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13년 9월 11일 수요일

부산일보 기획취재: 함께 살다-대안적 삶을 꿈꾸다 26회분을 정리(1-8)

① 종자장 대동계


바람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 하지만 3월 기온으로는 106년 만의 최고 더위를 기록한 지난 9일이었던 만큼 한살림부산 공동체 김명숙 감사는 속으로 애간장을 태웠을지도 모르겠다. 김 감사는 조청과 매실고, 무엿 등을 제공해 온 생산자로 평소식품 대표. 2006년부터 한살림부산 공동체의 '장(된장, 간장)담그기' 행사장을 제공하는 동시에 '종자장(種子醬)'과 '대간장[竹間醬]'을 보살피는 중책까지 맡고 있기 때문이다.

자고로, 삼국시대 이래로 줄곧 우리의 건강한 밥상을 책임지고 있는 장은 콩, 소금, 물이 햇빛(밝기), 햇볕(온도), 햇살(에너지)을 만나고 바람의 기운을 담아 발효라는 신비한 과정을 거쳐 새롭게 창조된 것이라고 했다. 장담그기엔 초짜인 기자도 장을 사다 먹을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우주 조화의 섭리를 짧은 시간에 깨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안타깝게도 현대사회로 올수록 이 같은 장 문화는 사라져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동(大同)의 의미도 마찬가지다. 핵가족에다, 도시 아파트 살이가 대부분인 요즘 같은 시대에 함께 모여서 장을 담근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싶어서다. 그래도 이런 장 문화와 공동체 정신을 지켜내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의미심장했다. 

부산의 대표적인 생협 단체인 한살림부산 공동체와 부산생활협동조합(부산생협) 회원들은 지난 9일과 10일 옹기뜸골 우태영 씨를 초청한 가운데 울산 울주와 경남 김해에서 각각 장담그기 행사를 가졌다.

이들 단체의 장담그기가 눈길을 끈 것은 햇장 장만에만 그친 게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종자장 대동계'를 결성, 수년째 운영 중인 점이었다. 2009년 시작된 '한살림부산 종자장 대동계'를 맡고 있는 박기호(경남고 교사) 계주의 말이다. "우리의 건강한 밥상문화의 씨알인 장(醬)과 그 정수가 되는 종자장을 되살려서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이웃에 널리 쓰이게 하려는 게 종자장 대동계의 목적입니다. 저도 이 문화가 계속 보존되길 원하고, 직접 담그진 않더라도 모두들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한살림부산 강영희 이사장도 덧붙였다. "종자장을 활용한 것 중에는 대간장[竹間醬]이란 게 있습니다. 말 그대로 '대나무통 속 간장'을 의미하는데 아주 귀하다보니 부가가치와 효능이 높은 편입니다. '사회 공공성을 지닌 대동계' 차원에서 한살림의 경영 위기 때나 조합원 또는 실무자의 건강 이상 등 긴급한 일이 생겼을 때 비상용으로 쓸 수 있도록 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종자장은 어떤 것일까? '부산생협 종자장 대동계 계칙'에 나와 있는 문구를 인용해 본다. 

"종자장은 장(醬)의 종자격인 발효균을 육종 배양하여 장의 맛과 향을 보다 풍부하고 깊게 하는 것으로 해마다 일정량의 간장을 적립 혼합하여(덧장기법) 10년 이상 장기 숙성시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인데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커서 시집 장가보낼 때, 지인이나 지기(知己)에게 선물용으로, 집안의 가보(家寶)로 대물림 용도로 쓰이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가끔 뉴스 등을 통해 "10년 된 씨장이 얼마에 팔렸더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그 씨장이 종자장인 것이다. 

'종자장 대동계'라고 해서 장담그는 방식이 다르진 않았다. 

이날 한살림부산 공동체 조합원들은 국산 해콩으로 쑨 옹기뜸골 메주를 깨끗하게 씻어서 볕에 말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78말의 메주와 30㎏짜리 천일염 13포가 준비됐다. 한 무리는 장 담글 항아리를 깨끗하게 씻어 말렸다. 또 다른 한쪽에선 소금물 가라앉히기가 한창이었다. 소금물을 녹여 아랫물과 윗물을 구분하기 위해서다. 염도는 생계란을 넣었을 때 500원 동전크기만큼 떠올랐을 때가 적당하다고 우태영 씨가 귀띔했다.  소금물 가라앉히기와 메주 말리기가 어느 정도 끝나자 이번엔 치성을 드렸다. 독특하게도 이날 상에는 메주, 숯과 고추, 천일염(소금)과 정한수 외에 3년 된 대간장 2개가 올라갔다. 

이날 장담그기 행사를 주도한 한살림부산 조직 담당 정외숙 씨는 "감동 호르몬 '다이돌핀'은 엔돌핀의 4천 배 효과가 있다고 하죠.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감동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더 넓혀서 내 생명의 폭을 넓혀낼 때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잘되기보다는 다른 생명을 위해 우리가 기도한다면 저절로 우리는 좋아지지 않을까요? 우주만물이 다 화합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모읍시다"는 말로 치성을 이끌었다. 

치성 후에는 참석자들의 손과 손을 거친 메주가 장독마다 6~7푼 높이로 정성스레 옮겨졌고, 소금물이 가득 부어졌다. 또 다른 한쪽에서 부정타지 말라는 의미의 왼새끼를 꼬아서 만든 줄에다 숯과 붉은 고추를 군데군데 엮은 금줄을 장독에 매달기도 했다. 장담그기 행사에 4년째 참가한 방말자 씨는 여럿이 함께 만드는 장맛이 좋아서 함께한다고 했다. "이곳 간장으로 미역국을 끓여보면 확실히 맛이 달라요. 이렇게 하루 정도 간단한 노동을 하면 1년 내내 맛있는 간장을 먹을 수 있는데 아마 사람들이 몰라서 못 오는 거겠죠." 이들에게도 시행착오는 있었다. 한살림부산 이승홍 사무국장이 들려준 2004년 장담그기 첫해의 뼈아픈 경험담이다. 

"지금처럼 다함께가 아닌 각자 신청한 양대로, 항아리를 배정해 주었더니 탐욕이 생기더군요. 이왕이면 작은 독보다 큰 독에 내 장이 담기길 원하고, 볕 좋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내 항아리가 놓여지길 원하면서 옹기 다툼, 자리 다툼을 하게 된 거죠. 그것도 우리한테는 공부였어요. 자연에 대해, 누군가에 대해 감사함을 갖는다 게 중요한 거죠." 

이날 모인 60여 명의 한살림부산 조합원들은 두 달 후에나 있을 '장뜨기 날'을 기약하며 각자 집으로 뿌듯한 발걸음을 돌렸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② 노래로 자라는 텃밭


지난 17일 오전 10시 울산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 송영욱(소야골 숲속학교 운영) 농부집 너른 앞마당.

영남알프스의 한 자락인 고헌산과 백운산에 둘러싸인 산골마을 소호리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송 선생과 함께 1년 동안 울력으로 텃밭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마음먹은 '개똥이 어린이예술단' 가족들과 '우창수의 노래나무 심기' 팬 등 20명 정도가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다들 일찍 일찍 좀 다니지. 오후엔 비가 내릴지도 모른단 말야!"

비 예고에 속이 타는지 만나자마자 지청구부터 늘어놓는 송 선생. 반면, '개똥이 어린이예술단' 길눈이 선생님 우창수 대표와 김은희 사무국장은 싱글벙글이다. 행여 비라도 오지 않을까 가슴 졸이며 기다린 게 무색할 정도로 화창한 날씨는 '농부 송영욱과 우창수의 노래가 있는, 노래로 자라는 텃밭' 첫날 행사를 열기에는 안성맞춤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밭으로 곧장 갑시다."

송 선생이 다시 한 번 채근하는 사이, 일행은 장화로 갈아신고 호미 등을 챙겨서 10분 거리의 텃밭으로 향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우렁찬 목소리. "우쿨렐레도 잊지 말고 챙겨요!" 

