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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7일 토요일

그렇게 증오할 것을 얻었다--한겨레21 [2014.12.29 제1042호]


http://h21.hani.co.kr/arti/reader/together/38675.html


이번 주에도 <한겨레21> 기자들은 수북하게 쌓인 새책들 앞에서 고민을 했습니다. 과연 어떤 책을 소개하는 게 독자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말이죠. <한겨레21>이 매주 제공하는 해드리는 '책골라21'은 기자들이 고심 끝에 선정한 이주의 새책입니다. 주말에 서점에 들르신다면, 책골라21의 리스트를 한 번 참고해보세요.
그렇게 증오할 것을 얻었다
<음모론의 시대>
전상진, 문학과지성사 펴냄, 1만3천원
책이 적시하는 음모론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최근 수년 동안 겪었던 진보의 편두통에 시달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지은이는 사회학자로서 음모론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빠졌지만 시민으로서는 거리두기가 어렵기 때문에 국외 사례를 중심으로 논하겠다고 했지만 책(전상진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은 뒤쪽 표지에 그 대상을 명확히 적시하고 있다. 9·11, 천안함 침몰, 디도스 공격, 세월호 참사….

음모론이 숱한 사회적 사건들의 해석 방법이자 소통 방식으로 자리잡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2011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가해진 디도스 공격이나 2013년 국가기관들의 광범위한 대선 개입과도 같은 정말 터무니없어 보이는 음모론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명박 정부는 대운하 사업 관련 문건을 모두 폐기한 것을 비롯해, 비밀 기록물을 단 한 건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고도 권력은 자신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한다. 조직화된 무책임성과 계속되는 고통은 음모론이 배양되는 기름진 토양이다. 텅 비어버린 공공 영역이 좌절과 실망의 의미를 더 이상 제공하지 못할 때 현 상황에 만족할 수 없으니 뭐라도 해야 할까 하던 사람들은 ‘스스로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자기계발에 기대거나 아니면 음모론에 귀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음모론이 “약자의 무기이자 통치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노엄 촘스키는 “대중의 해석장애를 유발하려는 정치권력의 음모”를 제기했다. 민중은 증오할 것을 얻음으로써 자신을 탓하거나 권력자를 비난하지 않게 되는데, 그 증오 대상은 자신보다 약한 대상, 곧 다른 인종,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등이기 쉽다. 음모론의 맥락을 따라가다보면 답답한 일상에 대한 책임을 조선인을 공격하는 데로 돌린 일본 재특회(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 사회주의에 대한 두려움으로 결집한 미국 티파티 운동, 그리고 한국의 일베가 생겨난 정황 등을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증오할 것을 얻음으로써 자신을 탓하거나 권력자를 비난하지 않게 되는” 음모론은 우리 손에서 만들어져 우리의 뒤통수를 가격할지도 모른다. 책은 “음모론은 역사와 현재 정치에 대한 해석에서 능동적이고, 정치와 경제적 권력의 지배적인 역사 설명에 해당하는 내러티브를 만드는 한에서만 저항적”이라고 선을 긋는다. 질문으로 남을 때 음모론은 비판의 교두보가 될 수 있지만, 답변이고자 과욕을 부리면 그것은 망상이 되고 도그마가 된다는 것이다.
책 서문에서 지은이는 “저항의 불쏘시개였지만 또한 저항을 분쇄하는 조치를 정당화했던” 2008년 촛불시위 때부터 음모론에 대해 생각해왔다고 밝혔다. 촛불은 흩어졌지만 음모론으로 표출됐던 절실한 질문은 남아 있다.
<자유란 무엇인가>
박홍규 지음, 문학동네 펴냄, 2만원
