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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8일 목요일

이상헌, 반쪽짜리 경제학,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소설

출처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8491.html

2014년 12월 8일자 한겨레21, 제1039호,


신뢰·관계·미모까지 ‘가격’으로 환산하지만 노동자 사고·실업
의 사회적 비용 계산은 외면하는 반쪽짜리 경제학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부사무총장 정책특보 


밤새 바깥으로는 겨울비가 잔잔했고 꿈속에서는 칠면조가 어지럽게 뛰어다녔다. 밤늦게까지 천명관의 소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를 읽었던 탓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사내는 한때 트럭을 몰고 다니며 제법 먹고 살았으나, 트럭 기사들이 벌인 도박판에서 돈을 잃고 트럭도 잃게 된다. 날로 쇠락해지는 삶은 이내 폭력이 오가는 부부싸움으로 이어졌고, 그 끝은 이혼이었다. 50대 후반을 바라보는 그는 이젠 겨우 냉동창고를 전전하며 날품팔이 ‘육체노동자’로 살아가지만, 육신은 지치고 일은 그만큼 더 버거워진다. 자식들은 또 그만큼 멀어진다.

살인 무기가 된 냉동 칠면조

어느 날, 냉동창고에서 겨우 하루를 버티어낸 그를 안타깝게 보던 작업장 감독이 냉동창고에서 칠면조 한 마리를 몰래 끄집어내 사내에게 주었다. 꽁꽁 얼어 요상하기까지 한 칠면조를 들고 나선 그는 하루의 피로를 풀고자 술 한잔을 걸친 뒤 차가운 길거리에 나섰다. 거기서 그가 만난 이는 가요주점 사장. 당장 외상값을 내놓으라는 날선 호통에 그는 냉동 칠면조를 무기처럼 휘두른다. 사장은 피 흘리며 쓰러지고, 그 위를 사내는 칠면조로 연거푸 내려친다. 부랴부랴 도망쳐나온 그가 발견한 것은, 기사가 당구 치러 나가면서 잠시 비워둔 트럭. 무작정 몰고 나와 달린다. 혹 아내가 있다는 남쪽으로 가면 그녀의 얼굴을 멀리서마나 잠시 볼 수 있을까 기대하며, 사내는 트럭에서 어긋나기 시작한 인생을 트럭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만, 그 뒤로 나는 사내의 마지막 길을 같이 달리던 칠면조를 보았다. 내 꿈속에서 사내는 가고 없고 칠면조만 달렸다. 생각해보니, 어어부밴드의 노래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가 들렸었다. 가수가 백현진이었던가. “글처럼 이 세상은 아름다운데 왜 많은 사람들은 이래야 하나?” 하고 토하듯이 노래하던 이.

칠면조가 꿈과 같이 사라지고 나는 깨었다. 오늘은 토요일이 아니다. 서둘렀다. 노력을 한 만큼 돌려준다는 시장을 분석하는 일이 내 일이다. 남들은 경제전문가라고 하는데, 경제의 오묘한 이치를 깨우치기는 힘든지라 부지런함으로 대신하려 한다. 이쪽 업계 밥을 먹은 지 20년이 다 되어가니, 동종 업계 종사자들이 ‘칠면조 사건’에 대해 뭐라 할지 짐작된다. 출근길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글이 있었다.

꽤 오래전에 본 글귀인데,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보는 글이다. 한 연구원의 원장이 쓴 글이다. 그는 꽤 유명세를 누리는 경제학자다. “시장경제의 이치 중에 가장 중요한 이치는 어떠한 경우에도 시장에서는 1등과 꼴찌(파산하는 기업과 개인)가 있게 마련이며, 모두 다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능력과 노력의 차이에 따라 차별이 생기며 서열이 생기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차별화에 따른 차등적 보상 원리가 모든 사람을 보다 더 열심히 살게 만들고 나아가 사회와 경제의 발전을 가져오는 힘이 되는 것이다. 결국 시장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 게으른 자를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돕지는 않는다. 마라톤 경주도 항상 열심히 달려서 우승하는 자에게 영광을 주지 꼴찌에게 영광을 주지는 않는다. 옛말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그의 말이 맞다면, 꼴찌에게 세상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천명관 소설 속의 사내에게 세상은 냉동 칠면조라는 온정을 베풀었지만, 결국 그의 지난한 삶을 파멸시킨 마지막 무기였을 뿐이다. 그의 말이 맞다면, 밤새 나를 따라다녔던 칠면조는 없어지겠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만 도울까?

사무실이다. 경제 기사부터 빨리 살핀다. 경제는 늘 분주하고 무수한 소식을 쏟아낸다. 밤새 생긴 일 중 보고할 거리가 있는지를 본다. 바깥 안개만큼 어두운 기사뿐이다. 유럽 경제가 장기침체에 들어설 가능성이 몇 배 높아졌다고 하고, 일본 경제는 좋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라고 한다. 순식간의 변화다. 몇 주 사이에 변해버렸다. 그럴 수 있을까. 아마 변한 것은 경제가 아니라 경제분석가나 정책입안자의 생각이겠지. 밤새 그들의 머리 속에 칠면조가 무수히 다녀갔던 일일까.