■감자 심기

감자를 심을 100여 평의 텃밭은 송 선생이 이미 이랑 정리를 깔끔하게 끝내 놓은 상태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배추 농사를 짓고 있는 송영욱입니다. 이 좋은 봄날, 딴 데 놀러가지 않고 땀 흘리는 여기까지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특히 어머님들은 백화점 같은 데 가서 쇼핑하시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을 텐데 자녀들과 함께 생산적인 소비를 하러 오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오늘 감자를 심고, 몇 달 후에 다시 감자를 캐서 먹을 테니까 생산적인 소비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죠."

초등학생 아이들은 송 선생이 하는 말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만큼은 반짝반짝. 그리고 감자에 대한 역사와 가짓과(가지, 토마토, 고추, 감자 등) 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보태졌다. 이윽고 씨감자 절단과 심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감자를 심을 때는 어떻게 심으라고요? 깊게~ 볼펜 한 자루 깊이만큼 15㎝예요. 간격은 30㎝ 정도. 동네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해도 간격을 좁히면 옆 감자와 자리다툼이 일어나서 뿌리를 활발히 못 뻗겠죠. 감자를 절단한 면은 어느 쪽으로 향하라고요? 아래로 보냅니다. 아, 으뜸이 어머니는 지금 반대로 심었잖아요. 뒤집으세요."

구시렁구시렁, 쑥덕쑥덕. 각자 마음에 든 이랑을 골라잡은 참가자들, 이내 삼삼오오 쭈그리고 앉아 감자를 심기 시작했다. 10여개의 길쭉한 이랑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금세 감자밭으로 변했다. 

■텃밭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

감자를 다 심은 참가자들은 텃밭 옆으로 나가 맨땅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았다. 우 대표가 우쿨렐레를 가져와 연주를 시작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노래를 불렀다. 텃밭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오늘 제가 나눠드린 악보 중에 '소야골 텃밭 바구니'라는 노래가 있죠. 송 선생님 글을 곡으로 만든 거예요. 어느 날 마을에서 할머니를 만났는데 그분이 그러셨대요. '(감자가)기리버서(그리워서) 심었더니, 기리버서 심은 게 너무 많고, 기리번(그리운) 건 돈으로 사면 안 되니께 심기는 심어야 하고… 기리운 건 키우고 가까서(가꾸어서) 지성으로 섬겨 챙겨 먹어야제' …그리운 건 사다 먹는 게 아니라 곱게, 길러서 먹는다는 할머니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다같이 노래를 불러볼까요?" 

이어 여덟 살 하늘이가 글을 쓰고 우 대표가 곡을 쓴 '보리밥'도 함께 불렀다. 

마지막으로 다함께 일어나서 감자를 심은 텃밭으로 나가 고랑마다 삼삼오오 줄을 섰다. 

"식물은 소리를 다 듣는다고 하잖아요. 아니 온몸으로 느낀다고 하죠. 씨앗을 심고 손을 잡고 노래를 불러주면 식물도 정말 잘 자라겠죠. 애들아, 알지? 정말 잘 자라라는 마음을 가지고 불러야 한다는 것. 준비 되셨나요?(네~) 자, 아빠 엄마 손을 잡고 마음을 모아서 '쑥쑥 자라라'를 큰 소리로 부릅니다."

쑥쑥 자라라 쑥쑥 자라라 햇볕 한 줌 이슬 한 모금

쑥쑥 자라라 쑥쑥 자라라 바람 한줄기 노래 한 자락

쑥쑥 자라라 쑥쑥 자라라 너도 자라고 나도 자란다 

■소박한 밥상과 이야기 나누기

텃밭에서 다시 송 선생 집으로 돌아온 일행은 각자 준비해온 쌀과 반찬 한 가지씩으로 점심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거의 동네 잔칫집 분위기였다. 아이들은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며 놀았다. 

멋진 밥상이 준비되자 참가자들은 다시 노래를 불렀다. 백창우의 시에 곡을 붙인 '밥상'이라는 노래였다. 식사는 끝났지만 이야기는 그칠 줄 몰랐다. 서로의 삶과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사실, 개똥이 어린이예술단이 텃밭 농사를 시도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한살림부산 공동체 텃밭에서 1년 정도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이번엔 송 선생과 우 대표가 의기투합, 연중 프로그램으로 꾸려보기로 했다. 새로 옮긴 부산의 사무실 옥상에도 텃밭을 만들었다. 

"올해는 농사짓는 것보다 여기 흙을 좀 가져다 집에서 상추라도 키워보게 하려고요. 어차피 소출을 많이 내려는 게 목적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소야골에서 농사 공부도 하고, 이야기도 듣고, 음악회도 개최하려고 해요." 

우 대표의 말이 계속 됐다. 

"상자텃밭 농사라도 지어보면 확실히 마음자세가 달라져요. 사서 먹으면 싼 데 라는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하면 안 돼요. 경작 본능이라고 할까요? 상처받았던 사람에 대한 치유도 되는 것 같아요. 영적으로도 도움이 되고요."

김은희 사무국장도 거들었다. 

"여기 오시는 분들만큼은 소야골을 함께 가꾸겠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주위에서도 체험 프로그램을 많이 보지만 진정으로 경계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체험만으로는 삶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스스로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생명 살림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가져갈까를 서로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족단위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것도 아이들만 덜렁 보내는 형태로는 지속적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러고 보면 어머니 역할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송 선생도 뼈 있는 한 마디를 건넸다. 

"모든 사람이 귀농, 귀촌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그리고 도심에는 농사 지을 땅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부터 실천해 보세요.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어요. 자기 능력을 과시할 필요도 없고요. 다만, 기회나 횟수는 많아지면 좋겠죠. 우리가 먹는 배추 무만 해도 공산품처럼 사고 파는 대상이 아닌,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자기가 1년이라도 농사를 지어보고 마트에 가서 푸성귀를 사게 된다면 생각이 바뀔 겁니다. '이게 왜 이리 싼가'부터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게 되면 눈물이 날 때도 있으니까요."

■흙을 가지고 각자 집으로~ 

이윽고 각자 집으로 돌아갈 시간. 송 선생은 잊지 않고 좋은 부엽토가 있는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각자 집으로 가져갈 흙을 채취했다. 낙엽을 거둬내고 호미로 땅을 팔수록 기분 좋은 흙냄새가 코끝을 싸하게 만들었다. 텃밭상자용으로 쓸 훌륭한 흙이 한 통 가득 채워졌다. 

이젠, 집안에 '작은 자연'을 들여놓을 일만 남았다. 

'꼬마 농부' 2년차 박채연(동양초등 5년) 양의 말이 재밌다. "제 평생(?) 키워본 식물 중에는 상추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씨를 뿌리고 키워서 직접 먹기까지 했으니까요!"

아닌 게 아니라 이날 저녁이 되자 부산 경남 지역에 큰비가 내렸다. 아마도 땅에 곱게 묻힌 강원도 씨감자는 그 비가 더더욱 반가웠을지도 모르겠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사진=김병집 기자 bjk@

※'노래로 자라는 텃밭' 프로그램 참가(매회 어른 1만 원, 어린이 5천 원) 문의 김은희(010-8815-6208), 소야골 숲속학교 문의 송영욱(010-7218-6523) 


 ③ 협동조합의 메카, 원주에서 배운다


인구 32만 명의 중소도시 강원도 원주, 인구 규모로 본다면 부산 북구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원주라는 도시가 지난해 12월 1일 혐동조합기본법 시행을 전후로 전국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원주의 협동조합 운동과 네트워크 모델을 알아보기 위해 원주를 방문한 이들은 92개 단체 2천760명. 각 협동조합 등 개별적인 방문까지 포함하면 198개 단체 5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렇다면 원주는 어떻게 협동조합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지난 22~24일 원주에서 만난 협동조합 및 사회적기업 관계자들은 원주가 어떻게 국내 협동조합의 산실이 되었는지를 알려주었다. 이와 함께 '지역 공동체 모델'로서 원주를 바라보는 외부 시선에 대한 부담과 고민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의 원주를 있게 한 역사적 배경에는 고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과 지학순 주교라는 큰 스승이 있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장일순과 지학순이라는 큰 스승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 김선기 사무국장은 "원주의 현재 모습은 과거 원주협동조합 운동 역사를 배제하고는 설명할 수 없다"면서 "역사를 발 딛고 서서 꿈을 꾸고 있다"는 말로 표현했다. '무위당만인회' 김영주 회장은 보다 구체적으로 "장일순 선생과 지학순 주교 덕으로 원주가 옛날부터 혐동조합 운동을 잘 꾸려왔다"고 강조했다. 

