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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5일 토요일

꿈에 대하여

꿈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설레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어느 분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서울에서 출발하여 파리에서 커피를 마시는 꿈을 꾸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게 아니라 차를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이 꿈은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는 거의 '몽상'에 가까운 것처럼 생각되지만, 전혀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차를 몰고 북한만 통과할 수만 있다면 파리가 아니라 남아프리카 끝에 있는 희망봉까지도 갈 수 있다. 대륙들은 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만 빼고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국적이라는 것을 지금처럼 '치사하게' 체크하지 않던 시대, 다시 말해 장구한 인류의 역사를 생각할 때 멀지 않은 과거에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일부러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가지 않았던 것뿐이다.

 

사계절 뚜렷하고 먹을 거 먹을 만큼 나오는 땅에 살고 있던 사람이 고단한 길을 나서게 되었다면 거기에는 무슨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무슨 큰 뜻을 품었거나 누군가의 엄한 명령을 받았거나. 이런 측면에서 보면, 조선시대 열하를 거쳐 중국에 갔다 온 이나, 일본 땅을 밟았던 조선통신사의 동선이란 오늘의 눈으로 보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의 인식의 지평이 지금 한반도의 남쪽에 살고 있는 이들처럼 '갇힌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튼 차를 끌고 서울을 출발하여 파리까지 갔다오는 것, 나도 해보고 싶다. 지금 내가 끌고 다니는 차는 2005년에 구입한 것인데, 출퇴근 때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출장을 많이 다니느라고 벌써 주행거리가 8만 킬로미터를 넘겼다. 서울에서 파리까지 많이 잡아도 1만 킬로미터니까 왕복 2만킬로미터, 주행거리만으로는 벌써 서울과 파리 사이를 네 번쯤 왕복한 셈이다. 왜 파리냐고 한다면, 별 이유는 없다. 대서양이 보이는, 유럽대륙의 어느 바닷가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생각을 우리 사회에서는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혹은 정파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문제다.

 

아들 녀석의 꿈은 얼마 전까지 축구선수였다. 그러다가 최근에 그 꿈이 탐정으로 바뀌었다. 왜 그럴까. 그런 궁금증이 일면서도 한편으로는 옛날 우리가 자라던 때 대통령이니 과학자니 하는 거창한 꿈보다 그런 꿈 이야기가 나는 좋게 느껴진다. 탐정 다음에는 또 무엇이 꿈이 될까. 죽기 전에 아들 녀석하고 함께 차를 끌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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