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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2일 수요일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잘하는 게 뭐지?’

출처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1655 (김은남 기자)

“공부 열심히 한 것을 후회한다”라는 고백이 ‘고시 2관왕’ 입에서 나오자 청중들의 눈이 커졌다. 부모들을 위한 ‘2014 등대지기 학교’ 여섯 번째 강좌가 있던 날의 풍경이다. 이날 강사는 청소년 문제 전문가이자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잘 알려진 강지원 변호사. 통렬한 자기반성으로 말문을 연 그가 부모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10월21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noworry.kr)에서 진행된 강좌를 지상 중계한다.


오늘 하려는 얘기의 요지는 간단하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태어났다는 것. 참 당연한 얘기인데 우리는 자주 망각하고 산다. 세계 70억 인구 가운데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마음 씀씀이도, 생각도 다르다. 타고난 적성에 맞춰 살아가면 그 사람 인생은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그런데 어디 현실이 그런가? 다들 정해진 기준에 맞춰 모든 사람을 똑같이 취급하려 든다.  

먼저 내 반성문부터 써야겠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왔다. 아버지 전근으로 그렇게 된 건데, 우리 어머니는 교육열이 굉장히 강한 분이셨다. 7형제 중 5명을 훗날 서울대에 입학시켰을 정도다. 그런 어머니가 처음 고른 곳이 재동초등학교였다. 재동초는 당시 서울시내 명문 초등학교 중 하나로 꼽혔다. 왜? 경기중학교에 학생들을 많이 합격시켰으니까. 나도 당연히 입학하자마자 중학교 입시를 준비했다. 6학년 때 우리 반 60명 중 4명이 합격했는데, 그중 하나가 나였다. 중학교 가서는 경기고를 목표로 입시를 준비했다. 또 붙었다. 그리고 재수해서 서울대를 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강지원 변호사는 “공부는 그저 여러 재능 중 하나”라고 했다. 그가 ‘타고난 적성찾기 국민운동본부’를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시사IN 신선영
강지원 변호사는 “공부는 그저 여러 재능 중 하나”라고 했다. 그가 ‘타고난 적성찾기 국민운동본부’를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대학교 2학년 때 3선 개헌 반대 가두시위에서 연설을 했다가 주동자로 찍혀 체포령이 떨어졌다. 야간열차를 타고 도망가 몸을 의탁한 곳이 어느 절간이었다. 아침이 되니 장정 여러 명이 밥상에 둘러앉아 있었다. 절에서 고시 공부를 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분들이 내 얘길 듣더니 “쓸데없는 짓 말고 고시 공부나 하라”고 충고했다. 남자는 ‘사’자가 붙어야 출세한다면서. 순진한 마음에 그날로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법전을 달달 외웠다. 그 결과 대학 졸업하기 직전 행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다. 몇 년 뒤에는 사법고시에도 붙었다. 수석 합격이어서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얼굴도 나고 그랬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고? 자기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다. 정반대다. 왜 젊었을 적에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을까, 나는 지금도 후회하고 반성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보라. 행시·사시 패스했으면 판검사를 하거나, 대학에 남아 학자가 되거나 했어야 할 텐데 엉뚱하게 청소년 운동, 사회개혁 운동 한다고 돌아다니면서 얼치기 방송인 노릇까지 하고 있다. 나는 다시 세상에 태어난다면 절대로 고시 공부 따위는 안 할 거라고 단언하고 다닌다. 왜? 법률 따지는 게 너무 싫기 때문이다. 요즘도 내게 법률 상담을 청해오는 분이 가끔 있다. 법이란 게, 이걸 누가 훔쳤냐부터 계약할 때 선수금은 줬나 안 줬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등등 온갖 것을 따져야 한다. 조금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런 게 적성에 맞는 사람도 있다. 법률을 다루는 일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 해야 한다.