'네트워크'에 따르면 원주 협동조합 운동은 장일순 선생이 1966년 11월 13일 천주교인 35명과 함께 강원도 최초의 원주신용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초대 이사장을 맡으면서 본격화됐다. 앞서 1965년 3월 22일 천주교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으로 부임한 지학순 주교가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원주신협은 1972년 10월 주민 32명이 출자해 설립한 밝음신용협동조합의 모태가 된다. 

"고리채로부터 농민과 소상공인을 보호하고 자본주의 모순 속에서 사람답게 사는 공동체를 만들자" "만민이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등의 당시 외침은 현재의 협동조합운동의 추진 취지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85년 6월, 생명 사상에 기초하고 지역이라는 화두를 놓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생활협동조합인 원주소비자협동조합(현 원주한살림생협) 운동을 시작할 때도 장일순 선생은 "시장 기능에 농산물의 가격 결정을 맡기면 생산자인 농민은 항상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는데, 이 또한 자본주의 모순 극복, 대안사회 건설이라는 측면에서 궤를 같이 하는 셈이다.


원주에는 다양한 협동조합이 있다. 왼쪽 사진은 '밝음의 집' 건물에 입주해 있는 기관을 알리는 안내판. 밝음신협 외에도 의료생협에서 운영 중인 밝음의원·한의원, 무위당기념관, 한살림 등이 한 건물에 있어 시너지 효과도 높아 보인다. 오른쪽 사진은 갈거리사랑촌에서 운영 중인 무료급식소 '십시일반' 전경. 김은영 선임기자

■대안사회를 위한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현재 원주는 신용협동조합, 의료생협, 한살림생협, 공동육아협동조합, 교육협동조합, 영농조합법인 등 총 19개 단체가 모인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라는 조직을 갖추고 있다. 전체 조합원 수와 회원 수를 합하면 원주 인구의 11%인 3만 5천여 명(중복 조합원 포함)에 이른다. 연간 매출액은 300억 원, 고용 인원만 460여 명이다. '네트워크'에 속해 있지 않은 협동조합도 많다. 그래도 조합원이 되면 먹을거리를 구입하고, 아프면 치료받고, 아이들을 맡기고, 필요한 돈을 빌리는 정도는 해결할 수 있도록 구상했다는 게 놀라웠다. 

원주의료생협 박준영 전무는 "원주에도 스페인의 몬드라곤, 이탈리아의 볼로냐, 캐나다의 퀘벡처럼 다양한 협동조합이 포진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의료생협은 밝음신협, 원주한살림, 원주생협 등 7개 단체 공동출자로 만들어졌다"면서 "경영은 쉽지 않지만 먼저 생긴 조합이 새 조합을 인큐베이팅한 사례로도 눈여겨 볼 만하다"고 말했다. 

기관 상호 출자 형식은 장애인과 고령자를 고용해 친환경 떡을 생산하는 행복한시루봉㈜에서도 확인됐다. 지역 농민회 등에서 만든 친환경 쌀 등으로 다양한 떡을 만들고, 이를 조합원들과 일반 주민들이 주문·소비하는 방식이었다. 변상훈 대표는 "지역 떡집 3위에 오른 시루봉의 성장은 '네트워크'가 원동력이었다"고 말하면서도 "문제는 더욱 거세질 '식품 대기업'의 공세"라고 개탄했다. 특히 올해부터 떡집도 허가제로 바뀌면서 지역 업체로선 초비상 상태였다. 

이 밖에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만들어진 전국 유일의 원주노인생협, 생태건축협동조합을 지향하며 취약계층을 고용해 저소득층의 집을 수리하는 '노나메기', 지역빈곤층을 위한 무료급식소(점심) '십시일반', 노숙인 보호·이용시설인 '원주노숙인센터', '갈거리생활혐동조합' 등을 운영 중인 '갈거리사랑촌'도 눈길을 끌었다. 

'네트워크' 출발점은 지난 2003년 6월 8개 단체로 창립한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 혐동조합 운동이 사람답게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려면 개별 협동조합이 아닌, 혐동조합 간 협동(연대)을 통해 지역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확산, 공유된 결과였다. 그 '협의회'는 회원 단체 확대(12개) 및 사업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2009년 '네트워크'로 이름을 바꾸었다. 원주의 힘이 느껴졌다. 

그동안 '네트워크'는 주민 발의로 3대 조례 제정운동(학교급식조례, 친환경농업육성조례, 보육조례)을 펼쳤으며, 지역 현안 해결에도 적극 가담했다. 그리고 '네트워크' 사업단인 '친환경급식지원센터'를 중심으로 로컬푸드 운동을 전개, 2009년 12월 '원주 푸드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는 데 기여했다. 

■'행복한 달팽이'와 원주푸드종합센터

친환경 급식 조례 제정은 큰 성과였다. 결식아동 급식사업 및 로컬푸드 식당 '행복한 달팽이'를 운영 중인 맞두레㈜ 조세훈 대표의 설명이다. 

"맞두레는 로컬푸드 운동을 주관하고 급식에 친화경쌀 공급, 결식아동을 돕는 일을 하고 있어요. 로컬푸드 운동을 고민하게 된 건 농업생산이라는 차원에서 유기농의 사업화 경향과 보신주의에 대한 성찰이 있었고, 지역 농업 살림과 지역 먹거리 체계를 고민하던 중 학교급식 문제가 연동된 거죠. 일종의 협동조합 간 협동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맞두레는 현재 '원주푸드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법인 변경을 신청 중입니다."

조 대표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또 다른 고민이 읽혀졌다. 

"올 연말 원주에선 '원주푸드종합센터'가 첫선을 보이고 내년부터 초·중·고교 대상으로 전면 시행될 예정입니다. 네트워크 사업단의 노력으로 관련 조례가 만들어져 학교 급식에 친환경쌀 공급과 지역농산물 지원 근거 조항이 만들어진 점은 긍정적이지만 누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충분치 않습니다. 운동 에너지의 재점화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몇 가지 충고들

사안은 다르겠지만 협동조합 난립 움직임은 이미 전국적인 경계 대상이 되고 있음을 원주에서도 우려하고 있었다. 

'무위당만인회' 김영주 회장은 "요즘 관에서는 협동조합이 조금 뜬다 싶으니까 덮어놓고 '예산을 얼마나 주면 될까, 사람은 몇 명이나 배치하면 되느냐'고 묻곤 하는데 괜히 이거하라, 저거하라고 하기보다 스스로 하게끔 내버려두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회장은 또 "혐동조합 운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나눠지는 게 아니라 하나'라는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면서 "무위당 선생이 강조했듯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처럼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이야말로 경쟁하는 남이 아닌 바로 나에 속한 나라고 생각하고, '조 한 알에도 우주'가 있듯, 그런 생각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꾸려나갈 것과 '교학상장(敎學相長·가르치고 배우면서 성장함)'의 자세와 모든 일을 혼자서 하지 말고 여럿이 지혜를 모으는 '중지(衆智)'를 발휘해 나갈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 밖에 '무위당학교' 교장을 맡고 있는 황도근 상지대 교수도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기어라, 모셔라, 그리고 늘 함께하라'는 가르침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면서 "때론 다퉈도 삶의 지향점이 같으면 헤어지지 않는다"는 말로 '왜 협동조합인가'에 대한 답을 들려주었다. 원주=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④ 생태귀농학교 1박2일 동행


"생태귀농학교는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곳이 아니라 생태자립 의식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교육을 받으면서 '생태적 가치와 자립적 삶'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됐고, 수료 2개월 만에 사표를 냈죠!"

경남 사천시 서포면에서 8년째 자급자족 농사를 짓고 있는 최해곤(61·부산 생태귀농학교 14기 수료) 씨. 사뭇 담담한 어조로 2004년 상황을 들려주었지만 그로선 고민이 많았다. 


또 다른 귀농 6년차 선배 서석태(55·3기 수료·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 씨는 귀농·귀촌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경계하기도 했다. 

"한 가지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를 버려야 합니다. 귀농 역시 새로운 일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움직여 나가겠지만 상당한 위험과 고통,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 가지고 있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자 하면 시간이 더딜 수밖에 없고, 올바른 성취도 힘들 수 있습니다."

