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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2일 월요일

'이중처벌 금지 원칙'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의 블로그. 2010년 4월 12일자에 올린 글 '한명숙 무죄 판결과 검찰의 항소'라는 글을 읽었다. 이상돈 교수는 여기서 '이중처벌 금지 원칙'을 언급하고 있다.

 

이상돈 교수의 논지는 이러하다. (1)한명숙 전 총리 사건은 '사실'을 확정하는 것이 중요한, 전형적인 형사재판이다. (2)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입증할 책임은 검찰에게 있다. (3)독일식 형사소송법 체계를 따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1심 결과에 대해 검찰이 항소할 수 있다. 이것은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4)그러나 영미법에서는 1심 법원의 유죄판결에 대해 피고인은 항소할 수 있지만, 1심 법원의 무죄판결에 대해 검찰은 원칙적으로 항소할 수 없다. 이 원칙을 '이중처벌 금지 원칙'(double jeopardy rule)이라 한다. (5)검찰의 항소는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우리도 '이중처벌 금지 원칙'을 도입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한명숙 무죄 판결과 검찰의 항소

이상돈 (2010년 4월 12일)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해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미네르바, 정연주 전 KBS 사장, MBC PD 수첩에 이어 또 하나의 무죄판결이 내려졌으니, 한국 검찰은 깊은 바다에 침몰한 셈이다. 한국 검찰이 하는 일의 98%는 이 같은 ‘시국사건’과 관련이 없겠지만, 바로 2%(숫자가 아닌 상징적 의미로서 2%이다) 때문에 검찰의 신뢰가 회복할 수 없이 손상된 것이다.

미네르바, 정연주 씨, 그리고 PD 수첩 사건은 사실은 분명한 것이라서 나는 “어떻게 이런 사안을 기소하는가”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명숙 전 총리의 경우는 사실에 대해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전직 총리를 기소할 정도라면 검찰이 무언가 갖고 있지 않겠는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 과정을 지켜 본 사람이면 대체로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앞서 사건과 달리 한 전 총리 사건은 ‘사실’을 확정하는 것이 중요한, 전형적인 형사재판이었다.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입증할 책임은 검찰에 있다. 우리 법은 미국법과 마찬가지로 검찰이 ‘합리적 의심을 넘어선’(‘beyond reasonable doubt’) 유죄의 입증을 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고 반드시 확실한 직접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직접증거가 없더라고 여러 가지 정황증거로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이 의심할 여지가 없이 유죄라고 생각되면 법원은 유죄로 판결할 수 있다. 한 전 총리 사건에서 검찰은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한 전 총리의 무죄판결에 대해서도 검찰은 승복할 수 없다면서 항소를 했다. 독일식의 형사소송법 체계를 따르고 있는 우리나라에선 1심 판결의 무죄판결에 대해 검찰이 항소할 수 있으며, 이것은 헌법이 금지하는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미법에서는 1심 법원의 유죄판결에 대해 피고인은 항소할 수 있지만, 무죄판결에 대해 검찰은 원칙적으로 항소를 할 수 없다. 이 원칙을 ‘이중처벌 금지 원칙’(‘double jeopardy rule’)이라고 부른다. 검찰이 무죄판결에 대해 항소할 수 있는 경우는 법관의 부패 등으로 인한 재판무효(미국), 1심 판결 이후 새로운 분명한 증거가 나온 경우(영국) 등으로 국한되어 있다.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오면 사실상 사건은 종결되고 만다.

전처(前妻)와 그의 정부(情夫)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던 O. J. 심슨이 1심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곧 자유의 몸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검찰측 증인’(‘Witness for the Prosecution’)에선 무죄판결을 받은 주인공이 자기가 사실은 살인을 했다고 법정에서 자랑스럽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현실 세계에서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 장면이 영미식 이중처벌 금지 원칙을 잘 보여준다. 영미에서의 형사재판은 당사자주의에 입각한 배심재판이기 때문에, 1심 재판의 결과는 사실문제에 관한 한 최종재판과 같은 권위를 갖는 것이다. 또한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을 또 다시 항소심 법정에 세우는 것은 자체로서 인권을 침해하기 측면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미의 제도는 피고인에게 지나치게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이 항소한다고 해서 사실관계를 다투어서 무죄로 번복되는 경우도 드물다. 억만장자 상속인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살인죄 유죄판결을 받은 클라우스 반뷸로우가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이 그런 드문 경우다. (항소심에서 변호를 한 하버드 로스쿨의 앨런 더쇼비치 교수 덕분에 번복되었는데, 이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 ‘행운의 번복’이다.)

연이은 무죄판결에 대해 검찰이 승복할 수 없다면서 매번 항소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 우리도 영미식의 ‘이중처벌 금지 원칙’을 도입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검찰의 항소는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1심 재판의 신뢰성이 제고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1심 형사재판을 보다 경험 많은 법관이 다루도록 하겠다는 법원 개혁안이 대법원에 의해서 나와 있는데, 그렇다면 이에 부응해서 검찰의 항소도 제한해야 마땅하다. 검찰의 무조건적 항소로 인해 1심 법원, 항소법원, 그리고 대법원에 의해 무죄판결을 세 번 받아야 비로소 완전한 무죄가 되는 우리의 풍토는 바뀌어야 한다. 무죄판결에 대해 항소할 수 없게 되면 검찰도 보다 확실한 증거를 갖고 1심 재판에 임하게 될 것이다.

(c) 이상돈


(*강조는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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