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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6일 월요일

"돌대가리도 아니고 쓰레기도 아닌 판사 찾습니다"

김명호 교수. 아니 앞 전 자를 써서 전 교수. 성균관대학교에서 수학을 연구하고 가르친 분이다. 이 분의 이름보다 '석궁' 교수라는 별명이 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겨레의 허재현 기자가 김명호 교수를 인터뷰했다. 인터넷판 2012년 1월 16일 17시 18분에 올라온 기사. 제목이 이렇다. ‘석궁’ 교수 “법원이 정의의 보루? 한마디로 개소리” 김명호 교수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 앞에 놓여진 개혁의 과제가 단지 검찰개혁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 기사를 여기에 옮겨놓고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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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부러진 화살’ 실제 주인공 김명호 전 교수
“4년형 억울하지 않아…실제로는 재판부가 나에게 혼쭐 난것”

“판사에게 석궁을 쏘았다.”

2007년 1월15일 저녁, 김명호(55) 전 성균관대 교수(수학과)의 판사 공격 사건이 언론에 일제히 보도됐다. 아무리 억울해도 그렇지 사람을 활로 쏘다니. 언론은 “석궁테러”라는 수식어를 달아 연일 속보경쟁을 벌였다. 김 교수는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던 피해자에서 한순간에 엽기 테러범으로 전락했다.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전국법원장 회의를 열어 “사법부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징역형이 내려진 듯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알려진 것과 다른 사실들이 드러났다. 먼저 김 교수가 아파트 복도에서 쐈다며 박홍우 당시 서울고법 민사2부 판사(현 의정부지방법원 법원장)가 경찰에 맡긴 화살이 사라졌다. 경찰은 뚜렷한 이유를 대지 못했다. 게다가 증거로 제시된 박 판사의 혈흔이 이상했다. 박 판사가 입고 있었던 조끼와 양복, 속옷에 모두 묻어 있는 피가 유독 와이셔츠에는 묻어 있지 않았다. 박 판사는 당시 속옷 상의, 내복 상의, 와이셔츠, 조끼, 양복 상의 순으로 옷을 입고 있었다. 증거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궁지에 몰리게 된 건 김 교수가 아니라 박 판사였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2008년 1월28일 3차 공판에서 김 교수 쪽의 혈흔감정 요청을 거절했고, 대법원은 2008년 6월12일 김 교수에게 징역 4년형의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이 불공정하게 진행됐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김 교수는 별 수 없이 4년형을 살아야 했다. 그는 2011년 1월23일 새벽 출소했다.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지는가 싶던 ‘석궁사건’이 영화 <부러진 화살>의 19일 개봉을 앞두고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한겨레>는 김 전 교수를 지난 4일 만났다. 인터뷰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한 찻집에서 이뤄졌다.

그는 만나자마자 “나를 더 이상 억울한 사람처럼 그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김명호가 억울하다? 이런 식으로 쓰지 마세요. 절대로. 저는 (석궁사건 재판이 얼마나 부당했는지) 이미 (재판과정을 통해) 적나라하게 밝혔기 때문에 만족해요. <부러진 화살> 영화에서 안성기가 마지막에 웃잖아요. 저도 그런 심정이었어요. 내가 막 당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재판부가 나에게 혼쭐이 난겁니다.” 

실제 김 전 교수는 재판 내내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재판정에서 판사에게 “재판을 똑바로 하지 않는다”고 호통쳤다. 재판부가 김 교수의 증거신청을 터무니 없는 이유로 기각하는 등 상식 이하의 판단을 계속할 때마다 방청객들은 분노했다. 급기야 2008년 3월 대법원에서 열린 석궁사건 항소심 재판에서는 판사들에게 계란을 던지는 방청객도 있었다. 김 전 교수는 ‘재판과정을 지켜본 시민들은 오히려 사법부가 테러를 가하고 있다고 생각’할 거라고 믿는 듯 했다. 김 전 교수는 자신의 누리집에 석궁사건 재판 과정을 상세히 공개하고 있다.