네 아이 아빠 정동석(45·26기 수료) 씨는 부산과 거창을 오가며 파트타임 강사 일을 하고 있는 '반(半)귀촌'인. "3년 됐습니다. 자녀 교육을 위한 귀촌이었죠. '아내와 아이들도 행복하냐고요?' 어느 날 제가 물었습니다. '나는 행복한데 니는 어떻노?' 초등생 딸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도시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물론 경제적인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지난달 30일 밤, 경남 거창군 거창읍 고제면 봉산리 거창귀농학교. 부산에서 온 예비 귀농인과 귀농학교 동문 선배 10여 명이 함께했다. 
거창귀농학교에서 열린 귀농인 선배와의 대화 시간을 갖 고 있는 39기생.

이날 부산귀농학교(교장 이해섭) 생태귀농학교 39기생 등 60여 명은 총 18강으로 진행되는 교육프로그램 중 11강 '귀농자와의 만남'을 위해 거창을 찾았다. 올해는 꼭 귀농하겠다는 사람부터 일단 생각 중이라는 이들까지 면면이 다르다보니 질문도 극과 극을 달렸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제가 좋아서 귀농했고, 어떤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니 매일매일이 행복해 죽겠어 라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잘 가고 있구나 싶으니 비교적 행복한 거겠죠."

-마을사람 '텃세'나 어려움은 없었나요?

"물론 도시보다는 불합리한 측면이 많죠. 하지만 예전부터 살고 있던 마을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서 불편해지는 걸 간섭, 텃세라고 한다면 충분히 견딜 만합니다. 적응에는 한 4년 걸린 것 같네요. 집을 짓고 나니까 비로소 적응한 것 같았습니다. 사실, 집을 짓고 나서 주소득원인 포도나무가 다 죽었어요. 이제 돈 나올 구석도 없고 뭐 먹고 사나 싶었는데 한편으론 내 집 있고, 내 땅 있으니까 어떻게든 살아가면 되는구나 싶었어요. 그때부터 '나는 정착했습니다'는 말을 하고 다녔어요."

-시골의 하루가 심심하지 않습니까?

"시골로 들어가기 전에 목공도 6개월 정도 배웠고, 자동차정비 기능사 자격증도 땄습니다. 시골에선 거의 모든 물품을 만들어 써야 하니까요. 일거리, 끝이 없습니다. 자기가 선택한 불편과 가난은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집을 짓거나 땅을 구할 때 신경쓸 점은요?

"자기의 여건을 보십시오. 무조건 땅을 보러 다니지 마시고. 내가 어디로 가서 살 수 있을 것인지를 먼저 결정하세요. 내가 거창에 와도 되는 여건인지, 몇 년은 부산하고 가까운 밀양이나 창녕이나 삼랑진 같은 데서 살아야 하는지 등등을요. 부산을 자주 왔다갔다 하셔야 할 분이 강원도로 가시면 망하는 거겠죠. 먼저 귀농하신 분들과 많이 상의하세요."

-귀농한 뒤에 신체적인 변화가 있습니까?

"일반적으로는 공기 좋고, 물 좋은 데 사니까 건강해질 수밖에요. 천식도 낫고, 기력도 회복하는 편이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몸이 맑아지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농촌에 와서도 오버 페이스는 곤란해요. 결국, 위험신호가 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궁금한 것도, 듣고 싶은 내용도 많았던지 누구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중엔 갓난아기까지 동행한 남정훈·이혜숙 부부, 초등생 딸과 함께한 안기홍·신은영 씨도 눈에 띄었다. 

귀농학교에 등록한 배경도 조금씩 달랐다. 긍극적으로는 행복한 삶을 갈구했다. 

고1 외아들을 둔 학원강사 문병우 씨는 "점점 각박해지는 도시생활이 숨막힌다"고 표현했다. 문 씨는 아들이 대학을 진학할 때쯤 귀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황경애·황순애 자매는 먼저 귀농한 여동생을 보고 결심을 굳혔다. 이제 서른을 갓 넘긴 김병조 씨는 제주가 고향인 부모님을 따라 귀촌할 생각이다. 제주에선 할머니 집을 개조해 펜션을 운영할까 싶다.

그에 비해 신말심 씨는 반신반의하는 중이다. 남편 진영길 씨의 생태귀농학교 입학식을 참관하러 왔다가 얼떨결에 등록했다. 

"제 나이 예순둘인데, 사람은 나이들수록 도시에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목욕도 시골 가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아프면 병원도 자주 다녀야 하는데 싶었던 거죠. 아, 근데 정말 이상해요. 강의를 들을수록 더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해서는 귀촌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지는 겁니다. 먹거리 하나에도 더 신경써서 암 발생률도 줄여야 겠다는 생각도 들고.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어요."

그들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환갑을 목전에 둔 주봉희 씨의 말이다. "귀농·귀촌 준비 강좌란 정도는 알았어요. 하지만 강의를 들을수록 '귀농·귀촌이 이민이나 다름없고, 직업을 바꾸겠다는 것보다 삶을 바꾸겠다'는 생각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던 '준비된 귀농'과 어떤 마인드를 갖추느냐의 중요성이 새삼 실감났다.

31일 다음 날은 거창 귀농인이 운영 중인 사과농장과 딸기농장 등을 견학하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사과·포도 등의 농사를 짓고 있는 이춘일(8기 수료) 동문이 포도나무 껍질 벗기기 도움을 요청하는 바람에 일부 모둠은 일손돕기 현장으로 파견됐다. 일손돕기 모둠에 동행한 기자도 600평 규모의 포도밭에서 2시간 남짓 포도나무 껍질 벗기기 작업을 했다. 이 씨는 "부부 두 명이서 했더라면 하루 온종일 걸려도 못 마칠 일을 10명이서 단숨에 해치웠다"고 일손돕기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작은 공동체의 힘이 느껴졌다. 

이윽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39기생 손대성(57) 씨가 말했다.

"옛날엔 귀농이라고 하면 도시에서 망해서 농촌으로 쫓겨가는 걸로 오해도 받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생산한 깨끗한 농산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팔 수 있다면 굉장한 자부심이 느껴질 것 같다. 정직한 농부가 되는 게 지금 소원이다. 농부가 된다는 것도, 옛날엔 '스스로에게 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스스로 깨달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생태귀농학교 담당자인 조자완 총무팀장은 "정년을 2~3년 남겨놓은 분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지만 최근엔 젊은 부부의 참여도 늘고 있다"면서 "도시문명에 대한 위기감, 교육문제 등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이 귀농학교에 대한 관심을 되레 증폭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거창=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부산귀농학교

1998년 5월 제1기 생태귀농학교를 시작으로 그동안 1천30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운영비는 귀농 동문들이 십시일반 내는 후원회비와 교육생들의 실습비로 충당하고, 때때로 도농직거래 및 일손돕기 등으로 동문 선후배 간의 끈끈한 유대를 이어가고 있다. 제40기(2013년 5월 14일~7월 2일), 제41기(2013년 9월 10일~10월 31일) 생태귀농학교 접수 등록 중. busanrefarm.org, 051-462-7333, 070-4069-7444.


⑤ 월전활어판매장


혐동조합은 아니다. 하지만 상부상조의 협동조합 정신을 17년째 고수하고 있다. 운영 방식도 독특하다. 오늘 하루 일했다면 다음 날은 쉰다. 그 자리는 다른 사람이 다른 상호로 영업을 한다. 같은 자리라도 한 달밖에 쓸 수 없다. 나름 목 좋은 곳, 그렇지 않은 자리가 있다 보니 한 달에 한 번씩 옆 칸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매달 마지막 날 밤은 이사하는 날이다. 탈퇴는 가능해도 새로 가입은 안 된다. 자식, 며느리는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다. 마을 주민이 아닌 사람에게 자기 권리를 파는 건 안 된다. 이 모든 게, 한동네 주민들끼리 수익을 공평하게 나누자는 취지다. 

부산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월전마을 40여 가구가 공동으로 운영 중인 월전활어판매장(이하 활어장)과포장촌(초장집) 이야기다. 지난 8일 활어장에서 만난 한석준(덕계집 운영) 관리인(총무)은 "영업은 보름밖에 못하지만 고루 먹고 살자는 뜻이 담겼다"고 말했다. 

