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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7일 토요일

신뢰의 저자, 경향신문 책과 삶, 도정일, 한강, 장하성, 정여울, 장하준, 유시민, 강준만, 최열, 성석제, 강신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2262121375&code=960205#15666457


[2014 경향신문 선정 올해의 저자]‘신뢰’의 아이콘,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경향신문 ‘책과 삶’이 올 한해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은 10명의 저자를 뽑았다. 갈수록 책을 읽는 사람이 줄고 있지만, 이들은 이름 석자만으로도 독자의 관심을 끌고 책을 집어 들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복잡다단한 우리 현실을 분석해 방향성을 제시하고 대중 담론을 형성하며 책을 통해서만 가능한 사색과 성찰의 힘을 길러준다. 판매부수가 아닌 신뢰로 독자들 곁에 다가선 저자들이다.


■ 도정일 | 쓰잘데 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우리네 삶에 소중하고 고귀한 것들 되새김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학장(73)은 과작의 저자다. 올해 초 함께 나온 <쓰잘데 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과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이상 문학동네)는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이후 20년,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 이후 6년 만의 단독 저작이다. 눈 감았다 뜨면 바뀌는 디지털 세상에서 느릿한 집필 속도, 독서 운동에 대한 열정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세상이 쓰잘데 없다고 여길지 몰라도 우리네 삶에 지극히 소중하고 고귀한 것들”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2005년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함께 <대담>(휴머니스트)을 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섭 선구자 역할을 했던 그는 9년 만에 다시 최 교수와 만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도 화두는 역시 “인간이란 무엇인가”였다.

■ 한강 | 소년이 온다
‘광주’ 통해서 국가폭력을 다시 한번 응시


한강씨(44)는 ‘광주’를 환기시켰다. 아직도 ‘광주’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남았나. 지난 30여년간 그 많은 문학, 영화, 미술 작품이 광주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그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창비)를 읽고 나면 지금이야말로 다시 광주를 떠올려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1980년 5월27일 전남도청에 남아있다가 죽은 16세 소년 동호의 사연과 그 죽음이 남긴 파장을 다각도에서 조망하는 이 소설은 국가 폭력을 다시 한번 정면으로 응시한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화자의 입을 빌려 2009년 1월 용산 참사와 광주의 유사성을 다시 강조한다.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다.

■ 장하성 | 한국 자본주의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저격수’의 귀환


장하성 고려대 교수(61)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경영학자다. 그러나 그의 활동 반경은 아카데미의 울타리를 뛰어넘는다. 그는 초기의 참여연대에서 일찌감치 경제민주화 운동을 벌인 시민운동가였고, 자신의 이름을 딴 펀드를 만들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도모한 주인공이었으며, 안철수 대선 캠프의 경제 브레인이었다. 이러한 그의 이력을 고려할 때 올해 나온 <한국 자본주의>(헤이북스)가 그의 첫 대중 저서라는 사실은 놀랍기까지 하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순을 신자유주의에서 찾으려 하는 여느 진보학자들과 달리, 장하성은 한국 사회가 시장경제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다고 지적한다. 대신 그는 개발 연대에 고착화된 성장방식과 재벌 체제에서 문제를 찾는다.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저격수’가 돌아왔다.

■ 정여울 |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
인문학적 소양과 대중적 글쓰기 내공의 힘


정여울씨(38)는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04년 계간 ‘문학동네’ 봄호의 ‘방현석론’으로 데뷔한 ‘정통 평론가’다. 문학의 힘이 예전 같지 않고 평론은 더더욱 그러한 세상이니 평론가는 문단이나 대학 안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씨는 올해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이상 홍익출판사)으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올랐다. 대기업인 대한항공이 기획, 사진 제공을 맡았다고 해서 책이 쉽게 인기를 얻었으리라 짐작해서는 안된다. 그는 인문학에 대한 깊은 소양을 가졌고 10년 이상 대중적 글쓰기를 단련해 왔으며 무엇보다 방학만 되면 꾸준히 여행을 다녔던 내공 있는 저자다. 서점에 깔린 수많은 여행서 중에서도 이 책이 인기를 얻은 것은 저자의 힘 덕이다.

■ 장하준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신고전주의 넘어 다양한 경제학 양상 제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51)는 지난 10년간 한국 독자들에게 가장 주목받은 경제서적 저자일 것이다. <사다리 걷어차기>(2004), <쾌도난마 한국경제>(공저·2005), <나쁜 사마리아인들>(2007),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2010) 등 내는 족족 베스트셀러였다. 그의 영향력을 국내로만 한정 지을 이유는 없다. 그의 이름값은 세계적이다. 덕분에 그의 이름은 대선이 다가올 때마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각 캠프의 영입 후보군에 오르내린다. 올해 나온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부키)는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를 표방한다. 1980년대 이후 경제학적 진리로 군림했으나 작금의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을 못 내놓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넘어 다양한 경제학의 양상을 제시한다.