먼저 석궁사건을 묻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2007.1.15) 박홍우 판사 집에 석궁을 들고 간 이유가 뭡니까. 
 “그냥 겁주려고 했습니다. 판사들이 그렇게 법을 묵살하면서 (시민에게) 재판 테러를 하는 경우 너희도 죽을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싶었어요. 교수 지위 확인소송에서, 법대로 판결하지 않고 권력자의 편에서 판결을 내린 것을 경고하고 싶었습니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수학과)는 1995년 대학 본고사 수학문제가 틀렸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학교 쪽과 관계가 틀어진 뒤 이듬해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김 전 교수는 1995년 10월 법원에 교수 지위확인 소송을 냈으나 당시 법원은 ‘교수 임용은 대학의 자유재량’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에서 응용수학 관련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2005년 1월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재임용을 거부당한 교원이더라도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청구를 하거나 법원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되자 3월에 귀국해 다시 교수 지위 확인소송을 냈다. 그러나 법원은 2007년 1월 다시 대학의 손을 들어줬다. 김 전 교수는 이 판결이 잘못 됐다고 주장했다. 1977년 교수 재임용 관련 판결문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임용이 예정된 걸로 본다’라고 돼있는데 87년에 법률해석을 변경해서 ‘재임용은 학교자유 재량이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전 판결을 뒤집으려면 법원조직법 제7조 1항의 3에 의해 전원합의체를 거쳐야 해요.(그는 법원조직법 항목을 줄줄이 외웠다. 인터뷰 내내 법원판례 번호 등을 외워서 답했다.) 그런데 이 87년 판례는 전원합의체가 아니었거든요. 제가 2005년에 재판을 받으면서 이걸 지적해 이용훈 대법원장 앞으로 공개질의서를 보냈더니 이렇게 답하더라고요. “77년도 판례는 한양대 교수가 사고로 죽으면서 손해배상을 다툰 것이고 87년건은 재임용건이라 사건명이 다르다.” 하지만 두 건 다 사립학교법에 대한 해석을 다룬다는 점은 같아요. 더 웃기는 것은 77년도 판례가 (인쇄물로 된) 판례집 총람에는 요지가 나오는데 대법원 홈페이지에서는 요지가 사라졌어요. 이런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에 교수라는 사람들이 400여명씩이나 당하고서도 아무런 저항이 없어요. 다 바보같이 당한 거예요.“

-그래도 판사의 집을 찾아가 위협한 것은 정당하지 않아 보입니다.
 “박홍우 판사의 판결이 있기까지 1년6개월동안 합법적인 모든 수단을 활용해 나의 의견을 피력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청와대, 교육과학기술부, 대법원에 진정서와 탄원서를 넣었어요.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1년 가까이 휴일만 빼고 매일 1인 시위도 했어요. 그런데 박 판사는 나에게 판결테러를 가해 사회적으로 생매장시켰습니다. 그럼 뭘 더 할 수 있었겠어요. 국민저항권 차원의 정당방위였습니다. 나로서는 최수의 수단이었어요. 후회 없습니다.”

-정말 석궁을 쏘지 않았습니까.
 “안쐈어요. 그냥 순진하게 겁을 줄 생각으로, 석궁을 들고 대체 이렇게 판결한 이유가 뭐냐면서 다가갔는데 너무 가까이 가는 바람에 박홍우 판사가 내 석궁활대를 잡은 거에요. 쏠 생각도 없었어요. 쏠 생각 있었다면 당연히 멀리서 조준해 쏘고 말았겠지 그걸 들고 그 앞으로 다가갔겠어요?”

-그럼 박홍우 판사가 화살에 맞아 입은 상처와 혈흔은 뭔가요. 조작됐다는 건가요.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죠. 석궁전문가도 석궁으로 생길 수 있는 상처가 아니라고 얘기했고. 경찰의 석궁 실험에서도 활을 쏘면 15cm 뚫고 지나가게 나왔는데, 대체 그 상처가 어디서 낫겠어요. 자해밖에 없어요. 그래서 혈흔 감정을 해보자고 했는데 재판부는 내 주장을 묵살했어요. 그래서 내가 1심 법정에서 ‘세상에 이런 개판 재판이 없다’고 소리쳤어요.” (박홍우 판사는 2007년 8월22일 1심 7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몸을 일으켜세울 무렵에 화살 하나를 잡았다”며 “화살은 부러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출동한 119 대원이 쓴 ‘구급활동일지 평가 소견란’에는 상처 크기가 ‘지름 0.5cm 정도 창상 有’라고 돼있다. <한겨레>는 박 판사의 해명을 들어보려고 했으나 박 판사는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김 전 교수는 사법부에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그는 우리 사법부에 강한 불신을 드러내며 법원장을 선거로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놈’들은 법을 안 지켜요. 법원이 최후의 정의의 보루? 이런 것과는 구만리라고 해야 되나. 한 마디로 ‘개소리’입니다. 제가 석궁사건으로 국민들에게 얘기하고 싶었던 건 판사들이 법을 안지키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지금도 국민의 눈과 귀가 닿지 않는 곳에서 석궁조작 사건 같은 게 벌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석궁사건은 단지 초등학생도 알기 쉽게 증거조작이 일어난 것 뿐이지 다른 사건들에서는 교묘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판사, 검사 모두 사법고시에 붙는 순간 ‘법을 위반할 자격증’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헌법재판관과 법원장, 대법관, 검찰총장 등을 모두 선거로 뽑아야 해요. 그거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도가니법처럼 법 100개 만들면 뭐합니까. 지키지 않는데. 국민이 사법부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선거가 유일합니다.” 