17년째 상부상조 정신 고수
하루 일하면 다음 날 하루 쉬고
2인1조 서로 돌아가며 장사
주민 전체 공평한 수익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자리 이동
목 좋고 나쁨 불만 없애

"단골 가게 찾으실 땐
위치 대신 가게이름 외우세요"


그러고 보니 몇 주 전, 사전 취재를 위해 찾았을 때 입구에서 만난 '소영이네' 김둘임 씨는 달이 바뀐 탓인지 맨 안쪽 바닷가로 자리를 옮겼다.

그나마 낯이 익은 '소영이네'부터 들렀다.

-이사하셨네요! 매번 바꾸면 힘들지 않으세요?

"안 그러면 집집마다 버는 게 차이 나잖아요. 그 정도 불편은 서로 감수해야죠! 단골 손님도 가끔은 헷갈린다고 하시는데 위치 대신 이름을 외워야 해요."

-어젠 쉬셨겠네요. 쉴 땐 주로 뭐하세요? 

"집집마다 달라요. 저는 미역을 만들어 팔지만…. 이것만 해선 돈이 안 돼요."

-월요일이라서 그런가요? 조용하네요.

"여기 사람 절반 정도는 관광 갔어요. 두 집 모두 나와 있는 경우는 별로 없을 걸요."

-두 집요? 아니, 영업일도 격일인데 가게 운영도 한 집에 하나씩이 아닌가봐요?

월전활어판매장에서 구입한 붕장어를 옆 포장촌에서 맛있게 구워서 먹고 있는 손님 모습.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김병집 기자 bjk@

"'2인1조'라고 보면 돼요. 활어장은 고깃배가 있는 집과 그렇지 않는 집이 주로 짝을 이루고요, 여기다 붕장어구이를 해주거나 초장, 야채 등을 제공하는 포장촌이 같은 상호로 연결돼 있어요. 상부상조하는 거죠! 집집마다 할당된 주차칸이 있어서 손님이 주차를 하면 활어장으로 연락이 와요. 활어장에선 고기나 해산물을 판매한 뒤 같은 상호의 포장촌으로 손님을 안내하는 식이죠."

활어장 관리인 한 씨도 부연설명을 했다. 

"활어장에는 14개의 코너가 있으니까 모두 28가구가 참여하고 있어요, 포장촌도 가게가 7군데니까 14가구, 그러니까 총 42가구가 여기서 장사를 한다고 보면 돼요. 월전마을 전체 가구로 볼 땐 절반이 안 돼요. 1996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50여 가구가 참여했는데 일부는 독립해 나가면서 줄었지요."

월전어촌계장 이대진 씨도 말했다.

"주민들이 한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애쓰는데 참 힘드네요. 그나마 각종 해산물이나 야채는 주민들이 직접 채취하거나 기른 것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월전 주민의 80~90%가 활어장과 포장촌 덕택에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렇다면 이 같은 공동체 운영 방식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처음엔 고기를 잡아서 시장에 넘기다가 '우리가 잡은 고기 우리가 직접 팔면 어떻겠노!'라고 생각한 거죠. 정말이지 '다라이'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오면서 고발도 여러 번 당하고, 벌금도 숱하게 냈어요. 그러다 지금처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연간 임대료를 내고 영업을 하게 됐어요. 기장군청에서 양성화라도 시켜주면 좋겠는데 쉽지 않은가봐요."

이번엔 '소영이네' 김 씨를 통해 관광을 가지 않은, 두 집 모두 나와 있는 '아란이네'를 소개받았다. 시이모네와 조카며느리가 공동 운영 중이었다.

-두 집이 한 가게를 운영하는데….

"장소는 한정돼 있고, 하는 사람은 많고, 번거롭긴 해도 다같이 마음 맞춰서 해야죠. 내가 잡은 고기를 파니까 한 마리라도 더 챙겨줄 수 있어서 남의 장사보다 마음 편해요. 이모님도 많이 챙겨주시고요. 외부인이 못 들어와서 그렇지 마을사람들끼리는 한가족처럼 지내요."

조카며느리 강민희(33) 씨가 대답했다. 

-격일제 근무도 나쁘진 않겠는데요.

"아무래도 가게에 나오지 않는 날은 아이를 더 챙겨줄 수도 있고 제 시간 갖기도 좋아요."

활어장을 둘러보니 취급하는 품목은 거의 비슷했다. 붕장어 인기가 역시 높았다. 예전부터 연화리, 학리 등에서 붕장어가 많이 잡힌 탓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계속된 저온현상으로 기장 인근에선 어장 형성이 안 돼 출어작업을 제대로 못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니 가격도 상대적으로 오를 수밖에. 지금은 장어 1㎏에 2만4천 원을 받고 있었다.

이번엔 활어장 '아란이네' 민희 씨를 통해 포장촌 '아란이네'를 소개받았다. 

포장촌도 활어장과 마찬가지로 격일제 영업이지만 이래저래 더 힘든 속사정이 있었다. 허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그로 인해 가끔은 '벌금앓이'도 하지만 그럴수록 공동체라는 존재가 감사했다.

포장촌 '아란이네' 최영선 씨가 말했다. 

"큰돈 벌겠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한 달에 13일 정도 영업할까? 비 오면 못 하고, 자리 안 좋으면 못 하고, 단체 청소 등등을 빼면 그 정도 될 거예요. 그래도 이런 일자리가 있는 게 어딥니까! 조금 덜 벌어도 함께 살아야지, 라고 생각해 주는 게 고맙죠."

포장촌 '울산집' 박행순 할머니도 한마디 보탰다. 

"월전마을 사람들 인심이 얼마나 좋은데요. 싸우고 그러진 않아요. 다들 벌어먹고 살려고 그러는 거고, 마을을 잘 운영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지요."

포장촌 관리인(총무) 김태복 씨가 운영 중인 '진동이네'에선 경북 영천에서 기차(무궁화호)를 타고 기장역까지 와서 택시를 갈아타고 온 일행을 만났다.

월전을 한 번 다녀간 친구 소개로 왔다는 조미경 씨 등 일행은 "운영 방식도 독특하고, 어딘지 모르게 낡은 포장마차촌이지만 낭만이 느껴진다"면서 "붕장어구이 맛도 맛이지만 결국은 이런 분위기가 좋아서 손님이 찾는 것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점점 각박해지는 세태 속에서, 작은 포구마을 사람들의 상부상조 정신은 '달밭마을' 월전(月田)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예쁘게 다가왔다. 월전어촌계장 이 씨가 "다른 어떤 어촌보다도 다이내믹하고 활기찬 편"이라는 말도 조금씩 실감났다. 그리고 취재를 마치고 돌아나올 때 어떤 주민이 들려준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이 모든 게 양성화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게 어려우면 그냥 이대로 가만두면 좋겠어요. 다들 어렵게 살지만 열심히 살잖아요. 우리가 1년 365일 매일 장사를 하면 돈은 더 벌겠죠. 하지만 우리 상황이 그게 아니잖아요.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쉬어야 하는…. 그래도 어촌마을 자체에서 하는 것이니까 큰 욕심 없이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거죠. 돈은 안 되지만 삶의 여유가 있는, 그런 게 결국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게 아닐까요!"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⑥ 일손 돕기 모임 '꽃보다 이모'


한살림부산 공동체가 전국적으로 자랑하는 '일손 돕기 모임-꽃보다 할매'가 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남 밀양의 '성지골 농장'으로 완두콩 따기 작업을 하러 갔다. 성지골 김정회(41)·박은숙(40) 씨 부부의 셋째 윤겸(당시 6세) 군은 50대가 주축이 된 이들을 보고 '할매'라고 부르는 게 의아했다. "할매가 왜 이렇게 젊어요! 난, 이모라고 부를래~" 그날 이후, '꽃보다 할매'는 '꽃보다 이모'(이하 꽃이모)가 되었다.

'꽃이모' 활동이 만 4년을 넘겼다. 1년에 한두 번, 많아도 분기별, 그것도 생협 실무자 중심으로 일손 돕기를 하는 곳은 많지만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관계로 만나서, 매달 한 차례씩 수년째 자발적인 일손 돕기를 '실천'하는 소모임은 드물다. 

