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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7일 화요일

김훤주 기자의 글, 부러진 화살 대법원 판결

김훤주 기자가 '부러진 화살 대법원 판결문은 엉터리다'라는 글을 연재하고 있군요.


부러진 화살 대법원 판결문은 엉터리다(1)

--제대로 비판을 하려면 대법원 판결문을 무턱대고 믿을 것이 아니라 대법원 판결문이 과연 제대로 된 판결문인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대법원 또는 법관이 그래도 엉터리를 저지르기야 하겠느냐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래서 대법원도 사실 여부 판단의 근거로 대법원 판결문을 들이밀면서 부러진 화살 영화는 허구라 얘기합니다.
(중략)대법원 판결문을 봅니다. "형사소송법 제282조에 규정된 필요적 변호 사건에 해당하는 사건에서 제1심의 공판 절차가 변호인 없이 이루어진 경우, 그와 같은 위법한 공판 절차에서 이루어진 소송 행위는 무효이므로, 이러한 경우 항소심으로서는 변호인이 있는 상태에서 소송 행위를 새로이 한 후 위법한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항소심에서의 진술 및 증거 조사 등 심리 결과에 기하여 다시 판결하여야 한다."

널리 알려진대로, '필요적 변호 사건'이란 징역 3년 이상에 해당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는 경우로 반드시 변호사를 붙여야 합니다. 대법원 판결문에도 있듯이 이렇게 중형이 선고될 수도 있는 필요적 변호 사건은 형사소송법 제282조는 "변호인 없이 개정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이 취지입니다.
널리 알려진대로, 석궁 사건에서 김명호 교수는 2007년 9월 18일과 10월 1일 공판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김 교수에게는 변호사가 있지 않았고, 그래서 재판은 변호인과 피고인이 모두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됐고 10월 15일 징역 4년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진행된 1심을 두고 대법원 판결문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원심(항소심)은, 이 사건이 필요적 변호 사건임에도 제1심 법원이 제8회 공판 기일과 제9회 공판 기일에 변호사 없이 개정하고 증거 조사를 실시하고 그 증거들을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은 위법이 있다고 인정한 다음 이를 이유로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다시 심리하여 판결을 선고하였는 바, 형사소송법의 관련 규정 및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심의 이러한 조치는 정당하다."

이렇게 해서 1심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음은 대법원 판결문조차 "위법이 있다고 인정한 다음 이를 이유로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라 함으로써 제대로 밝혀졌습니다. 이로써, "영화 부러진 화살이 다룬 항소심이 증거·증인 채택을 하지 않았지만 1심에서 충분히 다뤘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여기저기에서 제기되는 주장은 헛소리 이상이 될 수 없게 됐습니다.


부러진 화살 대법원 판결문은 엉터리다(2)

대한민국은 공판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저는 6년 정도 법원을 드나들며 취재를 해 봤습니다. 공판중심주의(公判中心主義)란, 공판에서 진행되는 소송 절차를 중심으로 재판을 해야 하며, 법관의 심증 형성(心證形成)도 공판에서 나오는 당사자(피고인과 검사)의 진술을 토대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가 있고 참고인(피해자나 증인 포함) 진술 조서가 있고 여러 가지 증거를 검사가 제시했을 때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바로 증거 능력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서 피고인과 검사 사이에 공격과 방어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런 공방은 일반 사람들에게 공개된 법정(공개주의)에서 법정에서 직접 심리한 믿을만한 증거에 근거(직접심리주의)해야 되며, 법원(재판부)은 이런 모든 과정을 당사자(피고인과 검사와 증인)의 진술을 토대로 삼아 진행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1심 재판은 대법원 판결문조차도 잘못(위법)이 있다고 한 만큼 다시 거론할 까닭이 없으며, 다만 항소심을 살펴보면 되는데 이 또한 1심 못지 않게 엉터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직접 심리한 믿을만한 증거"도 없고 "당사자의 진술을 토대로 삼아 진행"한 적도 없습니다.



