 교육청이나 다른 기관의 추천 도서 목록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상업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도교육청이 필독 도서 10권을 선정하라는 공문은 아이들의 무한한 창의력과 사고력을 책 열권에 가두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또한 획일화된 도서 선정은 출판 문화의 왜곡과 기형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고사 성적 조작 사태를 우리는 지켜보았다. 충분히 예견했던 일이기도 하다. 이미 인근 지역에서 시행된 독서인증제의 부작용으로 기록 부풀리기가 예상되고 있고, 이는 학생들에게 목적을 위해서는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는 또 하나의 거짓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백보 양보해 그 순기능을 인정한다손 쳐도 그 역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는 그 시행이 유보되어야 한다. 학생들의 독서 과정이나 결과를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좋은 일이고 이는 칭찬할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측정이 학생들의 독서 과정이나 결과를 왜곡시킨다면 이는 아니함만 못하다.

 
입학 사정관 제도가 앞으로 도입되고, 독서 이력철이 그 사정의 중요한 요소가 될 때를 대비할 필요는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언급한 그 심각한 부작용에 대한 준비 없이 이 사업이 어설프게 시행되어서는 안 된다. 단위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시행하게 하고 이를 권장할 수는 있어도, 그 실적을 의무적으로 보고하게 하는 지금의 교육청의 입장은 대단히 위험하고 무책임한 행위이다.

 
 
의견 맞서는 부분 설득·합의 이끌어야

 
교육청은 이 사업이 지니는 순기능과 불가피성을 투명하게 펼쳐 놓고, 전문가 그룹은 이 사업이 지니는 문제점과 역기능을 내놓고서는 모두가 모여서 토론을 할 것을 제안한다. 의견이 맞서는 부분에서는 상대를 설득하고, 필요하면 타협도 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Write : 2009-04-23 09:30:00   |   Update : 2009-04-23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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