지난 11일 기자는 '꽃이모'의 성지골 농장 김매기 현장에 동행했다. 

주부·회사 대표·병원장 사모님…
꼬박 4년간 매달 한 차례 '착한 노동'

점심은 각자 준비한 '도시락 만찬'
온 종일 땀 흘리고도 행복한 미소

왜 이런 고생 사서 하느냐는 질문엔
"결국은 나를 위한 일인데 뭐~"

오전 8시
 승합차 운전면허를 가진 유일한 '꽃이모' 권정혜 씨가 운전대를 잡았다. 이날 '꽃이모 승합차'에는 '1일 기사' 권 씨와 기자를 포함한 12명이 탑승했다. 전업주부 외에도 현직 회사 대표, 병원장 사모님, 전직 교사, 30년 근무 경력의 병원 원무부장 출신, NGO 활동가 등 다양하다.

8시 50분 모든 사람이 탑승하자 회비(5천 원)가 '징수'됐다. 이영숙 총무는 "'꽃이모'는 점심도 각자 준비하고 통행료도 스스로 해결한다"고 자랑했다. 먼 곳은 꼭두새벽 출발, 때론 1박2일도 한다. '꽃이모 원년 멤버' 강영희 씨는 "생산지 일손 돕기는 누가 누구를 돕는 차원이 아니라 결국은 나를 위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내 몸에 좋은 유기 농산물을 먹는다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 나와 자연, 소비자와 생산자가 더불어 함께 살아감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이월숙 모임장도 "일이라고 생각하면 부담스럽고, 한 달에 한 번, 놀러간다고 생각하면 편하다"면서 생산자와의 '소통' 부분을 강조했다. 

10시 00분 농장에 도착했다. 이날따라 세찬 바람이 태룡리 들판을 휘감았다. 농장 안주인 박은숙 씨가 살갑게 맞아준다. 차량에서 내린 '꽃이모'는 컨테이너 박스로 이동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일할 채비를 갖췄다.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이 뭔가요?"

'어이쿠! 바닥에 엉덩이 한 번 안 붙이고 곧바로 일하러 가네!' 이게 또 '꽃이모'다운 것이구나 싶었다. 

"오늘은 바람이 너무 불어서 바깥일은 힘들 테니까 하우스 작업을 할게요, 맨 끝 브로콜리 하우스 보이지예, 잡초가 천지삐까립니다."

10시 15분 박 씨가 시범을 보인다. 

"구멍마다 풀이 있지예~ 그걸 뽑으면 됩니데이. 일단 손으로 함 뽑아보고 안 되는 건 호미 쓰이소. 브로콜리 안 다치게 조심해야 됩니데이~. 아직은 야들이 뿌리가 약해서 잘 뿌라집니더."

'허걱!' 5분도 안 돼 이파리 하나를 부러트렸다. 정말 조심스러운 작업이다. 발 디딜 곳도, 엉덩이 걸칠 곳도 마땅찮은 데 잡초는 뽑고 브로콜리는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하니 허리만 엉거주춤 구부린 상태의 작업이 이어졌다. 

1시간쯤 지났을까 허리가 아파 일어서려는 데 머리가 빙글 돈다. '복학생'(원년 멤버 총무였다가 3년 만에 복귀했다) 정명숙 씨가 "일도 안 하다가 하니까 어지럽네요"라고 말해 위안을 삼았다.

11시 15분 네 아이 엄마, 박 씨가 사는 이야기도 궁금했다. 

-농사를 빨리 시작하셨네요.

"IMF 때 남편이 명퇴를 하고 귀농을 선택했죠. 이 마을에 정착한 지도 벌써 10년째네요. 현재는 감자 당근 완두콩 등 2천400평 규모의 유기채소 농사를 짓고 있어요. 유기농 자연퇴비 배설물을 사용하려고 소도 키우고요. 남편은 중고 굴착기로 부업도 해요. 오늘도 아르바이트 갔어요."

-두 분이서 농사짓기엔 규모가 크진 않나요?

"그러니까 '꽃이모' 같은 분들이 고맙지예. 솔직히 우리는 먹고 살라고 농사짓는 건데, 이래 애정을 갖고 도와주시니까 정말 고맙지예. 남편이 밀양 송전철탑 동화전마을대책위원장도 맡고 있지만 데모 이후엔 전국에서 농활을 오세요. 이전에는 '꽃이모'가 거의 유일했지만요. 이런 도움이 없다면 우리 부부끼리 하든가 그것도 안 되면 놉을 대야 하는데 인건비가 워낙 세서 놉도 쉽지 않아요."

12시 00분 마침내 오전 작업이 끝났다. 2시간 정도 밖에 풀을 뽑지 않았는데도 비료 포대로 몇 개를 갖다버렸는지 모르겠다. '사람 손이 무섭다'고 그 많던 풀이 깔끔하게 정리됐다. '원년 꽃이모' 탁선아 씨도 "일하다 가끔씩 뒤돌아보면 밭이 깨끗해진 게 그리 기분 좋을 수가 없다"면서 "좋은 농산물을 먹으려면 풀도 한 번쯤 뽑아 봐야지 안 그러면 어찌 농부의 수고로움을 알 수 있겠어요!"라고 지적한다. 
'꽃보다 이모'가 매달 일손 돕기를 하면서도 지키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생산자에게 절대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 그에 따라 회원 각자가 싸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오후 1시 식사는 각자 싸온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맨밥(현미)에 냉이와 머위 장아찌, 참당귀, 도라지, 으름덩굴 등 한두 가지씩 꺼내놓은 반찬 종류에 입이 딱 벌어졌다. 농장 안주인 박 씨도 "와~ 한살림 조합원 아니랄까봐 반찬 하고 그릇 함 보이소. 생활 속에서 묻어난다니까예!"라며 탄성을 질렀다. 박 씨도 이들이 고마워 즉석에서 된장쑥국이랑 미나리를 준비해준다.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자 삼삼오오 둘러앉아 이야기꽃이 펼쳐진다. 그야말로 소통과 교류의 시간. 회원끼리,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주고 받는 허물없는 이야기다. 동네 이야기,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 등등. 일부는 봄나물도 캐러 나갔다. 성지골 농장은 유기 농사를 짓는 터라 밭 둑 등에 자생하고 있는 '봄나물'도 사실상 보약이나 다름없다. 

"같은 동네라도 우리는 유기농을 하지만 다른 분들은 일반 관행농이어서 농약이나 제초제를 사용하세요. 어떤 때는 그분들이 우리 보고 '뭐 그리 오래 살라꼬 유기농, 유기농 캐샀노!"라고 하세요. 근데, 재미난 건요. 요즘 그분들도 자기 논밭 두렁에 자라고 있는 쑥은 식구들 먹이기가 그런지 우리 밭으로 오셔서 캐 가세요. 그때마다 겸연쩍으신지 저보고 그래요. '아~ 이거, 우리 아들 줄라꼬!' 다같이 잘 먹고 잘 살아야지 싶어 웃고 맙니더!"
양배추 하우스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모습.

2시 00분 오후 작업이 재개됐다. 바람은 여전히 거세게 불었다. 이번엔 브로콜리 하우스보다 더 큰 양배추 하우스로 옮겨갔다. 오전 뽑기 작업으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허리는 더 아파왔다. 그러자 이영숙 총무가 한마디 툭 던진다. "남 한다고 다 따라하지 말고 요령껏 쉬어가면서 하세요." 베테랑 '권 기사'도 덧붙인다. "이것도 '학년'이 올라가야 보이는 일이지만 뽑을 땐 확실히 뽑아줘야 돼요. 잡초가 괜히 잡초가 아니라니까요. 뿌리째 안 뽑으면 물 주면 다시 벌떡 일어난다니까요! 오죽하면 어떤 할머니는 밭에 시멘트라도 발라 버리고 싶다고 했을라고요." 그래도 잡초가 자랄 수 없는 땅은 살아있는 땅도 아니란 말을 위로 삼으면서 오후 작업을 이어갔다. 

