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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30일 월요일

"이런 제도를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중앙일보>의 2010년 8월 30일자 기사. 이원진 기자의 보도다. 기사 제목은 '독서이력철 관리 돈 된다, 사교육시장 들썩' 독서이력철과 관련된 내용이다. 기사 가운데 학부모 이모씨(46)의 인터뷰 내용이 바로 "이런 제도를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학생 독서교육지원시스템, 내달 시행 앞두고 벌써 부작용

 

#. 맞벌이 주부 박모(37·서울 양천구)씨는 요사이 초등 6학년인 아들의 독후감 문제로 고민이 생겼다. 9월부터 아들이 읽은 책의 독후감을 인터넷에 등록해야 특목고 입시나 대입 때 유리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퇴근이 늦어 일일이 독후감을 지도해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걸 베껴서 올릴 수도 없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독후감 때문에 또 학원에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S독서논술학원은 1년 반을 기다려야 등록이 가능할 정도다. 대기자만 100여 명이다. 이 학원은 교육과학기술부가 도입한 초·중·고생 대상 ‘독서교육지원시스템’ 때문에 기대 밖의 호황을 맞고 있다. 이 학원에서는 책을 읽고 독후감이나 논술을 쓰게 한다. 대치동 I학원은 최근 독서이력철을 관리하는 초등생 대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엄마들의 요구 때문이었다. 대치동 H독서논술학원장은 “대형 학원은 물론 소규모 보습학원에도 독서이력을 관리하고 독후감까지 대필해주는 상품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교과부가 다음 달부터 전국 초·중·고생 745만 명을 대상으로 도입하는 ‘독서교육지원시스템’(www.reading.go.kr)이 또 다른 사교육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제도는 학생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길러주고, 읽은 책의 목록과 독후감을 인터넷에 기록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부에 찌든 학생들에게 책을 많이 읽게 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주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부산시교육청이 2004년 이 제도를 시행해 호평을 받자 교과부가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키로 한 것이다. 초·중·고생들은 인터넷에서 회원 등록한 뒤 자신의 독서 내용을 입력하면 된다. 독후감 분량에도 제한이 없어 글쓰기 연습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특목고나 대입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독서이력이 주요 반영 요소로 활용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초등학생부터 스펙 관리에 들어가는 등 벌써부터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서학원을 찾는 발길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제도 자체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독서이력철 관리는 투명성이 생명이다. 실제 학생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학부모나 학원 강사가 대필을 해도 확인할 방법이 없고, 입시에서도 이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학부모 이모(46)씨는 “학원이나 부모가 대신 입력하고 아이에게 나중에 외우도록 하자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제도를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행 당시부터 14개 대학과 대입에 독서이력을 활용한다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부산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이 때문에 2005년 전국학교도서관 교사모임 등 17개 시민단체가 모여 부산시교육청에 항의를 하기도 했다.

교과부는 일단 시행과정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안명수 학교운영지원과장은 “입학사정관제의 교과 외 활동을 보강하려 ‘창의적 체험활동 종합지원시스템’(www.edupot.go.kr)에서 체험학습보고서를 인터넷으로 누적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가장 주요한 활동으로 독서이력철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제로 책을 읽게 하는 게 아니라 권장하려는 것인 만큼 입학사정관 연수 등을 통해 책 숫자나 독후감 양보다는 면접과 토론을 통해 책이 학생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중점적으로 평가토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입학사정관에게 익숙한 소위 ‘전시용’ 고전에만 쏠림 현상이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숭문고 허병두 교사는 “정부가 강요하는 획일적 독서교육이 학생의 자생적이고 다양한 독서활동을 막는다는 걱정이 국어교사들 사이에 팽배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입학사정관이 좋아할 독서목록이 이미 정해져 있어 독서교육이 그 길로 고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독서기록이 입시와 연관돼 그대로 노출되면 학생들이 향후 독립적 사고를 하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원진 기자
[jealivr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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