나는 내 적성을 우연히 발견했다. 검사 시절 비행 청소년들을 만나다 보니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고 심리 상담, 철학까지 공부하게 됐다. 하다 보니 청소년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교육이 바뀌고 사회가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더라. 덕분에 정치개혁 운동에까지 관심이 확장돼 정책 선거를 주장하며 매니페스토 운동에도 나서게 됐다. 얼마 전 내가 대선에 출마했더니 ‘대통령병 걸렸느냐’고 비난하는 분들도 있던데, 대통령 되겠다고 선거에 나섰던 게 아니다. 정책선거라는 건 이렇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바람에 사재(私財)를 탈탈 털었다가 집에서 쫓겨날 뻔하기는 했지만(웃음). 그래도 나는 지금 행복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있으니까. 다만, 내가 젊었을 때 일찌감치 내 적성을 알아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파고들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일을 잘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때는 있다. 그래서 ‘타고난 적성찾기 국민운동본부’를 만든 거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적성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자신의 ‘적성지도’를 만들어볼 필요가 있다. 위는 취업박람회장을 찾은 특성화고 학생들. 
ⓒ연합뉴스
적성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자신의 ‘적성지도’를 만들어볼 필요가 있다. 위는 취업박람회장을 찾은 특성화고 학생들.
공부 잘하는지가 그렇게 궁금한가? 

여기 부모들이 많이 오셨으니, 한번 물어보자. 여러분 자녀는 공부를 잘하나? 대답이 없으시다(웃음). 다시 묻자. 어떤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던가?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잘하던가? 그렇지 않다. 공부는 타고난 머리가 있는 애들이 한다. 이런 애들은 공부하지 말라고 해도 잘한다. 반면 공부 못하는 재주를 타고난 아이들도 있다. 이런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면 그 자체가 비정상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반드시 알아둘 것이 있다. 공부 못하는 아이는 대신 다른 재주를 타고났다는 사실이다. 공부는 그저 여러 재주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공부 하나로 모든 아이를 재단하려 든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옆집 아이한테 꼭 묻는 말이 “넌 공부 잘하니?”이다(웃음). 이런 질문을 받는 아이들의 심정을 생각해본 일이 있나? 제발 그런 질문 하지 마시라. 또 한 가지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 “넌 꿈이 뭐니?”이다. 지금 존재하는 직종만 2만~3만 개라 한다. 앞으로 20~30년 뒤면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또 다른 직종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 가운데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누가 아나? 이런 무식한 질문 대신 이렇게 물어보자고 나는 제안하고 싶다. “너는 좋아하는 게 뭐니?” 또는 “너는 잘하는 게 뭐니?”라고. 사실 이렇게 물어봤자 돌아오는 답변은 “잘 모르겠는데요”일 공산이 크다.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그렇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 이런 질문을 계속 받다 보면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잘하는 게 뭐지?’ 

적성이라는 건 아이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 부모는 이를 도울 뿐이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 여러 자녀를 길러본 부모라면 똑같은 만화책을 던져줬는데 큰애는 밤을 새워 읽고, 작은애는 한 페이지 읽고 덮어버리는 경험을 해보셨을 것이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계속 하고 싶어한다. 이를 자극하고 기회를 던져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다. 이런 노력도 안 하면서 “넌 꿈이 뭐니?”라고 묻는 것은 무책임하다. 