4시 00분 이제 마무리 할 시간. 오후 2시간도 금세 지났다. 그제서야 파릇파릇 이파리를 키워가는 양배추의 싱싱함이 눈에 들어온다. 이달 말이면 생산지를 떠나 소비자 가정으로 보내질 소중한 땀방울의 결정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하우스 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잡초를 담은 포대를 머리에 이고지고 한 사람, 두 사람이 걸어 나온다. '뚜벅뚜벅~' 지난 4년간 해 온 것처럼 앞으로 이들이 걸어가야 할 길일지도 모르겠다. 

4시 30분 헤어질 때는 늘 아쉽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일을 보며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도착했을 땐 보이지 않던 일도 더 눈에 들어온다. '아이고, 저 당근 밭의 풀 좀 보라고….' 승합차를 출발시키려는데 박 씨가 무언가를 양손 가득 들고 나타났다. 양배추였다. "아직, 속이 완전 여물진 않았는데 이거라도 한 통씩 가져가세요~ 제 마음이에요!" 좀체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꽃이모'들이지만 이날만큼은 "감사하다"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6월 완두콩 딸 땐 '번개 일손 돕기'하러 다시 올게요!" 

부산으로 돌아오는 차 안, '꽃이모'들은 고백했다. "바른 먹거리 생산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이 늘 안쓰럽지만 그들로 인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감사하다…많이 배우고, 많이 웃고, 흙냄새 실컷 맡아서 정말 행복했다…횟수를 거듭할수록 우리의 즐거움 크기도 커져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함께 하는 회원끼리도 끊임없이 자기를 낮추는 모습에서 많은 걸 배웠다 …." 그렇다. 이들은 도와주러 갔지만 결국 많은 걸 얻어서 돌아왔다. '착한 순환'이다. 밀양=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⑦ 부산YWCA생협 'EM 사랑'


"알면서도 안 하고 몰라서도 못하는 것 중의 하나가 EM 아닐까요?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결국은 자신의 생활 습관을 변화시킬 때 사람도, 환경도 살릴 수 있을 겁니다."

EM(Effective Micoro-organisms·유용미생물)이 뭐길래 이런 말들이 오고 가는 것일까. '착한 미생물' EM 전파를 위해 10년 넘게 노력해 온 부산YWCA 하선규 회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2002년 활동 시작 10여 년째
최근 사회적 관심 식어 안타까워
EM 쌀 뜨물 발효액 흘리기만 해도
반경 4㎞ 강물 정화할 수 있어
귀찮고 불편해도 친환경적 삶 살아야
후손에 깨끗한 자연 물려주는 건 의무

-EM 저변 확대는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죠?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조금만 귀찮아도, 불편해도 안 하는 게 사람 심리잖아요. 내 생활이 될 때까지 실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말 안타까워요. 지속적인 동기 유발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난 25일 오전 부산 사상구 모라동 모라우리교회 예배당. 종파를 초월한 사상구 관내 14개 교회 교역자로 이루어진 '사상교역자협의회'는 부산YWCA와 공동으로 'EM과 생활환경'특강 시간을 마련했다. 

이날의 강사는 부산YWCA 하 회장. 사상교역자협의회 대상 EM 특강이 처음은 아니다. 교회가 지역의 환경 문제를 고민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게 정말 의미 있다 싶어 하 회장도 없는 시간을 쪼개 함께하고 있다. 

"오늘날 인간이 만들어 내는 생활 폐수는 물의 자정 작용만으로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양이 엄청나다고 하잖아요. 근본적으로 생활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환경오염으로 인한 재앙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상의 사소한 습관부터 친환경적으로 바꿔나가야 할 겁니다."

하 회장도 이날 강조했지만 우리나라의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은 해마다 증가해 2012년 기준 1만7천 톤. 전체 음식물의 약 7분의 1이 버려지면서 연간 약 25조 원을 낭비처리 비용만도 연간 8천억 원에 달한다. 
이날 강사로 나선 부산YWCA 하선규 회장의 강의 모습. 김병집 기자 bjk@

하 회장은 또 "사람들이 환경을 이야기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농약이 들어간 쌀 씻은 물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위험성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편"이라면서 "이왕이면 유기농 쌀을 이용하고, 그렇지 못할 땐 쌀뜨물을 EM으로 발효시킨다면 강이나 바다의 정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M의 발견자 히가 테루오 교수의 말을 인용한다면, 건강한 흙 1g 속에는 무려 10억 개가량의 다양한 미생물이 들어있고, 대부분의 미생물은 중간자적 성질을 갖고 있어서 우리 몸에 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병을 일으킬 수 있는 나쁜 미생물을 물리쳐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 즉, EM에는 효모, 유산균, 누룩균, 광합성세균, 방선균 등 80여 종의 미생물이 들어있어 △악취 제거 △식품의 산화방지 △하수구정화 △음식물쓰레기 발효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라우리교회 김상곤 목사는 "환경 문제는 나의 생존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생활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서 "조금 귀찮더라도, 조금 불편하더라도 후손들에게 물려줄 땅과 물, 공기를 소중하게 지켜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문교회 강동현 목사는 교회에서부터 EM 활용을 적극 권장하는 편인데 쉽지는 않다고 했다. 그나마 매번 300명가량의 교인들이 식사를 할 때 나오는 쌀뜨물을 EM 발효액으로 만들어 교인들에게도 나눠주고 교회에서도 사용한다. 또 그것과 별도로 교회 식당에선 음식물쓰레기 EM분쇄기도 시범 사용 중이고, 교인들과 때때로 EM 흙공도 만들어 학장천 살리기에도 동참하고 있다. 

강 목사는 "EM 쌀뜨물 발효액을 흘리기만 해도 반경 4㎞가 정화되고, 15층 아파트 같은 라인의 몇 집만 사용해도 모든 오염물이 정화된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라면서 "작은 실천이 모여 큰 뜻을 이룬다는 의미를 알겠다"고 말했다.

사실, 강 목사나 김 목사가 EM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부산YWCA와 하 회장의 도움이 컸다. 부산YWCA가 EM 알리기에 나선 것도 어언 10여 년. 지난 2002년 창립총회를 갖고 츨범한 부산YWCA 생활협동조합 활동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YWCA 생협 성인심 상무나 부산YWCA 하 회장, 김혜경 사무총장 등은 'EM 1세대'라 할 만하다. 이들 가정에선 세탁·설거지는 기본이고, 하수구나 배수구 악취 제거, 환기구나 가스레인지 주변의 기름때 제거, 화장실 변기 청소, 과일·야채 씻을 때, 화초 기를 때, 이 닦을 때, 목욕할 때, 공기 정화를 위해서도 EM을 폭넓게 활용 중이었다. 또한 EM 생활화 활용 교육 등 지역사회 공헌 활동, 지역 하천 살리기를 위한 EM 흙공 만들어 던지기 등 생태회복 운동에도 힘을 보탰다. 

그 밖에 부산YWCA에서 운영하는 강서구지역자활센터(051-973-6998)는 지난 2005년부터 EM허브페브리즈, EM모기퇴치제, EM세안비누 등의 제품을 판매 중이며, 영농사업단에선 EM사용 농업도 펼치고 있다. 샴푸와 린스 등 욕실용품 등 나머지 EM 제품은 전문화된 업체가 생산한 것으로 부산YWCA 생협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EM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조금은 시들한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매년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 온 부산YWCA 생협의 EM 원액 판매도 2011년을 정점으로 지난해는 절반 가까이로 매출이 뚝 떨어진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하 회장은 "끊임없는 EM 교육과 생명운동의 재점화가 필요한 시점 같다"고 고백했다. 부산YWCA 생협도 이번 특강을 계기로 다시 한 번 EM 확산 보급에 가일층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전했다. EM 관련 문의는 부산YWCA 생활협동조합(051-441-2222).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⑧ 숲으로 간 아이들


▲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임재택 교수는 한 강의에서 "아이를 '생태적'으로 키우자는 의미는 유식한 말이고, 쉽게 이야기 하면 진짜 유아교육, '자연산'유아교육"이라고 설명했다. 동네 아이들을 떼로 가두는 '양아장(물고기를 인공적으로 기르는 양어장을 빗댄 말) 교육'이 되어선 곤란하다는 의미의 말을 전하면서 아이들에게 자연과 놀이를 되살려줄 것을 강조했다. 공동육아 개념의 숲유치원으로 운영 중인 금샘숲학교 5세 해누리반, 7세 온누리반 아이들이 금정산 '큰바위놀이터'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주 1~2일이 아니라 5일을 숫제 숲에서 보내는 아이들이 있다. 정규 유치원은 아니지만 명백하게 숲유치원이다. '체험학습원'으로 등록된 게 다르다면 다르다. '금샘숲학교' 이야기다. 자가 소유 건물이 없는, '공동육아' 비슷한 개념으로 숲학교를 운영하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학부모가 내는 월 교육비도 교사 4명의 월급, 거점이 되는 교실 임대료 등 각종 비용을 산정한 뒤 'N분의1'로 나눴다. 비를 맞고 놀기도 하지만 내가 들어갈 공간이 있다는 것과 없는 것은 달라서 거점 공간을 마련했다. 때마침 부산 금정구 금성동 푸른체험학습원 '허브랑야생화' 이덕권 대표도 흔쾌히 수락했다.

