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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6일 화요일

‘혁명의 시기’라는 것이 따로 있을까.

경향신문 2011년 9월 6일(화요일)자 학술면 기사. 황경상 기자의 보도. '금융위기는 헤게모니 싸움서 비롯…자기통치의 ‘코뮌 공동체’가 해결책' 라는 제목의 기사. 조금 거시적인 관점이 눈에 띄어, 여기에 인용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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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시기’라는 것이 따로 있을까. 세계체제론적 관점에서 보면 역사상 모든 혁명과 반혁명은 전 지구적 헤게모니(패권) 국가가 몰락하고 새로운 질서 정립을 위한 다툼이 시작될 때 벌어졌다. 세계가 영국이 주도하는 질서 체제로 전환할 때 프랑스혁명(1789)이 발생했다. 미국이 전 지구적 헤게모니 국가로 부상하던 시기에 러시아혁명(1917)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2007년 시작된 금융위기로 미국 헤게모니의 몰락이 점쳐지는 지금은 어떨까. 계간 ‘문화/과학’ 가을호는 ‘혁명의 계보학’을 특집으로 다루며 현 상황도 비슷하다고 진단한다. ‘문화/과학’ 편집위원회는 총론에서 “금융위기는 주기적 경기침체의 수준이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구조적 차원에서 변혁되는 지구적 헤게모니 이행의 문제와 연관돼 있다”고 말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체제론자 조반니 아리기의 주장이 이해를 돕는다. 그는 19세기의 패권국은 영국, 20세기의 패권국은 미국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패권 국가의 부침을 보면 일반적인 구조가 보인다. 첫번째 단계에서는 헤게모니 국가로 금융자본이 집중되고 기축통화의 변화가 나타난다. 헤게모니 국가는 두번째 단계에서 세계 실물경제를 지배하며 이윤을 뽑아낸다. 세번째 단계에서는 실물경제가 침체되는 대신 금융부문이 폭발적으로 팽창한 후 급격히 쇠락한다. 자연스레 오늘날 미국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 시대 가장 뼈아픈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하층계급이다. 헤게모니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패권 국가는 이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에 골몰하면서 착취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미국 중심의 국제통화기금(IMF)이 신자유주의를 전 세계에 강요한 것이 대표적이다. 더구나 미국이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긴축재정으로 선회한 이상 주요 경제국들 역시 따라갈 수밖에 없어 복지는 무너지고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된다. 이미 이스라엘, 칠레, 영국 등에서 물가폭등과 긴축재정, 청년실업 등의 문제로 시위가 빈발하고 있다.

변혁은 어디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러시아혁명을 분석한 이득재 대구가톨릭대 교수와 라틴아메리카 혁명을 분석한 안태환 부산외대 HK연구교수의 논문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떠오른다. 그 핵심은 자기통치를 핵심으로 하는 ‘코뮌적 공동체’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이 교수는 “노조도, 혁명적인 당도 존재하지 않던 러시아에서 1905년의 혁명이 분출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들의 코뮌 경험 덕택”이라고 말한다. 러시아에서는 이미 1860년대부터 각 지역 농장에 코뮌 공동체가 존재했다. 여기에 1905년 혁명 훨씬 이전부터 자기계몽의 열망을 품은 노동자들이 일요학교, 민중의 집, 협동조합을 설립해 활동하면서 주체적인 능력을 키웠다. 이 교수는 “1905년 혁명은 반세기 이상 준비돼온 것”이라고 말한다.

안태환 교수는 1999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한 ‘볼리바르 혁명’을 “좌파 지식을 가진 지식인, 정치 세력화된 노조, 기존의 사회주의 정당이 선도한 혁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1989년 베네수엘라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반대해 일어난 ‘카라카소’ 대시위 이후 이미 ‘주민평의회’ 등 공동체가 조직돼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5만여개의 마을 중 1만5000여곳에 주민평의회가 조직돼 있다. 이들은 차베스의 정책을 자유롭게 논쟁하고 비판하면서 직접 항의도 한다. 이러한 자기통치적 주민평의회와 조합운동이 20세기 현실사회주의가 지향하는 생산수단의 ‘전면적 국유화’보다는 ‘사회적 소유’를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방식의 혁명을 일궈냈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혁명이 단순한 국가권력의 쟁취에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말하는 혁명은 세계를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상상하고 창안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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