단, 흥미와 재능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요즘 아이들 중에는 연예인이 되겠다는 아이들이 많다. 텔레비전에서 그저 멋있게 보인다는 이유로, 일시적인 유혹과 허영에 들떠 반짝 흥미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잘할 수 있으려면 재능이 뒷받침돼야 한다. 물론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함부로 재단할 일은 아니다. 재능 여부를 확인하려면 체험해볼 수밖에 없다. 얼마 전 한 엄마가 중학생 딸을 데리고 와서 내게 상담을 청한 일이 있다. 가출도 곧잘 하던 녀석이었는데, 왜 그렇게 부모 속을 썩이느냐고 묻자 아이 왈, ‘가수를 하고 싶은데 엄마 아빠가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가수를 하고 싶다고? 그래라” 하고 선선히 응해준 다음 방송국 PD에게 부탁해 녹음실을 잠시 빌렸다. 아이가 노래 부르는 것을 녹음해 스스로 들어볼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아이 입에서 가수 하겠다는 말이 쑥 들어갔다. 그러고는 내가 내준 숙제에 따라 자신이 뭘 잘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흔히 적성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시는데, 나는 단계별로 접근할 것을 권하고 싶다. 우선, 적성은 한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박지성처럼 축구 하나에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예는 오히려 드물다. 보통사람에게는 여러 재능이 뒤섞여 나타나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모든 재능을 일단 확인해야 한다. 2단계로는 각각의 적성이 차지하는 비중을 따질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축구를 잘하면서 말도 잘하고 사업적 수완도 있는 사람이 있다 치자. 이 사람의 경우 세 가지 적성을 타고난 셈인데, 자기 안에서 각각의 적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르다. 곧 축구 잘하는 적성이 30%인데 말 잘하는 적성은 50%요, 사업적 적성은 10%인 식이다. 3단계는 각 적성별 수준을 점검하는 것이다. 이를 종합해 나만의 적성지도를 만들어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 4단계는 적성을 융합하는 단계다. 축구를 좋아해 하루 일과의 60% 이상을 투자하는데 막상 공은 잘 못 차는 사람이 있다 치자. 반면 이 사람의 말하기 능력은 뛰어나다. 이럴 경우 적성을 융합해보면 이 사람에게 맞는 직업은 축구 해설가라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적성과 직업을 굳이 연결할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투잡, 스리잡도 많다. 나 같은 경우 사회운동가이면서 방송인이라는 두 가지 직업을 갖고 있다. 재미있는 게, 내가 어쩌다 방송 일을 하게 됐을까 생각해보니 중학교 때 잠깐 방송반 활동을 한 일이 있더라. 방송반이라고 해봐야 허름한 앰프 하나 놓고 점심시간에 음악 틀어주는 게 다이긴 했지만, 나 자신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던 나의 흥미와 재능을 뒤늦게 되살리고 있는 셈이다. 흥미롭지 않나? 이러니 청소년 시절에 적성을 찾아주는 일이 소중하다는 거다. 자신의 타고난 재능은 절대로 속일 수가 없다.

문제는 한국 교육이 적성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교육이 인간에 대한 투자라면 아이들이 타고난 적성을 찾아주는 것이야말로 최적의 투자가 될진대, 지금의 교육은 아이들을 똑같은 교실에 앉혀놓고 똑같은 지식을 욱여넣는 데 골몰할 뿐이다. 그러면서 대입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이리떼처럼 아이들을 우르르 몰고 간다. 이건 미친 교육이다. 내가 고3 때 수학에 미적분이 처음 도입됐는데, 이를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화가 난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미적분의 ‘미’자도 써볼 일이 없으니까. 반면 교육을 받는 동안 “네 타고난 적성을 찾아라, 그것이 성공의 길이다”라고 말해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교사도, 교수도, 부모도. 오직 공부만 하라고 했다. 

‘진짜’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 싶다면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선생님은 고시도 두 개나 합격하고 누릴 것 다 누려봤으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죠”라고 시비 거는 분들이 있다. 그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진정으로 후회하기에 아이들만은 나 같은 삶을 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대로 우리 집 아이 둘은 대안학교에 다녔다. 아내(김영란 전 대법관)와 나는 전형적인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그런 우리가 왜 공교육 대신 대안학교를 선택했겠나? 돌이켜보면 상당한 용기와 소신이 필요한 일이기는 했지만, 우리는 지금도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진짜 행복은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데서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난 지금도 변호사 일을 다시 할 생각이 없다. 아내가 대법관 출신이니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면 3년에 100억원은 벌 수 있을 거라고 주변에서 얘기들 하는데, 나는 그냥 지금처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소박하게 살고 싶다.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남들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남들 세단 타니 나도 세단 타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자가용 대신 지하철·버스 타고 걸어다니면서 살기로 약속했다. 많이 걸으니 다리도 튼튼해지고 건강관리에도 좋다. 그런 나를 보고 누군가 무시한다? 그건 그 사람 소관이다. 나 스스로 내공이 쌓여 있으면 그런 일에 흔들리지 않는다. 행복의 기준은 결코 밖에 있지 않다. 우리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면, 그래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행복할 것 같은가? 결코 그렇지 않다. 행복은 절대로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저당잡히는 게 아니다. 오늘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내일도 행복할 수 없다. 왜? 행복은 습관이니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홍익(弘益)을 추구하는 삶을 덧붙이고 싶다. 내 가족, 이웃, 국가, 나아가 인류에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의 영역을 점점 더 넓혀가는 것이 홍익이다. 기왕 태어난 인생, 이웃과 공동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참된 행복이자 성공 아니겠나.

정리·김은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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