자유는 우익의, 보수단체의 단어가 되었다. 왜 자유는 이렇게 타락했는가. 저자는 먼저 자유가 서구 제국주의의 영향으로 형성된 단어는 아닌지 질문한다. 이 영향으로 한국에서 이 단어는 부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논리가 되었다. 저자는 단절과 분리가 아니라 개개인의 관련성을 함께 생각하는 자유, ‘상관 자유’ 개념을 제안한다.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류동민 지음, 코난북스 펴냄, 1만4천원
사회경제학자이자 서울 토박이인 저자가 서울에 관해 조금은 개인적인 서사를 풀어놓았다. 저자의 시선에서 특이한 점은 정치·경제적 해석이다. 케인스가 금리생활자는 없어지리라 했는데 서울에서 모든 가격 설정에서 불변 상수 역할을 해온 임대료, 피케티의 불평등도를 체감할 수 있는 아파트 가격, 시초축적이라는 용어를 수시로 쓰는 사람들 등등.
<돈이란 무엇인가>
게오르그 짐멜 지음, 김덕영 옮김, 도서출판 길 펴냄, 2만원
사회학·심리학·문화철학·예술철학 등에서 다양한 저서를 남긴 저자의 대표작은 <돈의 철학>이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 예비 연구로 수행한 7편의 글을 모은 것이 <돈이란 무엇인가>다. 돈이 수단을 넘어 최종적 목적이 되고 절대적 가치가 되는 변형 또는 전도 과정을 추적한다. <개인 법칙>이 함께 나왔다.
<검색되지 않을 자유>
임태훈 지음, 알마 펴냄, 1만7500원
인문학자인 저자가 현재 디지털 세상의 명과 암을 다양한 각도로 그려냈다. 빅데이터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웨어러블 기기와 디지털 화폐의 등장이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바꾸는지 등을 분석적으로 들여다봤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카카오톡 사태, 선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디지털 현상과 함께 쉽게 써내려간 점이 인상 깊다.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
최현숙 지음, 이매진 펴냄, 1만6500원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로 8090세대 생애사를 기술했던 저자가 5070세대를 인터뷰해 펴낸 책. 이번에 만난 이는 3명이다. 기초수급자로 정부가 주거를 지원하는 곳에서 다른 노인 3명과 살고 있는 장기태씨는 사생아를 낳은 이력이 있다. 노래로 눈물바다로 만들고는 “짜라짠짠짠”으로 마무리하며 확 뒤집었다는 환갑잔치처럼 구슬프면서 유쾌하다.
<누가 집을 지을까?>
구본준 지음, 김이조 그림, 창비 펴냄, 1만1천원
‘땅콩집’ 열풍을 불러일으킨 고 구본준 <한겨레> 기자가 쓴 어린이 그림책이다. 집 한 채가 지어지는 과정과 더불어 콘크리트 기술자, 목재 기술자 등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땀과 노력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집, 큰돈이 없는 평범한 가정도 집을 지을 수 있기를 꿈꾸었던 저자의 바람이 이 책의 뼈대가 됐다.
<솔부엉이 아저씨가 들려주는 뒷산의 새 이야기>
이우만 글·그림, 보리 펴냄, 1만8천원
유달리 우리나라는 도시라도 산이 많다. 자전거를 탈 수는 없지만 아파트촌에서도 조금만 벗어나면 새를 관찰할 수 있다. 인천 아파트에 사는 저자가 방에서 망원경으로 혹은 직접 발품을 팔아 뒷산의 나무와 새들을 관찰해 세밀화로 그렸다. 어미 오목눈이새가 벌레를 내동댕이쳐서 먹기 좋게 만드는 것, 어미 박새가 벌레를 물고 들어갔다가 하얀 똥을 물고 나오는 것 등의 관찰기도 세밀하다.
<나랑 상관없음>
모니카 사볼로 지음, 이선민 옮김, 문학테라피 펴냄, 1만1천원
MS는 편집자 면접을 위해 XX에게 연락하고 그의 “넥타이를 매고 나갈게요”라는 엉뚱한 말에 매료된다. XX와 신체 접촉이 있기를 바라며 입은 회색 스웨터 사진, 부모님의 사례, 서로 주고받은 문자와 사진 등 사랑에 빠진 여성의 심리를 온갖 정황으로 보여준다. MS는 그에게 “나랑 상관없음”이란 말을 듣고는 이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매달린다.
글 남은주 <한겨레>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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