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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9일 월요일
'우수학술지 지원' 학계 반발 확산(종합)
'우수학술지 지원' 학계 반발 확산(종합)
"관치행정" "학문 다양성 저해" 비판 잇따라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우수학술지 지원 사업'에 대한 학계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교과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세계적인 수준의 학술지를 육성하기 위해 소수의 학술지를 우수학술지로 선정, 집중 지원한다는 방침이지만 학계는 학문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훼손하는 "관치행정의 발상"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교과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우선 다음 달 인문학 분야에서 7개 학술지를 우수학술지로 선정할 계획이다. 이어 내년에 5개 학술지를 우수학술지로 추가 선정한 뒤 2014년부터는 학술지 지원 제도를 폐지할 방침이다.
한국언론재단에 따르면 한국언론재단에 등록된 학술단체 수는 1990년 1천890개에서 2011년 11월 현재 7천621개로 20년 사이 약 4배 늘어났다.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와 등재 후보지는 총 2천100종으로, 이 가운데 인문 분야는 513종이다.
인문학 학술단체들의 연합 모임인 한국인문학총연합회(인문총)는 26일 서울 YWCA회관 대강당에서 창립대회에 이어 학술지 지원 제도의 문제점을 다루는 토론회를 열었다. 인문총 실무위원회는 '학술지 지원제도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분석 자료에서 정부의 우수학술지 지원 제도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인문총은 현행 학술지 지원 제도가 "다양한 학문활동을 장려하는 제도"라면서 학술지 지원 제도 때문에 학술지가 '난립'한다는 정부 측 시각은 "학술활동의 자발성과 학자들의 자긍심에 대한 낮은 이해에 기초한 잘못된 현실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현행 학술지 지원 제도를 유지하면서 학회와 학술지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먼저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권위적인 상명하달식(top-down)으로 우수학술지 지원 제도를 마련한 것도 문제라면서 "학계의 공감대 형성 절차가 먼저 진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우수학술지 지원 제도와 현행 학술지 지원 제도를 병행해야 한다면서 우수학술지 지원 제도는 새로운 재원을 마련해 시행해야 하며 현행 학술지 지원 제도에 쓰이는 재원을 우수학술지 지원에 전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인문총은 "현재 대학마다 교수업적 평가가 등재지, 등재후보지 게재 논문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면서 "일시에 등재지 제도를 폐지한다면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문총에는 현재 한국철학회, 국어국문학회, 영어영문학회, 중어중문학회, 한국종교학회, 한국언어학회 등 27개 학회가 참여하고 있다.
역사학계의 목소리는 더 강경하다.
한국사ㆍ동양사ㆍ서양사를 망라한 국내 역사학회 협의체인 전국역사학대회 협의회는 우수학술지 지원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협의회는 26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개막한 국내 역사학계의 가장 큰 연례 학술행사인 제55회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정부의 우수학술지 지원 사업이 "학문연구의 기본 정신과 배치된다"고 성토했다.
협의회는 우수학술지 지원 사업이 수백 개에 달하는 인문학 분야 학회와 학술지를 재편 서열화하고 이를 통해 다수의 학술지를 정리하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선택과 집중'이라는 시장원리를 적용해 인문학 분야를 재편하려는 우수학술지 지원 사업은 궁극적으로 인문학의 발전을 왜곡시킬 뿐 인문학의 진정한 발전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협의회는 "연구비 지원을 매개로 인문학의 발전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그 의도가 아무리 선의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해도 부정적이고 왜곡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 기관의 막대한 재원을 극소수의 학술지에만 집중시키고 절대다수의 학술지들은 외면하겠다는 정책은 인문학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훼손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국역사학대회 협의회에는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사연구회, 역사학회, 동양사학회, 서양사학회, 경제사학회, 과학사학회, 고고학회, 미술사학회, 도시사학회 등 국내 19개 역사 관련 학회가 참여하고 있다.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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