그렇다고 김 전 교수가 법 회의론자는 아니다. “법은 최소한의 상식입니다. 2005년부터 제가 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논리가 딱딱 맞고 모순이 없는 거예요. 딱 한 가지만 빼고. 판사들이 법을 위반하면서 소송을 진행하면 이걸 막을 방법이 없어요. 명백히 법을 어긴 판사를 검찰에 고발해도 다 막아주고.” 김 전 교수는 이 말을 꺼내면서 “절대 기사에 주장했다고 표현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주장은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이건 사실이기 때문에 지적했다고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판사가 다 그런 건 아니잖아요.
 “춘천교도소에 있을 때 교도소 건물에 석면을 사용했다고 고발했어요. 그 사건을 담당한 전상범 판사는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세 번이나 교도소를 방문했어요. 결국 판사이동으로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는데 제가 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판사였어요. 내가 불합리한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판사들을 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해 듣기로는 판사 중 5%정도만 괜찮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그런 판사들은 서울 근처에 오지도 못합니다.”

그는 판사들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
 “이상훈 대법관도 웃기는 사람이에요. 원래 내 교수확인지위 소송 서울고법 민사재판이 이상훈 판사 담당이었어요. 그런데 법대로 판결했다가는 내가 이기니까, 그래서 문제 생길 것 같으니까 내가 2005년 10월18일 재판을 접수했는데도 4개월동안 놀고 있다가 2006년 2월 다른 곳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이 되어) 도망가버렸어요. 그러다 2006년 론스타 경영진 문제 처리하려고 4인 회동하고 그랬죠.”

이상훈 대법관은 2006년 법원의 론스타 경영진에 대한 잇딴 영장기각을 놓고 검찰이 반발하던 상황에서 서울중앙지법 민병훈 영장전담판사와 함께 박영수 당시 대검 중수부장과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을 비밀리에 만나 ‘부적절한 만남’ 논란을 빚었다. 재판 업무중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송 관계자를 법정 이외의 장소에서 만나선 안된다는 법정윤리조항 등을 어겼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대법관은 지난 달 정봉주 전 의원의 징역 1년형을 확정판결하기도 했다.

김 교수에게는 좌와 우가 없다. 그는 스스로를 좌도 우도 아닌 합리주의자라고 소개했다. 법에 따라 올바른 행동을 하는 판사는 좋은 판사고, 그렇지 않은 판사는 나쁜 판사라고 생각한다. 김 전 교수는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와 관련해 소신발언을 해 주목받고 있는 판사들에 대해서도 거센 비판을 이어갔다. 

“한미FTA니 뭐니 떠드는 판사들도 다 쓰레기라고 봐요. 판사들이 지금도 법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어요. 우리 헌법 119조에 “국가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적정한 소득 분배 유지를 위해 시장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돼 있어요. 한-미FTA 조약은 국내법과 같지요. 한미FTA는 독소조항 ISD(투자자소송제도) 때문에 헌법을 위반하는 조약이지요. 그럼 판사들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면 돼요. 그건 안하고 판사들이 집단행동을 합니다.” 

김 전 교수는 이어 한-미FTA 관련 소신 발언으로 에스엔에스(SNS) 상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은 이정렬 판사를 콕 집어 비판했다.

“이정렬 판사도 위선자입니다. 한-미FTA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어서 칭찬받는데 이 판사는 내 교수확인지위소송에서 박홍우 판사랑 같이 재판했던 사람입니다. 박 판사가 말도 안되는 판결할 때 끽 소리 안하고, 법원에 와서는 법원의 잣대로 해야 한다고 말하던 사람입니다.” (김명호 전 교수 교수확인지위 소송 고등법원 판사는 이우철, 이정렬, 박홍우 등 3명이다.)