부러진 화살 대법원 판결문은 엉터리다(3)

저는 영화 속 법정 장면은 100% 사실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사실이라는 말은, 법정에서 실제로 있었던 행동과 발언이라는 뜻을 넘어섭니다. 피고인 김명호가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고 성격이 괴팍하다 해도 재판을 제대로 받을 권리는 있는데 그 권리가 철저하게 짓밟혔다는 측면에서 일관되게 취사선택한 사실들이라는 뜻까지 담겨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진중권씨가 이어지는 트위트에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대변하기에 석궁 재판은 적절한 소재가 아니었"고 "영화에서 얻어진 사법 개혁의 정당성은 허구로 빚은 정당성에 불과"하며 "실제로 사법 폭력이 저질러진 사례들을 사용했어야 그 정당성이 현실성을 띠겠"다고 한 대목이 안타깝습니다.
 
재판을 재판장이 자기 마음대로 진행하고 피고인의 권리를 묵살하고 제대로 된 증거 조사 없이 판결을 내리는데 어떻게 사법 폭력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까? 석궁 사건과 석궁 재판은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석궁 사건은 진중권씨 말대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대변하기에 적절한 소재가 아니지만 석궁 재판은 그런 불신을 대변하고도 남을만큼 적절한 소재입니다.


부러진 화살 대법원 판결문은 엉터리다(4)

김명호 피고인과 박훈 변호사는 법정에서 석궁 위력이 엄청나서 완전 장전된 상태에서 발사되면 사람 몸 정도는 관통해 버린다는 사실과,  불완전 장전 상태에서는 제대로 발사되지 않고 흘러내린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아 박홍우 부장판사의 몸에 화살이 꽂히지 않았을 개연성이 있다고 다퉜습니다.

합리적 의심입니다. 석궁의 엄청난 위력과 박홍우 부장판사의 몸에 났다는 조그만 상처는 도저히 양립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합리적 의심에 대한 반증이 대법원 판결문에는 없습니다. 
피해자 박홍우 부장판사의 피묻은 옷가지에 대해 적어놓은 대목이 유일한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유전자 분석 감정 결과 위 피해자가 입고 있었던 검정색 조끼, 흰색 속옷 상의, 연하늘색 내의, 흰색 와이셔츠 등에서 혈흔이 발견되었고 유전자형 분석 결과 모두 동일한 남성의 유전자형이 검출되었다.(피고인은 조끼와 속옷에 모두 혈흔이 발견되었는데 중간에 입은 와이셔츠에 혈흔이 없기 때문에 수사 기관에서 증거를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압수된 증거물에 의하면 속옷과 내의에는 복부 부위에 다량의 출혈 흔적이 육안으로 확인되지만 조끼에는 육안으로 혈흔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소량의 흔적만 보이는 점, 처음 위 피해자를 목격한 경비원은 위 피해자의 옷을 들추니 다량의 혈흔이 보였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와이셔츠 혈흔이 육안으로 잘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는 속옷과 내의에서 다량의 출혈 흔적이 확인된다는 사실의 증명력이 훨씬 우월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뭉뚱그려 놓은 판결문을 저는 처음 봅니다. 쟁점을 확실하게 흐려버리는 뛰어난 재주를 부렸습니다. 먼저 검정색 조끼, 흰색 속옷 상의, 연하늘색 내의에는 화살로 뚫렸다는 구멍 근처에 피가 있는 반면 흰색 와이셔츠는 구멍 근처에는 피가 없고 이상하게도 오른쪽 팔 부분에 피가 묻어 있다는 사실을 가렸습니다.

다음으로, 옷가지 핏자국에서 '동일한 남성의 유전자형이 검출'됐다고만 했지 그것이 박홍우 판사의 피와 동일하다는 얘기는 못하고 있습니다. 박홍우 판사가 상처를 입었다는 증명이 없습니다. 또 옷가지의 피가 박홍우의 피와 같다는 증명이 있어야 다음(상처가 났는데 그것이 화살 때문이냐 아니면 자해 때문이냐 등등)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도 말씀입니다.

뒷부분 "와이셔츠 혈흔이 육안으로 잘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는 속옷과 내의에서 다량의 출혈 흔적이 확인된다는 사실의 증명력이 훨씬 우월한 것으로 보인다."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합니다. 도대체 무엇에 대한 '증명력'인지 알 수 없습니다. 증명된 것은 '여러 옷가지에 동일한 남자의 피가 묻어 있다' 뿐입니다. 그 피가 박홍우 판사의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후략)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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