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09년 8월 11일 화요일

길과 주막

아침에 전자우편함을 열어보니 '다산연구소'에서 허시명 선배의 글을 보내왔다. 반가웠다. 얼굴을 뵌 지 오래 된 만큼이나 반가웠다. 제목은 '길은 흩어짐이요, 주막은 만남이라'이다. 오랜 시간 길 위에서 갖가지 이야기를 길어올리면서 살아온 '여행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글이다.

그런데 허 선배와 다산연구소는 어떻게 연결된 것이지?

 

 

------------------------------------------------------------

 

 


길은 흩어짐이요, 주막은 만남이라

                                                                        허 시 명(여행작가)

길의 속성은 흩어짐이다. 여럿이 길을 가다보면 끊임없이 흩어진다. 갈등을 제공하는 것은 갈림길이다.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이 길이 맞는가 저 길이 빠른가 시끄러워진다. 어찌 갈림길뿐이겠는가, 한 길을 가다가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흩어지고 종내에 혼자가 되고 만다. 그래서인지 길을 맹렬하게 걷는 도보꾼들 중에는 혼자 사는 사람이 많다. 결혼했더라도 제갈 길 가듯이 흩어지고 만다.

다산의 남도 유배길, 지금은 멋진 여행길


지난봄에 다산 유배길을 걸었다. 서울에서부터 걸어야 마땅하지만, 강진에서부터 걸어 영암으로 넘어왔다. 문화부에서 추진하는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의 후보지로 오른 다산의 남도 유배길을 실사하기 위해서였다. 먼저 다산 초당에서 백련사까지 걸었다. 동백숲이 좋은 산고개를 하나 넘으니 백련사가 있었다. 남도의 활엽수림 속을 걷는 것도 좋지만, 다산과 혜장선사가 나눴을 얘기가 묻어있는 것 같아 좋았다. 800m밖에 안 되는 구간이라, 가족이나 학생들이 무리지어 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나 또한 이 길에 매료되다보니, 다산의 유배길이 적막하고 슬픈 길이 아니라 아름답고 싱그러운 길로 여겨졌다.

다산의 유배길의 주요 구간은 강진읍내의 동문주막에서 다시 시작된다. 동문주막은 다산이 강진에 유배되어 왔을 때 처음 4년 동안 머물렀던 공간이다. 유배지 치고는 아주 멋들어진 공간이다. 자취도 없으리라고 여겼던 동문주막이 뜻밖에 복원되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동문주막에 들어서니 마당에 대나무 평상이 놓였고, 마당 안쪽에 표주박이 떠있는 우물이 있었다. 우물물로 목을 축이고 돌아서니, 다산이 머물렀던 주막 뒷방 사의재(四宜齋)가 눈에 들어왔다. 사의재 방안은 다산이 책을 읽다가 잠시 마실 나간 것처럼 갓과 흰 도포가 벽에 걸려있고 앉은뱅이 책상에 책들이 정연하게 놓여있었다.

길은 흩어짐이지만, 길 위에 있는 주막은 만남이다. 길을 걸을 때는 흩어짐을 각오해야 마음 편하고, 주막에 들어설 때는 뒤섞이는 것을 마다지 않아야 마음 편하다. 주막거리가 번성했던 시절에 산 밑이나 나루터에는 주막이 있었다. 함께 모여야 떠날 수 있고, 함께 가야 안전하기 때문에 주막에서 기다렸다 다시 길을 떠났다. 그런 점에서 주막은 통합의 철학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통합은 이성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감성의 울림이 있어야 한다. 그 울림에 군불을 떼는 것이 술이다. 앞뒤로 흩어져 걷던 우리 일행도 대나무 평상에 앉아 두부 한모와 막걸리 한잔으로 마음을 모을 수 있었다. 다산도 유배지에서 갈갈이 흩어졌던 마음을 동문주막의 술 한 잔으로 추슬렀을 것이다.

다산 유배길은 남도 여행길이다. 무위사에서 차밭을 지나 월남사지에 이르는 길도 좋지만, 강진에서 영암으로 넘어가는 월출산 누릿재길은 또 다른 울림이 있었다. 영암에서 강진으로 넘어가는 지름길로, 제주 유배길에 올랐던 송시열도 넘었고, 해남 가는 윤선도도 넘었던 길이다.

갈라지기만 하는 길들, 주막도 두고 술도 갖다 놓아야


인적이 끊기고 옛길의 흔적도 희미해, 우리 일행은 누릿재 밑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이 옳은지 한바탕 옥신각신했다. 갈림길에서 제 길이 옳다고 우길 때는 대책이 없다. 각자 가봤다면서 우길 때면 더더욱 난감해진다. 이런 갈등이 빚어질 때, 우리 사회는 나이가 많거나 목소리가 큰 사람이 선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우리는 경험이 많은 사람쪽에 줄을 서서 제대로 누릿재를 넘어 월출산의 웅장한 자태에 압도된 채 피곤한 줄 모르고 산을 넘을 수 있었다. 아하, 옛사람들이 길을 간다는 것은 산수를 즐기는 것이었겠구나, 퍽퍽한 고난 행군이 아니라, 우리 국토의 혈관 속을 떠도는 즐거운 나들이였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멋진 길이었다.

선도자가 경험이 많고 지혜로운 자가 되면 행복하다. 그런데 요즘은 돈 많은 사람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고, 돈되는 쪽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걷기 바람, 자전거길 내기, 강길 조성사업 등등 요사이 길내기 작업은 경험 많은 사람들이 내는 길이 아니다. 돈 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몰려가는 길이다. 길만 가다보면, 길만 내다보면 반드시 갈라지게 된다. 어디에 주막을 둘 것인지 고민하지 않으면, 그 주막에 감성을 울리는 한 단지 술을 갖춰놓지 않으면 민심은 갈갈이 흩어지고 만다. 

글쓴이 / 허시명
· 여행작가이자 술평론가
·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 저서: <조선문인기행>, <비주, 숨겨진 우리술을 찾아서>,
          <허시명의 주당천리>, <평생 잊을 수 없는 체험여행 40>,
          <맛이 통하면 마음도 통한다> 등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