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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1일 수요일

'책 있는 도시'에서 '책 읽는 도시'로

조선일보 2011년 11월 23일자 조홍복 기자의 보도, '책 있는 도시'에서 '책 읽는 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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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에선] '도서관 천국' 순천
도서관 50곳, 걸어서 10분안… 내년 책읽기 사업 본격 추진 회원증, 모든 도서관 이용해

전남 순천시 연향동 황지훈(44)씨는 주말이면 딸 해찬(8)이와 손을 잡고 인근 '기적의 도서관'을 찾는다. 걸어서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평소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느라 딸과 시간을 보내기 어려워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도서관행이다. 이곳은 2003년 11월 전국 최초로 건립된 어린이전용 도서관이다. 황씨는 "집에서 가깝고 무엇보다 다양한 책이 많아 아이가 도서관을 좋아한다"며 "순천에서 거주한 지 20년이 넘는데 10년 새 도서관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아이들 교육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부지 4204㎡에 자리한 기적의 도서관은 순천의 대표 도서관이다. 아동문학과 역사·자연·과학·환경·지리·그림책·만화 등 어린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어린이 도서 7만4500여권과 각종 시청각 자료 2600여점이 연면적 1824㎡·지상 2층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좌석도 380개를 갖추고 있어 특히 주말이면 부모와 어린아이들로 북적인다.

조례동 김일문(42)씨는 틈나면 딸 인희(7)와 조례호수공원에 지난해 3월 문을 연 '조례호수도서관' 1층 어린이 열람실을 찾는다. 딸과 천천히 걸어도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생태 관련 책을 마음껏 딸에게 읽어 준다. 김씨는 "이 도서관은 순천만을 품고 있는 순천의 특성을 살려 생태 관련 서적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마음에 든다"며 "덩그렇게 호수만 놓여 있었는데, 호수 주변을 말끔한 산책로로 정돈하고, 도서관까지 세워 주거 환경이 매우 좋아졌다"고 말했다.

조례동에 사는 김성희(34)씨는 지난달 27일 개관한 석현동 문화건강센터 내 보건소를 최근 들렀다가 내친김에 책을 반나절 읽고 왔다. 문화건강센터에 도서관, 보건소, 평생학습관, 다목적홀 4개 건물이 있는데, 보건소 진료를 마치고 바로 도서관에 간 것이다. 김씨는 특히 "순천 출신 작가인 정채봉, 김승옥, 조정래씨 책이 한곳에 모여 있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이 도서관은 연면적 3915㎡, 지하 1층·지상 4층으로 순천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현재 보유 장서는 약 5만권인데, 향후 새로운 책들을 구입해 20만권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순천‘기적의 도서관’에서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고 있다. 순천은‘교육의 도시’답게 도서관 인프라를 잘 갖추었다. /순천시 제공
도서관 50개 문 열다

순천은 '도서관 도시'로 전국에서 가장 유명하다. 앞서 사례처럼 시민들이 마음껏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여가 활동을 즐긴다.

시는 2003년 기적의 도서관 개관 이후 도서관 인프라 확충에 팔을 걷어붙였는데 최근 그 계획했던 도서관 건립을 모두 마쳤다. 시는 아파트 단지 자투리 공간이나 마을회관, 주민자치센터 등을 리모델링해 누구나 걸어서 10분 이내에 접근하는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그 결과 지난 4일 44번째 작은 도서관이 탄생했다.

현재 시가 직원을 파견해 운영하는 대형 공공도서관은 6곳이다. 이로써 순천에 운영하는 도서관은 총 50곳이다. 순천 24개 읍·면·동에 적어도 1개 이상 도서관이 있다. 마을에서 마음만 먹으면 도서관까지 차량 없이도 접근하는 인프라 구축이 끝났다.

시 도서관운영과는 "50곳을 끝으로 도서관은 더이상 만들지 않는다. 내년에도 도서관 건립 계획이 없다"면서도 "다만 수요가 있다면 1~2개 작은 도서관을 더 만들 수는 있다"고 밝혔다.

10월 말 현재 순천시 보유 장서는 87만권, 시민 1인당 2.7권꼴이다. 이는 전국 평균 1.4권보다 2배가량 높은 수치다. 2014년에는 120만권으로 1인당 4권까지 확보할 방침이다. 선진국 도시 기준이 2.4권임을 감안하면 순천은 이미 그 기준을 훌쩍 넘었다.
작은 도서관은 면적 67㎡ 이상, 1000권 이상 장서를 보유해야 한다. 시가 직영하는 공공도서관과 가장 큰 차이점은 운영주체가 주민들로 구성된 운영위라는 점이다. 시는 운영자를 교육해 파견시킨 뒤 이후 도서관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시민들 자치가 실현되는 셈이다. 시는 월 최소 운영비 10만원과 분기별로 도서 구입비 100만원을 지원할 뿐이다.

순천시 조례동에 만든 조례호수도서관이다. 어린이 열람실이 부드러운 곡선의 공간으로 배치되었다. /순천시 제공
하드웨어 구축, 이젠 소프트웨어

시는 풍부한 도서관 인프라를 바탕으로 내년부터 책 읽는 문화를 퍼뜨릴 계획이다. 실제 순천시 지난해 대출건수는 경남 김해시 1인당 5.39권보다도 적은 4.22권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시는 생후 6개월~초등 1년을 대상으로 4단계에 거쳐 책을 읽어주는 '북스타트'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한다. 기적의 도서관에서 주로 실시되는 이 사업을 전 도서관까지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
또 아파트 단지 부녀회와 직장인, 어린이를 대상으로 10명 이상이 독서 모임을 만들도록 유도한다. 가령 어린이 모임 회원들을 위해 특정 작가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시가 강사비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또 순천 출신 고 정채봉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식의 다양한 기행 프로그램도 선보인다.

이밖에 문화교실, 독서캠프, 책과 예술이 있는 나눔장터, 책읽기 마라톤 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민들에게 제공한다.

특히 시는 작은 도서관 운영 활성화에 행정력을 강화한다. 현행 기준 면적 67㎡를 도시지역에 맞게 134㎡로 상향해 비치 도서를 더 많이 확보할 계획이다. 우수 운영 도서관에는 운영비 추가 지원 등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시는 올해 말까지 13억원을 들여 '도서관 통합 전산관리 시스템'을 구축한다. 현재 회원증이 있어도 상호 대차가 되지 않아 각 도서관을 한번에 이용할 수 없기 때문. 이 시스템이 구축되면 회원증 한 장으로 50개 도서관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문용휴 도서관운영장은 "회원이 특정 도서관에서 요구한 책이 없으면 다른 도서관에서 그 책을 가져와 빌려주는 시스템도 만들어 이용자 편의를 돕겠다"며 "3일 안에 어떤 책이라도 집 근처 도서관에 배달해주겠다"고 했다. 회원증은 각 도서관에서 2~3분 만에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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