■ 유시민 | 나의 한국 현대사
번민하는 당사자 입장서 쓴 ‘현대사 55년’


유시민씨(55)는 시사 칼럼니스트, 텔레비전 토론 사회자, 국회의원, 장관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 여러 출판사들이 탐내는 빼어난 저자였다. 20대에 이미 <거꾸로 읽는 세계사>로 베스트셀러 저자가 된 그는 이후에도 책을 내는 족족 낙양의 지가를 높였다. 그가 지난해 정계은퇴를 선언해 글 쓸 시간이 많아졌다는 사실에 출판계는 내심 환호하고 있다. 올해 펴낸 <나의 한국 현대사>(돌베개)는 “프티부르주아 리버럴의 ‘위험한 현대사’ 읽기”를 표방한다. ‘냉정한 관찰자’가 아닌 ‘번민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체험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써내려간 한국 현대사 55년의 기록을 읽고 있으면, 그가 스스로 칭하듯 ‘실패한 정치인’이 아닌 ‘매력적인 글쟁이’임을 확인할 수 있다.

■ 강준만 | 우리도 몰랐던 우리 문화,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싸가지 진보
“싸가지 결여” 작금의 진보 진영에 일침


강준만 전북대 교수(58)는 다작의 저자다. 그는 지난 20여년간 기복 없이 저술에 몰두해왔다. 올해에도 <우리도 몰랐던 우리 문화>(3월),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6월), <인문학은 언어에서 태어났다>(12월) 등 6권의 단독 저서를 내놨다. 그중에서도 8월에 나온 <싸가지 없는 진보>(인물과사상)는 한동안 잠잠했던 한국 지성계에 격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책이었다. 그는 현재 한국의 진보 진영이 ‘싸가지’를 결여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상대편을 존중하는 마음’과 ‘민심을 제대로 읽는 눈’을 갖춰야 집권 이후에도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강 교수의 주장에 대해선 시비할 수 있지만, 그가 성실한 저자이자 용기 있는 지식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2015년에 그는 또 어떤 논제를 던질까.

■ 최열 | 이중섭 평전
사실에 대한 집착으로 ‘실록 같은 평전’


최열씨(58)는 관록 있는 미술평론가이자 근대미술사학자이지만 실력에 비해 지명도는 낮은 저자다. 그러나 올해 나온 <이중섭 평전>(돌베개)은 그가 일급의 미술 저자임을 증명한다. 그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이중섭에 관한 주요 문헌 500여종을 섭렵하고 고증한 뒤 전체 932쪽에 주석만 70여쪽에 달하는 책을 완성했다. 이중섭의 삶이 극적이었던 만큼 온갖 신화에 둘러싸여 있으며 고은, 구상 등 많은 이들이 그에 대한 글을 남겼다. 최씨는 이중섭을 그려내려는 앞선 모든 시도들에 도전했다. 그 무기는 오직 사실 그 자체였다. 섣불리 판단하거나 소문을 전하는 대신, 증언과 기록을 제시했다. 그래서 <이중섭 평전>은 ‘실록 같은 평전’이 됐다. 사실에 대한 집착은 저술의 기본임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 성석제 | 투명인간
‘투명인간’ 상황 아닌 사람은 얼마나 될까


성석제씨(54)는 1986년 시로 등단했으나 그를 시인으로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는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1994), <홀림>(1999),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2002) 등을 통해 한국 문단의 확고한 중진 소설가로 자리 잡았다. 2년 만에 내놓은 장편 <투명인간>(창비)에서 작가는 평생 가족과 남을 위해 살아온 김만수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거치며 투명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들려준다. 모든 걸 내주었으나 아무것도 갖지 못한, 그러나 불평할 줄 모르는 착해빠진 사람들인 투명인간. 성씨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해학과 풍자는 숨긴 채 “세상에 ‘투명인간’ 같은 상황이 아닌 사람들의 숫자가 얼마나 될까”라고 정색한다. 이 책은 올해 나온 한국 소설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이기도 하다.

■ 강신주 |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망각과 자유
주전공인 동양철학으로 되돌아온 ‘스타’
강신주씨(47)는 ‘스타 철학자’다. 스타란 수식어가 철학자에게 어울리는지를 따질 때가 아니다. 책에 따라 많으면 수십만권의 판매 부수를 자랑하고, 강연을 열 때마다 수백명이 모여들며, <힐링 캠프> 같은 인기 프로그램에 단독으로 출연하는 인문학자를 ‘스타’라 부르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그는 올해 선불교의 화두 모음집인 <무문관> 해설서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동녁)와 니체, 들뢰즈 등을 경유한 장자 해설서 <망각과 자유>(갈라파고스) 등을 내놨다. 지난해엔 라디오에서 청취자와 나눈 상담을 묶은 <다상담> 시리즈를 냈으나 올해는 주전공인 동양철학으로 돌아온 셈이다. 그러나 전공, 비전공 가릴 것 없이 강신주는 ‘스타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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