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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5일 화요일

독서이력제에 대하여

조선일보 2011년 3월 13일자 '맛있는공부' 기자인 조찬호 기자의 기사, 독후감 대필·짜깁기··· 빗나가는 '독서 이력제'

변칙 독후활동 속출··· 실효성 논란
인문·사회 등 작품 따라 차등 점수
독서 편중 부추기는 부작용 나타나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온라인상에서 독서 이력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한 독서교육지원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각종 편법이 활개치고 있다. '초·중·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고 컴퓨터상에서 다양한 독후활동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도입 취지이지만, 현실에서는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대리 입력할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거나 학원 등 사교육을 통해 이를 관리하려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숨 가쁘게 내달리는 바람에 책 읽을 틈 없는 자녀를 위해 엄마가 나서는 경우도 흔하다. 어린이 책 시민연대 변춘희 대표는 "학부모들을 만나보면 아이 대신 책도 읽고 독후감도 써줘야 할 것 같아 또 하나 짐이 생긴 것 같다는 고민을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독서 이력제 믿을 수 있나?
경기도 양평의 고등학교 국어교사 C씨는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든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말 생활기록부에 독서 이력을 입력하기 위해 반 학생들에게 한 해 동안 읽은 책 중 한 권을 골라 독후감을 쓰도록 했다.

"과학에 전혀 관심이 없던 아이들 4~5명이 천문학 관련 독후감을 썼는데 '천문학에 관심이 많아 이 책을 읽고 천문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으며…'라며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내용을 가져왔더군요."

학생을 불러 물었더니 인터넷에서 짜깁기한 것이라고 했다. 이들 외에도 절반 이상의 독후감이 인터넷을 뒤져 서평을 베끼거나 다른 사람의 글을 그대로 퍼온 것이었다. C 교사는 "국어과 교사도 아이들이 읽은 책을 모두 읽어보기란 쉽지 않은 현실에서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독서지원시스템은 등록된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있으면 누구든지 로그인해 활동 기록을 입력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입력한 내용은 담임교사가 읽고 승인하면 기록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대필의 가능성이 있는 데다가 짜깁기한 글을 걸러낼 검증 시스템도 부족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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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력, 입시 반영도 미지수
교과부는 독서 이력을 입시에 반영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얼마나 반영될지도 미지수다.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 안찬수 사무처장은 "독서는 지극히 사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행위인데 이를 정량화 해 평가하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입학사정관들도 '면접에서 논리성이나 어휘의 선택 등을 통해 굳이 독서 이력을 점검하지 않아도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며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 입학처장은 "지난해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독서 포트폴리오를 평가 점수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평가의 기준도 명확하지 않고 책 몇 권을 읽었느냐 안 읽었느냐로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 외에도 상위권 사립대 대부분이 큰 비중을 두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책·따·세) 허병두 대표(숭문고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은 입시와 관련이 있다고 하면 불안해서라도 일단 무언가를 하게 된다. 독서 이력제 도입은 오히려 사교육 시장에 새로운 아이템만 던져 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입시와 독서를 연결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가시적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결국은 입시가 끝나면 버려지는 교과서처럼 학생과 책을 멀어지게 하는 철학이 없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책·따·세는 조만간 '독서 이력제'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독서 편중, 인권 침해 논란으로 이어져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국가가 독서 이력을 관리하고 이를 입시, 취업 등과 연계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는 물론 경력을 위한 편향적 독서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실제로 학교 자체 독서 인증제를 실시하는 서울의 한 외국어 고등학교는 학교가 정한 도서 선정 기준에 따라 권장 도서 5점, 인문사회 서적 3점 등 차등 점수를 부여하고 있다. 재학생 A군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해 문학 작품 30권을 읽고 제출했는데 점수는 고작 12점을 받았다. 솔직히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서 정한 책을 읽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고 털어놨다.

이덕주 송곡여고 사서 교사는 "독서는 책의 선택, 읽기, 독후 활동 등 여러 가지 과정을 아우르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어떤 책이 좋고 나쁜지 판단할 능력을 갖추고, 같은 책을 읽어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사고의 폭을 넓혀간다. 그러나 독서를 입시와 연계한 이력 시스템은 '독후 활동'에만 몰두하게 해 편향적인 독서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또한 독서 내역을 국가가 관리한다는 것은 인권 침해의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현재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며 일부 문제점에 대해 보완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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