-박홍우 판사가 정봉주 전 의원에게 징역 1년형 판결한 2심 판사여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박 판사가 석궁사건을 겪으면서 법원이 해야 할 더러운 판결에 다 개입하게 된 것 같아요. 왜냐면 우리 나라 법원은 명판결을 내려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하는 판사가 없거든. 다 윗사람 눈치를 잘 봐야 승진을 합니다. 사회적 논란이 되는 판결은 그래서 안 맡으려 하죠. 서울 고법 같은 데는 80% 이상이 서울대 출신 판사들인데 나머지 비서울대 출신에게 논란이 되는 판결을 맡겨요. 그 사람들에게는 이게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서울대 출신도 가끔 사회적 논란이 되는 재판을 맡는데 박 판사는 석궁사건 거치면서 법원의 조작 판결로 은혜를 입은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박 판사는 (서울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더러운 사건을 맡는 겁니다. 문국현 유죄판결을 끌어내 그에게 정치 사망 선고 내린 것도 박 판사에요. 그렇게 정봉주 전 의원 판결까지 맡게 된 것 같아요.” (박홍우 판사는 현재 의정부지방법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정봉주 전 의원 판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홍우 판사를 비롯해 이상훈 대법관까지 안기부 엑스파일 판례를 뒤집어 판결했습니다. 정 전 의원이 비비케이 관련 폭로가 사실임을 입증하지 못했으므로 유죄라는 건데 대법원은 엑스파일 내용이 사실임을 입증하지 못한 책임을 노회찬에게 지울 수 없다고 판결했었습니다. 1964년 미국에서 있었던 뉴욕타임즈 대 설리반 사건이라는 판례를 그대로 따른 것인데 이번에 이걸 뒤집어버렸어요. 무슨 변학도식 ‘니 죄를 니가 알렸다’인가요? 국민의 입을 봉쇄하려는 수작이에요. 긴급조치 시대로 가겠다는 거지.”

-4년동안 감옥에서 지냈는데 힘들지 않았나요. 영화에선 감옥에서 강간당하는 장면도 나오던데요.
 “강간은 아니지만 성추행 비슷한 걸 당했어요. 2010년 춘천교도소로 이감했을 때 알몸 검신을 당했어요. 2008년 없어진 제도인데 당한 겁니다. 나는 거부했지만 거의 강제로 옷을 벗기다시피 해서 당했어요. 그 뒤 징벌방에 가게 됐어요. 징벌방에는 늘 못된 방장놈들이 있는데 그들이 알아서 괴롭힙니다. 그럼 교도관은 손 하나 대지 않고 맘에 안드는 사람들을 괴롭힐 수 있어요. 내가 강간을 당한 건 아니지만 2009년 원주교도소에 있었을 때 누가 강간당하는 걸 목격하기도 했어요. 해당 교도소는 강간범을 이감시켜버린 뒤 조사도 제대로 안했어요. 교도소 비리가 왜 바깥으로 안나오는지 아세요? 교도관들이 수형자들의 편지를 전부 뜯어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얘기 있습니까.
 “국민들이 판사들을 모시려고 해선 안돼요. 그러니까 저놈들이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겁니다. 내가 1심 때 김용호 판사에게 김용호씨라고 말했다가 3일 감치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헌법 제1조 2항에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돼있어요. 헌법 제7조에는 공무원은 국민의 봉사자라고 돼 있어요. 우리는 판사에게 재판권을 위임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판사는 법의 입에 불과한 국민의 머슴이라는 인식을 해야 합니다. 이 말좀 꼭 써주세요.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 2일) ‘원색적 법관 비난에 단호히 대처 하겠다’고 하던데 양 대법원장과 공개 법리 논쟁하고 싶어요. 양 대법원장이 원하는 사람들 다 끌고 와도 좋아요. 나는 박훈 변호사 한명이면 됩니다. (양 대법원장은) 개소리좀 그만하라 그러세요.”

김 전 교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법원에게는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재심 청구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차라리 법원장을 선거로 뽑는 운동을 통해 사법부를 개혁하는 게 더 빠른 방법이라고 했다.

지난 11일 김 교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오늘 뭐했냐고 묻자, 한 언론과 인터뷰를 마친 뒤 정지영 감독(부러진 화살) 과 술을 마실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언론과 인터뷰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가 곧 발간할 책에 억울하게 성균관대에서 쫓겨난 사건과 이후 석궁 사건 재판과정, 우리 사회 온갖 썩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명을 숨기지 않고 모두 담아냈다고 했다. 우리 사회 부조리를 겨눈 화살이 다시 한번 장전된 것이다.

“내 책에는 욕을 많이 써놨어요. 교수라는 사람이 교양도 없이 욕한다고 할 수 있는데,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안읽어도 좋아요. 우리 사회는 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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