세상의 ‘꼴찌’는 천명관 소설의 사내 같지만은 않다. 더러 힘을 모아서 항의도 해보고 시위도 한다. 벨기에에선 철도 파업 중이란다. 프랑스 남부의 어느 공장은 태업이다. 꼴찌들이 힘을 모으는 곳이 어디 여기뿐이겠는가. 차마 칠면조를 휘두르지 못한 경비원은 제 목숨을 버렸고, 그의 죽음을 슬퍼했던 동료들은 졸지에 직장을 잃었다. 우리가 단지 알지 못할 뿐이다. 아는 것만 기록해둔다.

전자우편이 왔다. 늘 친절한 미디어 담당 부서에서 주요 기사 묶음을 보냈다. 원유 가격 하락에 관한 기사가 맨 위에 있다. 원유 가격의 하락세는 지속될 것이라 하고, 향후 20% 정도 하락하면 이로 인해 세계경제가 1% 추가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실렸다. 반가운 소식인데, 생각해보니 요상하다.
원유 가격이 하락한 이유는 세계경제의 침체가 지속되면서 원유 수요가 떨어졌기 때문인데, 그 결과 세계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은 뜬금없다. 옆방 동료가 그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왜 있는가? 이럴 때 원유 공급을 줄여서 가격을 유지하라고 있는 거지. 조만간 ‘보이는 손’이 등장하겠다. 적어도 그들은 솔직하다. 그들의 밤에도 칠면조가 다녀갔을까.

문득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를 떠올린다.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이라 비유해서 자유방임 경제의 주창자로 알려진 그는 사실 누구보다 ‘보이는 손’에 대해 잘 알았다. 꼴찌들이 뭉쳐서 무력시위하는 통에 시장 질서가 어지러워지고 경제가 파탄 난다면서 난리법석이지만, 그는 ‘고용주들의 연합’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다만 우리가 이에 대해 거의 듣지 못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 이유는 이 연합이 아무도 주의하지 않는 평소의, 그리고 자연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뭉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누가 하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기도, 부자연스럽기도 하다는 얘기겠다. 한쪽은 손을 탁자 밑으로 숨기고 내밀어 보이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손을 하늘로 뻗으니 모두의 눈에 보이는 것뿐이다.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는 손’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 천명관 소설 속의 사내가 몸보신용으로 받은 칠면조가 살상용 무기로 바뀌는 데는 몇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적어도 솔직한 ‘보이는 손’

터키 앙카라 사무소에서 연락왔다. 터키에선 올 5월에 광산 사고로 301명이 죽었다. 내년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개최하는 의장국이 되었으니, 산업안전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보자고 한다. 경제전문가가 넘쳐나는 곳이 G20 회의인 만큼,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산업재해의 경제적 비용을 추산해달라고 한다. 지난해에 얼렁뚱땅 내놓은 숫자가 있긴 하다. 국민총생산의 4% 정도가 된다. 얼마나 믿을 만하냐고 묻는다. 난처해진다. 차라리 당신의 믿음은 얼마나 믿을 만한지에 대한 당신의 답은 얼마나 믿을 만한가라고 물어보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는 “꽤 믿을 만한 것으로 안다”라는 괴상한 문장이 나왔다.

경제학은 서머싯 몸의 얄미운 ‘만물박사’(Mr. Know-All)다. 학교를 1년 정도 더 다니면 얼마나 소득이 늘어나는지를 간단하게 계산해내고, 잘생긴 사람이 누리는 혜택도 평생소득으로 환산해서 알려준다. 교육 프리미엄이라 하고, 미모 프리미엄이라고 한다. 아마 학원 프리미엄도 어디선가 계산하고 있을 터다. 심지어 정의하기조차 힘든 ‘신뢰’의 금전적 이익도 계산하고, 부부간의 내밀한 관계도 예외 없이 비용과 편익을 분석해서 알려준다.

그런데 그 만물박사가 신문과 방송에 매일같이 보도되는 노동자들의 부상과 사고를 경제적으로 분석하는 일에는 소극적이다. 노동자가 사고를 당해서 노동능력이 저하되거나 상실될 경우 그가 감당해야 할 손실이 얼마인지를 따지는 일은 드물다. 나서는 이가 적다. 정신적 스트레스의 증가로 사회적·경제적 비용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정작 스트레스의 주범인 일터에서 생기는 일들을 좀체 살피려 하지 않는다. 일자리가 중요하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정작 실업의 개인적·사회적·경제적 비용을 꼼꼼히 계산하지 않는다.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던가. “회의론자란 모든 것의 가격을 알면서도 아무런 것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부류다.” 경제학은 그런 의미에서 회의론자다.

“가격은 알지만 가치는 알지 못하는”

만물박사 경제학의 야무진 칼날은 일터의 정문 근처에서 서성거리기만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아마도 거기에 숨어 있을 터. 소설 속의 만물박사는 잘난 체하는 ‘밥맛’이지만,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체면 구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려운 저쪽의 마음까지 헤아리며 지식을 구사해야 진정한 만물박사라는 얘기겠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복도에는 화창한 겨울 하늘이 들어와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사람들은 이 구절이 성경에서 왔다고 믿는다. 하지만 성경에는 그런 구절이 없다. 사내의 칠면조에 묻어 있을 서늘한 핏자국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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