"한편으론 미안하고 고맙죠. 엄마들만 해도 일말의 불안감도 있을 텐데 다르게 키워 보겠다는 일념으로 감수하니까요."

유아 위한 체험학습원 '금샘숲학교'
일주일 중 5일 야외 생태공부
이 좋은 델 두고 왜 교실에 가둬요?

금샘숲학교 이사로 있는 채영숙 원장의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아이들을 숲으로 보내고 싶었을까?

"눈에는 안 보이지만 아이들 자라는데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생태 교육을 한 지 8년째인데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생태적인 본성이나 자발성, 자유로움을 스스로 배워요. 생태교육을 하지 않았더라면 기존 유아교육을 지속했겠죠!"

지난달 30일 금샘숲학교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주로 화명동 일대에 사는 아이들은 승합차로 '허브랑야생화' 거점 교실까지 왔다. 하지만 이날은 6세반이 화명수목원으로, 5세와 7세반이 부산학생교육원 인근 금정산 숲으로 각각 흩어졌다. 오늘은 거점 교실 급식 대신 각자 집에서 도시락을 싸왔기에 곧바로 숲으로 간 것이다. 
7세반 아이들은 5세반 아이들과 짝을 이뤘다.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건너고, 울퉁불퉁 돌길도 지났다. 그렇게 20여 분 숲으로 난 길을 걸었을까 널따란 공간이 나타났다. '큰바위놀이터'다.

각자 메고 온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바위로 뛰어오르는 아이, 가방을 멘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무를 타는 아이, 풀장 놀이를 하는 아이, 나뭇가지를 모아 집짓기를 시작한 아이, 솔방울 놀이를 하는 아이, 나무화살을 만드는 아이,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 병원 놀이를 시작한 아이, 나무냉장고 소꿉놀이를 시작한 아이, 쫄쫄이 놀이를 하는 아이, 주운 나뭇가지로 윷놀이를 하는 아이…정말 제각각이었다.

"선생님, 여기, 개미아파트 좀 보세요." "개미? 안 보이는데…." 기상천외한 답이 돌아온다. "안에서 요리를 하고 있나 봐요."

도연이는 '솔방울 사탕'을 만들었다. 도연이에게 물었다.

-숲에 오면 뭐가 재밌어요? "즐거운 게 많잖아요."

경원이가 물었다. "진달래가 왜 자꾸자꾸 없어지죠?" "오~ 멋진 질문! 경원아 왜 그런지 알아보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도 알려줄 수 있겠니?"
성대는 나뭇가지에 손을 긁혔는지 선생님을 찾았다.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바른 뒤 밴드를 붙여주는 윤상록 선생님. 이번엔 누군가 '쉬~'를 요청한다. 박빛나 선생님이 '오늘의 구덩이'로 데려가 오줌을 뉜다.

지호가 운다. 전날 병원을 다녀왔다더니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오전 2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시계는 낮 12시를 가리켰지만 노는 데 정신이 팔린 아이들은 그 누구도 밥을 찾지 않는다. 선생님이 밥 먹을 준비를 하자 그제야 아이들이 도시락과 물을 챙겨서 자리에 앉는다. 영락없는 소풍이다. 이 아이들에겐 날마다 소풍인 셈이다.

-매번 같은 장소로 오는 건가요?

"새로운 곳보다 같은 곳이 좋아요. 한 장소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느껴볼 수 있으니까요. 한 곳에 가다 보면 오늘 못 봤던 걸 내일 볼 수도 있고요."

-텃밭 경작도 한다면서요.

"감자와 상추를 심었어요. 매주 한 차례 도자기 실습을 하러 갈 때 물을 줘요. 가을배추는 직접 심어서 김장김치도 담가요."

자원봉사자로 따라나선 민균(7) 엄마 송진희 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민균이 형 민결이도 2년을 다니고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단다. 불안하진 않았을까?"7세가 될 때 잠깐 망설이긴 했어요. 취학 준비를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싶어서요.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서 그대로 두었어요."

-그렇게 밀고 나간 힘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 어렸을 때와 기본을 생각했어요. 아이들은 많이 놀게 해야잖아요. 엄마들은 교구놀이를 하는 게 논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보다는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게 하는 게 정서적으로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민결이 학교 적응은 잘 하나요?

"네, 아주 잘해요. 체력도 끝내주고요. 민결이가 조금은 예민한 편이었는데 숲학교를 다니면서 참 좋아졌어요. 남자애인데도 감수성이 확실히 발달했고요. 세심한 부분까지 잘 봐요."

-교육비는 부담스럽지 않나요?

"이것도 교육 방법 중 하나인데 나라가 부모의 교육철학을 믿고 지원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엔 지원 해주면서 이건 안 되는 건 정말 아쉬워요."

그런데, 지호 상태가 아무래도 좋지 않다. 채 원장이 지호를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아이들이 아플 땐 신경 쓰이겠어요.

"아무래도 자연으로 나가면 몇 배로 힘이 들죠."

-그래도 보람 있으시죠!

"그럼요. 좋은 걸 보니까 다시 교실로 들어갈 수가 없네요. 힘들 땐,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나 싶다가도 아이들한테는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디 가서 이런 유아기를 보내겠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행복해 하잖아요."

-아이들의 변화상이 느껴지나요?

"아이들을 숲으로 데리고 가 보니까 확실히 과잉행동, 정서불안, 수업시간에 몰입 않고 산만하던 게 고쳐지더라고요. 집중력이 생기고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아이들이 맑아지는 걸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어요. 실제 변하는 모습을 보니까 신념이 생기는 거죠."

-이 일을 계속 하실 건가요?

"제가 한다기보다 교사가 있고, 아이들이 있는 한 도와주어야죠. 숲학교 교사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아이에 대한 이해와 숲학교에 대한 철학도 있어야 해요. 만약 사람을 잘 못 만나면 오히려 산에서 더 억압적일 수 있어요."

-교사와 학부모의 생각이 참으로 중요한 것 같네요.

자연 속에 맘껏 몸을 맡긴 아이들
"즐거운 놀이가 너무 많아요" 신바람
집중력 좋아지고 마음도 맑아져


"맞아요. 얼마 전 부모교실에서 한 어머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원장님 요새 아이들 옷이 좀 깨끗한 것 같습니다! '원장 시집살이'는 이 정도는 시켜야죠. 하하-"

-숲유치원을 생각하는 부모들께 조언을 한다면요.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에 대한 철학이 중요해요. '옆집 아줌마'가 간다고 따라갈 순 없잖아요. 자연에선, 불편할 수도, 긁힐 수도 있으니까요. 안타깝지만 이제는 또래문화, 자연 등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줘야 되는 시대라는 것도 감안해야 하고요." 

이날 금샘숲학교 아이들은 오후 2시 넘어서 '큰바위놀이터'를 빠져 나왔고, 다시 아침의 승합차를 타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채 원장은 이전에 화명동에서 4.5세반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인연으로 지금의 아이들 몇몇을 만났고, 주 1~2회 금정산을 오르내리다가 급기야 어린이집도 접고 금샘숲학교로 의기투합했다. 올해 첫 졸업생을 내보냈으니 3년째다. '본업'인 유치원도 올 3월 새로 시작했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 문의=금샘숲학교 채영숙 원장 010-3845-0796, 허브랑야생화 051-515-0130, 한국숲유치원협회 www.forestkid.co.kr, 부산시 푸른산림과 051-888-3695.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